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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인간이군!
하늘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높게만 느껴지던 나무들이 눈높이와 맞아 있었다.
한눈에 보이는 해방감.
강현은 뒤늦게 몸이 허공에 떠올라 있다는 걸 인지했다.
감탄은 짧았다.
오른 뒤에는 당연히 내려가야만 했다.
순식간에 눈앞으로 가까워지는 나뭇가지들.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귓가로 스쳐 가는 나뭇잎 소리.
가라앉았던 강현의 몸이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정확히는 강현을 잡고있는 노아가 뛰어오른 것이었다.
탁!
나무와 나무를 밟고 이동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나뭇가지들. 그때마다 강현의 정신이 아찔해졌다.
“캬하우!”
데롱데롱 매달린 모나가 즐거운 듯이 소리쳤다.
“컹! 컹!”
어느새 옆을 달리고 있는 설기. 꼬리가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잔뜩 신난 둘과 달리 강현은 죽을 맛이었다.
강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눈을 감고 허리를 붙잡은 노아의 손을 생명줄처럼 꽉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 끊어진 연처럼 흐느적거리는 몸.
그때,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막걸리!’
이렇게 흔들리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곧 막걸리에 대해서 잊었다.
지금은 막걸리보다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 * *
정신없이 흔들리던 몸이 어느 순간 멈췄다.
그와 동시에 강현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우웨엑.”
속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게워냈다.
그 모습에 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 인간은 나약해졌군.”
들었던 이야기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가 들은 이야기는 무려 백 년도 전의 인간이었다.
종족 전쟁이 활발하던 시대.
심지어 강현은 이 세계의 인간도 아니었다.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설기가 다가왔다.
“끼잉, 낑.”
괜찮냐는 물음.
강현은 애써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모나가 강현 앞에 고인 토사물에 손을 넣으려다가 노아에게 붙잡혔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노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곧 강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곧 마을이다. 여기부턴 걸어가지.”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속을 게워내니 그나마 나아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강현이 알던 숲과는 달랐다. 나무가 많은 건 같았지만 무언가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너머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
정말로 마을이 가까워진 것이었다.
그걸 보자 다시 긴장감이 올라왔다. 그런 강현을 보며 노아가 입을 열었다.
“그쪽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녀석들은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진 못할 거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 때문에 긴장한 게 아니었지만,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맹약이란 거죠?”
“그렇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대는 족장님의 손님이다. 좀 더 당당해도 된다.”
말투는 무뚝뚝했으나 강현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강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예, 감사합니다.”
그런 강현의 대꾸에 노아는 물끄러미 강현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복잡해 보이는 표정.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이상한 인간이군.”
강현은 어색하게 웃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노아도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걷고 있자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를 잘라 만든 목책.
집은 몽골의 게르와 비슷했다. 두꺼운 천이나 가죽을 씌운 둥근 형태.
날아가지 않게 끈이나 가죽으로 고정한 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몽골처럼 이동할 것이 아니기에, 집 벽은 튼튼해 보였다.
‘진흙인가?’
벽만 보면 한국의 초가집과 비슷했다.
강현은 어릴 적 민속촌에서 보았던 걸 떠올렸다.
특이한 점은 지붕 꼭대기에 하나같이 동물의 가죽이 걸려 있었다.
하나같이 거대하고 사나워 보이는 동물의 가죽들.
마치 잡은 사냥감을 뽐내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게, 이 근처에 산다는 건가?’
강현은 애써 지붕에서 시선을 돌렸다.
목책 앞에서 경계를 서던 수인 둘이 노아를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짧게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받는 노아.
그중에는 노아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생각보다 높은 사람인가 보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애를 돌보는 역할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애가 아니었다.
무려 족장의 딸.
‘...공주 같은 거겠지.’
곧 수인들의 시선이 노아를 뒤따라오는 강현에게 향했다.
움찔.
사나운 시선에 강현이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러자 다리 옆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설기였다. 어느새 강현의 옆에 붙어 있었다.
턱을 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위풍당당한 걸음.
마치 자신만 믿으라는 것 같았다. 그런 설기 덕분에 강현의 긴장도 풀렸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향하자 그러한 시선이 더욱 늘었다.
“인간이다.”
“진짜 인간이야.”
“듣던 것보다 약해 보이는데?”
“마법사란 녀석들 아닐까? 인간은 마법을 쓰잖아.”
시선 대부분은 호기심이었으나 그중 몇몇은 명백하게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제야 강현은 노아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난 족장님께 보고드리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라.”
노아의 말에 강현이 당혹스러워했다.
설마 이곳에 혼자 놔두는 것인가? 하지만, 노아도 대책 없이 놔두는 건 아니었다.
어느새 다가온 수인 둘이 고개를 숙였다.
둘 다 상체를 드러냈는데 근육이 위협적이었다.
“족장님의 손님이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지키도록.”
“예, 노아 전사장님.”
두 수인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강현을 호위하듯 양옆으로 섰다.
노아는 강현을 힐끗거리더니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노아가 떠나고 뻘쭘해진 강현은 슬그머니 주변을 훑어봤다.
동물의 귀와 꼬리를 가진 수인들.
그러나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모두가 같은 건 아니구나.’
강현이 어색해하고 있자 밑에서 작은 손이 강현의 옷을 잡아당겼다.
모나였다. 옆에 털을 고르는 설기도 보였다.
‘그래, 혼자는 아니네.’
그 사실을 깨닫자 안도가 되었다. 그때, 모나가 강현을 향해 두 손을 벌렸다.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강현은 힐끗,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강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모나의 행동에 숨을 삼키기까지 했다.
“으, 우!”
강현이 머뭇거리자 모나가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장소도 장소이지만, 아까 있었던 일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으로 옆에 있는 수인들을 바라봤지만, 그들 역시 곤란한 눈빛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으아아!”
결국, 소리치는 모나를 들어서 목마에 태웠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탄성 소리. 하나같이 놀란 눈으로 강현을 보고 있었다.
‘...실수한 거 같은데.’
강현은 잠깐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캬하!”
목마를 탄 모나만이 신이 나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상관없겠지.’
문제가 될 것 같았으면, 노아가 미리 주의했을 거다.
게다가 옆에 있는 수인들 역시 별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신기한 듯 강현과 모나를 살피고 있었다.
위에 있는 모나가 몸을 흔드는 사이, 한 무리의 수인들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선두에 있는 이는 머리가 회색빛인 중년인.
“그 녀석이 족장이 부른 인간인가?”
호의적이지 않은 말투.
중년인의 등장에 옆에 있던 수인 둘이 앞으로 나섰다.
자신을 막아서는 수인들을 보며 중년인이 혀를 찼다.
“피해라. 그저 손님에게 인사를 하려는 것뿐이다.”
“더 접근하지 마십시오. 테무 전사장님.”
수인의 말에 중년인의 눈썹이 휘었다.
“...나에게 명령하는 건가? 노아, 그 녀석의 위세가 그리 대단한지 몰랐군.”
“저희는 족장님 명에 따를 뿐입니다.”
담담하게 내뱉는 수인. 그러자 중년인의 뒤에 있던 수인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감히···.”
그런 수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먼저 나선 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르르르르르.”
설기.
조그마한 몸으로 설기가 강현 앞에 섰다.
이빨을 드러내는 설기. 처음 보는 모습에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신성한 늑대.”
수인이 막을 때와는 달리 중년인의 발걸음이 멈췄다. 수인들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나선 건 설기뿐만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모나 역시 발톱을 세웠다.
“캬아아아아악!”
털과 꼬리를 세우고 위협하는 모나. 어리지만 맹수의 모습이었다.
‘...고맙긴 한데.’
발톱을 세우니 머리가 따끔거렸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용히 있었다.
주변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를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중년인은 설기와 모나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려고 했으나, 곧 눈살을 찌푸리고 한 발자국 물러났다.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인간!”
쩌렁쩌렁 울리는 한 목소리.
곧 거대한 그림자가 강현과 테무 사이로 떨어졌다.
펄럭.
강현만큼이나 키가 큰 여인.
거대하다고 느낀 건 그녀가 걸친 가죽 때문이었다. 표범과도 닮은 가죽을 망토처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표범과 달리 송곳니가 강현의 팔뚝만 했다.
여인이 나타나자 강현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모나가 여인을 향해 뛰어올랐다.
턱.
여인은 그런 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에 강현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도 너무 늦길래. 내 직접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
나이는 삼십 후반 정도?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사자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구릿빛 피부 역시 사내들 못지않은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이 부족의 족장이었다.
강현은 족장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족장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곧 족장은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옆을 돌아보았다.
“오, 테무 전사장 아닌가? 무슨 일이지?”
“...손님이 왔다길래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래? 여전히 부지런하군!”
환하게 웃고 있지만 강현은 그 웃음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걸 느낀 건 강현만이 아닌지 테무가 고개를 숙여 물러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벌써, 인사는 나눈 건가?”
“아닙니다. 족장님이 계시니 나중에 인사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 보게.”
족장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물러나는 테무.
그걸 본 족장이 웃음을 흘렸다.
“늙어도 맹수는 맹수인가. 틈만 보이면 기회를 엿보는군.”
그리 말하는 족장은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강현은 이 세상이 지구가 아니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곧 족장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인사가 늦었어. 난 이 일대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이자 이 녀석의 어미인 카샨드라다. 카샨이든, 족장이든, 편하게 부르도록.”
웃음을 터트리는 족장. 그러나 뒤에 있는 전사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카샨이라고 부르면 가만 안 둘 기세였다.
그런 전사들과 달리 모나는 족장 머리 위에 올라가서 머리카락으로 장난치고 있었다.
천진난만하게 이리저리 당기고 있었지만, 족장은 익숙한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아까 테무가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란 거지?’
“컹!”
그런 강현의 눈빛이 읽었는지 설기가 짧게 짖었다.
그제야 강현도 안도할 수 있었다. 그때, 두꺼운 팔이 강현의 몸을 감쌌다.
족장이었다.
살이 아니라 철에 닿은 듯한 단단함.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안으로 가지! 할 말이 아주 많아!”
“캬하!”
족장의 외침에 모나가 같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강현은 족장의 팔에 끌려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 * *
마을을 가로지르자 사람들의 시선이 둘을 뒤따랐다. 그러나 전과 달리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족장 덕분이었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노아가 들어왔다.
언제 왔는지, 둘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강현의 배낭이 들려 있었다.
‘맞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 강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족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건 뭐지?”
“아, 초대받았는데 그냥 오기 뭐해서···.”
“음?”
강현의 말에 족장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곧 웃음을 터트렸다.
“듣던 것처럼, 특이한 인간이군! 신성한 늑대의 선택을 받을 만해.”
유쾌하게 웃는 족장. 노아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강현은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