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65화 (65/227)

65. 마지막 리사이틀.

피아니스트 이정환.

강현도 이름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정기훈 작가와 달리 이정환이 매스컴에 나오던 시기는 예전이기 때문이었다.

정기훈 작가의 말을 빌려서 이야기하자면 잊을 만할 때쯤, 다시 나온다고 했다.

강현은 이정환이 피아노를 그만두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린 손이 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목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강현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난 뽀모도르를 주게. 아, 마르게리타도 같이.”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는 이정환. 그런 그를 보며 정기훈 작가가 입을 열었다.

“먹고 싶은 걸 말해보게. 메뉴에 없는 것도 가능해. 이 친구의 솜씨라면 내가 보장하지.”

정기훈 작가의 호언장담에 이정환의 눈이 커졌다.

오랜 지기였으나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이정환의 시선을 받은 강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료가 있는 건, 가능합니다.”

“그럼 아라비아따를 부탁해도 되겠는가?”

“예. 가능합니다.”

“맵게 부탁하네.”

“예.”

강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취향은 바뀌질 않는군.”

정기훈 작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환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의사가 이제는 매운 걸 자제하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강현은 인사를 하고는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라비아따. 이탈리아어로 화난이란 뜻이었다.

그만큼 매콤한 토마토 파스타였다.

만드는 방법 역시 어렵지 않았다.

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넣는다.

금세 익어가는 마늘.

색이 나면 팬 위에 양파와 방울토마토를 넣어주면 되었다.

여기까지는 토마토 파스타인 뽀모도르와 같았다.

다른 점은 이후에 자른 페페론치노를 넣어준다는 것이었다.

주의할 점은 쉽게 타기에 불을 약해야 해야만 했다.

그리고 토마토소스를 넣어준다.

매콤한 냄새와 같이 토마토의 향이 올라왔다.

후추와 소금을 살짝 뿌려준 후, 소스가 졸여지면 면을 넣어준다.

이후 접시로 옮겨서 올리브오일과 바질을 올려주면 끝이었다.

취향에 따라서 베이컨이나 버섯, 혹은 시금치를 넣기도 하지만, 강현은 기본에 충실했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를 내가자 정기훈 작가와 이정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벌써 나왔군. 먹고 이야기하세.”

정기훈 작가의 말에 이정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파스타를 떠먹는 이정환.

방금까지 심각한 분위기가 무색하게 눈이 크게 떠졌다.

이정환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정기훈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괜찮지?”

놀란 이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현을 돌아보았다.

“...정말이군. 난 이 친구와 달리 미식가는 아니지만 훌륭한 요리일세.”

“감사합니다.”

그때 주방 너머를 슬쩍 바라본 정기훈 작가가 입을 열었다.

“시간 괜찮으면 강현, 자네도 같이 앉는 게 어떤가?”

정기훈 작가의 권유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좀 전까지 심각한 분위기를 떠올린 강현은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기훈 작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러네.”

강현이 시선이 이정환에게 향했다. 이정환도 놀란 눈치였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이들의 시답잖은 이야기에 어울려준다면 고맙겠네.”

둘의 권유에 강현도 더 거절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정기훈 작가가 입을 뗐다.

피아니스트 이정환은 몇 년 전부터 손목이 아파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르게 악화해서 미처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피아노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고민하던 이정환이 친구인 정기훈 작가를 찾아온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일세. 잘한다고 해서 잘 가르치는 건 아니야.”

이정환의 말에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헤매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야. 아직 피아노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거지.”

날카로운 정기훈 작가의 말에 이정환이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수직 역시 그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평생을 무대에서 살던 자네일세. 쉽지 않겠지.”

강현은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현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때, 요리를 접으려고 했었다.

결국 강현이 택한 건 시골에 가서라도 요리를 이어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정환에게는 그러한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저, 은퇴를 준비하셨다고 하셨는데. 특별하게 하려던 게 있었나요?”

대답은 정기훈 작가에게서 들려왔다.

“예술의 전당에서 콘서트가 계획되어 있었지.”

리사이틀.

정기훈 작가의 어감에서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미련 때문이지. 아직은 괜찮을 거란 미련. 조금 더 일찍 준비했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거야.”

이정환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그런 이정환의 이야기를 듣던 강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그 공연을 열면 되지 않을까요?”

놀란 이정환은 곧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손으로는 이제 곡을 치기 힘들어.”

옆에 있는 정기훈 작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은 달리 생각했다.

“남들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라 마음의 정리를 위한 것이라면 꼭 완벽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미처 못 끝낸 공연.

지금 준비해도 늦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이정환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정기훈 작가가 탄성을 뱉었다.

“맞는 말이군.”

“...자네?”

이정환의 시선을 받은 정기훈 작가가 미소 지었다.

“꼭 잘 익은 사과만이 가치를 지닌 건 아니지. 풋사과의 싱그러움 역시 의미가 있어.”

이정환의 눈이 커졌다. 정기훈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사과에 비유한 것이었다.

완성된 그림은 그만큼 가치가 높지만, 그렇다고 그 작가가 어릴 때 그린 그림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저물어가는 것 역시 가치가 있지. 물론, 그걸 인정해야 하는 작가는 괴롭겠지만.”

그리 말한 정기훈 작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알면서 자네는 그리 말하나?”

이정환이 눈을 흘겼다. 그러자 정기훈 작가가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물론, 명색에 이정환이 관객도 없이 공연할 순 없지. 내가 가주겠네.”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진 이정환을 보며 강현이 입을 열었다.

“저도 사실 손목 부상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여기로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운 좋게도 괜찮아졌지만···.”

강현의 고백에 이정환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정기훈 작가도 놀란 눈으로 강현을 보았다.

그러자 강현은 황급히 말을 보탰다.

“아, 손목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기훈 작가는 강현에 대해서 알아보았기에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현에게 집중하는 둘. 강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한때는 요리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그렇지. 쉽지 않지.”

“결국, 다친 손으로라도 해볼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곳에 내려온 겁니다. 당연히 두려웠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요리는 예전에 제가 하던 것과 다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알겠더군요.”

강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두려워하는 건 예전의 요리를 못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예전보다 못하다는 주변의 평가라는 걸.”

“...!”

“음!”

이정환의 눈썹이 떨려왔고, 정기훈 작가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보다 이대로 무너지면 다시는 요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그렇기에 요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거기까지 말한 강현은 머쓱하게 웃었다.

“물론, 아직 어린 저로서는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리진 못할 겁니다.”

경험이, 살아온 세월이 달랐다.

그러나 이정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충분히 도움이 되었어. 평가를 두려워한다라···. 그럴 수도 있겠군.”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는 이정환.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추락의 아픔은 더 컸다.

그리 말한 이정환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만 요리 하나만 더 부탁할 수 있겠는가?”

강현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했다. 음식은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강현이 의아해하자 이정환이 웃었다.

“종류는 상관없네만 매운 걸로 부탁하네.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화끈한 녀석으로.”

이정환의 부탁에 강현도 미소 지었다.

“내일 고생할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지 말게. 아직 한창이야.”

강현은 이정환의 말에서 각오를 느꼈다. 거인이 다시 일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주방으로 돌아온 강현은 생각에 잠겼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매콤한 요리.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팬에 기름을 두른다.

그리고 마늘과 양파, 페페론치노를 넣었다.

페페론치노의 양은 아까보다 많았다. 여기까지는 아라비아따와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 위로 홍합과 함께 화이트와인을 넣었다.

지글지글.

끓으면서 달콤한 와인의 향이 올라왔다.

거기에 후추와 소금을 넣어준다.

이후 물과 토마토소스를 넣어준다. 토마토소스의 양은 일반 파스타의 두 배 정도.

걸쭉하게 끓여지면 새우와 면을 넣고 다시 한번 끓여준다.

접시에 옮기고 파슬리로 마무리.

빼쉐.

이탈리아어로 생선이라는 의미지만 지금은 토마토 소스가 들어간 매콤한 파스타를 뜻했다.

아라비아따와의 비슷하지만, 물의 양이 달랐다.

흔히 국물 파스타라고 부르는 것이 이 빼쉐였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은 이정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매운맛이 입안을 휘저었다. 그런 이정환을 본 정기훈 작가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한입을 떠먹고 눈살을 찌푸렸다.

“콜록.”

기침하는 정기훈 작가. 이정환은 그런 정기훈 작가를 보더니 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도 못 먹어서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매운 걸 잘 먹진 않아.”

점잖게 말하는 정기훈 작가. 코끝이 붉었다.

그때, 강현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바닥에 앉아서 한가롭게 하품하는 설기. 머뭇거리던 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떠나십니까?”

“아니, 오늘은 이 친구네서 자고 내일 갈 생각이네.”

“그럼 내일 떠나기 전에 들려주실 수 있나요?”

“떠나기 전에?”

의아해하던 이정환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큰 부탁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 * *

다음날.

약속대로 이정환이 찾아왔다. 강현은 그에게 유리병 하나를 건넸다.

“이건?”

“제 손목을 낫게 해준 약입니다.”

강현의 말에 이정환의 눈이 커졌다. 혹시 몰라서 따라왔던 정기훈 작가가 입을 열었다.

“약이라면 어떤···.”

그러나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우연히 얻은 것이라 잘 알지 못합니다. 남은 것도 그게 전부고요.”

강현은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게다가 어제 저걸 모으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던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달래고, 다독이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게 이정환에게도 좋을 거다.

사실을 말했다면 더 믿기 힘들었을 테니.

강현의 말에 이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잘 쓰겠네.”

강현은 그런 이정환을 보며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효과는 좋지만, 냄새가 좀 심합니다.”

강현의 말에 이정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효과만 좋다면 냄새가 무슨 상관이겠나.”

그러한 이정환의 모습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이정환은 강현과 정기훈 작가에게 인사를 건네고 떠나갔다.

* * *

서울에 도착한 이정환은 운전으로 인한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기사를 보내준다고 했을 때, 받을 걸 그랬나?’

그러다가 강현이 전해준 병에 생각이 미쳤다.

뚜껑을 열어서 손목에 발라보는 이정환.

곧 그의 눈이 커졌다.

“이건···.”

시원한 감각과 함께 손목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어떤 의사도 하지 못했던 일.

놀란 이정환이 다시 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올라오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심하군.’

고린내. 어릴 적에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 같았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귀한 걸 받았어.”

냄새가 대수겠는가. 이정환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날세. 공연을 하려고. 누구긴, 누군가. 내 공연이지. 아니, 그리 거창하게 할 생각은 없네. 조촐하게 열 생각이야. 사람도 몇 명만 부르고. 이제, 그만 떠나보내 줘야지.”

통화를 이어가던 이정환이 잠시 숨을 골랐다.

“...그렇군. 평창이 좋겠어. 평창에 작게 열 만한 곳을 찾아봐 주게.”

그렇게 통화를 끝낸 이정환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앙상해진 손.

“감각을 되돌리려면 바쁘겠군. 나이 먹고 이게 잘하는 짓인지···.”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이정환은 가슴부터 올라오는 묘한 열기에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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