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52화 (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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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직 있었군!

푹푹 찌는 더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저절로 흘렀다. 보따리를 멘 설기 역시 혀를 길게 빼고 있었다.

강현은 배낭을 들쳐메고 문을 넘었다.

그와 함께 상쾌한 공기가 강현을 맞이했다.

“피서지가 따로 없네.”

강현만의 피서지. 우기는 있었지만, 지구와 달리 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언제나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

강현은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며 미소 지었다. 설기도 기운을 차리고 몸을 흔들었다.

“노아씨는 당분간 못 온다고 했고.”

란돌프도 그 뒤로 본 적이 없었다. 장소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오늘은 좀 멀리 나가볼까?”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의 귀가 쫑긋 올라왔다.

강현의 주변을 빙그르르 도는 설기.

그러더니 먼저 앞으로 걸어가더니, 얼마 안 가서 다시 돌아보는 설기. 어서 가자고 닦달하는 것이었다.

“그래, 가보자.”

배낭의 끈을 당긴다. 무게는 그대로였으나 예전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그만큼 체력이 늘어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의아할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단순히 뜀박질만으로 이렇게 좋아질 리가 없었다.

‘란돌프씨와 노아씨에게 배운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이 세계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뜀새만 해도 그러니.”

지구에서는 있을 수 없는 효과를 지녔다.

운동하는 이들에게는 영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덕분에 강현도 자신감이 붙었다.

설기를 따라 발을 내디뎠다.

* * *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렸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새의 울음소리.

흘러내린 땀이 금세 바람에 씻겨나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오히려 피로가 풀리고 있었다.

앞에서 흔들리는 꼬리를 이정표 삼아서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굽이진 산세를 감상하고 있으니 옆에서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은 놀라지 않았다. 이제는 소리만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데구루루.

작은 그림자 하나가 수풀을 헤치고 굴러 나오더니 설기를 향해 발톱을 드러냈다.

“갸아아아아아아!”

“...”

심드렁한 눈으로 그림자를 힐끗거린 설기는 뒷발로 목덜미를 긁었다.

그런 설기의 반응에 모나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강현을 향해 쪼르르 다가왔다.

‘이제는 안 싸우는구나.’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굳이 처음부터 힘을 빼지 않는 것이었다.

모나는 강현과 배낭을 번갈아 보더니 불쑥 손을 내밀었다.

강현이 손을 잡아주자 간지러운지 갸르릉, 하고 고양이와 같은 울음을 토했다.

늘어난 일행.

그러나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처럼 익숙했다.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 설기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곧 어디론가 달려가는 설기.

모나도 눈을 깜빡이더니 설기를 뒤따랐다.

“잠깐만, 천천히···.”

강현은 뻗었던 손을 내렸다. 어차피 듣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사라진 둘을 보며 다시 걸음을 뗐다.

전과 변함없는 속도.

그렇게 걷다 보니 옆에서 설기가 짖는 게 들렸다.

“컹! 컹!”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흰 그림자가 보였다.

‘언제 저기까지 갔지.’

강현은 고개를 흔들고 방향을 바꿨다.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물소리가 들려왔다.

풍덩, 풍덩.

설기와 모나는 물속에 들어가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둘에게 다가가던 강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와.”

냇가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작은 계곡.

얼마나 깨끗한지 바닥의 돌까지 다 보일 정도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졌다.

“이거 때문에 달려간 거구나.”

강현은 물장난치고 있는 설기와 모나를 보며 배낭을 내렸다.

물속으로 잠수하는 설기.

곧 물고기를 입에 물고 나왔다.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

‘물고기도 많네.’

강현의 시선이 물고기에게 향했다.

저걸 잡아서 요리해달라는 건가?

‘그런 것치고는 좀 작네.’

기껏해야 설기 머리 반 정도였다. 평소의 설기를 생각하면 작은 먹잇감이었다.

설기는 그대로 머리를 들어서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유유히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강현이 눈을 깜빡였다.

저걸 한 번에 삼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런 설기를 보고 있던 건 강현만이 아니었다.

“...”

헤엄치는 설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모나의 얼굴에 어떠한 각오가 떠올랐다.

“우!”

설기를 따라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나.

“잠깐만!”

강현은 황급히 옷과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억지로 물고기를 입안으로 쑤셔 넣는 모나를 꺼내왔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강현의 몸도 다 젖었다.

시무룩해진 모나를 달래고 있자 설기가 올라와서 몸을 털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갸웃?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는 설기.

결국,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땀을 닦으려고 챙겨온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냈다.

“난 근처 한 바퀴 뛰고 올게. 밥은 그 뒤에 먹을 거야.”

설기와 모나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둘은 어떻게 할래? 여기서 놀고 있어도 돼.”

강현의 말이 끝나자 둘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는 설기.

따라오겠다는 뜻이었다. 이미 충분히 놀았기 때문이었다.

피식, 웃은 강현은 가볍게 몸을 풀고 숲속을 뛰었다.

순식간에 옆으로 따라붙은 설기와 모나.

둘은 달리면서도 투덕거리며 장난을 쳤다.

멀어졌다가 또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그렇게 달리고 있자 어느 순간, 배낭을 내려놨던 계곡이 보였다.

뛰는 걸 멈추고 강현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설기와 모나.

숨을 고르던 강현은 둘의 눈빛에 쓴 웃음을 지었다.

둘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노아가 내준 숙제.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두 손을 땅에 내렸다.

수인들처럼 네 발로 걷는 것이었다. 뜀박질과 달리 익숙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네 발로 걷는 건 이곳에서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러고 마을을 돌아다녔다간 신고가 들어오겠지.’

이 나이 먹고서 다시 네 발로 기는 걸 연습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보기보다 어려웠다.

특히나 평지가 아니라 이처럼 울퉁불퉁한 숲에서라면 더더욱.

결국, 기어가던 강현이 돌을 잘못 집고 엎어졌다.

“큭.”

일어나서 몸에 묻은 흙을 털었다.

‘...지금 와서 안 할 수도 없고.’

어쩌다 자신의 신세가 이리되었는지. 한숨을 내쉬던 강현의 눈에 모나와 설기가 보였다.

비틀거리다가 땅바닥을 구르는 모나와 설기.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서 흙이 잔뜩 묻었다.

강현의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재밌니?”

“꺄르르.”

“컹!”

웃음을 토하는 둘을 보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따라 더 얄미운 둘이었다.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당연한 말이지만, 싸워도 강현이 질 거다.

체급의 우위 역시 종의 한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오늘은 그만 들어갈까.”

둘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보다 일찍 끝났기 때문이었다.

더 안 할 거야? 그런 눈빛으로 강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현은 그런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보다 거칠게.

강현이 손을 떼자마자 둘이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선생님들도 없으니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될 거다.

강현은 그렇게 설기와 모나를 데리고 계곡으로 돌아왔다.

둘 다 흙으로 더러워져서 씻길 생각이었으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돌아오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풍덩!

강현은 얼굴에 튄 물방울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엎어지면서 묻은 흙을 씻어내고는 텐트를 칠 준비를 했다.

돌과 풀로 평지를 만들고 텐트를 쳤다.

숙련된 움직임. 그리고는 가스와 스토브를 꺼냈다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닭 날개로 조림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계곡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설기야! 물고기 몇 마리만 잡아줘. 아까 잡은 녀석과 비슷한 크기로.”

“컹!”

헤엄을 치던 설기가 짖더니 물속으로 잠수했다.

그걸 보며 강현은 화로를 꺼냈다.

근처에 떨어진 나뭇조각들을 주워다가 불을 피운다.

곧 연기와 함께 불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릴 위에 닭 날개를 올렸다.

소금과 후추를 솔솔솔 뿌려주고 구석에 있는 닭 날개에는 조릴 때 쓰려고 가져왔던 토마토소스를 발라주었다.

옆에 버섯과 아스파라거스도 같이 올려줬다.

그렇게 재료를 올린 강현은 설기에게 부탁한 걸 확인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숨을 삼켰다.

팔딱, 팔딱.

물가 한쪽에 쌓여있는 물고기들.

처음에는 물고기란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많았다.

언제 저렇게 쌓인 걸까? 눈을 껌뻑였다.

설기를 찾아 계곡으로 시선을 돌린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각자 물고기를 하나씩 문 설기와 모나가 경쟁하듯이 헤엄치고 있었다.

‘맙소사.’

강현이 다급히 일어났다.

“그만, 그만 잡아도 돼!”

그제야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둘이 입을 벌리자 물려있던 물고기가 다급히 도망쳤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그나마 멀쩡한 상태의 물고기들을 다시 계곡으로 보내줬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둘을 돌아보자 설기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나는 해맑게 웃기만 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물고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다. 그리고 안까지 열이 잘 전달되라고 칼집을 넣은 후, 그릴 위에 올렸다.

타닥타닥.

물기가 떨어지면서 불똥이 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기가 아닌 기름으로 변해갔다.

그와 함께 올라오는 고소한 향.

그렇게 생선을 보고 있으니 미리 올려놨던 닭 날개가 익었다.

강현은 익은 걸 접시에 올려줬다.

“안에 뼈가 있으니 조심히···.”

아그작, 아그작.

접시를 내려주자마자 닭 날개를 먹어 치운 둘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목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

“컹!”

“아우!”

다시 먹는데 열중하는 둘. 강현은 피식 웃고는 닭 날개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한 껍질을 씹자 육즙이 흘러나왔다.

강현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정말로 웃음이 나오는 맛.

‘바꾸길 잘했네.’

강현은 배낭에서 술을 꺼냈다. 오늘 준비한 술은 전과 달랐다.

깨지지 않게 몇 겹으로 꽁꽁 싸맸다.

와인.

샤또 오브리옹 2014년.

윤섭이 선물로 주고 간 와인이었다.

강현은 스테인리스로 된 캠핑용 잔을 꺼냈다.

그리고 잔 위에 와인을 따랐다.

붉은빛의 와인이 잔에 가득 차올랐다.

“이런 잔에 마시기는 미안한 와인이긴 한데.”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와인잔을 들고 올 수도 없지 않은가.

이 경관이라면 와인잔의 부재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닭 날개를 하나 더 먹고는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는 계곡을 눈에 담았다.

어느새 계곡 위에는 달이 떠 있었다.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달.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강현의 미소 역시 진해졌다.

역시나 음식과 술, 모두가 최고였다.

* * *

다음 날, 설기는 일어나자마자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모나가 없는 탓인지, 어제보다 금방 흥미를 잃고 물 위로 올라왔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다가 텐트를 정리했다.

그때, 멀리서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은색의 갑옷.

“란돌프씨?”

“다행히 아직 있었군!”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란돌프는 강현의 앞에 서자마자 깊은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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