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2화 (2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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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허락보다 쉽다.

후다닥.

재빨리 도망치는 꼬마. 하지만 사내의 감각을 피할 순 없었다.

사내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어느 순간 꼬마의 앞에 나타났다.

“...”

“...헷.”

귀엽게 웃는 꼬마.

사내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꼬마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으갹!”

대롱대롱.

꼬마가 발버둥 쳤지만, 사내의 차가운 눈과 마주치자 다시 얌전해졌다.

맹수의 눈동자.

그렇게 꼬마를 제압한 사내는 강현을 돌아보았다.

강현과 설기를 번갈아 보던 사내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나무와 나무를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멀어지는 사내와 꼬마.

강현은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볼을 긁적였다.

“대체 뭐였던 거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때, 턱하고 설기가 앞발을 올렸다.

“...더 달라고?”

“컹!”

해맑게 짖는 설기.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꼬마에게 덜어주려고 했던 자신의 몫을 설기에게 건넸다.

다시 파스타를 먹는 설기.

“뭐, 상관없나?”

흔들리는 꼬리를 보니 강현의 마음도 다시 평온해졌다.

* * *

할짝할짝.

간지러움과 축축함에 눈을 뜬 강현이 본 것은 강현의 뺨을 핥고 있는 설기였다.

“...무슨 일이야?”

강현은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새벽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강현은 고개를 흔들어서 잠을 깼다.

설기가 강현보다 일찍 일어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컹! 컹!”

설기가 텐트 밖을 보며 짖었다. 텐트를 열자 찬 공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늘을 올려다본 강현은 작게 탄성을 뱉었다.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먹구름이 몰려 있었다.

소나기나 적은 비 정도라면 무시하겠지만.

“...많이 오겠지?”

“컹!”

그렇지 않다면 설기가 깨웠을 리가 없었다.

우중 캠핑도 낭만이라면 낭만이었지만, 장비가 적당하지 않았다.

“고마워.”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설기 역시 강현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 나왔다.

바람에도 물기가 묻어있는 것 같았다.

‘요즘 비가 자주 오네.’

우기이기라도 한 걸까? 강현은 빠르게 텐트를 정리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구름이 점점 모이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근처에 머문 게 다행이네.’

짐이 무거운 탓에 멀리 나가지 못한 게 도움이 되었다.

강현은 배낭을 짊어지고 가방을 들어 올렸다.

“읏차.”

음식이 줄긴 했으나 아직 제법 무거웠다.

“끼잉.”

강현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발걸음을 뗐다.

훅, 훅, 훅.

호흡을 조절하면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덕분에 벌써 문 근처까지 도착했다.

그때, 앞서가던 설기의 걸음이 멈췄다.

뒤따라가던 강현도 멈춰 서서 가방을 내려놨다. 어차피 슬슬 한계라 한 번은 쉬어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강현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한쪽을 바라보던 설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를 착각한 건가?

아니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의아해하던 강현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다시 가방을 들어 올렸다.

우르르. 콰강!

번쩍이는 하늘.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쉴 시간을 안 주네. 가자, 설기야.”

“컹!”

강현과 설기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둘의 뒤를 쫓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콰가가강!

움찔. 벼락이 내리칠 때마다 화들짝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모나투스.

수인족의 꼬마였다.

간밤에 무리에서 도망친 모나는 무서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둘의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곧 둘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수풀 사이로 몸을 던지는 둘.

모나는 재빨리 둘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응?”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둘이 사라진 수풀을 뒤져도 마찬가지였다.

킁, 킁, 킁.

냄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땅을 파보아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곧 모나의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렸다.

“으으응?”

우르르, 콰강!

다시 내리치는 벼락.

움찔. 모나는 몸을 움츠렸다.

곧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 결국, 둘을 찾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천둥소리가 무서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아침까지 무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또 혼날 거다. 천둥은 무서웠지만 혼나는 건 더 싫었다.

콰가가강!

덜덜 몸이 떨렸다.

“으으.”

모나는 두려움을 삼키며 숲을 달렸다.

* * *

다시 시작된 일상.

그러나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온 이는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부부.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마을 사람이 아니란 뜻.

부부는 매장 안이 생각 외로 말끔해 보였는지 놀란 눈으로 둘러보았다.

아내가 강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영선 언니가 여기서 햄버거랑 돈가스를 판다고 하던데···.”

영선. 마을 주민 중 한 명이었다.

아내의 말에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른 것도 팔아요.”

“다른 것요?”

강현은 벽면을 가리켰다. 화이트보드에는 오늘의 메뉴라고 적혀 있었다.

“메뉴에 없는 것도 재료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강현의 말에 아내의 눈이 커졌다.

“파스타도 있구나! 음, 뭐 먹지?”

“돈가스 먹어. 그거 먹으러 온 거 아니야?”

남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아내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래도 모처럼이니 제대로 먹어야지.”

남편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강현의 의식해서인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강현은 남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시골에서 제대로 해봤자 얼마나 제대로 하겠는가.

그런 남편의 생각이 변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음식이 나오자 심드렁했던 남편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음식을 떠먹었을 때, 더욱 극적으로 변했다.

“음!”

“...와.”

짧게 감탄한 아내가 남편을 돌아보았다.

“여보, 괜찮지?”

“어, 어.”

남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의아할 정도로 맛있었다.

곧 부부 사이에 말이 사라졌다.

둘 다 음식을 먹느라 바쁜 것이었다.

순식간에 그릇이 비워졌고.

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예. 무척 맛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잘 먹었수다.”

남편이 헛기침하더니 말을 이었다.

“젊은데 실력이 좋네.”

그리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아내의 뒤를 따랐다.

남편 나름의 인정.

강현은 떠나는 부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번 주만 벌써 두 팀.

조금씩이지만 마을 밖으로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치우고 있자 이장이 들어왔다.

“크으, 그 짝 덕분에 마을에 활기가 돌어. 활기가.”

방금 나간 이들을 봤기 때문이었다.

“외부 사람들이 마을에 찾아오는 게 얼마 만인지. 참으로 좋어.”

“겨우 두 팀인데요.”

“벌써 두 팀이지! 이런 기세라면 금방 성공할 거여!”

싱글벙글 웃는 이장. 그러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숨을 삼켰다.

“커험. 그렇다고 부담 주려는 건 아니니 편히 혀.”

그런 이장의 모습에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어요. 그보다 무슨 일이세요?”

아까 아침에도 매장에 놀러 왔던 이장이었다. 이 시간에 다시 찾아왔다는 건 용무가 있다는 뜻이었다.

강현의 물음에 이장이 손바닥으로 모자를 쳤다.

“맞네. 나이를 먹으니 자꾸 껌뻑껌뻑 혀. 곧 농번기 아녀. 그것 때문에.”

“농번기는 가을 아닌가요?”

추수의 계절. 그런 강현의 말에 이장이 혀를 찼다.

“역시 도시 사람이구먼. 여름도 수확을 혀. 그리고 모내기도 해야 하고.”

6월, 늦게는 7월까지 걸쳐서 하곡 수확과 모내기를 한다.

“그때, 도움이 필요한 집이랑 손이 빈 사람을 조사하는 겨. 인원이 없으면 읍내에 가서라도 데려와야 하니깐.”

이런 시골까지 올 사람을 구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이제 곧 여름이었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뭐, 그 짝은 장사하느라 상관없겠지만, 일단 이 마을 사람이니 알아두라고. 요즘은 기계가 좋아서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손이 많이 필요혀.”

이장이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공짜로 쓰는 게 아니라 품삯도 챙겨주니 생각 있으면 말혀.”

그리 말한 이장은 손을 흔들고 매장을 떠나갔다.

그런 이장을 바라보던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농사짓는 것도 힘들겠네.”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었다.

전에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 쓰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았다.

농사일이 힘들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러나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아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강현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설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확인하고 탄성을 뱉었다.

핸드폰에 온 문자 때문이었다.

“...아, 오늘이었구나.”

강현에게 온 문자는 윤섭이 보낸 것이었다.

* * *

“그럼 애들 잘 부탁해.”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윤섭의 말에 새롭게 들어온 매니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윤섭 혼자 돌볼 수가 없으니 인원이 늘어난 것이었다.

“너희들도 말 잘 듣고.”

“예! 과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싱글벙글 웃는 아이들. 평소였다면 어디를 가냐고 따질 만도 한데 오늘은 얌전했다.

그러나 윤섭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긴, 애들도 피곤하겠지.’

아무리 젊다지만 이틀 동안 이어진 야외 촬영은 쉽지 않았다.

“그럼 내일은 숙소에서 푹 쉬고 모레 보자.”

윤섭이 차에 올랐다.

그렇게 윤섭이 떠나가자 매니저가 아이들을 보았다.

“우리도 가자.”

커다란 차에 오르는 아이들. 그러나 차에 오르자마자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 매니저님. 저희 과장님 따라가요.”

“뭐?”

수현의 말에 매니저가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돌리자 초롱초롱 빛나는 눈들을 볼 수 있었다.

“안 돼.”

윤섭은 상사였다. 상사의 뒤를 쫓는다? 당연히 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진짜 안 돼요?”

“이렇게 부탁할게요.”

아이들의 눈빛 공격에 매니저는 숨을 삼켰다.

그런 매니저의 반응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저희 말 잘 들을게요. 네?”

경력이 짧은 매니저가 견딜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과장님께 물어보는 건 어때?”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거예요.”

그걸 알면서 이러는 건가. 매니저는 골치가 아팠다.

그렇다고 여기서 거절했다가는 서울까지 가는 동안 시달릴 거다.

매니저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때, 아이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유니즈의 리더인 소현이었다.

“매니저님.”

“...왜?”

“그거 아세요? 허락보다 용서가 쉽대요.”

결국, 매니저가 백기를 들어 올렸다.

“혼나도 난 모른다.”

“예!”

“고마워요! 매니저님 최고!”

아이들의 말에 매니저가 씁쓸히 웃었다.

아이들보다 자신이 더 혼날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차가 출발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매니저는 운전하면서 아이들 몰래 핸드폰을 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멈춰 선 차.

앞에는 윤섭의 차가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매니저를 원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매니저.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상사에게 넘긴다. 그게 욕을 덜 먹는 방법이었다.

칭찬을 받을 수 없다면 욕이라도 덜 먹어야 했다.

직장인의 지혜였다.

쭈뼛쭈뼛 서 있는 아이들을 본 윤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자신을 미행할 줄은 몰랐다.

“너희···.”

“죄송해요오.”

윤섭이 입을 열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사과했다.

“대체 왜···.”

“친구분 요리 잘한다면서요.”

“저희 이대로 서울 가면 또 숙소에서 샐러드만 먹어야 하잖아요.”

아직 활동기니깐 당연했다.

“그리고 어제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했단 말이에요.”

“맞아요!”

대답하고는 금세 자신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을 보며 윤섭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지만 다들 아직 어렸다.

계속되는 스케줄로 지칠 만도 했다. 이런 시골까지 와서도 촬영장 밖을 나가지도 못했다.

그걸 생각하니 마음이 약해졌다.

‘...내일 스케줄이 없으니.’

결국, 윤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얌전히 있어야 한다.”

윤섭의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조용히 있을게요!”

“딱 한 시간이야. 한 시간만 있다가 다시 서울로 가야 해.”

“네에!”

싱글벙글 웃는 아이들을 보며 윤섭은 매니저에게 눈짓했다.

아이들이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윤섭은 핸드폰을 꺼냈다.

인원이 늘었다는 걸 강현에게 연락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차마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핸드폰을 닫았다.

“...용서가 허락보다 쉽다고 했었나?”

어딘가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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