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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84화 (84/227)

#84화 하늘이 내린 농사꾼

대추를 따고 있던 민호는 걸어오는 강현과 설기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죠? 이것만 마무리하고 바꿔 드리겠습니다.”

“아뇨. 다 끝나서 도와주러 왔어요.”

“예?”

민호가 눈을 껌뻑였다. 강현은 그런 민호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민호가 가위를 내려놨다.

무 뽑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믿기 지가 않는 것이었다.

사다리에서 내려온 민호가 무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밭에는 미리 온 이가 있었다.

민호의 아버지.

무심한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민호 아버지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혼자 이걸 다 한 건가?”

“혼자는 아니에요.”

강현의 말에 민호와 아버지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아니, 설기가 도왔다고 해도….”

민호가 믿기지 않는지 숨을 삼켰다. 설기가 영리하다는 건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있지만, 무를 뽑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하긴 했지.’

슬쩍 설기를 보았다. 설기도 나르는 걸 돕긴 했으나 주역은 따로 있었다.

설기 머리 위에 누워 있는 토리.

토리의 배가 빵빵하게 불러 있었다.

‘무에는 먹은 흔적이 없는데….’

대체 뭘 먹은 걸까? 미스터리였다.

강현은 모른 척 넘어갔다.

그때, 옆에 있던 민호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이 빨리 끝나면 됐지 뭘 물어.”

그리고는 강현을 바라보았다.

“오늘 일당은 충분히 했으니 쉬쇼.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날 것 같네.”

“아뇨. 저도 더 도울게요.”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점심도 안 되었다.

게다가 옮기고 정리만 해서 체력도 남았다.

강현의 말에 민호 아버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민호에게 눈짓했다.

민호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몸을 돌려 다시 밭으로 가는 민호 아버지.

그의 모습에 민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씀은 저리하시지만 기뻐하시는 겁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가 누굴 닮았는지 잘 알려 주는 대목이었다.

민호가 천천히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대추를 따시겠어요?”

“아, 혹시 무처럼 뽑는 게 있나요?”

강현이 조심스레 묻자 민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고구마까지 캐고 나니깐 해가 하늘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강현은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뽑는 것은 토리가 했지만, 섞어 내고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야 좀 일한 것 같네.”

“컹!”

옆에서 설기가 해맑게 짖었다. 설기의 몸에도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강현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서 끝났다는 걸 알리자 민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침 민호도 대추 따는 게 끝났는지 정리하고 있었다.

강현이 그를 돕고 있자 어느새 민호 아버지까지 내려왔다.

“가자.”

어딜 가자는 건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호는 익숙한 듯 흙을 털어 냈다.

어리둥절한 강현에게 민호가 입을 열었다.

“점심시간입니다. 내려가죠.”

“아.”

그제야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를 따라서 집으로 향하니 마당에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 파전과 계란말이. 한쪽에는 막걸리.

“고생하셨어요.”

“아우.”

수진이 웃으며 일행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당에 누워 있던 아기가 칭얼거렸다.

슬그머니 아기를 향해 다가가는 설기.

설기 뿐만 아니라 토리도 아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설기를 알아봤는지 아기가 방긋 웃었다.

그러는 사이 어른들은 마당에 둘러앉았다.

“받으쇼.”

민호 아버지가 막걸리를 들어 올렸다.

“아, 감사합니다.”

황급히 강현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찌그러진 양은그릇.

찰랑찰랑, 하얀 막걸리가 차올랐다.

시골의 풍치가 물씬 풍기었다.

강현의 잔이 차자 민호 아버지는 막걸리를 자신의 잔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강현이 손을 뻗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막걸리병을 건넸다.

민호와 수진이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강현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막걸리가 차자마자 바로 들이켜는 민호 아버지.

그걸 본 수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님, 속 버리세요. 안주부터 드시고 마시세요.”

수진의 말에 민호 아버지가 멈칫하더니 계란말이 하나를 먹고는 다시 마저 마셨다.

막걸리를 입으로 가져가던 강현도 슬그머니 잔을 내려놨다.

그를 본 민호와 수진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강현도 파전 한 점을 먹고는 막걸리를 마셨다.

입안부터 청량감이 온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일한 후에 마시는 술은 그만큼 각별했다.

그리고는 얼음이 동동 떠 있는 김치말이 국수를 한 젓가락 떠먹었다.

“음.”

시원함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런 강현의 모습에 수진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맛은 괜찮으세요?”

“예. 맛있어요.”

예의상 건네는 말이 아니었다. 멸치 육수에 잘 익은 김치, 그리고 김과 파까지.

시장에서 팔아도 될 정도로 맛있었다.

강현의 대답을 들은 수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행이네요. 아무래도 강현 씨가 드신다니 긴장돼서.”

민호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의 직업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김치말이 국수를 먹던 민호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저녁에는 고기를 사 올 테니 따로 안 차려도 된다.”

그런 민호 아버지의 말에 수진의 눈이 커졌다.

“오늘 일 늦게 끝나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음.”

민호 아버지는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물었다. 자연스레 수진의 시선이 민호에게 향했다.

“강현 씨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날 것 같아.”

수진의 눈이 커졌다.

강현이 도와주는 건 고마웠지만, 한 사람이 늘어났다고 금세 끝날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다섯 명이 할 일을 했으니 든든하게라도 챙겨 드려야지.”

민호 아버지가 말을 보탰다. 그 말을 끝으로 민호 아버지는 다시 막걸리를 들이켰다.

당연히 다섯은 농사에 익숙한 일꾼 다섯이었다.

그러자 수진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멋쩍게 웃는 강현.

“요리만큼이나 농사도 잘하셔.”

“진짜요?”

수진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껌뻑였다.

그녀의 시선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사실 토리가 다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번 추석에는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을 거 같아.”

“잘됐네요!”

수진이 기뻐했다. 농사일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은 토리에게 부탁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도움이 되었다면 이런 오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때, 강현의 눈에 막걸리를 들어 올리는 민호 아버지가 보였다.

강현이 서둘러 손을 뻗었다.

술병을 건네는 민호 아버지.

“…고맙소.”

“아버님,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음.”

강현의 말에 민호 아버지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민호와 수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현 역시 더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하는 게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다시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김치말이 국수를 먹으면서 힐끗, 설기를 살폈다.

이미 김치말이 국수와 파전을 비운 설기.

수진이 설기의 몫까지 따로 준비해 준 것이었다.

그러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무룩해져 있었다.

고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 먹긴 했으나 평소 식사량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강현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강현과 둘이 있을 때처럼 투정은 부리지 않고 있었다.

‘저녁은 고기라니 다행이네.’

강현이 따로 챙겨 줄 필요가 없어졌다.

그사이 식사를 끝마친 민호 아버지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다.”

그리 말하고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민호 아버지.

그의 모습에 수진이 입을 열었다.

“강현 씨가 마음에 든 모양이에요.”

“예?”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민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다른 분들의 술도 잘 안 받으세요.”

“아….”

그랬구나. 뒤늦게 민호의 수진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정이 깊으세요.”

“민호 씨처럼요?”

강현의 대꾸에 수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민호가 낯간지러운지 헛기침했다.

* * *

식사 자리가 끝나고 강현과 민호는 다시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도 전에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내려왔을 때, 마당에는 커다란 솥뚜껑이 놓여 있었다.

먼저 온 민호 아버지의 옆에는 검은 봉지가 놓여 있었다.

삼겹살.

한눈에 봐도 양이 많아 보였다.

솥뚜껑 위에는 이미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그런 삼겹살을 가장 반긴 건 설기였다.

꼬리까지 흔들며 민호 아버지의 옆에 자리 잡았다.

민호 아버지가 집게를 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삼겹살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저리도 좋을까?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민호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제가 굽겠습니다.”

고개를 젓는 민호 아버지. 옆에 있던 민호 역시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밑반찬을 가지고 온 수진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밖에서 먹을 때는 항상 직접 구워 주세요.”

수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행들이 자리에 앉자 민호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주는 좀 하시오?”

“아,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잔을 건넸다.

어느 정도 술잔이 오가자 얼굴이 붉어진 민호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가는 민호 아버지를 보던 수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강현 씨는 추석 어떻게 보내세요?”

수진의 말에 민호 역시 강현을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에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집에 있을 예정입니다. 저희는 제사를 안 지내서….”

요식업에 종사하는 강현도 그렇지만, 동생 역시 명절이라고 쉴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둘이 성인이 된 이후로 따로 명절을 보내거나 하진 않았다.

강현의 부모님도 그런 것에는 초연했다.

그런 강현의 말에 수진의 눈이 커졌다.

‘특이하긴 하지.’

강현은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가족끼리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민호네와 비슷했다. 다들 감정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때, 수진이 민호를 바라보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민호.

“그럼, 추석 때 저희랑 같이 보내세요.”

수진의 말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강현이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민호도 나섰다.

“맞습니다.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여럿이 보내는 게 좋습니다.”

“…음, 생각해 볼게요.”

강현의 대답에 둘도 더 권유하지 않았다.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예.”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생각해서 한 말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식사 자리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강현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맞이했다.

* * *

매장 문을 열자마자 이장이 들어왔다.

“아니, 대체 일을 어찌 한 거여?”

“예?”

뜬금없는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이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 씨네 고구마랑 무. 혼자서 다 했다며?”

“아뇨. 혼자는 아닌데….”

“덕분에 아주 난리여!”

심각해 보이는 이장의 표정에 강현 역시 조심스러워졌다.

밭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러나 이어지는 이장의 말은 강현의 예상을 벗어났다.

“살살 좀 허지. 뭐 이리 잘했데?”

“예?”

칭찬인가? 그러나 표정을 보면 아니었다.

이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동네가 난리여. 하늘이 내린 농사꾼이 나타났다고.”

강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너무 과장되었다. 그러자 이장이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웃을 일이 아니여. 내가 아침부터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어?”

이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강현이 일을 잘하는 것과 이장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의아해하는 강현을 본 이장이 말을 이었다.

“내가 그짝과 친하니깐 다 나한테 부탁하잖어.”

일을 도와 달라고.

그제야 강현도 영문을 알 수 있었다.

일당을 두 배, 네 배를 주겠다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강현도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긴 했지만, 이런 일을 직접 부탁하긴 미안해서 이장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강현은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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