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닌데
뒤풀이는 화기애애했다.
세나는 다음날 일정 때문에 아쉬워하면서 먼저 들어갔다.
그렇게 세나가 떠나고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이정환이 입을 열었다.
“교수직을 내려놓기로 했네.”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으나 정기훈 작가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강현은 둘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게 입을 닫았다.
정기훈 작가의 말에 이정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가족과 함께 여행이나 다녀올 생각이네. 그동안 가족에게도 소홀했으니.”
정기훈 작가와 달리 이정환은 가정이 있었다.
“그리고는 시골로 내려와서 작게 농사라도 지을 생각이야. 아내도 일을 정리한다고 했다네.”
“제수씨가?”
정기훈 작가가 놀란 눈으로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이정환뿐만 아니라 아내 역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정년도 얼마 안 남았으니 미리 정리하는 거지.”
이정환의 말에 정기훈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시골이라면 어디로 갈 생각인가?”
“어디긴 어딘가, 이곳이지. 동네도 조용하니 노후를 보내기 딱 좋아.”
이정환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요리사도 있지 않은가? 이런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웃음을 흘리는 이정환을 보며 정기훈 작가 역시 미소 지었다.
“그렇지. 여기만 한 곳이 없지.”
“자네도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이곳에 오는 게 어떤가?”
이정환의 말에 정기훈 작가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나쁘진 않겠군.”
사실상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서울 집에 올라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
강현은 그런 둘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장님이 좋아하시겠네.’
마을에 사람이 느는 건 좋은 일이었다.
다시 술잔이 오갔고 술자리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 * *
다음 날 이 소식을 알려 주자 이장이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려? 좋은 일이네. 좋은 일이여!”
환하게 웃은 이장이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게 다 그짝 덕분이지. 아주 복덩이여, 복덩이.”
“아뇨. 제가 한 게 뭐가 있나요.”
다들 이 마을이 좋아서 오는 것이었다.
“아녀. 마을에 사람이 줄기만 했는데, 그짝이 오더니 줄줄이 늘잖어.”
그리 말한 이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집 애들도 같이 와?”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다들 독립해서 부부만 오신다고 했어요.”
“그려?”
순간, 아쉬워하는 이장.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지만, 젊은 사람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뒤따라온 박 씨 할머니가 이장의 등짝을 때렸다.
짝.
“악! 이 여편네가 노망이 들었나 뭐 하는 것이여?”
“이런 마을에 와 주면 감사하다고 절이나 해야지, 누굴 가려?”
“누가 싫다고 했나?”
이장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그럼 일 봐. 난 이 양반하고 갈 데가 있으니.”
박 씨 할머니는 투덜거리는 이장을 데리고 매장을 떠났다.
멀어지는 둘을 보던 강현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걸 떠올렸다.
‘…그런데 이장님은 왜 충청도 사투리를 쓰시지?’
강현이 알기로 이장님은 이 마을 토박이였다.
“뭐, 상관없나?”
머리를 긁적인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강현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설기가 있었다.
며칠 동안의 노력이 통했는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설기였다.
그렇게 매장으로 돌아온 강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 위에 떠오른 이름을 본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올 때가 되긴 했지.’
강현은 통화를 눌렀다.
“예, 피디님.”
김윤하 피디. 여성스러운 이름과 달리 곰처럼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였다.
[아, 강현 씨? 미안해. 정신이 없어서 이제 전화하네. 먼저 사과부터 할게.]
“아니에요.”
강현 역시 피디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강현의 대꾸에도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니야. 이유를 떠나서 우리 방송 때문에 피해를 봤으니 기자들 역시 방송국에서 나서서 대응하기로 했어. 누가 흘렸는지 짐작도 가고.]
강현이 출연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강현은 굳이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곧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보다, 세나 씨에게 연락받았는데 나올 수 있다고?]
“예. 피디님만 괜찮다면요.”
[우리야 강현 씨가 나오면 환영이지. 그런데 괜찮겠어?]
피디 역시 소문을 들은 게 분명했다.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는 괜찮아요.”
[다행이네! 출연료는 섭섭하지 않게 챙겨 줄게. 이번 일의 사죄도 겸해서.]
피디의 말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사실 방송에 출연하고자 마음먹은 계기는 따로 있었다.
‘충동적이긴 했지만.’
이정환의 공연. 그걸 보고 해보고 싶은 요리가 떠올랐다.
“아, 혹시 촬영이 기나요?”
[특집이라 길긴 하지. 왜 일정이 있어?]
“아뇨. 지금 제가 평창에 있어서 아무래도 차 시간이….”
[아,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지. 걱정 안 해도 돼.]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가 통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낸 강현은 달력을 돌아보았다.
촬영일은 추석 일주일 전.
이제 한 달 정도 남았을 뿐이었다.
‘…부지런히 준비해야겠네.’
스스로 다시 사람들의 평가대 위에 올라갈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전만큼 걱정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새로 할 요리에 대해서 기대감만 가득했다.
* * *
일만큼이나 휴식도 중요했다.
대회에 나갈 요리를 연습하던 강현은 쉬는 날이 되자 설기와 함께 배낭을 메고 이세계로 향했다.
그러나 강현이 가지고 온 장비는 평소와 달랐다.
길쭉한 가방.
배낭과 함께 길쭉한 가방을 어깨에 짊어졌다. 옆에 있는 설기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렇게 숲을 걷고 있자 익숙한 얼굴이 강현을 맞이했다.
“오, 딱 맞게 왔군.”
“란돌프 씨.”
강현을 향해 손을 흔드는 란돌프. 갑옷이 아닌 가벼운 가죽옷을 걸치고 있었다.
란돌프의 시선이 강현의 가방에 향했다.
“그건?”
“혹시 몰라서 가져왔어요.”
강현은 가방을 열었다. 그러자 아직 포장도 벗기지 않은 낚싯대가 나타났다.
낚싯대를 살피는 란돌프의 눈살을 찌푸렸다.
“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건가?’
강현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란돌프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 심각했냐는 듯이 밝은 표정의 란돌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가서 확인해 보세.”
목소리도 묘하게 들떠 있었다. 사냥 때와는 달랐다.
강현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란돌프와 함께 낚시를 할 생각이었다.
* * *
커다란 강물.
늑대들의 보금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강현이 텐트를 설치하는 동안 란돌프는 강현이 가져온 낚싯대를 살폈다.
“과연, 이런 식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란돌프.
“쓸 수 있겠어요?”
강현이 조심스레 물어 왔다. 읍내에 가서 사 오긴 했지만, 낚시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급하게 사장님께 배워 온대로 란돌프에게 설명하긴 했으나, 자신이 없었다.
‘란돌프 씨가 가져온 낚싯대도 있으니.’
못 써도 상관없었다. 란돌프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구성이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써 봐야 알겠네.”
마음에 드는지 낚싯대를 흔들어 보는 란돌프.
그런 란돌프를 보며 강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하나는 란돌프 씨 선물이에요.”
강현의 말에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속 받기만 하니 미안하군.”
“아니에요. 저도 덕분에 낚시도 배우잖아요.”
강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란돌프.
“좋아. 내 제대로 가르쳐 주지.”
란돌프와 함께 강가로 향했다. 아래에서는 언제 갔는지, 설기가 새끼 늑대들과 어울려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란돌프는 땅을 파서 잡은 벌레를 바늘에 끼고는 낚싯대를 던졌다.
멀리 날아가는 낚싯바늘.
어느 세계나 낚시의 방법은 비슷한 것 같았다.
“줄을 잡고 있다가 던지면서 놓으면 되네. 강현, 자네도 해 보게.”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란돌프를 따라서 낚싯대를 던졌다.
촤르륵.
풀리는 줄.
그러나 절반도 가지 못하고 멈췄다.
“괜찮아. 처음치고는 잘했어.”
웃으며 강현의 어깨를 두드리는 란돌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란돌프도 이 낚싯대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로 흔들리는 낚싯대.
“좋아. 물렸군!”
낚싯대를 당기는 란돌프를 보며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벌써?’
낚시는 기다림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강현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강현의 낚싯대도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급히 낚싯대를 붙잡는 강현.
줄을 타고 느껴지는 힘에 숨을 삼켰다.
“끌려가지 않게 조심하게.”
“예?”
끌려가다니, 어딜?
낚싯대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러나 대치는 짧았다.
줄이 끊어지면서 강현의 몸이 뒤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란돌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끊긴 줄을 회수하며 입맛을 다셨다.
“손에 감기는 맛은 이쪽이 낫지만, 줄이 너무 약하군.”
란돌프가 낚싯대를 내려놓고 나무로 된 낚싯대를 들었다.
“다음에 줄을 새로 구해 줄 테니 오늘은 이걸로 하세. 이 줄로는 녀석들의 이빨을 견디기 어려워.”
강현은 어리둥절하면서 낚싯대를 건네받았다.
“…!”
마치 목검을 쥐었을 때처럼 손에 감기는 묵직함. 심상치 않은 무게에 강현이 숨을 삼켰다.
“이제 자네도 방법은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해 보세. 아, 혹시 모르니 장갑을 끼게.”
강현은 란돌프에게서 장갑 한쪽을 받았다. 가죽으로 만든 장갑. 강현이 어리둥절 하자 란돌프가 오른손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오른손에 장갑을 끼는 동안 란돌프는 바닥에서 벌레 한 마리를 집었다.
아까와 비교조차 안 되는 크기.
무려 손가락 두 마디보다 컸다.
‘너무 큰 것 아닌가?’
미끼를 낀 낚싯바늘을 저 멀리 던졌다.
그리고.
미끼가 미처 물에 닿기도 전에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마치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날렵하게.
“좋아!”
낚싯대를 당기는 란돌프. 낚싯줄이 팽팽해지면서 팔의 힘줄이 올라왔다.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잠깐, 저거 물고기 맞아?’
그러기에는 너무 컸다. 게다가 어딘가 눈에 익숙하기까지 했다.
“아.”
기억났다.
설기가 잡아 왔던 물고기.
그러는 사이 물고기는 점점 육지 쪽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강현이 가져온 낚싯대처럼 릴을 돌리는 게 아니었다.
한 손으로 낚싯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줄을 감고 있었다.
끼릭, 끼릭.
낚싯줄이 비명을 질렀다. 장갑은 저걸 위한 것이었다.
그제야 강현은 낚싯줄의 굵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유난히 굵었다.
아니, 굵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밧줄처럼 꼬아져 있었다.
결국, 육지로 올라온 물고기.
힘차게 팔딱거렸다.
그 모습을 란돌프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낚시만큼 좋은 수행은 없지. 생각보다 작긴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
저게 작은 건가? 강현의 몸통만 한 물고기였다.
“자, 이제 자네도 해 보게. 아, 혹시 힘겹다 싶으면 낚싯대를 놓게. 워낙 호전적인 녀석들이 많으니 위험할 수도 있어.”
란돌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가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올라왔다.
‘…상어?’
상어와 비슷한 생김새.
입에는 방금 잡은 물고기와 같은 종류의 물고기가 물려 있었다.
그제야 강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란돌프는 처음부터 강현이 가져온 낚싯대로 낚시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강현을 배려해 줘서 해보는 시늉을 했을 뿐.
이곳은 야생이었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
위험하다는 건, 강이 아니었다. 역시 사는 생물 자체가 위험했다.
옆을 보자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란돌프가 있었다.
어서 던져 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닌데.’
기대했던 낚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한숨을 내쉰 강현이 낚싯줄을 던졌다.
‘입질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던지자마자 팽팽하게 당겨지는 낚싯대. 강현이 이를 악물고 낚싯줄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