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36화 (3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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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장인데···.

눈을 뜬 강현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뱉었다.

온몸이 쑤셨다. 간밤에 몽둥이찜질이라도 당한 느낌.

고개를 돌리자 새근새근 잠이 든 설기가 보였다.

모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갔구나.’

밤이 되어도 가지 않길래 걱정했는데, 알아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니면 끌려갔을 수도.’

모나의 행동을 생각하면 그럴 만했다. 그러던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악취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 정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강현의 바지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눈 부셨다.

벌써 해가 높이 떠 있었다. 늦잠을 잔 것이었다.

강현은 천천히 몸을 풀었다. 그때마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다리만이 아니네.’

뛰기만 했는데 팔도 근육통이 생겼다. 오히려 설기가 핥은 다리만 멀쩡했다.

허기가 진 강현은 배낭을 뒤져서 먹을만한 것을 찾았다.

새우를 가져오느라 다른 식자재를 뺐기 때문에 마땅한 게 없었다.

“...베이컨 몇 조각이랑 파스타 면뿐인가?”

푸실리. 나선형 모양의 숏파스타 중 하나였다.

보관도 간편하고 잘 부서지지 않아서 넣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새우를 볶을 때 썼던 다진 마늘이 조금.

‘조미료라도 있는 게 다행인가?’

그러던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뭐,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자신이 먹을 것이었다. 재료를 넣어봤자 제대로 된 맛도 느끼지 못할 터.

강현은 불 위에 냄비를 올렸다.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자 소금을 넣고 면을 삶아준다.

면이 어느 정도 익으면 불을 끄고 면만 건져낸다. 이때, 면수는 버리지 말고 놔둬야 한다.

그리고 팬을 꺼내 오일을 둘렀다.

베이컨과 다진 마늘을 넣고 볶다가 남겨놓은 면수를 살짝 부어준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준 후, 끓기 시작할 무렵에 면을 넣고 잘 저어준다.

이걸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베이컨과 마늘밖에 넣지 않은 단순한 파스타.

강현은 포크로 파스타 면을 찔러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강현의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

“...맛이?”

아니다.

고개를 저은 강현의 눈빛이 차분해졌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강현은 면 하나를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었다.

“...!”

착각이 아니었다. 맛이 느껴졌다.

베이컨의 짭조름함과 마늘의 알싸함. 예전처럼 뚜렷한 것은 아니었으나 확실하게 느껴졌다.

강현은 포크를 내려놨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당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선 안 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난 강현이 텐트로 향했다.

“설기야. 일어나.”

강현의 부름에 설기가 텐트 사이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앞발로 얼굴을 닦은 후 냄비와 강현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침밥?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컹?”

“당장, 집에 가야 해.”

단호한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부랴부랴 짐을 싸서 매장으로 돌아온 강현은 있는 조미료와 식자재를 전부 꺼냈다.

수프부터 파스타까지.

맛이나 균형을 무시한 채 온갖 조미료와 식자재를 섞어서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맛본 후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야.”

예전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였다. 그러나 강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낫고 있다는 게 증명이 된 것이었다.

‘최근에 조금씩 느껴지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변화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 정도라면 살짝 둔감한 일반인 정도일 거다.

주변인으로 보자면···.

‘민호씨 정도인가?’

그걸로 충분했다. 강현에겐 경험과 기술이 있었다.

강현은 터벅터벅 홀로 걸어 나가서 주저앉았다. 그리고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다시 요리를 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을 억눌렀다.

‘역시 오길 잘했어.’

설기, 이장님, 민호와 수진, 란돌프. 머릿속으로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

강현에게 있어서 그들이야말로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그대로 서울에 있었으면 요리를 그만뒀을 수도 있지.’

그리고 오늘 강현의 선택이 옳다는 해답을 얻은 것이었다.

강현은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그러던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설마, 운동 때문은 아니겠지?”

근육통 덕분이라던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계속 이렇게 운동해야 하는 건가?’

그때, 강현의 옆에 있던 설기가 남은 음식을 향해 다가갔다.

킁, 킁.

냄새를 맡더니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

코를 붙잡고 물러났다. 당연했다.

맛을 위한 요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조미료가 섞여서 기괴한 맛이었다.

“키잉, 킹.”

서러운 듯 울음을 토하는 설기. 그제야 강현은 설기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도착하자마자 강현이 주방에서 나오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안. 금방 밥 해줄게.”

“컹!”

강현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는 주방에 늘어진 식자재들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의 요리가 떠올랐다.

그중에는 지금까지 애써 외면하던 것들도 있었다.

“...오랜만에 해볼까?”

전이라면 어렵겠지만, 지금이라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현은 소고기를 길게 썬 후에 칼집을 넣었다. 그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줬다. 이후 팬에 새송이버섯과 아스파라거스, 토마토를 구워줬다.

완전히 익히지 않게.

어느 정도 익으면 불을 꺼준 후 식혀준다.

그리고 팽이버섯을 튀기고 파프리카를 자른다.

그렇게 준비한 재료를 고기에 넣고 말기 시작했다.

말린 고기가 풀리지 않게 이쑤시개로 고정하고 팬에 올렸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소고기.

그렇게 겉면이 익으면 고기를 옮겨 담은 뒤, 오븐에 다시 한번 구워준다.

오븐이 돌아가는 동안 강현이 움직임이 바빠졌다.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팬에 레드와인과 블루베리를 넣고 끓여준다. 와인 냄새가 주방 가득히 퍼져갔다. 한쪽에는 퓌레를 만들 레몬이 삶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소스가 완성되자마자, 오븐의 타이머가 울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타이밍.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시골에 내려와 있는 동안, 강현의 감각은 무뎌지기는커녕 전보다 날카로워져 있었다.

모든 요리를 기억과 감각만을 의지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꺼낸 소고기를 셋으로 잘라서 접시에 올린다. 고기가 흐트러지지 않게 같이 구운 토마토로 균형을 잡아줬다.

그리고 블루베리 소스와 레몬 퓌레로 모양을 내고 한쪽에는 버터와 크림을 넣고 만든 메쉬드 포테이토까지 올렸다.

강현의 것과 설기의 것.

두 접시.

강현은 접시 하나를 설기에게 건넸다.

그리고 한 입.

눈을 감고 조용히 음미해봤다.

“...역시 조금 다르네.”

고기와 버섯, 블루베리 소스와 레몬 퓌레.

따로따로 간을 봤을 때는 비슷한 것 같지만 결과물은 달랐다.

이 요리는 그 네 가지가 균형을 이뤘을 때 강현이 원하는 맛이 나왔다.

서울에 있었을 때, 강현의 시그니처메뉴였다.

‘너무 욕심이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렇게 시도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큰 발전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꼬리를 흔들며 요리를 먹고 있는 설기. 두 귀가 쫑긋쫑긋 올라와 있었다.

이대로 접시까지 집어삼킬 기세였다.

반쪽짜리 성공.

하지만 성공은 성공이었다.

아니,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현은 다시 포크를 입에 넣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맛들.

단맛부터 쓴맛, 짠맛, 신맛까지.

선명하진 않지만 확실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맛들이 혀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다시 이 감각을 느낄 줄은 몰랐다.

울컥, 가슴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낑?”

강현의 이상를 느꼈는지 설기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강현은 그런 설기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혀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식사를 한 후에나 강현의 시선이 창문 너머를 향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시골 마을의 전경. 평온한 일상.

강현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 * *

길었던 식사가 끝났다. 강현이 접시를 정리하고 있을 때, 매장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역시 여기 있었구먼.”

안으로 들어온 건 이장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다급해 보이는 이장.

숨도 거칠었다.

강현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면서 홀로 나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암, 일이 있지. 그것도 큰일이여!”

이장의 말에 강현뿐만 아니라 설기도 옆으로 다가왔다.

“지금 나올 것 같데!”

“예?”

“이럴 게 아니여. 어서 나와. 같이 가게!”

이장이 강현의 손을 붙잡았다. 주어도 없는 설명에 의아해하던 강현은 곧 무언가를 떠올렸다.

“설마 수진씨요?”

“그려!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여!”

이장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이제 곧 예정일이었다.

조금 일찍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자연스레 강현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이장과 함께 마을 주민의 차에 탔다.

읍내에 있는 산부인과.

산부인과 도착하자마자 이장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이장을 뒤따르려던 강현은 아차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설기야. 넌 기다려야 해.”

“끼잉?”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곧 애처로운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미안해. 낼 맛있는 거 해줄 테니 좀 기다려줘.”

그제야 꼬리를 내리는 설기.

다시 차 위에 올라가서 얌전히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본 후에나 강현은 이장을 쫓았다.

간호사에게 수진의 위치를 묻고 있는 이장. 곧 강현이 오자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자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민호가 보였다.

민호 역시 이장과 강현을 발견하고 일어났다.

“이장님, 강현씨···.”

평소와 다르게 불안한 목소리였다. 이장이 그런 민호의 등짝을 쳤다.

“곧 아빠 될 사람이 그러면 어떻게 혀! 별일 없을 거여!”

“...예.”

작게 주억이는 민호.

강현은 조용히 민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

금세, 복도가 가득 찼다. 모두 걱정이 돼서 와본 것이었다.

그들을 보자 민호의 얼굴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언제 들어간 거야? 아직 예정일 아니지 않아?”

“딸이래, 아들이래?”

“아직 안 나왔다잖아.”

사람들이 많아지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러자 뒤늦게 온 박씨 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가 도떼기시장이야?!”

부리부리하게 뜬 눈에 사람들이 움찔 떨었다.

“걱정해서 온 건 좋은데, 다른 사람 방해되는 거 안 보여?”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어색하게 웃는 간호사.

“다 나가! 밖에서 기다려!”

박씨 할머니의 호통에 찔끔한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강현도 눈치를 보고 일어나려고 하자 박씨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요리사 양반은 남아. 친구는 같이 있어야지.”

“암, 누구는 남아야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장. 박씨 할머니는 이장의 귀를 잡았다.

“그 짝은 나오고.”

“난, 이장인데···.”

“씁.”

박씨 할머니가 눈을 부라리자 이장은 입을 닫았다.

그렇게 강현만 남겨놓고 우르르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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