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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83화 (83/227)

#83화 너무 사기 같은데

끙끙.

냄새를 맡는 모나의 눈이 반짝였다.

두리번거리더니 그릴을 발견했다. 이미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

식사가 끝났다는 걸 알아챈 모나의 표정이 굳었다.

천천히 강현을 돌아보는 모나.

당혹, 배신감, 실망감.

수많은 감정이 떠올랐다. 이어서 울먹이는 모나.

당황한 강현이 손을 저었다.

“아직 있어. 또 해 줄게.”

어차피 재료가 남았다. 강현의 말에 모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훌쩍.

흘러나온 콧물을 다시 들이켰다. 하지만 곧 다시 나오는 콧물.

손으로 쓱 닦은 모나가 양손을 들었다.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

강현은 콧물이 묻은 손을 힐끗거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모나를 목 위에 태웠다.

“캬하!”

환호성을 지르는 모나.

두 다리가 힘차게 흔들렸다. 그때마다 강현도 흔들렸지만 억지로 버텼다.

모나 역시 반가움을 표하는 것이었다.

꼬리도 신이 난 듯 사방으로 춤을 췄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던 모나가 진정되자 강현이 입을 열었다.

“이제 됐지? 요리해야 하니깐 내려와 있어.”

끄덕끄덕.

충분히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인 모나가 그대로 뛰어내렸다.

착,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하는 모나.

이럴 때 보면 정말 고양이 같았다.

강현은 그런 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화로에 불을 피웠다.

“이제는 나와도 되는 거야?”

어느새 설기와 뒤엉켜서 놀고 있는 모나를 향해 강현이 물었다.

땅을 구르던 모나가 눈을 껌뻑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강현은 그런 모나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몰래 도망 나온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이제 벌써 저녁이었다. 평소에 오던 시간보다 늦었다.

‘잘됐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모나를 데리러 올 거다.

강현은 삼겹살을 넉넉하게 올렸다.

그때, 설기와 어울리던 모나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설기마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어서 바닥에 코를 가져가더니 킁킁 냄새를 맡았다. 자연스레 강현의 시선도 모나에게 향했다.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세운 채로 기어 가는 모나.

그 끝에는 토리가 있었다.

화들짝 놀란 토리가 땅바닥으로 숨었다.

그리고 뭔가를 느낀 건가. 땅바닥에 발톱을 푹 찔렀다.

몇 번 바닥을 찔러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했다. 토리는 이미 도망친 뒤였다.

어느새 설기의 머리 위로 올라온 토리.

본능적으로 거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건가?

모나가 설기를 돌아보았다.

“…으응?”

모나가 눈을 껌뻑였다.

이상하다, 분명 뭔가 있던 것 같은데. 그런 표정이었다.

‘대단하네.’

강현은 짧게 감탄했다. 보이지 않을 텐데, 토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설기는 그런 모나가 재미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강현은 피식 웃고는 고기를 뒤집었다.

동시에 삼겹살의 향이 퍼져 갔다.

모나의 관심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후다닥.

강현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는 모나.

삼겹살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설기가 슬그머니 강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혀를 빼고 해맑게 강현을 쳐다보는 설기.

설기의 눈빛에 강현이 미간을 좁혔다.

“…너도 먹으려고? 방금까지 배부르다며?”

“컹?”

그런 소리 한 적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설기.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삼겹살 냄새를 맡으니 다시 식욕이 올라온 것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의 배로 향했다.

모나랑 논 덕분에 조금 가라앉긴 했지만, 아직도 볼록한 상태.

결국,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맘대로 해. 대신 살찌면 알지?”

설기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 다 익은 삼겹살.

강현이 삼겹살을 들고 잘랐다.

꿀꺽.

침을 삼키는 모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침이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강현은 모나의 접시에 고기를 올렸다.

그리고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역시, 여기 있었군.”

익숙한 목소리. 접시에 입을 가져가던 모나가 굳었다.

강현 역시 집게를 든 채로 돌아보았다.

가죽을 펄럭이며 나타난 여인.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카샨이었다.

“오셨어요?”

“오랜만이군.”

카샨은 강현에게 손을 흔들더니 모나를 바라보았다.

움찔.

먹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나.

‘몰래 나왔구나.’

강현의 예상이 맞았다.

모나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바, 밥.”

밥을 먹기 위해 왔다는 건가? 아니면 밥이라도 먹게 해 달라는 건가?

그러나 카샨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시무룩해진 모나가 접시를 내려놓자 카샨이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사들을 따돌리고 도망치다니. 내 딸이지만 대단한 녀석이야.”

질책 사이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온 카샨은 모나를 들어 올렸다.

대롱대롱 위로 올라가는 모나.

눈은 미처 못 먹은 삼겹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카샨 님, 바쁘시지 않으면 좀 드시고 가세요.”

“음?”

강현의 말에 카샨의 움직임이 멈췄다.

반대로 모나는 기대 섞인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은 부담스러운 모나의 시선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재료를 너무 많이 챙겨 와서 곤란한 참이었어요.”

강현의 말에 카샨이 눈살을 찌푸렸다.

강현은 더 권유하지 않았다. 그 이상은 강요였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던 카샨이 입을 열었다.

“술은?”

“예?”

“술은 있어?”

카샨이 손가락으로 술잔 모양을 만들었다.

“난 밤에는 술을 마셔야 해. 안 그러면 다음 날 몸이 뻐근하지.”

현대의 의사들이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를 태연하게 말하는 카샨.

“많지는 않지만 있긴 해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져온 소주도 다 마시지 못했다.

“좋아.”

카샨이 모나를 놨다. 그러자 허공에서 한 바퀴 돈 모나가 땅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그릇으로 달려왔다.

흡사 거미가 기어가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는 허겁지겁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바닥에 털썩 앉은 카샨이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이미 먹은 건가?”

“예.”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설기의 접시에도 삼겹살이 한가득 올라가 있었다.

카샨은 굳이 접시를 줄 필요가 없었다.

그릴 위에 있는 삼겹살 한 점을 손톱으로 콕 찍어서 입에 넣었다.

“음!”

카샨의 눈이 커졌다.

“좋군!”

카샨의 반응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이세계에는 몇몇 특별한 재료가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지구의 것이 더 맛있었다.

다시 손톱으로 고기를 찍는 카샨.

젓가락이나 포크도 필요 없었다.

‘저건 편해 보이네.’

그렇다고 해서 부럽진 않았다. 강현은 일어나서 소주를 가져왔다.

“전 것과 다르군.”

소주병을 본 카샨이 눈을 빛냈다. 강현이 물잔에다 따라 주자 바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바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

“화끈한 녀석이야. 마음에 들어.”

웃음을 터트린 카샨이 소주병을 들었다. 그대로 들이키려는 건가?

그러나 카샨은 소주병 끝을 강현에게 향했다.

“밥은 먹었지만, 술은 마실 수 있지?”

카샨의 말에 강현은 당혹스러웠다. 지금도 평소보다 많이 마신 상태였다.

그러나 카샨의 얼굴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졸졸졸.

강현의 물잔에도 술이 차올랐다.

그러자 카샨이 기꺼워했다.

“혼자 마시는 것보다는 같이 마시는 게 즐거운 법이지!”

카샨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 * *

다음 날.

텐트에서 나온 강현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벌써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어제 너무 무리했어.”

배부른 상태라 안주도 먹지 못한 채로 계속 술만 들이켰다.

소주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제 마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카샨을 데리러 온 호위들.

그들이 오자마자 흥이 오른 카샨은 술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아침까지 술판을 벌인 것이었다.

나중에 노아가 오고 나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은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제 노아와 호위들이 떠나기 전에 한 번 정리하긴 했지만, 호위들은 이미 취한 상태였다.

제대로 정리가 될 리가 없었다.

그때, 물건들이 멋대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내가, 술이 덜 깼나?’

눈을 비비고 나서야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토리였다.

낑낑거리며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다. 뒤늦게 나온 설기 역시 정리를 도왔다.

저절로 미소가 나오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장작까지 옮기진 않아도 되는데.”

굳이 챙겨갈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덕분에 배낭까지 시꺼멓게 재가 묻고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의 손이 분주해졌다.

* * *

다시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강현은 매장을 열지 않고 아침부터 어디론가 향했다.

바로 민호네 집.

“오셨어요?”

딸인 하은이와 놀아주고 있던 수진이 강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컹!”

설기 역시 수진을 보며 짖었다. 정확히는 수진의 앞에 있는 하은이를 반가워하고 있었다.

강현은 슬그머니 주변을 살폈다.

그러한 강현의 시선에 수진이 싱긋 웃었다.

“아버님이랑 민호 씨는 먼저 올라가셨어요.”

“벌써요?”

혹시 몰라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강현이었다.

“그럼 저도 올라가 볼게요.”

“예.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아뇨. 서로 도와야죠.”

강현이 고개를 젓자 수진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대신 오늘 식사는 제가 책임질게요.”

“예. 기대할게요.”

강현은 인사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쫄랑쫄랑 따라오는 설기.

민호네 밭 위치는 알고 있었다. 걷다 보니 일하고 있는 민호가 보였다.

민호는 강현을 발견하고 뽑은 무를 내려놨다.

“이쪽입니다!”

손을 흔드는 민호.

강현은 민호의 인사를 받고는 옆에 있는 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음.”

짧게 고개만 끄덕이더니 일하러 가는 노인.

노인답지 않게 몸이 단단해 보였다.

바로 민호네 아버지였다. 강현도 몇 번 보았지만, 제대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민호의 아버지답게 무뚝뚝한 성격.

수진의 말에 의하면 민호와 아버지, 둘만 있으면 한마디도 안 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간의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둘 다 과묵할 뿐이었다.

강현은 민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괜히 돕겠다고 하고 귀찮게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민호의 대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민호는 무를 내려놨다.

“대추밭으로 가죠.”

민호를 따라 올라가니 대추나무들이 보였다.

적지 않은 양.

“무를 뽑는 것보단 이쪽이 나을 겁니다.”

민호는 사다리와 긴 가위를 이용해서 대추를 따는 걸 보여 줬다.

“딴 건 여기 상자에 넣어 주십시오.”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오자마자 일 시키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일하러 온 건데요. 뭘.”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바쁜 시기에 한가롭게 인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민호는 다시 무밭으로 떠났다.

홀로 남은 강현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설기가 바구니를 움직여서 떨어지는 대추를 담았다.

정신없이 가위질을 하던 도중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토리가 제 몸보다 큰 무 위에 올라타서 먹고 있었다.

“너…. 대체 언제.”

잘 익은 무.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았다.

민호네 무가 분명했다.

강현의 시선이 화들짝 놀란 토리가 재빨리 무 뒤로 숨었다.

“…아니, 잠깐만.”

토리를 나무라려고 하던 강현이 미간을 모았다.

잠시 고민하던 강현은 민호에게 달려갔다.

“무를 뽑으시겠다고요? 허리 아프실 텐데.”

“아뇨. 이쪽이 나을 거 같아서.”

강현의 말에 민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를 뽑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민호.

강현은 민호를 따라서 무를 뽑아 봤다.

“예. 괜찮으시겠어요?”

사실 대추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번 해 보시고 괜찮겠으면 말씀해 주세요. 대추 작업이 끝나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대추밭으로 향하는 민호.

강현은 그런 민호를 배웅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무를 뽑는 건 강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잘할 수 있지?”

끄덕끄덕.

토리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중에 먹지 말고.”

움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해.”

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토리가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뽕, 뽕, 뽕, 뽕.

하나씩 튀어나오는 무들.

마치 발이 달려서 스스로 뛰쳐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놀라운 광경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너무 사기 같은데.”

그래도 남을 돕는 거니 괜찮지 않을까?

“컹!”

설기 덕분에 정신을 차린 강현은 밖으로 나온 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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