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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설마···.
수인족의 어린아이들은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웠다.
냄새를 맡고는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금세 강현은 아이들의 침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인족의 모든 아이가 모나처럼 힘이 세지 않았다.
이빨 역시 뭉툭한 수준.
아니었다면 강현의 몸이 버티지 못했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수인의 아이들은 강현이 알고 있는 어린아이의 체력이나 행동력을 아득하니 뛰어넘었다.
그렇게 강현이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있자 보다 못한 카샨이 나섰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강현이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대신 놀아주마.”
카샨은 강현 위에 있는 아이를 집어서 던져버린 것이었다.
“꺄르르르.”
땅바닥을 구른 아이가 다시 카샨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샨은 손에 집히는 대로 아이를 던졌고, 그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꺄하하항.”
“꺄웃!”
즐거워하는 아이들.
‘맙소사.’
한국이었다면 아동 폭력으로 신고당해도 할 말이 없는 광경.
넋을 놓고 바라보던 강현은 뒤늦게 깨달았다. 막무가내로 집어 던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덩치에 따라 던지는 힘이 달랐다.
작은 아이는 바닥에 굴리는 정도, 클수록 높고 멀리 던졌다.
힘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현이 수인족의 육아 방식에 놀라고 있는 사이 대청 너머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냥에 나갔던 이들이 하나둘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들을 본 카샨이 들고 있던 아이를 내려놨다.
“충분하지? 이제 너희끼리 놀거라.”
카샨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들은 곧 자기네들끼리 뒤엉켰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투덕거리는 아이들.
설기와 모나가 아니었다면 싸우는 줄 알았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저것이 저들이 노는 방식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침 때문에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변한 강현. 카샨이 그런 강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힘들지?”
“...다들 체력이 대단하네요.”
강현의 대답에 카샨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이란 그런 거지. 원래는 좀 더 지켜보려고 했지만, 위험해 보이더군.”
카샨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그렇게 다급해 보였나?
‘...아니, 다급해 한 건 맞지.’
카샨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씩, 웃었다.
“더 놔뒀다가는 자제심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어.”
자제심? 생뚱맞은 단어에 강현이 의아해하자 카샨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몰랐나? 그대에게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혹시 알아? 맛도 그럴지.”
“...!”
강현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카샨.
눈동자가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강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
그러자 카샨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야. 농담.”
카샨의 말에 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카샨은 그런 강현의 등짝을 두드렸다.
“역시 재미있는 인간이야.”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강현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등이 화끈거릴 때쯤, 카샨의 웃음이 멈췄다.
“오크도 아니고, 우린 인간은 먹지 않아. 아,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건 진짜야. 그리고 아이들은 뭐든지 씹어보려는 습성이 있지.”
힐끗 뒤를 돌아봤다가 아직 강현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 몇몇과 눈이 마주쳤다.
열망이 담긴 눈동자.
강현은 그런 아이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저 아이들은 괜찮겠지만, 내 딸의 이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날 닮아서 아주 날카롭거든.”
그리 말하며 카샨이 자신의 이를 두드렸다. 인간과 다르게 날카로운 이.
고개를 끄덕이는 강현을 본 카샨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대는 너무 연약해서 걱정이군. 그래도 신성한 늑대가 있어서 다행인가.”
그제야 강현은 카샨이 그러한 농담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나가 그럴 의도가 없어도 강현이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었다.
‘조금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했다. 강현은 모나의 괴력을 떠올리고 고개를 주억였다.
강현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어쩌면 일부러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었다.
카샨과 함께 대청 밖으로 나가자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수인들이 서로 잡은 사냥감을 비교하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중앙에는 아까까지 없었던 장작이 쌓여 있었다.
수인들은 카샨을 발견하자 길을 열어줬다.
곧 장작 앞까지 도착한 카샨과 강현.
카샨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청 안에서 위엄 넘치던 것과는 달리 털털한 모습.
그러나 수인들은 익숙한지 개의치 않아 했다.
강현도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가 카샨 옆에 앉았다.
그리고 다른 수인들도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신기한 건 서로의 사냥감을 비교하면서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선두에 있던 이들은 자신보다 큰 사냥감을 잡은 수인이 나타나면 아쉬운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강현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카샨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차피 축제가 시작되면 다 같이 어울리니 신경 안 써도 된다.”
카샨의 말에 다시 보니 선두에 앉은 이들만이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하고 있었고, 뒤로 밀려난 이들은 마음 편히 떠들고 있었다.
대청 안에 있던 아이들도 어느샌가 나와서 사람들 사이를 뛰놀고 있었다.
신기한 광경.
그때, 마을 뒤편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수인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당당하게 수인들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오는 무리.
선두에 있는 이는 강현도 알고 있는 이였다.
‘테무, 라고 했었나?’
굳이 설기의 행동을 떠올리지 않아도, 자신에게 부정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선두까지 올라온 테무가 등 뒤에 메고 온 짐승의 사체를 앞으로 던졌다.
쿵!
흙먼지가 일어났다.
‘...호랑이?’
지구의 호랑이와 비슷한 짐승. 하지만 덩치가 차량만큼이나 거대했다.
올라오는 먼지에 콜록거리는 강현과 달리 카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테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같이 온 전사들이 사냥감을 내려놓았다.
그를 보자 선두에 있던 수인들이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건 서쪽 숲의···!”
“역시 테무 전사장인가.”
“대단하군.”
주변에서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테무는 카샨을 보더니 강현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자신의 사냥감을 과시하듯이.
그러나 강현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볼을 긁적였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강현은 토끼 하나 잡기 어려웠다. 당연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그저 와 다들 대단하구나. 그런 감상 정도이지 더 좋은 사냥감을 잡아 왔다고 해서 놀라거나 감탄하기 힘들었다.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스크린 너머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테무는 강현의 담담한 모습을 오해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입을 열려던 테무는 카샨을 힐끗거리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테무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자마자 다시 주변이 웅성거렸다.
자연스레 테무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그리고 뒤에 오는 무언가를 본 테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질질질.
길고 거대한 것이 끌려오고 있었다.
뱀. 강현은 그것이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지난번, 그 뱀인가?’
생김새는 같았지만 덩치가 달랐다. 지난번에 보았던 뱀은 성체가 아니었다.
그리고 뱀을 끌고 오는 건, 역시나 새하얀 늑대였다.
“신성한 늑대!”
“역시 어려도 신의 피를 이은 것인가!”
사방에서 감탄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테무의 얼굴이 붉어졌다.
곧 테무가 놓은 짐승의 옆에 뱀을 내려놓는 설기.
크기부터 차이가 났다.
설기는 자신이 내려놓은 뱀의 머리 위에 올라가더니 턱을 세웠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반응만 보아도 누구의 사냥감이 위인지 알 수 있었다.
설기가 잡은 뱀을 노려보던 테무가 곧 시선을 돌렸다.
‘...응? 나?’
어째서인지 강현을 노려보는 테무. 이를 빠드득 갈더니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도 강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잡은 건 설기였다. 그렇다고 강현이 시킨 일도 아니었다.
강현은 억울한 마음에 눈을 껌뻑였다.
“아우우우우우!”
강현은 뽐내듯 길게 울음을 토하는 설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런 설기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쿵, 쿵, 쿵.
땅이 흔들렸다. 곧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흉악하게 생긴 곰.
그 모습에 수인들이 숨을 삼켰다.
곧 일행들 앞까지 다가온 곰은 허물어지듯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밑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족장님, 아직 안 늦었습니까?”
떡 벌어진 어깨와 무심한 눈빛.
“노아 전사장!”
“맙소사! 엄청난 녀석을 잡았어!”
뚜드득, 뚜득.
목을 푸는 노아. 옆에 놓인 곰은 이미 죽었지만, 당장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았다.
설기는 곰과 뱀을 비교해보더니 시무룩한 눈으로 내려왔다.
축 처진 꼬리와 귀.
강현의 곁으로 다가온 설기가 몸을 비볐다.
“끼이잉.”
강현은 피식 웃으며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저 뱀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다.
그리고 노아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마을을 기웃거리는 그림장의 정체는 모나였다.
모나는 바닥에 놓인 사냥감들을 보더니 울상을 지었다. 모나의 손에도 사냥감이 잡혀 있었다.
여우.
그러나 바닥에 놓인 어느 걸 봐도 모나가 잡은 것보다는 컸다.
입을 삐쭉 내민 모나가 손을 놓자, 여우는 순식간에 마을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저거, 살아있었구나.’
강현은 짧게 혀를 찼다.
그렇게 여우를 보내준 모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카샨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슬슬, 다 모인 것 같군.”
카샨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수인들도 따라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카샨을 향해 노아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승자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카샨은 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곧 카샨의 시선이 수인들을 향했다.
“모두 착각하고 있어.”
카샨의 말에 노아가 고개를 들었다. 수인들 역시 의아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옆에 있는 강현은 카샨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한 사냥감은 가장 맛있는 녀석이다. 가장 사납거나, 가장 거대한 게 아니야.”
“...!”
노아의 눈이 떨려왔다. 카샨은 그런 노아를 향해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사냥만 잘한다고 해서 뛰어난 사냥꾼이 아니지. 목적에 맞는 사냥감을 찾을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해.”
카샨의 시선이 노아를 지나쳐서 수인들에게 향했다.
“차이투의 칭호를 받을 전사는···. 하만, 너이다.”
“예? 저요?”
쫑긋.
갑작스러운 말에 한 소녀가 화들짝 놀랐다.
고양이를 닮은 수인. 한국이었다면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였다.
그녀의 손에는 작고 통통한 새가 들려있었다. 그를 본 수인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내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나와라.”
카샨의 눈이 수인을 들을 훑었다. 그때마다 수인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카샨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노아였다.
노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사냥이란 것에만 집중했지, 왜 잡아야 하는지는 잊고 있었다.
곧 카샨의 눈빛이 바뀌었다.
번뜩이는 눈동자.
“자, 그럼 불을 피워라! 축제를 시작하자!”
“끼요옷!”
“호우!”
사방에서 짐승과 닮은 울음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중앙에 있는 장작에 불이 붙었다.
* * *
중앙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피어오른 모닥불.
그리고 모닥불 앞에는 각자가 잡아 온 사냥감들이 널려 있었다.
가죽을 벗긴 고기들이 익는 동안, 강현이 가져온 수육을 수인들에게 나눠줬다.
수육을 먹은 수인들은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카샨도 예외가 아니었다.
“...호오, 비리지 않군. 무슨 고기지?”
강현은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에도 돼지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같다고 할 순 없었다.
그런 강현의 눈에 설기가 들어왔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
“끼잉.”
애처로운 울음. 전에도 본 적이 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강현은 소름이 올라왔다.
‘...잠깐만. 설마···.’
강현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모닥불 앞에 놓인 고기들.
그 무엇도 조미료나 향신료를 뿌리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