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53화 (5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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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 괜찮아?

“오랜만입니다.”

강현의 인사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왔을 것 같아서 잠깐 나왔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잠깐 나올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란돌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강현이 숲에 오는 주기를 알고 있었다.

‘시간은 비슷하게 흘러가니.’

그때, 란돌프의 시선이 남아있던 화로에 향했다.

어제 먹다 남은 생선 뼈를 본 란돌프가 눈을 빛냈다.

“오, 생선을 잡은 건가?”

“잡은 건 설기랑 모나예요.”

“컹!”

강현은 요리만 했다.

옆에 있던 설기가 짖더니 늠름하게 턱을 세웠다. 그를 본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대단하군.”

그리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턱을 쓸었다.

“생선이라···. 다음에 같이 낚시나 한번 어떤가?”

“상관없긴 한데, 제가 낚시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럼 더더욱 해봐야지. 내가 가르쳐주겠네. 이 근처에 좋은 곳을 알고 있어.”

란돌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낚시라···.’

흥미가 있긴 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란돌프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용무가 있으신 거 아닙니까?”

아니라면 이렇게 급하게 찾아올 리가 없었다.

강현의 물음에 란돌프가 제 머리를 쳤다.

“맞다. 반가워서 잊고 있었군.”

껄껄, 웃음을 터트린 란돌프가 다시 강현을 보았다.

“다음 주에 시간을 물어보려고 했네.”

“시간이라면···.”

강현의 시선에 란돌프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때라면 다들 괜찮다고 하는군.”

“다들요?”

또 누가 있단 말인가? 놀란 강현의 어깨를 란돌프가 두드렸다.

“수인들처럼 축제는 열어줄 수 없지만, 자네가 온다는데 환영회 정도는 해줘야지. 무려, 내 친우이자 제자가 아닌가.”

호탕한 웃음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저렇게 어린애처럼 좋아하는데 찬물을 끼얹질 수는 없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아. 그럼 난 다시 돌아가 보겠네. 모처럼 만났는데 미안하군. 일하던 도중에 온 거라···. 음?”

말을 이어가던 란돌프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강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왜 그러시나요?”

강현이 의아해하자 란돌프가 입을 이었다.

“강현, 자네. 몸의 균형이 조금 바뀌었군. 혹시 다른 운동이라도 하는가?”

란돌프의 물음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잠깐 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건가. 강현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예. 사실은···.”

노아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수인족의 체술을. 게다가 그 전사가 직접 가르치는 것이라면 기연이나 다름이 없겠어. 축하할 일이지.”

말과 달리 란돌프의 얼굴은 심각했다.

그런 란돌프를 보며 강현은 자신이 너무 경솔하게 허락한 것 같아서 자책했다.

“죄송합니다.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친구처럼 배우고 있다지만 엄연히 제자였다.

스승 몰래 다른 스승을 모신 것이었다.

현대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그런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건 중요하지. 수인족의 체술이라면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해.”

그럼 도대체 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이지?

강현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란돌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련은 어땠나? 힘들었나?”

“예, 힘들긴 하죠.”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강현의 말에 란돌프의 눈빛이 더 사나워졌다.

“...나 때보다 더?”

“...”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여기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괜찮으니 편하게 말해보게.”

환하게 웃는 란돌프. 그러나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편하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이 대답을 피하자 란돌프의 시선이 돌아갔다.

곧 원하던 걸 발견한 란돌프의 눈이 빛났다.

목검.

“안 되겠군. 좀 천천히 가르치려고 했는데, 수인한테 뒤처질 순 없지.”

작은 중얼거림. 그러나 강현의 귀에는 너무나도 크게 들려왔다.

평소와 다른 눈빛에 강현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일 때문에 가셔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 인간의 자존심이 걸렸는데 일이 중요하···!”

란돌프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신의 본분을 떠올린 것이었다.

“크흠, 그렇지. 일은 중요하지.”

목검을 내려놓는 란돌프. 진정된 모습을 보며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란돌프는 강현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추태를 보였군. 수행이 부족했어.”

“아닙니다.”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란돌프는 그런 강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주에 데리러 오겠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선물 같은 건 굳이 챙겨오지 않아도 되네. 짐만 될 뿐이야.”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란돌프는 그렇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숲으로 뛰어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란돌프를 보며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선물은 괜찮다고 했지만···.”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그렇다고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한쪽만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강현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다.

* * *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강현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그런 강현의 머릿속과 달리 매장은 언제나 그렇듯 평화로웠다.

“이장 할아버지, 이거 맞아요?”

“어, 어엉?”

매장 한쪽에 앉아있는 상후와 미영이.

이제는 지정석이나 다름이 없었다. 미영이도 한번 놀러 온 뒤로 자주 오기 시작했다.

미영이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쁘니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상후와 함께 놀러 보내는 게 마음이 편할 거다.

‘...어째, 놀이방처럼 변한 것 같긴 한데.’

시끄럽지도 않으니 그냥 놔두고 있었다. 올 때마다 미영이네 부모님과 상후네 할머니한테 얌전히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주의받기 때문이었다.

‘손님도 많지 않아서 적적했으니 잘 된 거지.’

평소에는 설기와 둘뿐이었다.

인원이 늘어나니 시간도 금방 갔다.

게다가 손님들도 다 동네 사람들이라서 귀엽게 봐주고 있었다.

오히려.

강현의 시선이 매장 한 곳에 쌓여있는 어린이용 책들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집에 있는 걸, 상후와 미영이 보라고 하나씩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달리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상후의 물음에 이장이 당황하더니 곧 강현을 향해 도움의 눈길을 던졌다.

결국, 강현이 웃음을 흘리고는 둘에게 다가갔다.

“얘는 틀렸네. 이렇게 해야 해.”

“아!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삼촌, 저도 이거 모르겠어요.”

미영이가 수줍게 손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둘이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고작 초등학교 수학 문제. 어려울 건 없었다.

그러자 이장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설명을 끝낸 강현은 이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갑자기 아이들 숙제를 봐주겠다고 나타나더니 가시방석처럼 앉아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짜로 숙제를 봐주러 온 건 아니었다.

머뭇거리던 이장이 입을 열려던 찰나, 매장의 문이 벌컥 열렸다.

딸랑딸랑.

“무슨 일은, 무슨 일. 어제 마을 회관에서 고스톱 치다가 좀 잃은 것 가지고 삐져서 그렇지!”

“아, 오셨어요?”

박씨 할머니였다. 밖에서 강현이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오자마자 이장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집에도 없고 마을 회관에도 오지 않길래, 뭐하나 했더니. 여기서 장사 방해하고 있었어?”

“...방해라니, 애들 보고 있구먼.”

한심하다는 눈빛에 이장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다 늙어서 쟤들 보기 민망하지도 않아? 할 일 없으면, 밭에 가서 일이라도 도와!”

박씨 할머니의 호통에 아이들은 힐끗, 이쪽을 보았다가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이 향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역시나 눈치 빠른 아이들답게 이럴 때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강현도 한발 물러나 병풍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그거 얼마나 된다고 이러고 있어?”

“내가 잃은 것 때문에 그려?”

“그럼?”

“김씨랑 박씨. 그 영감탱이들이 속여서 그렇지! 분명, 둘이 짰어! 내가 봤다니깐!”

이장의 말에 박씨 할머니의 눈썹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으이구, 잔말 말고 나와.”

그리고는 이장의 귀를 잡고 끌고 나갔다. 끌려가던 이장이 강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그럼 담에 또 올게! 나중에 봐!”

“이 영감탱이 또 오면 문도 열어주지 마!”

딸랑, 딸랑.

“...예,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강현을 따라서 상후와 미영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장과 박씨 할머니는 이미 떠난 뒤였다.

몸을 돌린 강현은 마침 상후와 미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셋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 할 일을 시작했다.

“아, 맞다.”

주방으로 돌아가던 강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문제집으로 향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강현에게 향했다.

“상후야. 다음 달 언제쯤이 괜찮아?”

“뭐가요?”

상후가 눈을 깜빡였다. 의아해하는 상후에게 강현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아!”

상후의 눈이 커졌다.

“진짜요? 병원에 데려가 주시는 거예요?”

“그래. 놀이동산도.”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에 한 약속.

서울에 있는 상후네 어머니에게 데려가 주겠다고 했었다.

이미 너무 늦었다.

‘의도적으로 피한 거지.’

다시 서울에 올라가는 게 꺼려진 것이었다. 서울에 가면 강현을 알아볼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각오가 섰다.

‘언제까지 과거에 묶여있을 순 없어.’

그러니 약속을 지킬 때가 왔다.

“물론, 할머니 허락받아야 해.”

“당연하죠! 제가 허락받을게요!”

환하게 웃는 상후를 보며 강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멀뚱멀뚱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미영이가 눈을 껌뻑였다.

“놀이동산···.”

혼잣말하다가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모습에 강현이 아차 싶었다.

상후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서울에 올라가기 힘든 건 미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상후도 입을 다물고 미영이의 눈치를 봤다.

강현은 쓴웃음을 짓고는 미영이에게 다가갔다.

“미영이도 같이 갈래?”

어차피 한 명이나, 둘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

황급히 고개를 젓는 미영이.

“아뇨. 괜찮아요···. 오빠는 엄마 보러 가는 거잖아요.”

그러나 말과 달리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삼촌이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

“맞아! 같이 가자!”

강현의 시선을 받은 상후가 거들었다. 그러자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역시나 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미영이도 부모님께 미리 허락 맡고.”

끄덕끄덕.

강현은 미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테이블 옆에 앉아있는 설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네. 설기도 있었어.’

둘과 달리 이대로 서울에 데려갈 수는 없었다.

볼을 긁적이던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마을에 다녀오고 생각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을 먼저 해결할 때였다.

다시 마을에 가져갈 선물을 고민하던 강현의 시선이 냉장고로 향했다.

‘...역시 먹을 게 가장 무난한가?’

음식과 술. 강현으로서는 그것 말고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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