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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맛인가.
강현이 그러한 의문을 란돌프에게 묻자, 란돌프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야 자네의 기척을 알고 있으니 찾는 게 어렵지 않네. 저 둘은···. 그렇군.”
란돌프가 코를 가리켰다.
“늑대들은 청각과 후각으로 사냥하지. 이 코로 멀리 떨어진 사냥감을 찾아. 저 둘은 일반 늑대보다 뛰어날 거야.”
그리 말한 란돌프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강현, 자네에겐 맛있는 냄새가 나거든. 나도 맡을 수 있을 정도니 저 둘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팔을 들어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섬유유연제와 땀 냄새.
자연스레 강현의 시선이 설기와 모나를 향했다.
갸웃하고 움직이는 둘의 고개. 이럴 때 보면 남매 같았다.
“자,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힘내게.”
란돌프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거운 갑옷을 걸쳤음에도 강현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윽고, 일행들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달한 강현은 내심 감탄했다.
설기가 안내하던 장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무에 둘러싸인 작은 연못.
마치 잘 꾸며진 정원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연못 옆에 놓인 그루터기가 한몫했다.
나무 사이로 흘러들어온 햇살이 연못과 그루터기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가끔 와서 쉬는 곳이라네.”
“멋지네요.”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웃었다. 그리고는 설기를 보며 물었다.
“그래, 어린 늑대께서는 어떤가?”
“컹.”
두리번거리던 설기가 작게 짖었다. 자신이 찾은 곳보다는 못하지만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설기의 모습에 란돌프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잘린 그루터기에 앉은 란돌프가 강현을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자, 말해보게.”
란돌프의 물음에 강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노아를 만난 일. 그리고 마을로의 초대.
그 이야기를 들은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직접 초대했다고? 믿기 지가 않는군.”
“...드문 일인가요?”
강현의 물음에 란돌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류가 끊어지기 전에도 마찬가지네. 있긴 하지만 드물어. 게다가···.”
란돌프의 시선이 모나에게 향했다. 설기와 뒤엉켜서 놀고 있는 모나. 설기는 귀찮아하면서도 어울려주고 있었다.
“수인족들은 공동육아를 한다고 말했지? 수인족의 아이를 외부인에게 맡긴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봤음에도 바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 말에 강현이 고민에 빠지자 란돌프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를 초대한다는 건, 자네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라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강현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란돌프씨. 저는 사실 이곳의 사람이···.”
“알고 있네.”
강현은 이세계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종족조차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하지만 란돌프는 그런 강현의 말을 잘랐다.
“자네가 이곳 출신이 아니란 건, 진작 알고 있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게나. 인간이나 수인이나 결국은 같은 사람이야. 자네가 그런 것처럼.”
강현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런 강현을 향해 란돌프가 말을 이었다.
“자네도 어린 늑대와 가족처럼 지내지 않는가?”
그런데 수인이라고 망설일 필요가 있냐는 뜻이었다.
같은 사람···.
강현은 문뜩, 응언을 떠올렸다. 그녀에게는 용기를 내라고 했으면서 정작, 자신이 망설이고 있었다.
강현의 표정에서 변화를 알아챈 란돌프가 웃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온다고 생각하게. 수인들은 사냥 솜씨가 빼어나다고 들었어. 마음 같아서는 같이 가서 직접 겪어보고 싶군.”
란돌프의 말에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강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초대받은 건 자네와 어린 늑대야. 내가 가면 오해를 부를 걸세.”
란돌프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하나의 영지를 지키는 기사단의 수장이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란돌프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 받겠나.”
“이건···.”
나무로 만든 검이었다. 목검.
그러나 받아보니 무게가 묵직했다.
“안에 철이 들었네. 실제 검보다는 가볍겠지만 훈련용으로는 나쁘지 않아.”
강현이 목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만든 것이라네. 원래는 딸아이를 위한 것이지만···.”
씁쓸하게 말하는 란돌프. 그 말을 들은 강현의 눈이 커졌다.
화들짝 놀란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받을 수 없습니다.”
딸을 위한 것이었다. 쉽사리 받을 수 없었다.
“괜찮네. 딸아이는 내가 목검만 들이대면 울음을 터트려서. 아내가 가져다 버리겠다는 걸 자네 핑계를 대고 가지고 있었어.”
그리 말한 란돌프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버려지는 것보다는 자네가 쓰는 게 낫겠지.”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얼마나 들이댔길래 그랬을까. 그러한 의문이 떠올랐으나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강현은 그제야 목검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란돌프는 껄껄 웃으며 강현의 어깨를 쳤다.
“실망하지 말게. 실력이 오르면 철검으로 준비해줄 테니.”
철검까지 굳이 필요하진 않지만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훈련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란돌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와 함께 두 눈에 기이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란돌프 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다가온 설기와 모나도 강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셋의 시선에 강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먼저 식사부터 할까요?”
끄덕끄덕.
셋의 머리가 같이 움직였다. 곧 란돌프가 민망했는지 헛기침했다.
“전투든, 훈련이든 배가 든든해야 하네.”
* * *
텐트를 펼치고 장비를 꺼냈다. 일행들은 숨을 죽이고 강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운데.’
강현은 그들을 힐끗거리고는 제 할 일을 이어갔다.
전에 비 때문에 부실했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신경을 썼다.
‘...새가 아니었다면 부족했겠지.’
설치가 끝난 강현은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란돌프씨. 혹시 바다에 나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바다? 듣긴 했지만 직접 본 적은 없네.”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란돌프의 반응에 강현인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안 그래도 지난번에 새를 받은 후 많이 고민했었다.
‘이 근처에서 구할 수 없는 것.’
산과 숲, 강은 있어도 바다는 없었다.
모나는 물론이고 설기도 먹어본 적이 없을 거다.
강현이 아이스박스를 열자 하얗고 길쭉한 것들이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그를 본 란돌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묘하게 생겼군.”
이상하게 생겼다는 걸 돌려 말한 것이었다.
역시 바다에 간 적이 없으니 먹어 본 적도 없는 건가?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설기와 모나도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긴, 생김새만 보면 그럴 만해.’
하지만 먹어보면 생각이 바뀔 거다.
강현은 아이스박스 안에 든 걸 꺼냈다.
새우.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대하들이었다.
강현은 먼저 새우의 뿔과 수염을 제거한 뒤, 내장을 뺐다.
작업을 이어갈수록 셋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전처리가 끝나자 팬에 굵은 소금을 깔고 손질한 새우를 그 위에 올렸다.
그리고 뚜껑을 덮으면 끝.
스토브를 켜자 불이 올라왔다.
그를 본 란돌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강현. 자네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고기가 필요하면 말하게.”
“컹!”
옆에 있던 설기 역시 거들었다.
당장이라도 사냥에 나갈 기세였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걸로 충분합니다.”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가장 먼저 이상을 보인 건 설기였다.
킁, 킁.
지루한 듯 누워있던 설기가 머리를 들어 올렸다. 이어서 모나 역시 고개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나의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때쯤 되자 란돌프도 이상을 깨달았다.
소금이 구워지고 새우가 익어가면서 특유의 향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대체···.’
란돌프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란돌프의 손가락이 무릎을 두드렸다. 냄새가 흘러나오니 참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팬 앞에 있는 강현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 모습에 란돌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수행이 부족하구나!’
금세 냉정을 찾는 란돌프.
그러나 다른 이는 아니었다.
홀린 듯 팬을 향해 걸어 나가는 모나. 그런 모나를 설기가 붙잡았다.
설기를 떼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강현의 입이 열렸다.
“됐다.”
동시에 팬의 뚜껑이 열렸다.
뭉게뭉게 올라오는 김. 그와 함께 분홍빛으로 익은 새우들이 모습을 보였다.
잘 익은 새우들을 보며 미소 짓던 강현은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셋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셋의 시선은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들처럼 보였다.
“잠시만요. 제가 먹는 방법을 보여드릴게요.”
강현이 대하 한 마리를 집었다가 다시 놨다. 너무 뜨겁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현을 본 란돌프가 나섰다.
“내가 하겠네. 방법만 말해주게.”
그리 말하며 대하 한 마리를 덥석 집었다.
그 모습에 강현은 아연실색했다.
“뜨거울 텐데···.”
방금 만져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란돌프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내 수행은 이 정도의 뜨거움에 굴할 정도로 얕지 않네.”
기사를 얕보지 말게나.
번뜩이는 눈으로 그리 말하고 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수행을 어째서 이런 곳에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진지하다는 뜻이었다.
“먼저 다리 부분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기면 됩니다. 예. 그렇게. 그리고 머리 부분은 먹어도 되는데 꼬리는 버리셔야 합니다.”
“음!”
고개를 끄덕인 란돌프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하의 껍질을 벗겼다.
곧 드러나는 새하얀 속살.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그렇게 대하를 입으로 가져가는 란돌프.
“...”
“...”
옆에서 느껴지는 두 개의 시선에 란돌프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설기와 모나가 뚫어져라 란돌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너희는 내가 벗겨줄게.”
“...”
“...”
강현의 말에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들.
결국, 란돌프가 손을 내렸다.
“...먼저 먹게나.”
차마 한 아이의 아빠로서 둘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던 것이었다.
란돌프의 말에 설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렸다.
모나에게 양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저런 걸 보면 설기가 오빠 같았다.
그렇게 모나가 새우를 입으로 가져갔다.
“...!”
모나의 눈이 커졌다. 그와 함께 전기라도 오른 듯 털과 귀가 위로 솟았다.
곧 커다란 눈망울이 축축하게 변했다.
매운 걸 먹었을 때와는 달랐다. 모나의 꼬리가 힘차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본 란돌프의 손이 바빠졌다.
마치 전장에 임하는 전사처럼 또 한 마리의 새우를 깠다.
그리고는 설기에게 건넸다.
“이건, 어린 늑대의 것이네.”
설기가 덥석 물었다. 설기의 반응 역시 모나와 다르지 않았다.
방방 뛰는 설기.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맛일 거다.
그리고 란돌프의 손이 다시 팬으로 향하려는 순간.
“여기 있습니다.”
강현이 란돌프에게 깐 새우를 건넸다.
이제 어느 정도 식었기에 강현도 깔 수 있었다.
“오. 고맙군.”
란돌프는 사양하지 않고 새우를 받았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새우살. 씹을 때마다 올라오는 짭조름함.
란돌프는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이게 바다의 맛인가.’
란돌프가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