#86화 문제가 있나요?
커다란 늑대들을 힐끗거리면서 텐트를 쳤다.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작 늑대들은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토리가 큰 늑대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는 게 보였다.
말려야 하나 고민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알아서 잘 처신할 거다.
결국, 늑대의 몸 위에 올라간 토리.
늑대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제자리를 빙그르르 돌았다.
다시 고개를 갸웃.
킁킁킁.
냄새까지 맡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늑대가 이빨을 드러냈다.
“그르르르.”
정신이 사나웠나 보다.
눈치를 보더니 슬쩍 자리에 앉는 늑대.
서열 관계가 확실했다.
그러나 여전히 눈동자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토리는 머리 꼭대기까지 도착했다.
그리고는 몸을 눕는 토리.
늑대는 머리 위가 신경 쓰였는지 머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연신 눈을 위로 힐끗거렸다.
그 모습에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쟤들도 귀엽구나.’
덩치는 컸지만 설기나 다른 새끼 늑대들과 다를 게 없었다.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텐트 치는 게 끝나고 불을 피울 때쯤 설기가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털 뭉치.
설기를 본 늑대들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뗐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강현은 늑대들이 떠난 자리를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다음에 보답해야겠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덩치도 덩치지만 숫자도 많았다. 하지만 이대로 받기만 하기는 미안했다.
‘나중에 생각하면 되니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강현의 곁으로 설기가 다가왔다.
“끼잉.”
애처로운 설기의 시선에 강현의 눈살을 찌푸렸다.
“…배고파졌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숲을 돌아다니면서 소화를 시킨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재료가 없어.”
사냥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늑대들은 돌아간 상태.
강현의 말에 설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힘차게 짖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무언가를 끌고 왔다.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끌려오고 있었다.
죽은 돼지.
지구의 돼지와 다른 점이라면 뿔이 높게 솟아 있었다.
송곳니가 아니라 뿔.
그리고 덩치도 어마어마했다.
강현은 눈이 얇아졌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설기. 이미 올 때부터 먹으려고 계획하고 있었단 소리였다.
곧 설기가 힐끔힐끔 강현의 눈치를 봤다.
안 돼?
그리 묻고 있었다.
설기의 눈빛을 본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에서 작은 녀석으로 다시 잡아 와. 걔는 늑대들 주고.”
다시 부르는 건 미안했지만, 선물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거다.
어차피 늑대들도 사냥하고 있을 거다.
이만한 먹잇감이라면 만족할 수 있을 거다.
강현의 말에 설기가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저걸 손질하기 시작하면 내일 아침에나 먹을 수 있을 거다.
설기가 다시 울음을 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늑대 무리가 나타났다.
아쉬운 표정으로 돼지를 건네는 설기.
그러자 늑대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역시.’
좋아하고 있다는 걸 강현에게도 전해졌다.
그러자 우두머리 늑대가 뒤를 돌아보며 짖었다.
곧 늑대 무리 사이로 무언가를 문 늑대가 걸어왔다.
설기보다 더 커다란 토끼.
‘영리하네.’
설기가 늑대들을 다시 부른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냥감을 교환한 늑대들이 떠나갔다.
늑대들이나 강현, 둘 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한 마리만 빼면.
작아진 사냥감을 바라본 설기의 귀가 축 처졌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토끼를 손질했다.
설기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제법 살이 올라 있었다.
‘이걸로 아침도 해결할 수 있겠네.’
좋은 일이었다.
강현은 피워 놓은 모닥불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한 고기를 올렸다.
직화.
금세 익어 가는 고기.
누린내가 살짝 올라왔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강현이 익은 고기를 꺼내서 덜어 주자 설기의 꼬리가 흔들거렸다.
그리고는 접시에 입을 가져가다가 멈춰 서서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의 몫을 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기의 시선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난 배불러. 그러니깐 다 먹어도 돼.”
그제야 고기를 먹는 설기.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부드럽게 웃은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서 보는 밤하늘은 언제 보아도 멋있었다.
하늘만 바라보면 밤이란 걸 모를 정도로 별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강현은 배낭 안에 있는 맥주를 떠올렸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충분히 마셨다.
맥주는 고작 네 캔.
다른 날을 위해서 아끼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강현은 어제 남긴 토끼 고기로 스튜를 끓였다.
그러한 강현의 곁에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잘 잤어?”
강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토리.
그리고는 강현의 무릎 위로 재빨리 올라갔다. 이른 아침에도 쌩쌩한 토리.
이어서 스튜의 냄새가 솔솔 올라오자 텐트 안에서 설기가 기어 나왔다.
토리와는 다르게 강현의 옆까지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긴 하품을 했다.
아직 잠이 덜 깬 것이었다. 하지만 두 눈은 스튜를 향해 있었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제 그렇게 먹고도 또 먹을 생각이냐?”
“끼잉.”
강현의 물음에 순진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설기.
강현은 피식 웃고는 스튜에 간을 맞췄다.
그렇게 간단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텐트를 접은 강현은 몸을 풀었다.
아침을 먹고 정신을 차린 설기가 강현을 바로 보았다.
“끼잉?”
“어디로 갈 거냐고?”
끄덕끄덕.
설기의 반응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말하지 않았네.’
강현의 시선이 숲 너머로 향했다. 그 끝에 걸려 있는 높은 산.
지난번에 오르다 실패한 곳이었다.
일박은 힘들지만, 나눠서 오르면 가능할 거다.
강현을 따라서 고개를 돌린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컹! 컹!”
방방 뛰는 설기. 설기의 꼬리도 흔들렸다.
‘그렇게 좋나?’
평소보다 과한 반응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곧 이어서 빨리 가자며 턱짓했다.
“그래, 알았어.”
강현은 이제는 지팡이나 다름이 없는 검을 들고 설기를 뒤따랐다.
* * *
‘확실히 전보다는 낫네.’
체력이 늘어난 게 느껴졌다. 무거운 짐을 짊어졌음에도 숨이 차지 않았다.
약간 가빠져 오는 정도?
오히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을 좋게 했다.
싱그러운 바람.
고개를 돌리자 지난번에 쉬었던 공터가 보였다.
벌써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전이었다면 불가능한 속도.
이 속도라면 예상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거다.
“잠깐 쉬고 가자.”
강현의 말에 설기가 돌아보았다.
벌써 쉬냐는 눈빛. 그러나 강현은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점심시간이야.”
그제야 눈을 반짝이는 설기. 설기가 강현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만.’
강현은 쓴웃음과 함께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본 설기의 눈빛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오다가 챙긴 과일과 열매들.
이제는 강현도 구분할 수 있었다. 실망한 표정으로 열매를 툭, 툭 치는 설기.
강현이 그런 설기를 다독였다.
“여기서 해 먹고 정리하면 시간이 너무 걸려. 위에 올라가서 먹자.”
“끼잉.”
잠시 망설이던, 설기가 열매를 씹었다.
씨앗까지 다 씹은 설기. 그리고 빨리 올라가자고 눈짓했다.
강현은 모른 척 과일을 베어 물었다.
상큼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피로가 한 번에 사라졌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강현의 이마를 간지럽혔다.
새들과 풀벌레들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자 땀이 식어갔다.
그러한 강현의 무릎에는 토리가 열매를 들고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결국, 설기 역시 강현의 곁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토리를 내려놓은 강현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다시 올라가자.”
“컹!”
강현이 발을 내디뎠다.
* * *
산 위로 오를수록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리고 숲에서 볼 수 없었던 식물과 동물들도 보였다.
신기한 광경.
산이라고 해 봤자 숲속에 있었다.
이렇게 생태계가 다를 줄은 몰랐다.
산을 오르던 강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슬슬 머물 곳을 찾아야겠네.”
“컹!”
강현의 말에 설기가 꼬리를 흔들었다. 자기에게 맡겨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처럼 자세를 잡던 설기가 멈춰 섰다.
갑작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설기.
‘뭔가 있는 건가?’
강현도 설기를 따라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탄성을 뱉었다.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유히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매 한 마리.
소나였다.
에밀리야의 정령.
강현과 시선이 마주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오라는 건가?’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소나가 날아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 높게 나는 소나를 놓칠 일은 없었다.
게다가 강현의 걸음이 느려질 때마다 주변을 맴돌며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험난한 산길을 지나자 익숙한 얼굴이 강현을 맞이했다.
“제가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부드럽게 웃는 에밀리야.
그리고 소나가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설기의 눈이 반짝였지만, 전처럼 뛰쳐나가진 않았다.
그때, 강현의 어깨 위에 있던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실례했네요. 세 분이었네요.”
에밀리야가 반갑게 손을 흔들자 토리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쪼르르 내려오더니 에밀리야의 손 위로 올라갔다.
“아닙니다. 마침 쉴 곳을 찾고 있었어요.”
강현은 에밀리야를 향해 걸어가면서 말을 꺼냈다.
에밀리야가 강현을 부른 곳은 산 밑이 훤히 보이는 작은 언덕이었다.
텐트를 치기 적합한 곳.
일부러 이곳으로 부른 것이었다.
강현의 말에 에밀리야가 부드럽게 웃었다.
“에밀리야 씨는 이곳에 어쩐 일이세요?”
“순찰을 나왔어요. 강현 씨를 발견하고 인사나 드릴까 해서 기다리고 있었죠.”
에밀리야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에밀리야의 시선이 토리에게 향했다.
“생각보다 성장이 빠르네요. 어리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놀라운 속도예요.”
에밀리야가 손가락으로 토리를 쓰다듬자, 토리가 간지러운지 몸을 뒤집었다.
“그런가요…?”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주 토리를 손바닥 위에 올리는 강현이었다. 그러나 성장한 걸 느끼지 못했다.
그러한 강현의 대꾸에 에밀리야가 살포시 웃었다.
“겉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랍니다. 정령은 숲속의 다른 아이들처럼 천천히 자라지 않아요. 때가 되면 한 번에 성장할 겁니다.”
다른 아이들. 일반적인 동물을 뜻했다.
‘탈피하듯이 크는 건가?’
파충류는 그런 식으로 자란다. 강현의 시선이 토리에게 향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토리.
‘지금의 모습이 귀엽긴 한데….’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강현 씨는 이곳까지 어쩐 일이신가요?”
강현이 건넸던 물음과 같았지만, 무언가 다른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
“전에 한 번 오르려고 하다가 실패해서요. 이번에 시간이 생긴 김에 오르려고 해요.”
강현의 말에 에밀리야는 미간을 좁혔다.
“…혹시, 하얀 늑대가 오자고 한 것인가요?”
“아, 예.”
강현의 대답에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괜찮겠네요.”
에밀리야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감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이 산에 문제가 있나요?”
조심스러운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힐끗 설기를 바라보았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설기.
설기의 눈을 본 에밀리야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런 건, 모르고 갔을 때 더 놀라운 법인데.”
“…전 여러분들처럼 심장이 강하지 않아서요. 미리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음,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몸을 돌렸다. 산 위를 응시하는 에밀리야.
곧 그녀의 입이 열렸다.
“이 산꼭대기는 하얀 늑대의 영역이에요.”
“…설기요?”
“아뇨.”
에밀리야가 부드럽게 웃었다.
“쉽게 말하자면 하얀 늑대, 설기의 부모님이겠죠. 그렇기에 저도 그들의 허락 없이는 이 이상 더 위로 오를 수 없답니다.”
“…!”
태연한 표정으로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는 에밀리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