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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가 대접해주겠네.
강현 역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늑대 짖는 소리가 들려서 혹시나 해서 와봤네.”
란돌프가 강현 곁으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좋은 자리를 찾았군.”
“설기 덕분이죠.”
강현의 말에 란돌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도도하게 턱을 들어 올리는 설기.
“...그렇군. 그렇겠어.”
그 모습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란돌프는 평소와 복장이 달랐다.
무거운 갑옷 대신 가죽과 천으로 만든 가벼운 옷차림.
뒤에는 활까지 메고 있었다.
오늘은 기사라기보다 사냥꾼에 가까웠다.
강현의 시선에 란돌프가 웃었다.
“오늘은 순찰이 아니야. 쉬는 날이라 사냥하러 왔네. 작은 취미 생활이지.”
란돌프의 말에 설기의 귀가 쫑긋 올라갔다.
그러자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오호, 어린 늑대께서는 사냥에 관심이 있나?”
“컹!”
꼬리가 흔들렸다.
평소 심드렁하던 모습과 달랐다. 그런 설기를 본 란돌프가 턱을 쓸어내리더니 곧 강현을 돌아보았다.
“흐음. 강현, 자네 사냥을 해본 적은 있나?”
사냥이라니.
강현의 세상에서는 이제 낯선 단어였다. 강현이 고개를 젓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얻어먹은 게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잘 되었군.”
손뼉을 치는 란돌프.
무엇이 잘 되었단 말인가.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나와 사냥해보는 건 어떤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이번에는 내가 대접해주겠네.”
무엇으로 대접하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사냥감이었다.
강현이 어색하게 웃자 란돌프가 팔을 들어 올렸다.
“이래 보여도 사냥에도 일가견이 있다네.”
이래 보이는 게 어찌 보이는 걸까. 꿈틀거리는 근육을 본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활이 필요 없어 보일 정도였다.
강현이 망설이자 란돌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네. 권유일 뿐이야.”
부담가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반짝이는 설기의 눈.
사냥을 기대하는 게 틀림이 없었다.
‘몸 쓰는 건 자신이 없지만.’
언제 또 이러한 기회가 올지 몰랐다. 이세계에서 사냥이라니.
남들은 꿈도 못 꾸는 경험이었다.
고민하던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란돌프의 표정이 밝아졌다.
“잘 생각했네! 자네도 한번 해보면 좋아할 거야.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움직이지.”
“컹! 컹!”
란돌프를 따라 강현이 몸을 일으켰다.
‘사냥이라.’
걱정과 함께 조그마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 * *
란돌프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강현으로서는 뒤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는 강현. 강현의 등이 땀으로 젖어가자 란돌프가 걸음을 멈췄다.
“자네, 운동 좀 해야겠어. 걷는 것만으로도 그러면 어찌하겠는가. 남자라면 체력이 중요하네.”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강현과 달리 란돌프와 설기는 멀쩡했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모습. 란돌프의 말에 그런가, 싶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 둘이 이상한 거야.’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숲과 산을 오가고 있었다.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란돌프가 이상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강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뭘 사냥하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아직 사냥감에 대해서 듣지도 못했다. 강현의 말에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음,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미안하군. 도트를 잡으려고 하네. 뜀새라고 하면 알겠군.”
뜀새? 독특한 명칭이었다.
강현이 의아해하자 란돌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는 건가?”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란돌프가 턱을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곧 볼 수 있을 걸세. 전에 녀석들을 이 근처에서 봤거든.”
그리 말한 란돌프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강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뜀새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서식지를 옮기지 않았어.”
란돌프의 걸음이 멈췄다. 그런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건 울창한 나무뿐.
그러나 자세히 보니 나무 너머에 하얀 무리가 보였다.
둥근 몸과 긴 다리.
멀리서 보니 마치 솜사탕들이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도도도도.
긴 다리로 뛰어다니기도 했다.
‘저걸 잡는 건가.’
귀여운 외견을 보니 살짝 죄책감이 올라왔다.
“조심하게 저리 보여도 사나운 놈들이야. 육식성이기도 하지.”
저렇게 귀여워 보이는 녀석들이 사나워 봤자 얼마나 사납겠는가.
그러나 강현은 그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거, 털이 아니었어?’
가까이 가니 인상이 달라졌다.
복슬복슬한 털로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짧은 털.
둥근 건 털 때문이 아니라 근육 때문이었다.
긴 다리는 타조와 비슷했고, 머리는 비둘기와 닮았으나 목이 엄청 두꺼웠다.
그리고 한 마리, 한 마리가 강현보다 더 컸다.
뜀새들은 달려와서 서로의 몸을 부딪치면서 놀고 있었다.
퍽, 퍽, 퍽!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숲에 울렸다.
그 모습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강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걸 잡는다고?’
아까와 같은 의문이었지만 담긴 뜻은 전혀 달랐다.
이런 야생에서 살아남은 놈들이 평범할 리가 없었다.
“근육 때문에 무거워서 날지 못하는 녀석들이지. 대신 그만큼 빨라.”
란돌프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저 덩치로 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설기는 이미 사냥에 대한 기대로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좀 질기긴 해도 저 녀석들만큼 이거에 좋은 녀석들은 없네.”
란돌프는 웃으며 팔을 두드렸다.
불끈, 올라오는 근육들.
“아···.”
강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겠다고 하면 안 되겠지?’
마음속이 복잡했다. 그런 강현의 기분을 모르는 란돌프가 활을 꺼냈다.
“활을 쏴본 적은 있나?”
“아뇨.”
있을 리가 없었다.
“쉽네. 시위를 당기고 목표를 노린 후···.”
란돌프가 먼저 시범을 보이듯 시위를 당겼다.
팍!
시위를 놓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놓으면 되네.”
놓은 뒤에도 부르르 떨리는 활시위. 란돌프는 활을 강현에게 건넸다.
“한 번 해보게.”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활시위를 당겼다.
‘...무슨.’
당겨 지지가 않는다. 온 힘을 준 후에나 란돌프가 당겼던 시위의 절반 정도를 당겼다.
텅.
흔들리는 시위.
그러자 란돌프가 웃으며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걸세.”
란돌프는 화살통도 강현에게 건넸다.
그런 란돌프를 보며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란돌프씨는···.”
“나야 이게 있으니 충분하네.”
란돌프는 허리춤에 걸린 검을 꺼냈다.
칼날이 15센티 정도 되는 작은 검.
마체테와 비슷한 형태였다.
졸지에 활과 화살을 받게 된 강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활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활을 들고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다.
그런 강현을 본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못 쏴도 되네. 처음부터 잘하는 게 이상한 거야.”
“...예.”
그제야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란돌프의 시선이 설기를 향했다.
“난 이쪽으로 갈 테니 어린 늑대께서는 반대쪽에서 녀석들을 몰아주게. 할 수 있겠나?”
“컹! 컹!”
설기가 힘차게 짖었다. 위풍당당한 모습에 란돌프도 미소 지었다.
“강현, 자네는 오는 녀석들을 향해 활을 쏴서 맞추게. 못 맞춰도 상관없어. 시도한다는 게 중요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란돌프을 보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 * *
란돌프와 설기가 뜀새 무리 옆쪽으로 이동했다.
아직은 평화로워 보이는 뜀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란돌프의 존재를 알아챘다.
도망치기보다는 몸을 부풀리고 란돌프를 위협하는 뜀새들.
하지만 앞에 있던 뜀새 하나가 란돌프의 주먹에 맞고 쓰러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놀라서 강현이 있는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뜀새들.
거기에 설기까지 나타나자 더욱 분주해졌다.
란돌프 때와는 달리 설기에게는 달려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 모습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사냥, 할 필요가 있나?’
이미 기절한 뜀새가 한 마리. 그렇다고 해서 임무를 잊은 건 아니었다.
강현은 몰려오는 뜀새들을 보며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목표를 노리고 시위를 놨다.
턱.
바닥에 꽂히는 화살. 절반조차도 날아가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현은 다시 화살을 꺼내서 뜀새들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까워진 뜀새들을 보며 숨을 삼켰다.
‘...너무 빠르잖아.’
두두두두두두.
얼마나 빠른지, 긴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뒤로 올라오는 흙먼지.
가까이에서 보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시위를 당길 때가 아니었다.
“부딪힌···.”
그때, 설기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뜀새들을 추월했다.
“컹! 컹!”
설기가 짖자 뜀새들이 방향을 바꿨다. 타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뜀새들. 그를 본 강현도 다시 시위를 당겼다.
휘리릭, 턱.
날아간 화살이 뜀새 하나를 맞췄다.
그 모습에 강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성공했···!’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박혔던 화살이 툭, 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힘이 없어서 깊게 박히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달리는 뜀새.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강현은 허탈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뜀새를 보았다.
그때, 강현의 옆에 그림자 하나가 지나갔다.
“잘했네! 이젠 내게 맡기게!”
란돌프였다.
속도를 높이는 란돌프. 그를 본 설기가 뜀새 무리로 파고들었다.
이리저리 뜀새 무리를 휘젓는 설기.
곧 뜀새 한 마리가 무리와 떨어져서 도망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뜀새를 향해 란돌프가 뛰어올랐다.
“잡았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도약한 란돌프가 뜀새를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두꺼운 팔로 뜀새의 목을 조르는 란돌프.
곧 발버둥 치던 뜀새가 조용해졌다. 강현은 놀란 눈으로 란돌프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를 떠올렸다.
“...검 안 썼잖아.”
같은 인간이 맞나? 강현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란돌프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뜀새를 끌고 오는 란돌프.
어느새 설기 역시 처음 란돌프가 기절시킨 뜀새를 물고 오고 있었다.
당연히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결국, 강현은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저었다.
* * *
두 마리의 사냥감.
성공적으로 사냥을 끝낸 란돌프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좋군! 잘했어!”
란돌프의 칭찬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전 한 게 없는데.”
“무슨 소리를! 이 녀석을 보게.”
란돌프는 들고 온 뜀새를 보여줬다. 등에 나 있는 작은 상처.
강현이 쏜 화살의 흔적이었다.
강현의 눈이 커졌다.
그 뜀새 무리에서 이 녀석을 구분해낸 것이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네. 같이 사냥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이 녀석은 자네가 잡은 사냥감이야.”
정확히는 우리가.
“게다가 처음 아닌가! 이 정도면 훌륭하지!”
강현은 그제야 란돌프의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혼자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이유.
강현에게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던 것이었다.
‘설기도 마찬가지고.’
강현은 뜀새 옆에서 꼬리를 흔드는 설기를 보았다.
재밌어! 재밌어!
방방 뛰는 설기. 표정에서도 행복함이 느껴졌다. 설기도 잡고자 했다면 진작에 잡을 수 있었을 거다.
사냥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같이 사냥한다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걸 깨닫자 강현의 마음도 편해졌다.
“자, 이제 사냥했으니 맛을 봐야겠지? 이번에는 내가 대접해주겠네.”
란돌프의 말에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기대로 가득 찬 눈빛.
그리고 그런 설기의 눈이 실망으로 변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