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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66화 (66/227)

< 야채도 괜찮지? >

길게만 느껴졌던 여름이 끝나가면서 바람이 점점 선선해지고 있었다.

매장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아, 작가님.”

그리 말하고 강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영업시간이 지났다. 그런 강현을 본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식사하러 온 게 아니라네.”

정기훈 작가의 말에 강현은 의아해하면서 홀로 나왔다.

정기훈 작가는 본인이 말한 것처럼, 모자도 벗지 않고 있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강현은 정기훈 작가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늘 낮에만 오던 정기훈 작가였다.

이런 저녁에 찾아왔다면 이유가 있을 거다.

정기훈 작가가 테이블에 앉자, 구석에 누워있던 설기가 고개를 들었다.

‘요즘 잠이 많아졌네.’

저녁에도 자고, 낮에도 몇 번 하는 걸 제외하면 계속 누워있었다.

그렇게 보니깐 어쩐지 몸집이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먹고 자기만 하니 살이 안 찔 수가 없었다.

강현은 설기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정기훈 작가를 보았다.

그러자 정기훈 작가가 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이건···.”

피아노 공연.

누구의 공연인지도 적히지 않고, 그저 날짜와 시간만 적혀있었지만, 강현은 알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이정환.

“마을 사람들도 나눠주라고 몇 장 보냈더군. 특히 이 두 장은 자네를 콕 집어서 전해주라고 했네.”

정기훈 작가의 말에 강현은 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의아함도 들었다.

“빠르네요.”

공연의 날짜는 다음 달.

이정환이 떠난 건 며칠 전이었다. 잠깐 사이에 공연장을 구하고 관람권까지 만든 것이었다.

놀라운 행동력이었다.

그러나 정기훈 작가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너무 늦었지. 손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끝낼 생각 같다네.”

그렇다.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건 없었다.

그리 말한 정기훈 작가가 진지한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 친구에게 준 약이 대체 무엇인가? 효과가 좋다고 얼마나 자랑하던지.”

강현은 설기를 힐끗거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우연히 받은 거라.”

정기훈 작가는 강현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의 정체는 상관없겠지. 자네 덕분에 만족스러운 공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네. 그 친구를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네.”

그리 말한 정기훈 작가가 모자를 벗더니 고개를 숙였다.

놀란 강현이 황급히 정기훈 작가를 일으켜 세웠다.

“아닙니다.”

“아니네. 나도 그렇고 많이 도움받았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정기훈 작가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도 귀한 걸 받았는데요.”

정기훈 작가의 시선이 강현을 따라서 벽으로 향했다. 정기훈 작가가 선물로 준 그림.

“저건···.”

“그리고 이웃이잖습니까? 제가 곤란한 일이 있었다면 작가님 역시 도와주실 것 아닙니까?”

강현의 말에 정기훈 작가의 눈이 커졌다.

“...그렇군. 이웃이지. 이웃이었어.”

웃음을 터트리는 정기훈 작가. 이어서 강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하게. 나나 그 친구가 뭐든 돕겠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보겠네.”

인사를 건넨 정기훈 작가가 떠나갔다. 그렇게 설기와 둘이 남게 된 강현은 공연권을 들어 올렸다.

피아노 공연.

당연한 말이지만,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강현의 얼굴엔 곤혹스러움이 떠올랐다.

한 장이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누구랑 가지?’

정기훈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마을 사람들의 몫도 준비한 게 분명했다.

슬그머니 설기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방석을 뜯던 설기가 움찔하더니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설기를 데려갈 순 없네.’

분명 답답해할 거다.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었다.

게다가 설기와의 관계를 모르는 이정환이 봤을 때, 실례된 행동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빈자리로 놔둘 수도 없었다.

“결국, 하나뿐이네.”

강현은 익숙한 얼굴을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 * *

타닥, 타닥.

장작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온기가 퍼져갔다.

그릴 위에는 꼬치에 꽃은 고기와 야채들이 올라가 있었다.

피망과 양파, 파뿐만 아니라 옥수수와 버섯까지.

한쪽에는 소금과 후추만.

다른 안쪽에는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주었다.

소스가 타면서 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그렇게 불을 바라보면서 몇 번 뒤집자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었다.

잘 익은 꼬치들을 구석으로 빼놓고 맥주캔을 열었다.

치익.

“가끔은 이런 것도 좋네.”

맥주를 한 모금 삼키자 목을 따라 시원함이 느껴졌다.

평소와 다른 간편한 방식.

바비큐였다.

최근에 연구를 위해서 너무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이런 것이 그리워졌다.

꼬치의 고기 역시 닭과 돼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강현은 꼬치를 설기와 모나에게 덜어줬다.

눈을 빛내는 둘.

“찔리지 않게 조심해.”

그러나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기를 뜯어 먹고 있었다.

힐끗, 꼬리를 확인하니 부드럽게 흔들렸다.

괜찮은 정도.

‘...역시 눈이 높아졌어.’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강현도 꼬치 하나를 들어서 입에 넣었다. 고기와 야채의 육즙이 입안 가득히 퍼졌다.

불맛이 제대로 입혀졌다. 오븐에 구웠을 때와는 다른 맛.

저절로 맥주에 손이 갔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남겨진 야채들이 들어왔다.

설기와 모나의 접시.

꼬치에 있는 고기만 쏙쏙 빼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더 달라고 눈짓을 보내는 설기와 모나.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채도 먹지 않으면 안 줄 거야.”

“...”

“...”

그러자 둘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흔들리던 꼬리까지 멈춰 섰다.

“끼잉, 끼잉.”

“애처롭게 봐도 안 돼.”

강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전에는 잘 먹었지만, 요즘 조금씩 편식하는 둘이었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것이었다.

‘너무 풀어줬어.’

원하는 대로 계속 만들어줬더니 이런 사태까지 왔다.

최근에 식욕도 더 늘어난 설기였다.

앞발로 야채를 툭툭 건드는 설기.

강현은 모른 척 맥주를 삼켰다.

‘설기는 그렇다고 해도 모나는 영양을 챙겨야 하니.’

강현의 요리에 이렇게 반응하는데, 집에서는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뭐, 카샨 앞에서 편식하진 못하겠지만···.’

천방지축의 모나지만, 제 어머니는 무서워했다.

그 앞에서 반찬 투정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설기는 늑대라서 육식성이겠지만···.

‘역시 살쪘어.’

포동포동해진 설기였다. 지금은 귀여운 수준이었지만, 앞으로의 일은 몰랐다.

단호한 강현의 모습에 설기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구운 야채를 먹었다.

“어때? 야채도 괜찮지?”

“...”

대꾸가 없었다. 꼬리도 가라앉은 그대로였다.

그런 설기를 본 모나 역시 야채를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야채를 먹기 시작한 둘을 보며 강현은 미소 지었다.

‘애 키우는 것도 힘드네.’

새삼스레 부모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금세 비어버린 접시.

강현은 그 위에 새롭게 꼬치를 올려놨다.

이번에는 고기와 같이 삼키는 둘.

야채만 먹는 것보단 고기와 함께 먹는 게 낫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요리에 야채의 비율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식.

강현은 둘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늘을 보았다.

노을이 져가는 하늘.

붉은빛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그와 함께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순식간에 맥주 두 캔이 비어버렸다.

마지막 맥주캔을 따던 강현은 멀리서 다가오는 이를 볼 수 있었다.

“아, 노아씨.”

여전히 상체를 드러낸 노아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그런 노아에게 꼬치를 건넸다.

“드시겠어요?”

“음.”

노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꼬치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맛있군.”

노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무심한 표정과 달리 꼬리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강현의 시선이 옆에 있는 둘에게 향했다.

‘쟤들도 처음엔 저랬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다 강현의 책임이었다.

“오늘은 빨리 오셨네요?”

모나를 데리러 오는 건 보통 밤 때였다. 그러나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모나를 데리러 온 게 아니다. 족장님께서 허락하셨다.”

노아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전에 말했던 것이었다. 숲에 있는 향신료를 이용한 요리.

“내일 일찍 데리러 오겠다.”

그러니 미리 알아두라는 소리였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입을 열려던 노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고개를 돌려 숲 너머를 응시하는 노아.

“노아씨?”

강현의 물음에 노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말과 달리 노아의 표정은 굳은 채였다.

곧 노아의 시선이 모나에게 향했다. 노아가 오거나 말거나 먹느라 바빴다.

그런 모나를 본 노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럼, 모나도 내일 같이 데리러 오겠다.”

“예?”

강현은 놀라서 되물었지만, 노아는 이미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 노아를 향해 강현이 입을 열었다.

“아, 노아씨! 꼬치 몇 개 가져가세요.”

“...”

강현의 말에 노아의 움직임이 멈췄다.

짧은 망설임.

곧 노아가 다시 몸을 돌렸다.

체면을 생각하기에는 강현의 꼬치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민망한 듯 시선을 피하는 노아.

강현은 피식 웃고는 꼬치 세 개를 건넸다.

“고맙군. 이건 보답하지.”

그리 말한 노아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노아를 떠내 보낸 강현이 시선을 돌렸다.

강현이 노아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몰래 그릴 위의 꼬치를 노리던 둘의 몸이 굳었다.

재빨리 돌아와서 딴청을 하는 설기.

그러나 모나는 굳은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집었던 꼬치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모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강현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외박이네.”

처음 있는 일.

그러나 모나는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 * *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 하나.

에밀리야는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몇 번을 지켜봤지만 강현의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매일 먹기만 하네요.”

어떤 때는 가져와서, 또 어떤 때는 잡아서.

매번 다른 식으로 먹고 있었다.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에밀리야였으나 계속 보고 있으니 배가 고파졌다.

“그보다 저 인간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죠?”

인간들의 마을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마치 숲에서 생겨나듯 불쑥, 나타났다. 옷차림도 근방의 인간들과는 달랐다.

몰래 뒤를 쫓은 적이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숲의 순찰자인 에밀리야의 감각을 속였다고 하기에는 강현의 수준이 너무나 미약했다.

‘저 늑대는 다르지만.’

에밀리야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저 멀리 날고 있는 정령.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지상으로 잘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에밀리야는 다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맛이기에···.’

전에 들렸던 다른 인간도 그렇고, 수인의 아이도 저런 반응을 보일까?

심지어 방금 전에 보았던 수인족의 전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각하던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몸을 일으키는 그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앞에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방금까지 강현과 함께 있던 수인족 전사.

동시에 그녀 주변의 공기가 움직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정령. 빙그르르 돌더니 에밀리야의 어깨 위에 내려왔다.

그를 본 수인족 전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요정의 순찰자인가? 무슨 목적으로 감시하는 거지?”

“숲이 소란스럽기에 확인하러 온 것뿐입니다.”

그녀가 차갑게 대꾸했다.

수인족 전사는 그런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저 인간은 수인의 친구이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도록.”

그 말을 남긴 수인족 전사가 떠났다.

뒤늦게 정령이 그녀의 얼굴에 몸을 비볐다.

“괜찮아.”

어차피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맹약이 있는 이상. 싸울 순 없었다.

떠나간 수인족 전사를 떠올린 에밀리야가 턱을 쓸었다.

“흐음, 대단한 실력자네요. 저 정도면 전사장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준이네요.”

인간이나 수인과 달리 요정의 생은 길었다.

그녀는 백 년 전, 전쟁을 경험했다.

“그런 이가 왜 인간을 감쌀까요?”

더더욱 흥미가 생긴 에밀리야였다.

그와 함께 수인족 전사가 소중하게 들고 있던 꼬치도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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