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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로군!
혹시 몰라서 라이터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을 말해준 강현은 일행들과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당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거대한 기구.
‘...화로?’
사각형 모양의 쇳덩어리. 아래에는 장작이 깔려 있었고 위에는 커다란 꼬챙이에 가죽이 벗겨진 동물이 껴 있었다.
돼지와 비슷한 짐승.
숲속에서도 보지 못했던 녀석이었다.
옆에는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강현은 조심스레 향을 맡아보았다.
‘스튜, 종류인가?’
그 외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음식을 한두 개씩 들고 오는 게 보였다.
이를 보며 강현은 이쪽 파티 문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불을 붙여볼까?”
란돌프가 가죽 소매를 걷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로멘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주겠네.”
“로멘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란돌프가 놀란 눈으로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로멘을 보았다. 마법이란 고귀한 것이었다.
이런 일에 나서는 건 드문 일이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로멘이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좋은 날 아닌가? 값진 선물을 받았으니 이번 정도는 괜찮네.”
그리 말한 로멘이 주문을 외우자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은 화로를 향해 날아갔고.
화르륵, 화로에 불이 올라왔다.
“와아!”
“마법사님 최고!”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만큼 눈앞에서 마법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펄럭이는 로브 자락. 로멘은 위엄있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멋있긴 하네.’
라이터로는 나올 수 없는 감성이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인위적인 것 같긴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강현 역시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런 날에 술이 빠져서는 안 되지.”
란돌프가 큰 나무통을 들고 왔다.
그걸 본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것은 수인과 다를 게 없었다.
뚜껑을 열자 붉은빛의 액체가 흔들렸다.
출렁.
‘...맥주인가?’
향을 보면 비슷했다. 그러나 강현이 알던 맥주와는 달랐다.
향도, 색도.
란돌프가 잔을 따라서 돌렸다.
강현을 비롯한 모두에게 잔이 돌아가자 란돌프가 잔을 올렸다.
“이렇게 내 친우를 환영해주기 위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즐겁게 즐겨주십시오!”
란돌프가 잔을 높이 들어 올리자 다른 이들 역시 잔을 들어 올렸다.
강현은 들어 올린 잔을 입에 가져갔다.
‘...에일?’
지구의 에일 맥주와 비슷했다. 그러나 좀 더 거칠고 텁텁했다.
‘이건, 같은 맥주라고 할 수는 없겠네.’
강현은 란돌프가 어째서 그렇게 맥주를 찾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현이 맥주의 맛을 분석하는 동안 란돌프가 구워지고 있는 고기로 걸어갔다.
그리고 옆으로 삐져나온 꼬챙이를 잡고 돌렸다.
끼긱, 끼기긱.
안에 있는 고기가 뒤집혔다. 강현은 그 광경에 눈을 껌뻑였다.
‘...저거, 돌릴 수 있는 거구나.’
아니, 란돌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란돌프는 작은 칼을 꺼내서 익은 윗부분을 작게 잘라냈다.
강현은 짧게 감탄했다. 저러면 고기가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터키식 회전 구이를 보는 듯했다.
케밥에 자주 쓰는 방식.
강현이 고기를 잘라주는 란돌프를 보고 있으니 로멘이 다가왔다.
고기가 담긴 나무 접시를 건넸다.
“들게나.”
“아, 감사합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접시를 받았다.
“단장은 당분간 정신이 없을 거야. 집주인이 손님에게 고기를 잘라서 대접하는 게 예의이지.”
로멘의 말에 강현이 숨을 삼켰다. 그럼 파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건가?
그러자 로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처음 정도만 그렇다네. 집주인도 즐겨야지.”
그제야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란돌프의 옆을 보니 스튜를 떠주고 있는 제니퍼가 보였다.
‘...파티를 여는 것도 일이구나.’
이 때문에 각자 음식을 싸 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고기와 스튜뿐만 아니라, 서로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강현은 물끄러미 접시를 바라보았다.
잘 익은 고기 세 점.
스튜는 숟가락으로 떠먹지만 고기는 다들 손으로 집어먹고 있었다.
군데군데 놓인 물그릇은 손을 씻기 위한 것이었다.
‘젓가락이 있긴 한데.’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여기까지 와서 굳이 따로 행동할 필요는 없었다.
고기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의 맛과 함께 허브향이 올라왔다.
‘로즈메리? 아니, 바질에 가까워.’
그 외에도 살짝 매콤한 맛도 느껴졌다.
역시나 수인들과 달리 향신료를 쓰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잘라낸 부위에 다시 무언가를 바르고 있었다.
양념이었다.
“음, 나쁘진 않아. 부인이 솜씨가 좋나 보군.”
고기를 먹은 로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로멘의 말에 강현이 의아해했다.
그러자 강현의 시선을 알아챈 로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단장이 만든 고기는 전에 먹어봤다네. 도저히 먹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
로멘의 말에 란돌프가 구워준 고기를 떠올린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분 요리 실력이 좋다고 했었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컹!”
갑작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설기가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미안해.”
잊고 있었다.
고기 한 점을 설기에게 건네자 단번에 삼켰다.
꼬리가 올라오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 모습에 강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요즘 입맛이 점점 까다로워지는 것 같은데.’
예전이었다면 이 정도의 반응까지는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다 강현의 업보였다.
강현의 미각이 돌아오면서 덩달아 설기의 눈도 올라가 버렸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고기 한 점을 더 건넸다.
“그 녀석이 하얀 늑대인가 보군.”
옆에 있던 로멘이 신기한 듯이 설기를 보았다.
알고 있는 건가?
강현의 시선이 로멘에게 향했다. 그러나 강현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낮은 위치는 아닐 거다.
란돌프가 이야기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로멘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설기를 보았다.
“하얀 늑대에 대한 전승은 몇 번 읽었지만, 이렇게 사람을 따르는 건 처음 보는군.”
설기를 바라보는 로멘의 표정이 심각해서 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그러자 로멘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와 하얀 늑대에게 문제는 없네. 오히려 반대이지. 하얀 늑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할 이들이 있어.”
혀를 찬 로멘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강현은 그런 로멘을 보며 로멘이 말한 이들과 로멘의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보다, 아까의 일은 너무 신경 안 써도 되네.”
강현이 의아해하자 로멘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사내들이 보였다. 평범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얼굴이 눈에 익었다.
‘아. 기사들이구나.’
강현을 환영했던 기사들.
고개를 끄덕인 로멘이 입을 열었다.
“다들 자원해서 온 것이야. 단장이라고 해서 업무 이외의 일을 강요하진 않는다네.”
강현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여기에 있는 이들 중에 단장에게 신세를 안 진 사람들은 없어. 나도 마찬가지지.”
강현은 놀란 눈으로 란돌프를 돌아보았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 있던 란돌프가 양해를 구하더니 일행들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고기가 잔뜩 올라간 접시를 들고 있었다.
“미안하군. 불러놓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어.”
“아닙니다.”
강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린 늑대께서도 배가 고프겠군.”
고기의 절반을 설기에게 덜어주는 란돌프.
설기의 꼬리가 하늘하늘 흔들렸다.
“이제는 괜찮은 겁니까?”
란돌프는 대답 대신 뒤를 가리켰다. 어느샌가 사내 하나가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란돌프를 신경 쓰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제니퍼 역시 여인들과 어울려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란돌프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어떤가?”
“좋네요.”
강현이 살포시 웃었다. 색다른 경험. 정겨운 광경이었다.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요리는 자네의 성에 안 찰 거야.”
“아닙니다.”
강현이 손을 내저었다. 덕분에 잘 먹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로멘이 의아해했다.
“음? 그게 무슨 말인가?”
로멘의 물음에 강현이 곤란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고 란돌프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로멘이 입을 열었다.
“이제 주인 얼굴도 봤으니 난 가봐야겠어.”
로멘의 말에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벌써요?”
“이미 충분히 먹었네. 당장이라도 이 녀석을 연구하고 싶은데 억지로 남아있었어.”
로멘은 품에서 강현이 건네준 라이터를 꺼냈다.
그 모습에 강현과 란돌프가 실소를 흘렸다.
저리 말하는데 더 붙잡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잘 즐겼네.”
웃으며 말하는 로멘. 고개를 끄덕이던 란돌프가 갑작스레 침음성을 뱉었다.
“이런!”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는 란돌프.
강현은 떠나려던 로멘과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갸웃했다.
로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떠나지도 못하고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란돌프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란돌프의 손에 들린 걸 본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저건···.”
로멘 역시 눈이 반짝였다.
강현이 가지고 온 디팩.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란돌프와 제니퍼 역시 잊고 있던 게 분명했다.
다른 한 손에는 접시가 들려 있었는데, 강현이 가지고 온 전들이 놓여 있었다.
“급한 대로 불에 구워봤는데 괜찮은가?”
접시를 확인한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그을리긴 했는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강현의 대답에 안도한 란돌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와서 나눠줄 수도 없겠어.”
서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이 파티를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굳이 저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었다.
“미안하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란돌프를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을 다 나눠주기도 힘들지.’
한입씩이나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 둘을 향해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헛, 험. 그것 좀 확인해볼 수 있겠는가?”
로멘이었다. 그런 로멘을 본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이제 가셔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모처럼이니 연구는 뒤로 미뤄도 괜찮겠지.”
말은 그리 하나 디팩에 관심이 있는 게 분명했다. 란돌프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술을 꺼내고는 디팩을 건넸다.
“오오!”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눈. 그 모습을 본 강현과 란돌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고기를 다 먹은 설기가 란돌프가 들고 있는 접시를 보며 짖었다.
“컹!”
전을 달라는 것이었다.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란돌프는 웃으며 전을 덜어줬다.
그리고는 술병에게 관심을 돌렸다.
“따라드릴까요?”
강현이 소주를 들어 올리자 란돌프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란돌프의 잔 위에 소주를 따라줬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독하군. 하지만 깔끔해. 어떻게 이런 맛이···.”
짧은 감탄. 그리고는 부추전을 입으로 가져갔다.
“허!”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웃음을 흘리는 란돌프. 옆에서 디팩을 살피고 있던 로멘까지 고개를 돌렸다.
란돌프의 반응을 보니 입맛이 당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차마 달라고 못 하고 있었다.
강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좀 드릴까요?”
“험. 나는 괜찮지만, 자네의 성의를 무시할 순 없겠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로멘.
역시나 솔직하지 못한 로멘이었다.
란돌프와 달리 부추전을 먼저 입에 넣는 로멘.
곧 그의 수염이 파르르, 흔들렸다.
“...대단하군. 이걸 자네가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강현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어서 로멘이 소주를 마셨다.
눈살을 찌푸리는 로멘. 부추전 때와는 반응이 달랐다.
“확실히 깔끔하긴 하지만, 내겐 너무 강하군.”
“이걸 드시면 됩니다.”
란돌프가 강현이 가져온 맥주를 따라주었다. 처음에 따라주었던 것과 달리 황금빛의 맥주.
맥주를 마신 로멘의 눈이 커졌다.
“허! 신세계로군! 드워프들이 빚은 맥주도 이보다는 맛있지 않을 거야.”
다시 한 모금하더니 란돌프처럼 웃음을 흘렸다.
그런 둘을 본 강현이 맥주와 소주를 들어 올렸다.
“얘네는 따로 마셔도 괜찮지만···.”
강현이 잔에 맥주와 소주를 부었다. 그러자 란돌프와 로멘의 표정이 변했다.
둘의 상식으로는 술과 술을 섞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 번 드셔보세요.”
강현의 권유에 머뭇거리던 란돌프가 먼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란돌프를 본 로멘도 뒤따라서 잔을 들었다.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가는 둘.
곧 둘의 눈이 커졌다.
“허허허.”
조용히 미소 짓는 란돌프와 웃음을 흘리는 로멘.
이미 디팩과 라이터는 뒷전이었다.
“잘 어울리군. 부드러워졌어.”
강현은 둘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
그러나 둘의 반응을 신경 쓰고 있던 건 강현만이 아니었다.
“저도 조금 받아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사내가 말을 걸었다.
강현이 놀라서 돌아보자 기사 중 한 명이 서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뒤따라온 이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