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4화 (24/227)

────────────────────────────────────

────────────────────────────────────

강현. 자네였군.

다음날, 윤섭은 아침 일찍 떠날 준비를 했다.

매장 앞에 선 윤섭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는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간판은?”

“없어.”

“...매장을 열었으면서 간판도 안 단 거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현의 반응에 윤섭이 실소를 흘렸다.

“하긴, 너답긴 하다.”

원래는 강현도 매장 이름을 생각했었다. 그걸로 신고도 했고.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굳이 필요하진 않지.’

어차피 이 마을에 식당은 여기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식당이라고 부른다.

아니면 양식당, 혹은 미국 식당.

그것만큼 강현의 매장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었다.

강현은 그런 윤섭을 보다가 어제 묻지 못한 걸 떠올렸다.

“근데 세나씨는?”

강현의 물음에 윤섭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참 일찍도 물어본다. 내 담당이 바뀐 지 얼마나 지났는데.”

그러나 강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런 느낌이었다.

세나. 과거 윤섭이 담당하던 가수였다. 강현도 몇 번이나 만났기에 인연이 있었다. 한숨을 내쉰 윤섭이 입을 열었다.

“요즘은 노래 안 불러.”

“...왜?”

“목이 안 좋아서.”

윤섭의 말에 강현의 표정이 굳었다.

가수에게 목은 치명적이었다. 요리사에게 미각만큼이나.

그런 강현을 본 윤섭이 고개를 저었다.

“성대결절 같은 건 아니야. 최근에 너무 무리한 탓이지. 의사 말로는 일이 년 정도 쉬면 괜찮대.”

하지만 강현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윤섭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야. 누가 누굴 걱정해. 자고로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야.”

아직도 가끔 우울해하긴 하지만 잘 넘기고 있었다.

“걘, 알아서 앞가림 잘하고 있어. 지금은 드라마랑 예능도 촬영 중이고.”

윤섭의 말에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었다. 강현이 누굴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걸 나한테 이야기해줘도 돼?”

강현의 물음에 윤섭이 가볍게 웃었다.

“비밀도 아닌데 뭘. 이미 회사에서 공지도 했고 뉴스에도 나왔어. 당분간 가수 외의 일에 집중하겠다고. 관심 있으면 다 알 수 있는 이야기야.”

마지막 한 마디는 강현을 노린 것이었다.

알려고만 했으면 다 알 수 있는 사실.

강현이 입을 다물자 윤섭이 강현의 어깨를 쳤다.

“나중에라도 한 번 연락해봐. 나보다는 너랑 더 말이 통하겠지.”

윤섭은 강현과 세나의 아픔을 위로해줄 순 있어도 공감해줄 수 없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떠드는 것만큼 실례되는 행동도 없었다.

“...생각해볼게.”

강현의 말에 윤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윤섭은 강현을 잘 알고 있었다. 저리 말했으면 연락하지 않을 거다.

‘기대도 안 했지만.’

그렇다고 더 강요하지도 않았다. 아직은 강현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히려 세나에 관해서 물어본 게 놀라운 일이었다.

조금씩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럼 잘 지내고. 울적하면 전화해!”

“...빨리 가기나 해.”

강현의 대꾸에 윤섭은 웃으며 차에 올랐다.

강현은 윤섭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몸을 돌렸다.

오늘도 매장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옆에 있는 설기를 향했다.

“오늘도 힘내볼까?”

“컹!”

힘차게 짖은 설기의 꼬리가 흔들렸다.

* * *

한가한 오후.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 너머로 넘어오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재료를 손질하고 있을 때, 홀에 있던 설기가 분주해졌다.

“컹! 컹!”

다급한 소리에 강현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홀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컹!”

방방 뛰는 설기. 코끝으로 텔레비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비치고 있었다.

작은 가방을 메고 심부름에 나서는 강아지. 가방에는 사야 할 물품들이 적혀 있었다.

‘영리하네.’

하지만 설기와 비교할 것은 아니었다.

설기가 가리키는 건 강아지가 메고 있는 가방이었다.

강현은 전에 이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달라고?”

“컹! 컹!”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고맙긴 한데, 괜찮아.”

그리고 저런 가방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용보다는 패션이지.’

실제로 방송에 나오는 강아지가 메고 있는 가방도 손바닥만 했다.

그런 강현의 말에 설기의 귀가 내려갔다.

“끼잉, 끼잉.”

안돼? 진짜 안돼?

애처로운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설기의 모습에 강현도 당혹스러워했다.

설기가 먹을 게 아닌 다른 걸로 떼를 쓰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화면에 나오는 가방을 사준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을 거다.

설기는 가방을 원하는 게 아니라 강현을 돕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강현이라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던 강현은 얼마 전 마을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거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 * *

타닥, 타닥.

커다란 보라색 덩어리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닌다.

“쪼이지는 않아?”

“컹!”

강현의 물음에 보라색 덩어리 뒤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보따리.

전에 마을에서 할머니들이 이고 가는 걸 기억하고 만든 것이었다.

주변을 한 바퀴 돈 설기가 강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설기는 제 몸의 두 배만 한 짐을 지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학대라고 신고하겠어.’

보따리의 매듭이 나비넥타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설기는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고 있었다.

강현도 한 손에 들기 힘든 무게였으나 설기에게는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다시 찾아온 휴일.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으나 성공적이었다.

“컹! 컹!”

“빨리 가자고?”

“컹!”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은 피식, 웃었다.

이제는 짐이 많다고 변명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 가보자.”

강현의 말에 설기가 다시 뜀박질했다.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너무 뛰지는 마!”

중간에 쏟아지기라도 하면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다.

혹시 몰라서 밧줄로 묶어놓긴 했지만 설기의 움직임을 보면 불안했다.

“컹!”

강현의 외침에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나 설기의 속도는 그대로였다.

이제는 흐릿하게 보이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아직 산은 힘든데.”

설기 덕분에 조금은 가벼워지긴 했지만, 예전에 가지고 다닐 때보다 무거워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장 볼 때마다 올라가는 언덕도 여전히 버거웠다.

요즘, 부쩍 체력의 필요성을 느끼는 강현이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설기의 뒤를 쫓았다.

숲을 지나다 보니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설기가 보였다.

강현이 다가가자 다시 움직이는 설기.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냇물.

햇살이 물에 반사되어서 반짝였다. 숲 사이에 둘러싸인 작은 냇가는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졌다.

강현은 냇물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강에서 오는 거구나.’

늑대들의 보금자리. 그곳부터 내려온 게 분명했다.

냇물 소리가 강현의 귀를 괴롭혔다.

결국, 강현은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놨다.

“짐은 나중에 풀어야겠네.”

신발을 벗자 퉁퉁 부어있는 발이 나왔다. 둘에 걸터앉은 강현이 발을 냇물에 담갔다.

찌릿.

차가운 감촉이 등부터 머리까지 스치고 지나갔다.

“하아.”

감탄이 섞인 깊은 한숨.

올라오면서 생긴 피로가 단번에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강현은 눈을 감고 가만히 물살을 느꼈다.

그런 강현을 보고 있던 설기가 냇물로 뛰어들었다.

퐁당!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면서 강현의 몸도 젖었다.

“...으, 차가워라.”

강현은 눈을 뜨고 설기를 보았다.

설기의 가슴팍까지 오는 작은 냇물. 퐁당거리며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뭐, 상관없나.”

강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하늘. 냇물처럼 맑고 투명했다.

걱정과 달리 먹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냇가에서 발을 담가본 게 얼마 만이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작해야 중학생 때?

그를 깨달은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나, 정말 한 게 없구나.”

오로지 요리뿐이었다.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때, 뛰어놀던 설기가 돌아봤다.

“컹! 컹!”

강현을 향해 짖는 설기. 그런 설기를 본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늦지 않았지. 이제부터라도 하면 돼.”

“컹!”

대답하고는 다시 해맑게 뛰어노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던 강현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박이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짐이 되었을 거다. 게다가 어디서 쉴지 정하는 건 강현의 몫이 아니었다.

‘아직 제철도 아니고.’

이곳은 여름이었지만, 상현의 세상은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다.

요즘은 제철 상관없이 먹을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철에 먹는 게 제일 맛있었다.

그런 생각하던 강현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배낭의 디팩을 열었다.

얼음과 함께 담긴 맥주들.

“이쪽이 낫겠네.”

강현은 돌과 밧줄을 이용해서 냇가에 담갔다. 혹시 떠나가지 않을까, 지켜봤으나 안정적이게 떠 있었다.

시원하기는 얼음이 담긴 디팩에 넣는 게 더 시원하겠지만···.

“여기서는 정석을 따라야지.”

어느새 다가온 설기가 강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게 있어.”

한국인이 아니면 알기 힘든 감성이었다.

기지개를 켠 강현이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텐트를 치기 그리 적합하진 않네.’

돌 때문에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광경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강현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보며 턱을 긁적였다.

“...한 번 해보자.”

그나마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돌을 깔았다.

수평을 맞추는 것이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매트를 믿을 수밖에.

그래도 혹시 모르니 떨어진 나뭇잎들과 풀들을 잘라서 돌들 위에 깔아줬다.

그렇게 완성된 텐트 안에 들어간 강현은 바닥을 두드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네. 그렇지?”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대답했다.

이미 텐트 바닥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미처 털지 못한 물기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강현은 못 본 척 넘겼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잘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졌다.

애당초 이런 야외에서 편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텐트가 끝나고 나뭇가지들을 이용해서 타프까지 설치하자 그럴듯한 모양이 나왔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강현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렇게 가져온 짐들을 텐트 안에 정리하고 있자 설기가 짖었다.

“컹! 컹!”

설마 비라도 오는 건가.

놀란 강현이 황급히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하늘은 청명하기만 했다.

“왜?”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한쪽을 향해 짖었다.

흔들리는 꼬리.

‘위험하다는 건 아닌데.’

뭐지? 의아해하던 강현의 귓가에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오고 있었다.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전에 봤던 모나가 떠올랐다.

곧 숲 너머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모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그림자.

그러나 그 그림자 역시 강현이 아는 이였다.

“오, 역시 강현. 자네였군.”

중년의 기사. 란돌프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