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9화 (2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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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아! 노올자!

이장의 말에 일행들이 탄성을 뱉었다.

일행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그런 일행들의 시선이 낯간지러웠는지 이장이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

“이곳에 왔다고 해서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지. 지킬 건 지키면서 어울리면 돼. 그러다 보면 하나가 되는 거여. 그건 그 짝도 잘 알거여.”

이장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맞았다. 이런 시골에 와서 양식당을 연 강현이었다.

강현 역시 그러한 고민을 했었다.

강현은 머쓱하게 웃었다.

* * *

다음 날.

강현은 슈퍼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어제와 다르게 멀뚱멀뚱 앉아있는 할머니.

강현은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며느님, 어디 계세요?”

“으응?”

고개를 갸웃하는 할머니. 강현은 짧게 심호흡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며느님! 어디! 계시나요!”

“며언?”

할머니는 슈퍼 한쪽을 가리켰다. 소면과 당면이 놓인 자리.

강현은 그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틀렸네.’

할머니에게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설기가 짖었다.

“컹! 컹!”

그리고는 슈퍼 밖으로 달려 나가는 설기.

“설기야? 어디를···.”

말을 하던 강현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설기가 저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따라오라는 건가?”

“컹! 컹!”

강현의 예상대로 저 멀리서 설기가 짖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설기의 뒤를 쫓았다.

설기가 멈춘 곳은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낡은 집.

담벼락 너머로 농기구를 정리하고 있던 중년인이 강현을 보고 경계의 눈빛을 던졌다.

“누구요?”

“아, 저···.”

뒤늦게 강현은 여인의 이름조차 듣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다가 겨우 아이의 이름을 떠올렸다.

“혹시 여기가 미영이네인가요?”

미영이.

그 말에 중년인의 표정이 변했다.

“그렇소만.”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들었다. 강현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어? 요리사님 아니십니까?”

어눌한 한국어. 슈퍼에서 봤던 여인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예. 어제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여인의 말에 중년인의 시선이 다시 강현으로 향했다. 강현의 살피는 눈빛.

그러나 전과 달리 경계보다 호기심에 가까웠다.

“여길 어찌 알고. 일단, 들어오쇼.”

끼이익.

낡은 대문이 열리고 강현이 안으로 들어갔다. 설기 역시 강현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담벼락 너머에 있어서 설기를 보지 못했던 중년인의 눈이 살짝 커졌다.

“허, 고놈 잘생겼네.”

칭찬을 들은 설기가 턱을 세웠다. 피식, 웃은 강현은 중년인의 안내에 따라서 집안으로 향했다.

* * *

자리에 앉자 여인이 식혜를 건넸다.

“손님 건, 이런 것밖에 없습니다.”

손님 대접할 건 이런 것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감사히 마실게요.”

그때, 옆에 앉아있던 설기가 앓는 소리를 냈다.

“끼잉.”

“허, 지도 달라는 건가?”

중년인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여인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아뇨. 괜찮···.”

강현이 사양하려고 했지만, 중년인이 고개를 저었다.

“쟤도 손님이야. 한 사발 내줘.”

“예.”

중년인의 말에 여인이 살짝 미소 지은 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은색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식혜를 만족스럽게 할짝거리는 설기.

그 모습에 부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곧 여인이 강현을 보며 물었다.

“어제 일로 오셨습니까?”

“예.”

강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어제 나눴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렇게 강현의 이야기가 끝나자 여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일에 베트남 음식, 입니까?”

어두운 기색.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여인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베트남 음식, 한국이랑 아주 다릅니다. 애들이 안 좋아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알고 있다. 문화도, 들어가는 향신료도 다르다.

낯설게 느껴질 거다. 그 부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강현 역시 베트남 음식을 만든 경험은 없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강현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설기도 있으니.’

가능할 거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강현의 말에도 여인이 머뭇거렸다. 그런 여인을 보며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해봐.”

“여보?”

“해봐야지. 저 사람 말이 맞아. 당신이 여기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건 알아. 그렇다고 당신이 베트남 사람이 아닌 건 아니잖아. 당신의 나라가 부끄러워?”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았다.

“그럼 왜 숨기려고만 해? 그러니 미영이도 그러는 거지.”

아이들도 어른의 눈치를 본다.

중년인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죄인처럼 보였다.

그러자 중년인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깐 그러지 말라는 거야. 죄지었어? 나중에 미영이도 크면 외가도 갈 거 아니야? 그때, 미영이가 외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겠어?”

중년인의 말에 여인의 눈이 커졌다.

“...여보.”

“그럼, 평생 안 보려고 했어? 장인어른이나 장모님한테는 손녀잖아.”

설마 중년인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이었다.

“갔는데 미영이가 장모님이 만들어 준 음식도 못 먹으면 뭐라 생각하겠어?”

여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여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동안 나도 일 핑계로 신경을 못 썼어. 미영이는 부끄러운 자식이 아니잖아. 자랑스러운 우리의 딸이지. 그러려면 우리가 떳떳해야 해야지.”

그리 말한 중년인이 머쓱한지 볼을 긁적였다.

“그러니 당신도 어깨 피고 다녀.”

“여보···.”

눈시울이 붉어진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

그러나 그 속에 있는 강현은 낯간지러움에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 * *

여인의 이름은 응언이었다.

베트남 억양은 조금 달랐지만, 편하게 응언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통역은 이세계에서만 효과가 있나 보네.’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없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응언은 그 뒤로 아침마다 남편의 차를 타고 강현의 매장으로 나왔다.

차가 없는 강현이 계속 응언의 집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리한다면 매장에서 하는 게 편했다.

‘어차피 손님도 없으니.’

씁쓸했지만 사실이었다.

간혹 들리는 손님들은 응언의 사정을 듣더니 덕담 한마디를 건네고 갔다.

“여기는 모두 친절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는 마을 사람을 보며 응언이 말했다.

응언의 마을과는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하긴 모든 마을이 이렇지 않겠지.’

강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은 분들이죠.”

이 마을에 온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그럼 손님도 갔으니 다시 해보죠.”

강현의 말에 응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트남은 채소를 많이 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긴 하나 베트남을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밑반찬이나 곁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채소를 메인으로 다루는 요리들이 많다.

채소가 없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다.

그런 말이 있을 정도이니, 베트남 음식에서 채소가 차지하는 비율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채소가 주재료이니 향이 강한 음식도 많았다.

곧 응언이 음식 하나를 내왔다.

면과 소스가 따로 나왔다. 옆에는 갓 구운 완자가 놓여 있었다.

그를 본 강현의 눈이 반짝였다.

‘분짜, 였나?’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이름이라면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국수라고 하면 쌀국수나 볶음국수를 떠올리는데 이건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이었다.

응언과의 시간은 강현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응언이 가지고 나온 접시는 강현과 설기 것, 두 개였다.

강현이 음식이 나올 때마다 설기와 나눴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두 개로 내오고 있었다.

처음만 해도 설기와 음식을 나누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었다.

강현은 조용히 향을 맡았다.

‘괜찮네.’

강현은 면을 소스에 찍어서 떠먹었다.

시원하고 새콤한 향이 입안 가득 넘쳤다. 그러나 맛은 여전히 알기 힘들었다.

마치 흐릿한 안개를 삼킨 듯한 느낌.

강현은 그 안에서 최대한 맛을 짚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처음 마을에 왔을 때보다는 나아졌다.

희미하게나마 맛이 느껴졌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쁘지 않아.’

그렇게 맛을 느끼던 강현이 힐끗 설기를 보았다.

설기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설기 역시 자신과 같은 의견이었다.

‘꼭 컨닝하는 것 같네.’

강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공으로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설기를 믿고 만든다고 하면 응언이 불안해할 거다.

이미 강현과 설기 사이에는 신뢰가 쌓였지만 응언은 아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는 응언.

“이번 건 괜찮네요.”

강현의 말에 응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강현의 말은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스에 고추는 빼고, 고수의 양도 줄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애들이 먹기에는 너무 자극적입니다.”

베트남의 아이들은 고수에 익숙하다. 그러나 한국은 아니었다.

그리 흔하게 쓰이는 식자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완자는 돼지고기만 쓴 거죠?”

“예. 그렇습니다.”

“살짝 퍽퍽하니 소고기를 섞어보죠. 이 대 일 비율로.”

강현의 말에 응언이 고개를 움직였다. 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에 강현도 의욕이 올라왔다.

“그럼 어제 만들었던 반쎄오와 이 완자만 새로 만들어보고 오늘은 정리하죠.”

“알겠습니다.”

주방의 불이 다시 올라왔다.

* * *

시간이 흘러서 미영이의 생일날이 되었다.

강현은 매장을 하루 쉬고 응언의 집으로 향했다.

응언을 보조하기 위해서였다.

상후의 말대로라면 같이 가기로 한 아이들만 열이 넘는다고 했다.

응언 혼자서는 어려울 거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베트남 음식에 익숙하지 못했다. 도울 수 있는 건 강현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미영이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미영의 아버지 역시 일을 일찍 정리하고 온다고 했다.

말하자면 깜짝 파티였다.

“...고맙습니다.”

응언이 집으로 찾아온 강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강현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게가 한가해서 괜찮아요.”

“아닙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요리사님 아니었다면 용기를 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 말하는 응언은 평소와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오바바.

베트남 전통 복장 중 하나였다. 화려한 색의 옷. 응언 나름의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강현과 함께 베트남의 요리를 하면서 응언도 변화했다.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그때, 설기가 작게 짖었다.

“컹.”

일행들만 들리게. 응언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강현은 아니었다.

“오나 보네요.”

“아!”

그제야 응언이 담벼락 너머를 힐끗 보았다.

저 멀리 작은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미영이었다.

“전 그럼 잠깐 숨어있을게요.”

응언은 작게 심호흡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이 창고로 숨자마자 대문이 열렸다.

“...다녀왔습니다.”

안으로 들어온 미영이는 마당에 서 있는 응언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아오바바를 입은 응언이 낯설기 때문이었다.

응언이 한 바퀴 돌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엄마, 어때?”

“예뻐! 근데 무슨 옷이야?”

“엄마네 나라 옷. 미영이 꺼도 있어. 한번 입어볼래?”

잠시 고민하던 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모녀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응언과 같은 옷을 입은 미영이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미영은 새로운 옷이 낯선지 몸을 움츠렸다.

“이 옷, 할머니가 준비해 준 거야.”

“할머니가?”

미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슈퍼에 있는 할머니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미영을 보며 응언이 고개를 저었다.

“아빠네 할머니 말고. 엄마네 할머니.”

응언은 그리 말하고는 미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딸을 낳았다고 하니 선물을 보내온 것이었다.

계속 보관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꺼낸 것이었다.

“맞다. 미영이 오늘 생일인데. 친구들한테 말했어?”

응언의 물음에 미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으으응.”

조용히 고개를 젓는 미영.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미영아! 노올자!”

담벼락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 상후였다. 화들짝 놀란 미영이 응언의 옷깃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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