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멋진 가게군.
돌아온 세나를 본 MC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세나씨답지 않네.”
“답지 않기는. 옛날 성격 나온 거죠. 저 기집애 내 저럴 줄 알았어.”
옆에 있던 패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세나와 같은 가수 출신. 세나는 그런 패널을 향해 눈을 흘겼다.
친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없는 사람 욕하니 짜증 나잖아요.”
게다가 모르는 이가 아니라서 더 그랬다.
친한 건 아니었으나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강현이 요리에 대해서 얼마나 진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실력만큼이나 노력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인데, 뭘.”
“형님. 저쪽은 이 바닥이 아니잖아요.”
“저쪽이라고 다를까.”
중년 패널의 말에 MC들과 패널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셰프들을 신경 써서 표정을 바꿨다.
그때, MC 하나가 세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요즘 너무 예민해진 거 아니에요?”
“최근에 일도 많이 잡고. 무리하고 있지 않아?”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나 역시.
“...노래를 못하니 답답하네요.”
최근에 무리해서 일하는 것도,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어떤 걸로도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자신이나, 지인 중에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한 패널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강현 셰프. 얼마 전에 놀이동산에 갔다고 하던데?”
“닮은 사람 아니고?”
연예인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흔했다. 그러자 패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잠깐만.”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찾는 패널.
곧 원하는 걸 찾았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여기 있네.”
“어디? 어디?”
패널의 말에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어, 진짜네. 아이들도 있어. 조카들인가?”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 것이었다.
그러나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수로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 하나가 사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거 세나, 너 매니저 아니야? 전 매니저.”
세나에게 뭐라고 했던 패널이었다. 패널의 말에 세나가 다가왔다.
그리고 사진에 나온 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이었다.
윤섭. 자신의 전 매니저.
해맑게 웃는 모습이 얄미웠다.
‘담당 바뀌어서 아주 신났나 보네.’
얼마 전에 전화해서 신세 한탄하더니 살만한가 보다.
그리고 뒤늦게 강현에게 시선이 닿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세나.
사진 안에 비친 강현의 모습이 낯설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도 웃는 사람이었구나.’
팔의 부상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그 외에도 뭔가가 있는 듯했지만 윤섭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물론, 세나 역시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사진에 나온 강현의 모습을 보면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은 건가?’
세나는 반사적으로 제 목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런 세나의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다시 촬영 들어갑니다!”
셰프들과 연예인들이 촬영장으로 모였다. 아까의 다툼이 없었던 것처럼 환하게 웃는 이들.
이들도 역시 프로였다.
* * *
다시 찾은 이세계.
능숙한 솜씨로 텐트를 치던 강현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모나인가?’
무심코 고개를 돌린 강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동자에 숨을 삼켰다.
날카로운 부리와 형형한 눈동자.
매가 강현의 옆에 앉아 있었다.
갸웃.
매의 머리가 기울었다.
“...우왓!”
뒤늦게 비명과 함께 뒷걸음쳤다. 동시에 매도 놀라서 날아올랐다.
엉덩방아를 찍은 강현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날갯짓하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몸 역시 투명해서 뒤가 비칠 정도였다.
‘...유령?’
그런데 매의 유령이 있었던가?
그때, 강현의 비명을 들은 설기가 달려왔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강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강현을 따라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나만 보이는 건 아니네.’
하늘을 빙 도는 매를 따라 설기의 머리도 움직였다. 강현은 안도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오고 신기한 걸 자주 보았지만, 저런 것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늘을 유유히 날던 매가 어느 순간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누군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걸 본 강현의 눈이 커졌다.
전에 본 요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정 역시 강현만큼이나 놀랐다.
“설마, 이 아이가 보이는 건가요?”
요정은 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날개를 흔들며 기뻐하는 매.
요정이란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요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째서, 인간이 정령을···.”
작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강현의 시선을 깨닫고는 헛기침했다.
“전에는 실례했었네요. 전 요정족의 에밀리야입니다.”
그리 말한 그녀는 매의 등을 두드렸다.
“잠시 놀고 있어.”
그러자 다시 날아오르는 매.
“아, 이강현입니다.”
강현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
“...”
“...”
잠시 머뭇거리던 에밀리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그때 뭔가 못 봤나요?”
떨어지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물음에 강현이 뒤늦게 탄성을 뱉었다.
“아,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강현은 배낭에서 단검을 꺼냈다. 모나가 찾은 단검.
그를 보자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다.
강현은 단검을 그녀에게 건넸다.
“예! 정말 다행···.”
그러다가 강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도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맙네요. 이 은혜는 갚겠습니다.”
“아니,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인 제공은 설기가 했다. 그러나 에밀리야는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 요정들은 은혜를 잊지 않아요.”
은혜뿐만 아니라 원한도 마찬가지였다.
‘별 상관없는데.’
그러나 그녀의 기백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잡혔다.
눈살을 찌푸리는 강현.
“아···.”
“무슨 일이죠?”
“아뇨. 새가 위험한 거 같아서···.”
강현의 말에 그녀는 미소 지었다.
“저리 보여도 일반 새가 아닙니다. 상위 정령이에요.”
강현은 대꾸하는 대신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날개를 푸드덕, 푸드덕 휘젓는 정령이 보였다.
에밀리야와 눈이 마주치자 필사적으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려달라는 외침.
그리고 그러한 정령의 꼬리를 물고 있는 하얀 털 뭉치.
정령이 날아가려고 할 때마다 머리를 흔들었다.
일행들과 눈을 마주치자 흔들리던 꼬리가 멈췄다.
“꺄악! 소나야!”
황급히 정령에게 달려가는 에밀리야. 그런 그녀를 본 강현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설기.”
강현의 부름에 입을 벌리는 설기. 덕분에 설기로부터 도망친 정령이 황급히 에밀리야 곁으로 날아갔다.
“소나야. 괘, 괜찮아?”
에밀리야의 말에 매가 머리를 비볐다.
멋들어진 날개도 엉망이 되었다.
어쩐지 구슬퍼 보이는 모습.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헷.
혀를 빼고 웃는 설기. 강현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날아다니는 녀석을 어떻게 잡은 거야?’
하지만 곧 전에 잡아 왔던 사냥감들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강현의 시선이 다시 에밀리야에게 향했다.
‘...이름이 있구나.’
소나였던가? 직접 지어준 것일까?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에밀리야씨? 죄송합니다.”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씩이나. 강현의 말에 설기를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신의 후예라면 정령을 봐도 이상할 게 없죠.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애써 감정을 추스른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죠.”
그리 말한 에밀리야가 정령과 함께 자리를 떠나갔다.
그리고 남게 된 강현은 다시 설기를 돌아보았다.
“...컹?”
순진한 눈망울을 본 강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고뭉치야. 사고 좀 그만 쳐.”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거칠게 쓸었다. 그러자 강현의 손길을 피해서 몸을 비트는 설기.
하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엉덩이를 두드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정리할 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배낭을 놔둔 곳으로 걸어가자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빼꼼.
수풀 사이로 고개를 내민 모나.
강현과 설기를 확인하더니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그러더니 강현을 향해 두 손을 내미는 모나.
화가 풀린 것이었다.
강현은 피식 웃으며 모나를 어깨 위에 올렸다.
“히힛.”
강현의 어깨 위에서 몸을 흔드는 모나. 그리고 길게 하품하는 설기까지.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강현 역시 평소처럼 저녁 준비했다.
* * *
매장을 연 강현은 한쪽 구석에 놓인 과일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생소한 과일들.
어제 아침에 텐트 앞에 놓여 있던 것들이었다.
숲에서 보지 못했던 과일들. 그러나 설기는 본 적이 있는 듯했다.
‘...에밀리야씨가 가져다준 거겠지?’
설기나 모나나 과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리고 란돌프나 노아가 왔었으면 강현에게 알렸을 거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폐를 끼쳤는데 선물까지 받아버렸다.
그렇다고 이미 받은 선물을 돌려줄 수도 없었다. 상대에게 실례되는 행동이기도 했다.
‘보답해야겠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과일 하나를 들어 올렸다.
노란 과일.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힐끗, 과일을 바라본 설기는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네.’
그랬다면 선물로 주지 않았을 거다.
로멘이 말한 것과 달리 좋은 사람 같았다.
강현은 과일을 한입 베어 물었다.
“...!”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 사과와 오렌지를 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 안쪽과 코끝이 시원했다.
마치 목캔디라도 먹은 느낌.
“...놀랍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코가 막혔을 때 먹으면 코가 뚫릴 거다. 강현이 한 입 더 물었을 때, 방울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안으로 들어오는 이는 베레모를 쓴 정기훈 작가였다.
“어서 오세요.”
과일을 내려놓고 인사를 건넸다.
정기훈 작가가 반가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정기훈 작가의 뒤로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노인이 들어왔다.
옷차림 역시 단정했다.
정기훈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 근처에서 볼 수 없는 분위기를 지닌 노인이었다.
“오늘은 친구분이랑 같이 오셨네요?”
“친구는 무슨. 잔소리꾼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정기훈 작가.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친밀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강현은 의외란 듯이 정기훈 작가를 보았다.
강현이 본 정기훈 작가는 사글사글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뒤따라오던 노인이 짧게 감탄을 뱉었다.
“듣던 대로 멋진 가게군.”
“감사합니다.”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노인이 강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정기훈 작가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얼굴에 뭔가 묻었나요?”
의아해하는 강현을 본 정기훈 작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봤는가? 모를 거라 그랬잖아.”
정기훈 작가의 말에 노인은 허허롭게 웃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강현을 위해 정기훈 작가가 입을 열었다.
“이쪽도 제법 유명하다네. 피아니스트야.”
“...!”
강현의 눈이 커졌다. 정기훈 작가가 유명하다고 할 정도면, 보통 유명세가 아닐 거다.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피아노도 못 치는 피아니스트가 어디 있겠나. 지금은 그저 아이들이나 가르치는 늙은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