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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왜 부른 건가?
옷차림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코트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노인은 헛기침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마르게리타를 하나 부탁하네.”
이번에는 메뉴조차 보지 않고 주문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피자 반죽을 꺼냈다.
핀 반죽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다.
오븐에 구워지면 손으로 뜯은 바질을 듬성듬성 올려주고 올리브 오일을 살짝 뿌려준다.
그걸로 끝.
별다른 재료 없이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 바질. 이 세 가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세 가지의 색은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케 한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피자 중 하나였다.
피자가 나오자 노인은 조용히 향을 맡아보더니 손으로 피자를 뜯었다.
그리고는 한입 먹더니 눈을 감았다.
“...좋군.”
뒤늦게 나오는 감탄사. 그 소리를 들은 강현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한 조각을 다 비운 노인은 피자 두 조각을 포개서 샌드위치처럼 들어 올렸다.
포크와 나이프가 셋팅이 되었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입으로 쑤셔 넣는 것도 아니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삼켰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자 노인이 일어났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잘 먹었네.”
그리 말한 노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다음에 미네스트로네를 부탁해도 되겠나?”
갑작스러운 말에 강현이 눈을 깜빡였다.
미네스트로네.
야채와 파스타를 넣은 토마토수프였다.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흔하게 먹는 요리 중 하나.
그러나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만드는 건, 가능합니다.”
방법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가능했다. 가정에서도 남은 야채와 파스타를 넣고 끓이는 경우가 많았다.
강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굳게 닫힌 입과 날카로운 눈매.
고집 있어 보이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그리고 옷차림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고맙네.”
“아닙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강현이 담담하게 인사를 받자 노인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오겠네.”
“예.”
그러나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노인은 나가지 않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강현을 힐끗거렸다.
“...혹시, 하실 말씀이 더 남았나요?”
“아니, 아니네.”
고개를 저은 노인.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돌아와서 헛기침했다.
“소개가 늦었어. 나 정기훈이라네.”
“아, 전 이강현입니다.”
뜬금없는 소개에 강현 역시 고개를 숙였다.
“...”
“...”
그리고 다시 침묵. 홀에 엎드려 있던 설기가 슬그머니 머리를 올리더니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노인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민망함, 후회, 어색함.
온갖 표정이 뒤섞였다. 곧 한숨을 내쉰 노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자네 TV는 안 보는가?”
“예.”
어색하게 웃으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민망함에 노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험험. 난 그림을 그리고 있네. 그럼 내일 오겠네.”
그리고는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노인.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림을 그린다면 화가란 뜻이었다. 혹시 몰라서 핸드폰을 열어보고 검색을 해봤다.
그리고 탄성을 뱉었다.
‘...유명한 분이시구나.’
화가 정기훈.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 수상.
대통령상 수상.
그 외에도 수많은 이력이 나왔다.
이 때문에 얼마 전까지 대대적으로 뉴스와 방송에 나오기도 했었다.
미술계의 거장.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옷차림부터 범상치 않아 보이더니.’
이 더운 날씨에도 꽁꽁 싸매고 다닐 만했다.
강현은 도망치듯 떠났던 노인을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 * *
다음날.
노인이 다시 찾아왔다. 여전히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코트가 아닌 가벼운 복장이었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은 노인은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어제의 일 때문에 민망한 것이었다.
강현은 웃으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제가 미디어와는 안 친해서.”
강현의 인사에 노인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압박을 주려던 게 아니네. 단지 그냥 부탁하기 민망해서···.”
말을 이어가던 정기훈 작가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변명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네. 내가 오만해진 모양이야. 그게 싫어서 여기까지 내려왔으면서도 이러다니.”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현은 그런 정기훈 작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기훈 작가와 같은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아니, 그렇기에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건가?’
강현은 정기훈 작가가 민망해하지 않게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식사는, 어제 말씀하신 미네스트로네로 준비해드릴까요?”
“부탁하네.”
정기훈 작가의 대답을 들은 강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 * *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 당근, 셀러리, 마늘 순으로 약한 불에서 천천히 볶아줬다.
그렇게 충분히 볶아준 뒤, 닭 육수를 야채가 잠길 정도로 부어준다.
불의 세기를 올린 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월계수 잎을 하나 올린다.
끓기 시작하면 토마토소스와 양배추, 애호박을 넣고 다시 끓인다.
마지막으로 미리 익혀놓은 면을 넣어주고 마무리하면 되었다.
강현은 나선 모양의 숏파스타인 푸실리와 나비넥타이 모양의 파르팔레를 넣어줬다.
스푼으로 먹기 편한 파스타들이었다.
최종적으로 소금, 후추로 간을 한 번 더 해주고 그릇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위에 파르메산 치즈와 파슬리를 올려주면 완성.
베이컨이나 돼지고기, 닭고기를 넣을 때도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도 가정마다 다르기에 정답은 따로 없었다.
미네스트로네가 담긴 접시를 테이블에 올렸다.
정기훈 작가는 물끄러미 수프를 바라보았다.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그리고는 천천히 수프를 들어 올렸다.
“음.”
고개를 끄덕이는 정기훈 작가.
그러나 강현은 한순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진 실망감을 읽었다.
“혹시 입맛에 안 맞으십니까?”
강현의 물음에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자네의 요리는 훌륭해. 서울에서, 아니지. 이탈리아에서 판다고 해도 믿을 정도야. 문제는 내게 있네.”
정기훈 작가가 스푼을 내려놓았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야 아름다운 것이야.”
어딘가 아련한 목소리. 사연이 있어 보였다. 강현이 이야기를 듣겠다는 자세를 취하자 정기훈 작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젊을 때,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났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했어.”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뒷일을 생각조차 안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궂은일이란 일은 다 해봤어. 식당의 웨이터부터 시장 청소까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림을 그릴 물감을 사는 것조차 빠듯했지. 파스타 면에 소금 한 줌. 그것이 내 식사였네. 운이 좋으면 마늘 몇 조각 정도? 간혹, 시장에서 남은 채소를 주면 거기다 넣는 게 전부였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정기훈 작가가 눈살을 찌푸려졌다.
괴로운 생활. 지금이야 한국이란 나라가 알려졌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홀로 생활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차별과 박해.
“그때, 숨구멍이 되었던 게, 이것이었네. 그림이 팔린 날은 나가서 외식했어. 그런 날까지 집에서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정기훈 작가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싼 것을 먹을 수도 없었지.”
그렇기에 미네스트로네.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만큼, 가격도 저렴했다.
“먹으면서 늘 다짐했다네.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그리고 좋은 기회가 닿아서 이탈리아를 떠났지. 이탈리아를 떠나고 오랫동안 이탈리아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았어.”
정기훈 작가의 말에 강현은 의아해했다. 강현이 본 정기훈 작가는 이탈리안에 익숙했다.
강현의 시선에 정기훈 작가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이가 먹어서 그렇다네. 나이를 먹으니 알겠더군. 괴로운 기억들 역시 추억이란 걸. 어느 순간부터 그때의 음식이 떠오르더군. 그래서 먹어보긴 했는데···.”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의 그 맛이 아니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었다.
“당연했어. 고작 몇 푼에 파는 미네스트로네가 달라봤자 뭐가 다르겠는가.”
그리 말한 정기훈 작가는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잘 먹었네. 자네의 요리는 훌륭해.”
그렇게 자리를 일어서는 정기훈 작가.
“늙은이와 어울려줘서 고마웠어.”
정기훈 작가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혹시 과거에 먹었던 미네스트로네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까요?”
일어났던 정기훈 작가가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자리에 앉았다.
“...못 해줄 건 없지.”
다시 기억을 더듬는 정기훈 작가.
“비린 맛이 났어. 이건 그곳이 바다여서 그랬을 걸세. 방에서도 바다 비린내가 사라지지 않았거든. 그리고 음···.”
그런 정기훈 작가의 말에 강현의 눈이 빛났다.
“바닷가요?”
“아말피라네. 해변이 아름다운 동네였지. 그 시절,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좋은 기억이야.”
정기훈 작가는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는 정기훈 작가가 무언가 떠올렸는지 탄성을 뱉었다.
“수프의 국물이 좀 더 탁했던 것 같군. 하지만 싸구려 야채를 썼을 테니 당연할 걸세.”
“혹시 고기는 따로 들어가지 않았나요?”
강현의 물음에 정기훈 작가가 씁쓸하게 웃었다.
“말하지 않았나. 가난했다고.”
그리고는 더 떠오르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몸을 일으키는 정기훈 작가.
“너무 시간을 빼앗았군.”
계산하는 매장을 나서려는 정기훈 작가를 강현이 불렀다.
“작가님. 혹시 내일 한 번 더 와주실 수 있나요?”
“...내일, 말인가?”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현의 말에 정기훈 작가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유조차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 시간에 다시 오지.”
매장을 나가는 정기훈 작가.
그렇게 정기훈 작가를 떠나보낸 강현은 핸드폰을 꺼내서 아말피에 대해서 검색했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정기훈 작가가 말했던 미네스트로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변한 게 아닐 수도 있었다.
* * *
다음날, 같은 시간에 찾아온 정기훈 작가는 테이블에 앉지 않고 강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강현이 의아해하자 정기훈 작가가 입을 열었다.
“자네, 날 속였군.”
“예?”
뭘 속였단 말인가. 강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정기훈 작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요리 쪽에도 유명하더군.”
“작가님보다는 아니죠.”
전에 들은 강현의 이름을 검색한 모양이었다.
강현의 말에 며칠 전 일을 떠올린 정기훈 작가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동안 잊히지 않을 거다.
“...방송도 나왔던데, 그러면서 미디어와 안 친하다고?”
아까보다 힘이 빠진 목소리.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제가 나온 방송도 안 봤어요.”
사실이었다. 미각이 사라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시간에 일하거나 요리를 연구했다.
강현의 대꾸에 정기훈 작가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였다.
“자네 정도 되는 이가 왜 이런 곳에···. 하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건가.”
그 사정 역시 짐작이 갔다.
그런 정기훈 작가의 혼잣말에 강현이 의아해했다.
정기훈 작가 역시 강현과 비슷한 사정이라고 예상했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의 시선에 정기훈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난 근처에 별장이 있네. 여기만 있는 게 아니야. 집에 있으면 별 잡것들이 다 드나들려고 해서, 작업할 때는 되도록 별장에 머무르고 있네.”
정기훈 작가는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전과 달리 과격한 말투. 그동안 많이 시달린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별장을 관리하는 이가 말해주더군. 근처 마을에 양식당이 생겼으니 바람 쐬러 한번 다녀오는 게 어떠냐고.”
강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작업할 공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역시 세계적인 작가이네.’
고개를 끄덕이는 강현. 정기훈 작가는 그런 강현을 바라보았다.
형형한 눈빛.
그냥 노인이 아닌, 한 분야에 정점에 오른 이의 눈빛이었다.
“그래서, 날 왜 부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