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69화 (69/227)

< 식사는 이래야지. >

파닥, 파다닥.

설기의 입에 물려서 필사적으로 날갯짓하는 투명한 매.

“...뭔가 물고 있군. 정령인가?”

로멘이 무의식적으로 지팡이를 찾다가 바닥에 꽂아놓은 걸 떠올리고는 입맛을 다녔다.

킁, 킁.

정령이란 말에 냄새를 맡는 노아와 하만.

‘...보이지, 않는 건가?’

전에 에밀리야가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강현은 다시 설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정령을 문 채로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 꼬리가 흔들렸다.

마치 나 잘했지?

그리 묻는 듯했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령을 데리고 왔다면···.’

강현의 시선이 설기가 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 안돼! 소나는 먹는 게 아니야! 배고프면 내가 다른걸···.”

달려오던 에밀리야가 일행들을 발견하고 굳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뛰던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저게 되는구나.’

그녀가 밟은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한쪽 발, 그것도 앞발만 디딘 채로 서 있는 모습은 묘기나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달려오다가 멈췄는데 앞으로 쏠리지도 않았다. 물리법칙을 아득하니 벗어난 모습.

그것도 잠시,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곧 자세를 바로 했다.

“...실례했네요.”

도도한 표정을 지었지만 붉어진 뺨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본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기야. 놔줘.”

강현의 말에 입을 벌리는 설기. 그러자 정령이 황급히 날아올랐다.

그녀에게 날아가 몸을 비비는 정령.

강현은 새가 울먹이는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나타났을 때는 멋있었는데.’

이제는 안쓰러웠다. 털 모양도 전과 달라진 것 같았다.

정령이라도 털이 빠지나 보다.

그제야 안도하며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는 에밀리야.

그녀가 정령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를 본 강현은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끼잉?”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의기양양하던 설기도 눈치를 봤다.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강현의 사과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 불찰입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시죠?”

그녀도 강현이 자신에게 용무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 이번에 요리를 대접하려고 하는데, 같이 어떠신가 해서요.”

“...저를요?”

고개를 갸웃하는 에밀리야.

그녀의 의문은 당연했다. 고작 두 번 봤을 뿐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강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궁금하신 게 많으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직접 겪는 게 빠르잖아요.”

강현의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알고 계셨군요.”

그녀가 강현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설기가 옆에서 알려줬다.

“그리고 지난번에 과일도 있고, 설기가 실례를 많이 해서.”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간지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설기.

에밀리야는 슬그머니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우린 상관없다네. 이 모임의 주최자는 강현이니.”

로멘이 일행들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

에밀리야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도 내심 일행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구석에서 이쪽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수인족 소녀도 수줍어하는 행동과 달리 실력이 있었다.

미래가 기대되는 수준.

“그럼 실례할게요.”

그녀의 대답에 강현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좀 맵긴 한데, 다들 괜찮으세요?”

강현의 시선이 가까이에 있는 노아와 하만에게 향했다.

“상관없다.”

“...저는 매운 거에 약···. 아뇨, 상관없어요!”

작게 중얼거리던 하만이 노아의 싸늘한 눈빛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야 매운 걸 좋아하지.”

로멘이었다. 옆에 있는 란돌프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요정 아가씨가 걱정이군. 주로 과일만 먹지 않나?”

“문제없어요. 과일 중에는 매운 것도 많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에밀리야. 그녀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난번에 받았던 과일 중에는 매운맛의 과일도 있었다.

그러나.

‘...살짝 매콤한 정도였지.’

강현의 기준에서 보면 맵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서로를 노려보며 전의를 불태우는 이들을 보며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쓸데없는 경쟁심을 일으킨 것 같았다.

‘최대한 맵지 않게 해야겠네.’

그리고 그런 강현의 생각을 눈치챈 노아가 입을 열었다.

“우리를 생각해서 사양할 필요 없다.”

“맞네. 그건 기사에게 실례된 행동이야.”

매운 것과 기사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놀라운 건 란돌프의 말에 에밀리야와 로멘까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둘은 기사도 아니지 않은가.

강현은 통역 마법에 문제가 생긴 건가 의심했다.

‘뭐, 상관없나?’

어쨌든 다들 괜찮다는 이야기였다.

강현은 배낭에서 장비를 꺼냈다.

캠핑용 스토브와 화로.

그리고 냄비 두 개였다. 이번에는 냄비 두 개로 요리할 생각이었다.

강현이 화로를 설치하자 설기가 익숙한 듯 나뭇가지를 물어서 화로 안에 넣었다.

이어서 식자재들을 꺼내던 강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들에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조금 시간이 걸리니 이야기들 나누고 계세요.”

“아닐세. 우린 신경 쓰지 말게나.”

끄덕끄덕.

일행들의 머리가 일제히 움직였다. 저리 쳐다보는데, 어찌 신경을 안 쓴단 말인가.

특히나 둘의 시선이 강렬했다.

로멘과 하만.

하지만 둘의 관심사는 달랐다. 로멘은 강현이 꺼낸 스토브를 비롯한 도구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하만은 강현의 요리에 관심을 드러냈다.

강현은 그들의 반응에 실소를 흘렸다.

‘더 한 상태에서도 요리했었으니.’

대회에서 요리할 때는 이보다 더 심했다. 강현은 마음 편히 가지기로 했다.

먼저 미리 씻어 온 쌀을 냄비에 넣고 물을 부었다.

그리고 스토브를 켰다.

‘넉넉하게 챙겨오길 잘했네.’

예상보다 인원이 많았다. 이어서 화로에도 불을 붙였다.

화르륵.

스토브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불길.

강현은 화로의 높이를 조절했다. 안 그러면 불길이 너무 세기 때문이었다.

위에 올라온 냄비 역시 밥을 짓는 냄비보다 컸다.

이게 메인이었다.

기름을 두르고 잘라 온 돼지고기를 거대한 냄비에 넣었다.

후추와 소금, 소주를 살짝 넣고 타지 않게 빠르게 볶았다.

매장에서 하는 것과 달리 불길이 제 멋대로기 때문에 방심하다가는 타버릴 수가 있었다.

고기에서 기름이 나오면 고춧가루를 넣어준다.

굵은 고춧가루와 얇은 고춧가루를 섞은 것.

그리고 고기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묵은지를 냄비에 넣는다.

김칫국물은 냄비의 밑에 깔릴 정도.

이 묵은지야말로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냄비로부터 올라오는 김치의 향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강한 불에 볶아서 신맛을 한 번 날려준 후 물을 부어준다.

냄비에 반이 찰 정도로만.

그리고 새우젓과 국간장, 다진 마늘을 넣어주고 뚜껑을 덮었다.

장작을 더 넣어서 불길을 키웠다.

물이 끓는 걸 기다리는 동안 나머지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양파와 버섯, 고추와 두부. 마지막으로 파까지.

재료의 손질이 끝나고도 물이 끓어오르지 않았다.

‘냄비가 크긴 크네.’

사실 냄비가 커서 늦게 끓는 것보다는 강현이 재료 손질을 하는 게 너무 빨랐던 탓이 컸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토브 하나를 더 꺼냈다.

그와 함께 나온 건 반찬통에 담긴 계란들.

‘메인 하나로서는 밋밋하긴 하지.’

스토브 위에 팬을 올리고 달걀을 굽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달걀을 하나씩 집고 팬 위에 깼다. 순식간에 팬 위로 뒤덮이는 달걀들.

“오오!”

옆에서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마치 기계처럼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

강현은 멋쩍게 웃은 후 달걀을 뒤집었다.

그 사이 냄비에서 고기와 김치의 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강현은 팬의 불을 줄이고는 뚜껑을 열었다.

끓기 시작한 냄비.

거기에 재료를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두부와 파까지 올라가자 모양이 제대로 나왔다.

힐끗, 다른 냄비를 돌아보는 강현.

‘저쪽도 거의 다 되어가네.’

이미 강현의 머릿속에는 여러 타이머가 돌아가고 있었다.

최적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타이머.

다른 이들은 그저 신기한 듯 바라볼 뿐이었다.

강현이 그들에게 놀랐던 것처럼 그들 역시 강현에게 놀라고 있었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군.’

란돌프가 감탄했다. 바쁘게 움직이는데 여유가 넘쳤다.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다는 뜻이었다.

머릿속으로 계산된 움직임을 정확히 처리해내고 있었다.

그런 일행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현은 간을 한 번 더 보고 물을 추가한 후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는 다른 냄비의 불을 끄고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남은 달걀까지 모두 부친 후 강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은 그런 일행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완성입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계란후라이, 그리고 흰밥까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좋아할 메뉴였다.

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행들이 박수를 쳤다.

갑작스러운 박수에 강현이 어리둥절했다.

“...너무 기다리게 했죠?”

“아니네. 볼만했어.”

“예,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로멘과 에밀리야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모르는 강현만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의아해하던 강현은 냄비의 뚜껑을 차례대로 열었다.

붉은빛이 도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보슬보슬하게 지어진 쌀밥.

잘 저어준 후 일행들에게 나눠줬다.

‘식탁이 없는 게 아쉽네.’

각자의 그릇을 받은 일행들이 눈이 반짝였다.

“이건 어떻게 먹는 거지?”

“편하게 드시면 돼요. 밥에 말아도 되고.”

따로 격실을 차릴 필요는 없었다.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먼저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붉은 김치찌개를 입으로 가져갔다.

“음!”

짧은 감탄.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아주 화끈해!”

란돌프의 말에 일행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

“음!”

먹자마자 느껴지는 매운맛에 일행들의 눈썹이 떨려왔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식감에 눈을 크게 떴다.

한 사람만 빼고는.

“콜록, 콜록.”

재채기하는 하만. 강현이 물을 떠주자 벌컥벌컥 들이켰다.

‘역시 맵나 보네.’

곧 진정되었는지 강현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닙니다. 그보다 먹기 힘들면 다른 걸 만들어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맛있어요!”

고개를 붕붕 내젓는 하만. 그런 하면을 보며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권할 수는 없었다.

“달걀이나 밥과 같이 먹으면 나을 거에요.”

“옙!”

마치 명령을 받은 병사처럼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만.

그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다른 이들은.’

강현의 시선이 일행들에게 향했다.

이미 찌개를 비우고 새로 뜨고 있는 란돌프. 옆에 있는 설기 역시 그릇을 싹싹 비우고 있었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꼬리.

그리고 다른 셋은.

“...맵긴 하지만, 맛있네요.”

“그렇군!”

매운지 코끝을 붉히고는 국물을 떠먹고 있었다.

누구 하나가 숟가락을 들어 올리면 질세라 다른 둘 역시 들어 올렸다.

땀을 뻘뻘 흘리는 셋.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강현은 그들에게도 달걀과 밥을 권유했다.

“같이 드시면 더 맛있어요.”

“허험, 그, 그럴까?”

못 이긴 척 밥을 뜨는 로멘.

노아와 에밀리야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곧 셋의 눈빛이 바뀌었다.

“확실히, 다르군.”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같이 먹으니 더 좋네요.”

그제야 셋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옅어졌다.

편해졌는지, 각자 제 속도에 맞춰서 식사하기 시작한 셋을 보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식사는 이래야지.’

모두가 즐거워야 했다. 강현 역시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얼큰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새하얀 쌀밥을 보니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아주 중요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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