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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떻게 찾아오는 거지?
여인이 팔걸이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그 인간에게 받은 겁니다.”
비닐봉지.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인은 눈을 감고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작물이네. 하긴, 인간들은 농사를 잘 지었지.”
농사뿐만이 아니었다. 사냥하긴 하나, 사냥보다는 가축을 기르는 것에 익숙했다.
자신들과는 달랐다.
여인의 관심이 비닐에서 멀어졌다.
“전사들을 복귀시켜.”
“예? 그럼···.”
“계속 애들 보는데 놔둘 순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전사들은 사냥해야 했다. 게다가 종족 간의 분쟁은 신탁으로 금지되었지만, 같은 종족끼리의 분쟁마저 금지된 건 아니었다.
전사들은 귀중한 존재들이었다.
“그 아이라면 숲에서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전사의 눈도 피하는 아이였다. 맹수에게 잡힐 일도 없을 거다.
그러나 결국, 마을을 빠져나가게 놔두란 소리였다.
곧 여인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예?”
“그래서, 그 인간은 어때?”
여인의 물음에 사내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만남. 아직 상대를 파악하기는 일렀다. 얼마 뒤, 사내의 입이 열렸다.
“...악한 이는 아니었습니다.”
사내의 말에 여인의 눈이 빛났다.
“노아. 네가 인간을 옹호하다니 의외인걸? 아, 그 선물 때문인가?”
“...옹호가 아닙니다.”
사내, 노아가 단호하게 뱉었다. 그러자 여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알아. 그냥 해본 소리야. 신성한 늑대가 고른 이니 악할 리가 없지.”
그러한 여인의 반응이 노아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성한 늑대뿐만 아니라 전사장의 마음에도 들었나 보네.”
“마음에 들지는···.”
“좋아!”
여인이 노아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노아는 그 미소를 보자 불안해졌다.
“다음에 만나면 마을에 초대해.”
“...!”
노아의 눈이 커졌다. 그만큼 파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마을에 들이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지. 싸우지만 않으면 되잖아? 설마 내 손님에게 시비 거는 놈들이 있겠어?”
여인이 사납게 웃었다. 그 모습에 노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있다면 여인이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혈기 넘치는 젊은 전사들이라고 해도 신탁과 여인의 뜻을 거스르지는 못할 거다.
“게다가 내 딸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 얼굴은 한 번 봐야지.”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앞으로도 더 신세를 질 거다.
미리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인간이라.’
여인의 눈이 반짝였다. 그와 함께 의자 사이로 삐져나온 꼬리 역시 흔들렸다.
* * *
투둑, 투두둑.
빗소리에 강현의 눈이 떠졌다.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자고 있는 설기가 보였다.
꼬물꼬물.
달리는 꿈을 꾸는지 발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강현은 설기가 깨지 않게 조심히 텐트 밖으로 나갔다.
텐트를 나오자 빗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러나 어제만큼 쏟아지지는 않았다.
“...곧 그칠 것 같네.”
하늘을 본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텐트 옆에는 어제 켰던 화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안은 이미 차갑게 식은 상태.
고개를 돌리자 어제 쓰고 남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잘 말라 있었다.
강현은 나뭇가지를 화로에 넣고 불을 피웠다.
타닥, 타닥.
빗소리와 나뭇가지가 타는 소리가 겹쳤다.
금세 올라오는 불씨.
강현은 멍하니 불씨를 바라보았다. 곧 화로 위까지 불꽃이 올라왔다.
그제야 강현은 다시 그릴을 올렸다.
그리고 냄비를 올리고 물을 부었다. 냄비는 어제 자기 전에 미리 닦아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왔다. 곧 끓기 시작한 물을 컵에 덜었다.
강현은 후, 후 불어가며 물을 홀짝였다.
따뜻한 온기가 온몸 구석까지 퍼져가는 느낌.
몸은 물론이고 마음마저도 나른해졌다.
그때, 뒤에 텐트가 소란스러워졌다.
작게 열린 틈 사이로 기어 나오는 털 뭉치.
몸을 늘어트리고 기지개를 켠 설기가 강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잘 잤어?”
“컹!”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슬슬 돌아갈까?”
태양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그친 빗줄기.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꼬리를 흔들었다.
* * *
일주일이란 시간은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이제는 강현의 매장도 하루에 두세 팀씩은 꼬박꼬박 오기 시작했다.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휴일.
할아버지 댁에 도착한 강현은 구멍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뻗었다.
곧 상쾌한 공기가 강현을 맞이했다.
얼마 전의 비가 거짓말처럼 푸르른 녹음이 강현을 맞이하고 있었다.
“...좋아.”
강현은 다시 문으로 들어가서 장비를 가지고 나왔다.
이번에는 보따리를 멘 설기와 함께였다.
맑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설기의 꼬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와 함께 커다란 보따리 역시 좌우로 흔들거렸다.
그런 설기를 보고 있으니 강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그 발걸음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무들 사이에서 서 있는 모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르르르.”
마치 장판교에 서 있던 장비처럼 위풍당당했다.
강현과 설기가 온 걸 알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는 몰래 다가올 생각도 안 하는 건가.’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곧 설기 역시 진지한 눈빛으로 모나를 발견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순간.
“잠깐!”
무언가를 본 강현은 다급히 설기를 불렀다.
“보따리 풀고 해.”
우비처럼 찢어지기라도 하면 감당이 안 되었다. 아니, 찢어지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안에 있는 장비들이 망가지면 골치가 아팠다.
거기에는 산 지 얼마 안 된 장비도 들어있었다.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잊고 있었네.’
이 정도의 무게는 설기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었다.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설기의 보따리를 풀어줬다.
금세 다시 자세를 잡는 두 사람.
그리고 언제나처럼 뒤엉켰다.
“...너희는 지치지도 않는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강현이 곧 탄성을 뱉었다.
평소와 달리 모나가 잘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력이 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는 강현. 그런 강현 옆에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이래서였어.”
“우왓!”
놀라 뒷걸음치는 강현. 강현이 넘어지려고 하자 털이 수북하게 난 두꺼운 손이 강현을 붙잡았다.
동물과 닮은 손.
전에 봤던 사내였다. 사내는 진중한 눈빛으로 모나와 설기를 지켜봤다.
‘신성한 늑대께서 많이 봐주고 있군.’
어리다고는 하나, 신의 후예다웠다.
이미 홀로 맹수도 사냥할 수준.
모나도 알고 있을 거다. 전투에 대해서는 영민한 모나였으니.
그리고 그런 설기의 태도가 모나의 호승심을 이끈 것이었다.
이미 마을에서는 또래 중에 적수가 없던 모나였다.
그렇기에 다른 아이들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 설기란 벽이 나타났다.
설기가 모나의 재능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커.’
너무 높은 벽을 오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나중의 일이었다. 지금은 설기란 목표가 생긴 것 자체가 모나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일이었다.
싸움이 끝났다.
이변은 없었다. 노아는 분한 듯 얼굴을 붉히는 모나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강현에게 건넸다.
“전사들끼리 쓰는 피리다.”
알 수 없는 동물의 뿔로 만든 피리. 피리를 받아든 강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노아가 말을 이었다.
“족장님께서 초대하셨다. 시간 될 때 부르도록.”
족장은 언제까지 데려오란 말은 하지 않았다. 족장 성격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끌고 오라는 소리겠지만, 노아 나름의 배려였다.
강현에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노아는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노아.
강현은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깐! 모나는···.”
고개를 돌리자 코를 훌쩍인 모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안 데려가는 건가.”
탄식을 뱉은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그런 강현에게 설기가 다가와서 등을 돌렸다.
보따리를 메어달라는 것이었다.
강현은 피식 웃고는 보따리를 다시 메어줬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모나가 강현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전에도 봤던 동작.
“...올려달라고?”
끄덕끄덕.
당당한 태도. 그만큼 친근해졌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한숨을 내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못 해줘.”
이미 배낭만으로 한계치였다. 설기가 도와준 덕분에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여기에 모나를 올렸다가는 허리가 나갈 거다.
강현의 말에 모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손잡아 달라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나.
이 정도로 참겠다는 뜻이었다. 이거라면 강현도 가능했다. 웃음을 흘린 강현은 모나의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털 사이로 느껴지는 말랑한 감촉.
묘한 느낌.
설기에게는 느낄 수 없던 것이었다.
‘하긴, 설기는 발바닥 만지는 걸 싫어하지.’
배는 허락하면서 발바닥은 거부했다.
강현이 손을 잡자 모나가 앞뒤로 흔들었다.
강현은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너, 두 발로도 걸을 수 있구나···.”
끄덕.
늘 네 발로 다녀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까 사내를 떠올리면 당연했다.
훌쩍. 콧물을 삼키는 모나.
그 모습에 아까 모나가 손으로 콧물을 닦던 걸 떠올렸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상관없겠지.’
이제 그런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강현은 고개를 젓고는 설기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졸지에 보모가 된 강현이었다.
* * *
그리고 강현을 찾는 손님은 모나와 노아뿐만이 아니었다.
“오, 강현. 또 만났군!”
강현을 향해 손을 흔드는 기사.
이번에는 전처럼 갑옷을 입고 있었다.
란돌프였다. 란돌프는 강현의 손을 잡은 모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자네, 못 보던 사이에 아버지가 되었나?”
“캬아아아악!”
강현의 손을 잡은 채로 몸을 낮추고 경계하는 모나.
털이 바짝 서는 게 옆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모나의 위협을 란돌프는 껄껄 웃어넘겼다.
“어린 녀석이 성격이 있군. 제 아버지와는 다르게.”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당혹스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얘는···.”
“농담이네. 지난번에 말한 수인족 꼬마 아닌가? 그때, 들었던 것보다 사이가 좋군.”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세한 건 쉬면서 듣지. 이 근처에 좋은 자리를 알아.”
란돌프는 그리 말하며 앞장섰다. 강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강현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 다들 어떻게 찾아오는 거지?’
이 넓은 숲에서.
설기는 그렇다고 쳐도, 란돌프와 노아는 물론이고 어린 모나까지.
강현도 설기가 없었다면 몇 번이나 헤맸을 거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강현은 복잡한 심경으로 란돌프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