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58화 (5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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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라네.

나무 탁자 위에 늘어진 잔들.

그리고 기대 섞인 수많은 시선에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이걸 할 줄은 몰랐는데.’

중세의 텁텁한 맥주만 마시던 이들에게 강현의 술은 새로운 세계였다.

잔에 차례대로 맥주를 따른다. 그리고 소주를 따른 후에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탁.

한쪽 젓가락으로 잔에 세운 젓가락을 치자 거품이 올라왔다.

“오오!”

마치 연주라도 하듯 다른 잔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이 넘치려는 잔을 차례대로 들이켰다.

“크으!”

빈잔들이 탁자 위로 떨어졌다.

뒤이어서 터져 나오는 감탄. 사람들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그리고 그사이에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로멘이 껴 있었다.

‘...괜찮을까?’

이미 코가 시뻘겋게 변했다. 소주를 독하다고 하던 사람이 벌써 세잔이나 마신 것이었다.

강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란돌프가 다가왔다.

“강현, 자네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군.”

웃음을 터트린 란돌프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걸 재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강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내들이 술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여자들은 동그랑땡과 부추전을 먹고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부드럽네요!”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단숨에 주변의 이목을 모은 강현이었다. 그러나 강현이 가져온 양은 한정되어있었다.

술과 전이 동나자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 번 오른 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현이 가져온 술이 없어도 서로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인데.’

장소와 사람들만 바뀌었지 평창 마을에서 보던 광경과 비슷했다.

강현은 폭탄주의 위력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아까까지 유럽의 파티장이었다면 이제는 한국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파티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버렸다.

‘잘한 거, 겠지?’

볼을 긁적이는 강현의 눈에 마지막 전을 먹고 아쉬워하는 제니퍼가 보였다.

“나중에 만드는 법을 가르쳐드릴게요.”

“어머, 괜찮으시겠어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빵을 구운 걸 보면 밀가루를 쓰겠지.’

강현이 만든 것과 같지는 않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을 거다.

그러자 다른 여인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제니퍼를 바라보았다.

제니퍼는 여인들의 시선에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예. 다른 분들에게 전해주셔도 됩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꺼낼지 알아챈 강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니퍼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른 이들도 강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직 전해주지도 않았는데 쏟아지는 인사. 곤란해하는 강현을 구해준 건 란돌프였다.

“이 친구 좀 데려가겠습니다.”

술잔을 들고 온 란돌프의 말에 여인들도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강현을 빼 온 란돌프가 술잔을 건넸다.

“오늘은 고생했네.”

“고생이라뇨. 덕분에 잘 놀았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모두가 즐거운 자리였다. 강현의 대답에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곧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게나.”

또 뭐가 남은 건가.

굳은 강현을 본 란돌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일을 기대하게. 아마 자네 마음에 들 거야.”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란돌프는 이야기해 줄 생각이 없는지 어깨를 두드리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감으로 보면 강현에게 좋은 일은 분명했다.

볼을 긁적이던 강현의 눈에 새하얀 털 뭉치가 들어왔다.

구석에서 길게 하품하는 설기.

“...보이지 않더니 거기 숨어있었구나.”

하여튼, 행동 하나는 잽쌌다.

강현이 손짓하자 기지개를 켠 설기가 다가왔다.

몸을 비비는 설기. 입가에는 기름이 가득했다.

설기 역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강현이 시선을 돌렸다.

술잔을 나누는 사내들.

“내가, 말이야. 그때, 지팡이를 휘두르니···.”

“오오! 역시 대단하십니다!”

“응? 아직 어떻게 되었다고 말 안 했는데?”

“훌륭하십니다!”

“어? 어, 그래. 그렇지! 으하하핫!”

“모두 마법사님을 위하여 건배!”

화기애애한 광경.

“...음.”

강현은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저기 일어나는 일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 생각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강현은 란돌프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제니퍼에게 허락을 맡고 주방을 살피던 강현을 란돌프가 끌고 나왔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마차.

그 목적지는 바로 성이었다.

높게 솟은 성. 현대에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위엄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란돌프가 보여주겠다고 한 건 성이 아니었다.

성안에 있는 시장.

매장도 있지만 좌판도 많았다.

길목 양쪽으로 늘어져 있는 식자재들을 본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어때? 마음에 드는가?”

“예. 무척이나.”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강현. 이미 란돌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 강현의 모습에 란돌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는 볼 일이 있어서 성에 다녀와야 하는데, 같이 가겠는가?”

외성이 아니라 내성. 영주성을 뜻했다.

다른 이라면 영주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강현에게 영주성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란돌프. 이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나 누가 시비를 걸거나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예. 란돌프씨의 이름을 대겠습니다.”

강현의 대답에 란돌프는 웃음을 흘렸다.

“그럼 다녀오겠네.”

그렇게 란돌프가 떠나가자 강현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수많은 식자재.

강현에게는 놀이동산보다도 흥미로운 곳이었다.

거기에는 강현이 숲에서 보았던 것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식자재도 보였다.

강현은 말린 열매를 하나 들어서 향을 맡아보았다.

‘후추···. 아니, 육두구와 비슷한가?’

어제 고기에서 느껴졌던 매콤한 맛은 이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강현은 열매를 내려놓고 옆에 있는 뿌리채소를 집어 들었다.

들자마자 올라오는 알싸한 향.

‘생강?’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강현이 알고 있는 생강보다 향과 맛이 진했다.

뿌리채소를 내려놓은 강현의 눈에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왔다.

붉은 채소.

지구의 페페론치노 모양을 닮았다. 작은 고추. 하지만, 그보다 더 두툼했다.

호기심에 향을 맡아본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허브향과 비슷한 향이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향만으로는 모르겠어.’

강현은 머뭇거리다가 좌판의 주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얘는 어디에 쓰는 건가요?”

“라메군요. 보통은 스튜 끓일 때 넣습니다. 더운 지방에서는 물에 넣어서 먹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주인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무슨 맛이지?’

궁금했다. 반사적으로 품을 뒤지던 강현은 이곳이 지구가 아니란 걸 깨닫고 탄성을 뱉었다.

‘돈이 없구나.’

화폐가 달랐다. 고개를 돌리자 설기가 길게 하품을 하는 게 보였다.

강현과 달리 이 상황이 지루한 것이었다.

강현은 쓴웃음을 짓고는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쩔 수 없이 란돌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화폐는 없지만, 현물로 교환할 수는 있으니.’

강현의 손길에 간지럽다는 듯이 몸을 비비던 설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발톱을 세우는 설기.

의아해하던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치렁치렁 늘어진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내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게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은 정확히 강현과 설기를 향해 있었다.

하나는 갈색 머리의 중년인이었고 뒤따르는 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네가 기사단장이 데리고 온 외부인인가?”

설기의 반응을 볼 필요도 없었다. 탐탁지 않아 하는 게 강현도 느껴질 정도였다.

‘...란돌프씨의 이름을 댈 필요는 없겠네.’

이미 알면서 온 것이었다. 강현은 설기의 털을 쓸어내렸다.

“그르르르르.”

그러자 설기의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런 설기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중년인.

중년인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내 지인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가? 바하람 주교.”

“...로멘님.”

수염과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로멘.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중년인은 로멘을 바라보다가 짧게 혀를 찼다.

“...돌아간다.”

“예, 주교님.”

휘적휘적 뒤를 돌아가는 두 사내.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영주민들이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로멘이 고개를 돌렸다.

“성에 단장이 왔길래, 혹시나 해서 나오길 잘했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로멘.

강현은 어제 로멘이 이야기하던 이들이 저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신전이라네. 엮여서 좋을 게 없는 이들이지.”

로멘은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강현은 그런 로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인족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테무 전사장.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테무 전사장의 적의는 오로지 인간인 강현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설기를 경계하는 것 같았어.’

사내들이 사라지자 태연하게 털을 핥는 설기. 덕분에 강현의 긴장도 풀어졌다.

‘고마워.’

강현은 설기의 뺨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긴장이 풀어진 건 강현만이 아니었다.

“에구구.”

앓는 소리를 하며 로멘이 주저앉았다. 아까의 위엄 넘치던 마법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숙취로 고생하는 노인만 있을 뿐이었다.

“죽겠구먼. 어제 술에 독이라도 탄 건가?”

머리를 부여잡는 로멘.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마셨으니 당연했다.

“깨어나 보니 내 방이더군. 당분간 술은 입에도 못 대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로멘. 엄살이 아니라 진짜로 힘들어 보였다.

한숨을 내쉰 로멘이 강현을 돌아보았다.

“아까 보니 식자재에 관심 있던 것 같던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멘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렇군?”

몸을 일으키더니 좌판의 주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주인장. 여기 있는 거 조금씩 담아주게.”

“로멘님?”

놀란 강현이 로멘을 불렀지만 로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거라면?”

“전부라네. 아니,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주인들에게도 말해주게나. 청구는 내 쪽으로 하고.”

“아, 알겠습니다!”

“물건은 이따 가지러 오겠네.”

“예! 마법사님!”

황송하다는 듯이 머리를 숙이는 주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로멘은 강현을 돌아보았다.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는 강현을 보자 로멘이 미소 지었다.

“뭘 그리 놀라나. 자네가 선물해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사소한 답례야. 나중에 내 제대로 보답하지.”

로멘의 말에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고작 라이터가 얼마나 하겠는가. 그러나 물건의 가치는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안하니 디팩이라도 선물해드려야겠네.’

어차피 자신은 또 살 수 있었다.

“그럼 살피는 건 집에 가서 천천히 하고, 우린 단장이 올 때까지 그늘에서 좀 쉬지. 안 그래도 아까부터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아.”

로멘의 말에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힘들면서 란돌프가 올 때까지 함께 있어 주겠다는 소리였다.

‘좋은 분이네.’

강현은 웃으며 로멘을 뒤따랐다. 그렇게 로멘과 함께 마을 광장의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란돌프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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