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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럽네.
강현은 고구마랑 감자 몇 개를 집어서 포일을 열었다. 감자와 고구마를 얇게 썬 후에 그릴 위에 올렸다.
허전했던 그릴이 그제야 풍성하게 변했다.
그릴 앞에 있는 네 개의 눈.
‘...부담스럽네.’
언제 저리 친해진 거지? 설기와 모나가 딱 붙어서 그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릴에 올려진 고기를.
불이 뜨거울 만도 한데 꿈쩍도 안 하고 있었다.
강현은 피식 웃고는 냄비를 확인했다.
마침, 끓기 시작한 냄비.
그곳에 치즈와 통에 담아온 생크림을 부어주고 잘 저어줬다.
그리고 불을 줄여놓았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모나가 고기로 손을 뻗었지만 바로 설기에게 제지당했다.
“컹!”
“...끙.”
자신의 손등을 쓸어내리는 모나. 입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그 모습에 강현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모나랑 있으면 어른 같네.’
평소였다면 설기도 같은 행동을 했을 거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에 고기를 뒤집었다.
노릇하게 익은 고기와 함께 향이 올라왔다.
“으···.”
참기 힘든지 모나가 괴로운 소리를 내었다.
“대신 이거라도 먹고 있어.”
강현은 옆에 버섯을 건넸다. 건네기 전에 호호 불어서 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뚱한 표정으로 버섯을 보는 모나.
고기가 아니라서 실망한 것이었다.
강현은 버섯을 슬쩍 설기에게 향했다. 그러자 재빨리 입에 넣었다.
‘알기 쉽다니깐.’
버섯을 먹은 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또 하나의 버섯을 꺼내서 설기를 줬다.
모나와 달리 한 번에 받아먹는 설기.
그러나 고작 버섯 한 조각으로 만족시킬 순 없었다.
오히려 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보다 강렬해졌다.
그때, 냄비에서 치즈와 크림의 냄새가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머리.
미어캣을 보는 것 같아서 강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현이 냄비 뚜껑을 열자 고소한 향이 진동했다.
크림 스튜.
고기와 버섯을 뺐기 때문에 건더기가 적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조금 더 졸여야겠네.’
강현은 다시 뚜껑을 닫았다.
그때서부터 설기와 모나가 바빠졌다.
마치, 시선을 떼면 사라지기라도 하는 듯이 고기와 냄비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됐다.”
강현이 고기를 접시에 덜었다.
반짝이는 눈동자들. 모나가 앉아있는 땅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 때문이 아니었다.
모나의 침 때문이었다.
강현이 설기와 모나에게 접시를 건네려고 하자, 모나가 벌떡 일어섰다.
“응?”
설기도 같이 머리를 들고 있었다.
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빗속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전에도 봤던 사내.
사내는 모나와 강현, 설기를 차례대로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서 짙은 피로와 고뇌가 느껴졌다.
‘찾으러 왔구나.’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터벅터벅 걸어온 사내가 강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실례했다. 인간.”
그리고는 모나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아, 으!”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모나. 그 끝에는 방금 구워진 고기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모나가 발버둥 칠수록 접시는 멀어지기만 했다.
그를 본 강현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
“음.”
강현의 부름에 돌아서는 사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눈빛.
강현은 살짝 후회했지만, 곧 마음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모처럼이니 좀 드시다 가는 건 어떻습니까?”
“...”
강현의 말이 들렸음에도 사내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설기였다.
“컹!”
설기가 짖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올려놓은 버섯이 타고 있었다.
강현은 황급히 버섯과 감자, 고구마를 접시에 덜었다.
그런 강현의 뒤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 근방의 인간이 아니군.”
그게 무슨 의미일까?
사내의 시선이 모나에게 향했다.
“헷.”
눈이 마주치니 배시시 웃는 모나. 남들이 보면 귀여움에 감탄하겠지만, 사내는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곧 사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곧 강현이 있는 방향을 향해 모나를 던졌다.
“왓!”
깜짝 놀란 강현이 벌떡 일어났지만,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던져진 모나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착지했다.
놀라운 균형감각.
그리고 네발로 기더니 접시에 담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인간, 나중에 다시 오지.”
그 말과 함께 사내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후두두두두둑.
타프 위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들려왔다.
“...같이는 안 먹는 건가.”
강현은 볼을 긁적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고기를 다 먹고 버섯 쟁탈전을 하고 있는 설기와 모나가 보였다.
피식 웃은 강현은 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국자로 휘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좋네.’
적당한 농도였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싸움을 멈춘 설기와 모나가 보였다.
고기와 버섯만으로는 둘을 허기를 달래줄 수 없던 것이었다.
강현은 스튜를 그릇에 떠서 설기와 모나에게 건넸다.
“뜨거우니깐, 천천히···. 이미 안 듣나.”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기는 이미 접시에 머리를 박고 먹고 있고, 모나는···.
“으갹!”
뜨거움에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모나.
아까의 경험이 있었는지 후후, 불면서 살짝살짝 먹고 있었다.
둘의 꼬리가 맞춘 듯이 좌우로 움직였다.
강현은 그제야 둘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릇에 담긴 스튜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올라오는 김 너머로 보이는 빗줄기. 그리고 일정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이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쁘지 않네. 나쁘지 않아.”
강현은 숟가락도 없이 스튜를 홀짝였다. 이미 건더기 대부분을 설기와 모나에게 나눠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곧 걸쭉한 스튜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와 함께 가슴도 따뜻해졌다.
이런 게 휴식이지, 무엇이 휴식이겠는가.
강현은 무리해서라도 넘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튜를 홀짝이던 강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고기와 버섯만 골라 먹은 그릇.
구운 감자와 고구마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강현은 구운 감자를 그대로 입에 넣었다.
아직 따뜻한 감자.
감자의 맛이 느껴지지 않을 터인데, 신기하게도 어떤 맛인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강현은 금세 착각이란 걸 깨달았다.
과거의 기억과 이곳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구마 반쪽을 입에 넣었다.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긴, 상관없나?’
지금은 그런 것은 어찌 되든 좋았다.
고구마 반쪽을 마저 털어 넣은 강현은 곧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이럴 게 아니야.”
급히 배낭을 뒤지자 설기와 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곧 흥미를 잃고 자신의 그릇에 집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은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맥주캔.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하나만 챙긴 것이었다.
치익.
캔을 따자 거품이 올라왔다.
그리고 한 모금.
“크!”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제자리로 돌아온 강현은 감자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다.
바삭.
딱딱하게 굳어버린 겉과 달리 속은 아직 부드러웠다.
하지만 살짝 부족한 걸 느낀 강현의 눈에 스튜가 들어왔다.
스튜에 푹, 찍어서 다시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크림이 감자의 텁텁함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또 맥주를 한 모금.
빗소리와 하나 된 듯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흘러갔다.
다시 고구마를 집는 강현.
그런 강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
“...”
빤히 쳐다보는 두 쌍의 눈동자.
이미 둘 앞에 그릇은 텅텅 비어있었다.
얼마나 깨끗하게 먹었는지 설거지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결국, 강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스튜에 찍은 고구마를 들어 올렸다.
“...줄까?”
끄덕끄덕.
위아래로 흔들리는 두 개의 머리.
강현은 스튜에 찍어서 둘에게 건넸다.
스튜에 찍어 먹는 건 맛보다는 식감 때문이었지만, 다행히 입맛에 맞는 것 같았다.
갸우뚱, 갸우뚱.
오뚜기처럼 둘의 머리가 꼬리와 반대쪽으로 흔들렸다.
미소 지은 강현이 감자와 고구마를 더 썰어서 그릴 위에 올렸다.
둘의 시선이 다시 그릴 위로 향했다.
그걸 본 강현이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예전의 강현은 술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술뿐만이 아니지.’
커피는 물론이고 맛을 볼 때를 제외하면 자극적인 향신료도 잘 먹지 않았다.
미각을 예민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없는 삶을 산 것 같았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쓴웃음을 흘린 강현이 맥주를 홀짝였다.
이제는 그러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덕분에 마음 역시 가벼워졌다.
그릴에 올린 고구마와 감자를 뒤집는 강현. 그를 바라보고 있던 설기의 머리가 올라왔다.
후드득.
동시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아까의 사내가 서 있었다. 아까와 달리 일부러 인기척을 낸 것이었다.
굳어있던 모나가 그릴과 사내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일어나서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충분히 만족한 것이었다.
‘...아니, 고기가 없어서 그런 건가?’
강현은 좋게 생각했다. 사내에게 다가간 모나가 두 손을 들었다. 그런 모나를 어깨에 들쳐메는 사내.
곧 사내가 강현을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모나 때와는 달리 강현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왔다.
사내가 던진 물체는 새였다.
이미 죽어서 털까지 벗겨진 새.
‘보답, 인가?’
모나를 돌봐준 것에 대한.
사내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걸 본 강현이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요!”
멈춰 선 사내.
강현은 집게로 그릴 안에 든 포일 몇 개를 꺼냈다. 그리고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사내에게 향했다.
“가서 드세요. 포일 벗겨서 탄부분을 제외하고 먹으면 됩니다.”
혹시 몰라서 설명을 붙였다. 그러자 사내의 시선이 비닐봉지로 향했다.
비닐봉지 위로 빗물이 떨어졌다.
사내의 어깨에 있는 모나는 흥미를 잃었는지 다리를 흔들며 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사내가 봉지를 받았다.
“...고맙군. 인간.”
그리 말한 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내.
멀리서 모나의 환호 소리가 울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얼마나 빨리 멀어지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걸 보던 강현은 재빨리 타프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사이에 옷이 흠뻑 젖은 것이었다.
사내에게 건넨 비닐봉지는 젖은 옷을 담기 위한 것이었지만.
‘배낭을 빨면 되니깐.’
어차피 슬슬 빨 때가 되었다. 물기를 털어낸 강현은 화로에 나뭇가지를 더 넣었다.
꺼져가는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그때, 설기가 다가왔다. 입에는 사내가 던진 새가 들려있었다.
“...그것도 구워 먹을까?”
강현의 물음에 새를 문 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의자.
그곳에 걸터앉은 여인이 입을 열었다.
“또 도망쳤다고?”
“...예.”
여인의 말에 고개를 숙이는 사내. 방금 모나를 데리고 온 사내였다.
사내의 대답에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이마를 매만졌다.
“대체 누굴 닮아서 그럴까.”
사내는 그 해답을 알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비 때문에 어수선한 틈을 타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전사의 수를 늘렸는데도 말이지.”
여인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사내의 직책이 전사들을 통솔하는 전사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이곳에서 보살피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여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돼. 내 딸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취급할 수는 없어.”
오랜 전통이었다. 부족의 아이들은 다 같이 배우고 자라야 했다.
설령 족장의 자식이라도.
배움에 있어서 차등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지만, 계속 도망치기만 하니 배움이 느립니다.”
가르치는 이들의 불평이 늘어나고 있었다.
“사냥이랑 싸움은 늘고 있다며?”
사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특히나 젊은 전사들의 귀와 눈을 속이는 솜씨는 놀라울 정도였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실력이 급격하게 늘었다.
‘정확히는 그때부터지.’
인간과 신성한 늑대를 만났을 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