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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나요?
“전에 수인족 마을에 다녀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랬지. 정말 부러운 경험이야.”
란돌프가 고개를 주억였다.
란돌프도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다.
강현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 후에도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수인족들의 식사 방식. 그것이 전통이라면 강현도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강현의 요리를 먹던 걸 떠올리면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고기를 그렇게 먹는 건, 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적어도 강현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강현의, 요리사로서의 직업의식이었다.
“처음에는 제가 쓰던 향신료를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이번에 정기훈 작가와의 일이 있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강현이 언제까지 향신료를 가져다줄 수는 없었다.
강현이 다루는 건 어디까지나 지구의 향신료.
이곳과는 달랐다.
‘...혹시 못 올 수도 있으니.’
애당초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다. 다시 못 오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보다는 이 지역에 나는 향신료를 이용하는 게 나았다.
그래야 강현이 없어도 문제가 안 생겼다.
강현의 이야기가 끝나자 란돌프가 팔짱을 꼈다.
“과연. 그래서 우리 마을에선 어떤 식으로 요리하는지가 알고 싶은 거군.”
이미 강현이 다른 세계의 사람이란 걸 알고 있는 란돌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현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결국, 우리 마을이 보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었어.”
수인들을 위해서 마을을 방문하겠단 소리였다.
아쉬운 듯이 말하는 란돌프를 보며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닙니다. 마을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당황하는 강현을 보고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네. 이렇게 다른 이를 위해 나설 줄 아니깐, 저들도 자네를 받아들인 것이겠지.”
그리고 하얀 늑대까지.
란돌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엎드려있던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마을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마을보다는 이곳의 사람들이 어떤 향신료나 양념을 쓰는지가 더 궁금했다.
란돌프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쳤다.
“좋아. 내 자리를 한 번 만들어보지.”
“자리요?”
무슨 자리를 만든단 말인가?
그저 마을에 들려서 향신료를 보는 것뿐이었다.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강현을 본 란돌프가 입꼬리를 올렸다.
“안 그래도 자네가 수인들의 마을만 가보고 우리 마을에는 들리지 않아서 섭섭했다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수인들이 환영회를 열어줬다고 했지? 우리가 밀려서는 안 되지.”
“굳이, 그럴 필요는···.”
“아니야. 이는 인간의 체면이 걸린 문제야.”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란돌프가 눈을 번뜩였다.
‘...잘못 말한 건가.’
너무 경솔했던 걸까. 잠깐, 후회했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럴 때가 아니군. 준비가 끝나면 연락하겠네!”
란돌프는 강현의 어깨를 두드린 후 그대로 숲속으로 달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란돌프.
“잠깐···. 벌써 가버렸네.”
강현은 란돌프를 향해 뻗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나무 옆에 세운 목검을 바라보았다.
“결국, 못 배웠네.”
목검을 쓰는 일은 좀 더 나중이 될 것 같았다. 피식, 웃은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날이 훤했다.
그 전만 해도 달리기가 끝날 무렵에는 날이 저물었지만, 이제는 점점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다.
오고 나서 식사하긴 했지만, 이대로 쉬긴 아쉬웠다.
‘운동했으니.’
소화가 끝났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간단히 뭐라도 해 먹을까?”
강현의 말에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컹!”
흔들리는 꼬리. 그를 보며 강현은 미소 지었다.
* * *
배낭을 뒤져서 남은 재료를 찾았다.
마늘, 양파, 피망, 버섯과 레몬.
그리고 설탕이나 후추와 같은 기본적인 양념류.
“...애매하네.”
메인이 될만한 게 빠져 있었다. 고민하던 강현의 시선에 설기가 들어왔다.
“아.”
탄성을 뱉는 강현.
“...굳이 가지고 온 재료만 할 필요는 없구나.”
아직 열매나 채소의 구분이 어려웠지만 고기는 달랐다.
강현 옆에 전문가가 있었다.
“설기야. 새 한 마리만 잡아 올 수 있어?”
강현의 물음에 설기의 귀가 쫑긋 섰다.
“컹!”
힘차게 짖는 설기. 강현은 맥주캔 하나를 들어 올렸다.
“얘보다는 커야 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설기가 그대로 숲을 달렸다. 아차 싶었던 강현이 외쳤다.
“너무 커도 안 돼!”
설기의 배포를 잊고 있었다.
저번에 뱀처럼 거대한 녀석을 잡아와도 곤란했다.
강현은 설기가 사라진 숲을 바라보며 볼을 긁적였다.
“알아들었겠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살짝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설기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도 준비해야겠네.”
물을 길어와야 했다. 새를 손질하려면 물이 많이 필요했다.
냇가까지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물을 길어오자 설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설기의 입에 물린 새를 보며 강현은 숨을 삼켰다.
‘...닭 같은 걸 기대했는데.’
닭이라기보다 매에 가까웠다. 게다가 크기도 설기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뾰족한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날아오를 것같이 위풍당당했다.
맹금류.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자세히 설명했어야 하는데.’
강현의 표정을 읽은 설기가 새를 슬쩍 내려놓았다.
“끼잉.”
“...맛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 새를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몸통을 만져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털 때문에 더 커 보이는구나.”
강현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다.
“좋아. 해보자.”
강현은 끓고 있는 냄비에 머리를 뗀 새를 통째로 넣었다.
아니, 통째로 넣으려고 했으나 날개 때문에 걸렸다. 어쩔 수 없이 몇 번에 나눠서 부위별로 데쳤다.
그리고 털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데친 상태라 털을 벗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역시나 털을 다 벗기고 나니 크기가 제법 줄었다.
‘그래도 날개는 어쩔 수 없네.’
강현은 혹시 모를 잔털을 없애기 위해서 불 위에 몇 번이나 그을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손질이 시작되었다.
먼저 다리와 꼬리를 제거하고 날개 역시 뾰족한 부분은 잘라냈다.
그렇게 내장까지 빼내고 나자 땀이 한가득 흘러내렸다.
역시나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요리에 익숙한 강현이었지만, 이렇게 도축부터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제 익숙해져야지.’
이제는 강현도 숲의 주민 중 하나였다.
강현은 나온 부산물들을 모아다 숲 한쪽에 놓고 왔다.
처음에는 가져가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란돌프가 조언을 해줬다.
‘이 숲에는 그런 걸 좋아하는 녀석들도 많아. 자연에서 온 것은 자연으로 돌려보내야지.’
그렇게 부산물을 처리한 강현의 눈앞에 뽀얀 속살을 드러낸 새가 누워있었다.
물로 몇 번이나 씻은 탓에 깨끗해진 상태.
이제 준비는 끝이었다.
강현은 새에 후추와 소금, 레몬즙을 골고루 발라줬다.
안쪽까지 꼼꼼하게 발라준 후 배낭에서 맥주를 꺼내서 땄다.
벌컥벌컥.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전기라도 오른 듯한 짜릿한 감각.
“끼잉?”
설기가 요리하다 말고 혼자 뭘 먹냐는 눈빛으로 강현을 보았다.
“기다려 봐.”
강현은 피식 웃고는 칼로 캔 윗부분을 잘라냈다.
‘오프너가 없는 게 아쉽네.’
캔 윗부분을 따는 것도 일이었다.
강현은 팬 위에 맥주를 세우고 그 위에 새의 엉덩이를 꼈다.
쓰러지지 않게 젓가락과 집게로 고정을 한 뒤, 조심스럽게 화로대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냄비를 거꾸로 뒤집어서 덮으면 끝.
이걸로 그럴듯한 모양새는 갖춰졌다.
‘임시이긴 하지만.’
생각대로 나올지는 강현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날개가 워낙 큰 탓에 냄비 아랫부분이 살짝 벌어졌다.
“어쩔 수 없지.”
제대로 된 장비는 부피가 너무 컸다.
강현은 적당한 돌을 가지고 와서 냄비 위에 올렸다.
“그럼 기다려 볼까?”
“컹!”
설기가 강현의 곁으로 다가와서 앉았다.
어떤 맛이 될지는 강현도 예측할 수 없었다. 기대감과 설렘.
‘이것도 요리의 좋은 점이지.’
이제는 어떠한 요리로 변할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타닥, 타닥.
화로대에 올라오는 불을 보면서 설기의 등을 쓰다듬었다.
기다리던 설기는 시간이 지나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미 하늘은 어두워진 상태였다.
강현은 졸고 있는 설기를 방해하지 않게 슬그머니 손을 뗐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의 향연.
밤에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살랑살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던 강현의 옆구리를 설기의 꼬리가 간지럽혔다.
의아해하던 강현은 곧 냄비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 웃음을 흘렸다.
‘...정말 대단하네.’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설기.
꼬리가 먼저 냄새에 반응한 것이었다.
언제 잤느냐는 듯이 초롱초롱한 눈빛의 설기. 강현은 설기의 시선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야.”
강현의 말에 다시 고개를 내리는 설기.
그러나 얌전한 머리와 달리 꼬리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심해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강현은 냄비를 들어 올렸다.
자욱하게 올라오는 연기. 그와 함께 고소한 향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갈색빛으로 변한 고기.
좌르륵 윤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팬 아래에도 기름이 흥건했다.
강현은 냄비에 붙은 살점을 보며 혀를 찼다.
‘역시 너무 작았네.’
특히나 날개 부분이 심하게 눌어붙었다.
씻어내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냄비에 기름을 발라뒀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아니 발라서 이 정도인가?’
강현은 홀린 듯 새를 향해 다가가는 설기를 제지했다.
“기다려. 다 익었는지 확인해야 해.”
“낑.”
앓는 소리를 내며 물러나는 설기.
강현은 조심스럽게 엉덩이게 꽂혀 있는 맥주캔을 뺐다.
그와 함께 안에서 물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육즙.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완벽하게 익었다. 살점을 찢어본 강현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거대한 날개 죽지와 다리 하나는 찢어서 접시에 덜고는 나머지를 설기에게 건넸다.
“뜨거우니 조심히 먹어···. 이미 안 듣고 있네.”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들었다.
입 주변에는 기름기가 가득했다. 갸웃하는 설기를 보며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맛있게 먹어.”
강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머리를 박는 설기.
강현은 그 모습을 보다가 고기 한 점을 뜯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음!”
바삭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쫄깃쫄깃한 겉가죽.
그리고 부드러운 살코기.
씹을 때마다 육즙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괜찮네.”
닭보다는 오리에 가까운 맛.
강현이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만일 이곳이 강현의 매장이었다면 이런 평가가 나오지 않을 거다.
그러나 이 정도의 도구로 이런 맛을 낸다는 건 쉽지 않았다.
치익.
강현이 맥주 한 캔을 깠다.
그리고 접시 한쪽에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살코기를 뜯어서 소금, 후추에 찍은 후 입에 넣었다.
그 뒤로 맥주를 한 모금.
그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것만 같았다.
강현은 조용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다음날.
텐트를 나오던 강현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마 잠이 덜 깬 상태가 아니었다면 비명을 질렀을 거다.
“노, 노아씨?”
텐트 앞에서 한 사내가 강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일어났나?”
무심한 말투.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강현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강현이 두리번거리자 노아가 입을 열었다.
“모나는 없다.”
노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사이 텐트 안에서 기어나온 설기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모나 없이 혼자 오다니 드문 일이었다.
강현의 물음에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수인족의 체술은 뛰어나다.”
“...예?”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걸까?
노아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검술이 있다면 우리 수인에겐 체술이 있지.”
“...예.”
“이제부터 강현, 네게 수인들의 체술을 가르쳐주겠다.”
“...예?”
아니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