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1화 (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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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거야.

며칠 사이 비라도 온 것인가.

넘어왔을 때는 몰랐는데 군데군데 땅이 젖어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걷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전에 머물렀던 장소가 나왔다.

“그대로네.”

며칠 사이에 변할 리가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이 숲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강현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강현은 배낭을 내려놓고 텐트를 펼쳤다.

그리고 텐트 앞에는 타프를 이용해서 그늘막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작은 공터가 캠핑장으로 변해버렸다.

호흡을 가라앉힌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그럼 오늘은 좀 걸을까?”

“컹!”

설기가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힘들긴 했으나 그 전보다는 나았다. 집이 아닌 할아버지 댁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할아버지 댁을 한 번 손봐야겠네.’

전체는 아니어도 방 일부를 창고처럼 만들어야겠다.

‘냉장고도 있으면 더 좋고.’

그러면 이동하기 더 편할 거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매장을 오픈했다. 일을 더 만들지 않는 게 좋았다.

상념을 지운 강현은 하얀 설기의 꼬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쓸고 지나갔다.

땀으로 젖었던 옷이 어느새 말라 있었다.

설기는 저 멀리 토끼로 보이는 동물들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강현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달리는 설기.

깜짝 놀란 토끼 가족들이 껑충껑충 뛰었다. 지구의 토끼보다 다리가 두꺼운 만큼 뛰는 높이도 남달랐다.

나뭇가지를 밟고 도약하는 토끼들.

그리고 설기는 그런 토끼들을 뒤따랐다.

사냥이라도 하려는 건가. 새끼도 보였기에 걱정했지만, 쫓기만 할 뿐 직접 잡지는 않고 있었다.

‘...노는 건가?’

그때 어린 새끼 하나가 발을 헛디뎠는지 나뭇가지에서 미끄러졌다.

설기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새끼를 낚아채서 바닥에 내려놓은 뒤, 다른 녀석을 쫓는다.

새끼 토끼는 놀란 눈으로 주변만 두리번거릴 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설기가 귀엽게 보여도 저들에겐 맹수나 다름이 없을 거다.

그렇게 토끼 가족들을 쫓던 설기는 금세 실증이라도 난 것인지 다시 강현에게 돌아왔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콧잔등을 쓸었다.

“너무 괴롭히지는 마.”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설기.

강현은 피식 웃고는 하늘을 보았다.

푸르른 하늘에 조금씩 붉은 빛이 섞이고 있었다.

“슬슬 돌아가자.”

저녁 먹을 준비를 해야 했다. 설기가 강현의 뒤를 쫄랑쫄랑 쫓아왔다.

* * *

텐트로 돌아온 강현은 바로 장비를 셋팅했다.

팬을 올린 스토브에 불을 켜고 오일을 두른다. 그리고 두툼한 등심을 올렸다.

전에 쓰던 1인용 팬.

곧 기름 소리와 함께 연기가 올라왔다.

숲속 가득히 퍼져나가는 고기의 향.

그리고 스토브 하나를 더 꺼내서 그 위에는 새로 산 4인용 팬을 올렸다.

오일을 넣고 얇게 자른 마늘을 넣어준다.

불은 약하게.

마늘이 노릇노릇 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송이와 새송이버섯, 양파를 넣어준다.

그 위에 후추와 소금 살짝.

그리고···.

페페론치노를 향해 손을 뻗던 강현이 멈췄다.

설기가 매운맛을 좋아하기에 챙겨온 것이지만.

‘...너무 맵게만 먹어도 안 좋지.’

강현은 페페론치노를 놔두고 재료를 볶아줬다. 양파와 베이컨이 갈색빛으로 변했을 때, 물을 조금 넣어준다.

육수가 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거기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다.

‘그건, 과욕이지.’

물이 끓기 시작하자 아이스박스에 들어있는 팩 하나를 꺼냈다.

생크림.

기간이 아슬아슬해서 오늘 소비해야 했다.

강현은 생크림을 팬 위에 부었다.

그리고는 물과 잘 섞이게 저어줬다.

곧 크림이 끓으면서 향이 풍부하게 변해갔다.

강현은 크림을 잘 졸인 후에 미리 삶아놓은 면을 넣었다.

크림파스타.

그렇게 파스타를 그릇에 옮긴 강현이 스테이크를 확인했다.

“정확하네.”

적당하게 익은 스테이크. 강현은 스테이크를 썰어서 파스타 위에 올렸다.

이걸로 스테이크 크림파스타가 완성되었다.

사실 강현이 그리 선호하는 파스타는 아니었다.

크림이나 스테이크. 둘의 조합이 그리 좋진 않기 때문이었다. 둘 다 느끼한 맛이 강했다. 게다가 전통 파스타보다는 퓨전 요리에 가까웠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크림을 좋아하지.’

예전에는 그런 것에 묶여있었다.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이번에 나물 파스타를 만들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음식이 완성되자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이미 스테이크를 썰기 전부터 침이 잔뜩 고여있었다. 좌우로 움직이는 꼬리는 빨리 달라고 닦달하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강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알았어. 줄게.”

강현이 바닥에 접시를 내려놨다. 바로 달려드는 설기.

그러나 그릇 앞에서 설기가 멈춰 섰다.

무언가 음식에 이상이라도 있는 건가?

강현이 의아해했지만 설기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릇이 아니었다.

“끼야아아아아!”

언제 온 걸까? 작은 그림자 하나가 포효했다.

위협적이라기보다 앙증맞은 느낌.

“...진짜 왔네.”

강현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흘렸다.

전에 봤던 꼬마였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설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설기는 그릇을 힐끗거린 후,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표정도 할 수 있구나.’

설기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강현이 짧게 감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기는 꼬마를 향해 털레털레 걸어갔다.

서로를 노려보는 꼬마와 설기.

곧 둘의 신형이 엉켰다.

그리고 결과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풍당당하게 돌아온 설기가 그릇에 입을 가져갔다.

입맛에 맞는지 격하게 흔들리는 꼬리.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공터 구석.

싸움에서 패배한 꼬마가 훌쩍이고 있었다.

진 게 그리도 분한 건가.

훌쩍이던 꼬마가 붉어진 눈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는 설기를 바라보았다.

꼬마와 다르게 행복해 보이는 설기.

“아.”

강현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운다.’

꼬마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곧.

“으아아아아아아앙!”

울음을 터트렸다. 우렁찬 울음소리에 강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파스타를 먹던 설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꼬마를 바라보았다.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곧 설기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어떻게 해? 도움을 구하는 눈빛.

“...나도 모르겠는데.”

그러나 강현이라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 따위 배운 적이 없었다.

강현의 말이 들렸는지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으아아앙! 으아앙!”

숲이 떠나가라 서럽게 우는 꼬마.

그런 꼬마의 울음소리에 설기가 한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자신의 그릇을 물었다.

그리고 꼬마에게 다가가는 설기.

음식을 주려는 것이었다. 설기가 음식을 양보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긴 하나.

‘...그걸로 될까?’

설기는 꼬마 앞에 접시를 내려놓고 뒷걸음쳤다.

고작 음식 하나 넘긴다고 저렇게 울던 아이가···.

“멈췄네?”

훌쩍, 훌쩍.

코를 먹은 아이가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입을 가져갔다.

조심스럽게 한 입.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는 접시에 머리를 박을 기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후루룩.

소스가 얼굴 전체에 묻었지만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흐힛.”

언제 울었냐는 듯이 웃으며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강현은 자신의 옆으로 돌아온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했어.”

“컹!”

활기차게 대답한 설기가 강현을 쳐다보았다.

강현은 그 이유를 알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

“왜?”

콧등으로 빈 접시를 가리키는 설기.

새로 떠달라는 것이었다.

“네 건 줬잖아. 이건 내 거야.”

“...!”

설기의 눈이 커졌다. 충격이 컸는지 흔들리던 꼬리가 멈췄다.

순진한 눈망울이 떨려왔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야. 자.”

그리고는 자신이 먹으려고 뜬 파스타를 건넸다.

강현이 건넨 파스타를 보고 머뭇거리는 설기.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 또 하면 돼.”

어차피 재료는 넉넉하게 챙겨왔다. 꼬마가 올 것을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손님을 대비한 것이었다.

‘또 란돌프씨를 만날 수도 있으니.’

어쩌면 다른 존재라도.

물티슈로 팬을 닦아낸 강현이 다시 스토브에 불을 켰다.

금세 만들어지는 파스타를 보며 설기도 먹기 시작했다.

설기의 기분에 따라 다시 흔들리는 꼬리.

그러는 사이 제 것을 다 먹었는지 꼬마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더 줄까?”

강현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꼬마의 얼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리고는 제 접시를 들고 후다닥 달려왔다.

근처에 와서는 슬쩍 설기의 눈치를 봤지만, 설기가 반응하지 않자 강현의 옆으로 다가왔다.

다가와서 멀뚱멀뚱 팬 위를 바라보는 꼬마.

“뜨거우니 만지면 안 돼.”

끄덕끄덕.

말귀를 알아듣는 건가. 고개가 움직였다.

강현은 그런 꼬마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페페론치노를 빼기 잘했어.’

강현은 아까 흘린 눈물과 소스로 엉망이 된 얼굴을 보며 물티슈를 꺼냈다.

그리고는 꼬마의 얼굴을 닦아줬다.

“캬악!”

“...”

꼬마는 싫은 기색을 드러냈지만 설기의 시선에 다시 얌전해졌다.

강현은 깨끗해진 꼬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똘망똘망한 눈동자. 행동을 보면 사내아이 같았지만···.

‘여자아이였네.’

강현은 완성된 파스타를 세 접시 위에 나눴다. 스테이크가 익으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설기나 꼬마나 그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는 없어 보였다.

다시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둘을 보며 강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짜 복스럽게 먹네.’

저렇게 맛있게 먹어준다면 요리해줄 맛이 났다.

강현은 그런 둘을 보면서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세 입 정도 먹었을까?

다시 옆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꼬마였다.

벌써 꼬마의 그릇이 비어 있었다.

뜨거운 시선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설기도 처음에는 저랬지.’

이제는 요리를 자주 접한 탓인지 여유가 생겼지만, 처음에는 꼬마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강현이 제 그릇에 있는 파스타를 덜어주려고 한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모나.”

“...!”

움찔.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꼬마의 몸이 떨려왔다.

그리고는 못 들은 척 그릇을 내려놓고 슬금슬금 발을 옮겼다.

“모나!”

“...”

다시 한번 들려오는 목소리. 아까보다 선명했다.

그제야 꼬마가 고개를 돌렸다. 그 끝에는 차가운 표정의 사내가 서 있었다.

훤하게 드러난 상체. 그러나 어깨와 가슴에는 갈색 털이 자라 있었다.

머리 위로 솟은 귀와 꼬리.

하지만 꼬마처럼 귀여운 게 아니었다. 맹수를 보는 듯했다.

사내와 눈이 마주친 꼬마가 배시시 웃었다.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강현조차 눈치챈 걸 사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사내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모나투스.”

축 처지는 꼬리. 그제야 사내의 시선이 꼬마에게서 강현으로 옮겨갔다.

“넌 인간, 인가?”

사나운 눈동자는 곧 강현의 옆에서 멈췄다.

“어째서···.”

파스타를 다 먹고 뒷발로 목덜미를 긁적이고 있는 설기.

놀란 눈으로 설기를 바라보던 사내는 다시 강현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복잡한 얼굴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내.

그렇게 사내가 생각에 잠기자 꼬마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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