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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또 오진 않겠지?
‘상당히 매울 텐데.’
아직 어린아이. 생김새를 보면 보통 사람보다 감각이 예민할 거다.
너무 성급하게 줬나. 후회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게다가 꼬마의 반응을 보면 안 줬어도 알아서 먹었을 거다.
강현은 설기를 힐끗거리다가 삼겹살과 김치를 입에 넣었다.
폭발적인 향과 달리 입 안은 차분하기만 했다.
예상했던 것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전보다는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냄새 때문이겠지.’
강현은 피식 웃고는 소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김치와 삼겹살은 금방 동이 났다. 설기는 냄비를 비우고도 부족했는지 꼬마가 남긴 것까지 먹기 시작했다.
설기가 그러는 사이 강현도 남은 소주를 홀짝였다.
어느새 밤하늘이 몰려오고 있었다.
서서히 빛을 뿜어내는 별들을 보고 있자 식사를 마친 설기가 옆으로 다가왔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는지 귀가 쫑긋거렸다.
“잘 먹었어?”
“컹!”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도는 설기. 그러더니 강현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다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 * *
다음날.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깬 강현은 장비를 정리한 후에 설기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어제 짐을 가지고 오느라 주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푸르른 숲.
시원한 바람.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늘 새롭게 다가왔다.
“...이제 드디어 오픈인가.”
강현의 혼잣말에 설기가 돌아보았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슬슬 돌아갈까?”
“컹!”
해맑게 짖는 설기. 이제 산책은 충분했다.
매장을 연다고 해서 다시 못 오는 것도 아니었다.
강현은 설기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강현과 설기가 떠난 후.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럭, 부스럭.
수풀이 흔들렸다.
불쑥, 작은 그림자 하나가 수풀을 헤치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갸아아악!”
위협하듯 두 손을 위로 올려서 몸을 크게 부풀리는 그림자.
어제의 꼬마였다.
곧 꼬마는 앞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고개를 갸웃하던 꼬마가 바닥에 얼굴을 가져갔다.
킁, 킁.
냄새를 맡으려고 했으나 어제의 충격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콧물이 주르륵 흘렀다.
훌쩍, 손등으로 콧물을 쓸어냈다.
콧물 때문에 복슬복슬한 털이 엉켰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본 꼬마는 시무룩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마을로 돌아온 강현은 정말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이 되었다.
깊게 심호흡을 내쉰 강현이 옆을 바라보았다.
“할 수 있겠지?”
“컹! 컹!”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그 모습에 강현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좋아.”
문 앞에 걸린 팻말을 뒤집었다.
[영업 중]
그와 함께 강현의 가게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첫 손님이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오픈 축하드립니다.”
커다란 화분을 들고 나타난 이는 민호와 수진 부부였다.
“어서 오세요.”
강현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수진의 배는 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움직이기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도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작이었다.
“벌써 손님이 왔어? 하여튼, 부지런해. 내가 첫 손님이 되려고 했건만. 에잉.”
이장이었다. 이장의 손에도 화분이 들려있었다.
“길 막고 뭐해? 안 들어갈 거면 나와.”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이장의 눈이 커졌다.
박씨 할머니. 그리고 이어서 점례 할머니와 상후의 모습도 보였다.
다섯 개뿐인 테이블이 금세 찼다.
강현은 몰려드는 손님들을 보고 놀랐지만 애써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먼저 오신 분들부터 주문받을게요. 자리는 편하신 대로 앉으세요.”
“그려. 기다려도 되니깐, 천천히 혀. 난 이 짝이랑 같이 앉을 테니.”
“...노친네가 누구 멋대로 같이 앉겠다는 거야.”
박씨 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장을 쫓아내진 않았다.
마을 사람 몇이 더 와서 인사를 건네고는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강현은 차례로 돌면서 주문받고는 주방으로 들어왔다.
‘샐러드 둘, 파스타 넷, 피자가 둘, 그리고 햄버거가 하나인가.’
햄버거는 당연히 상후가 주문한 것이었다.
강현의 머릿속에 동선이 그려졌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많은 주문을 쳐냈었다. 물론,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지만···.
‘어렵진 않아.’
이 정도로 당황할 정도로 강현의 경력이 얕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이 기분.
슬며시 미소 지은 강현이 팬을 잡았다.
* * *
오픈하고 사흘이나 지났다.
사흘 동안 강현의 매장은 북적거렸다.
그리고.
“...예상대로네.”
강현은 텅 빈 홀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까지 시끄럽던 게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이미 올 사람들은 전부 왔다 갔다.
마을 사람들이 외식을 해봤자 얼마나 자주 하겠는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강현의 마음은 편했다.
처음 이곳에 매장을 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이보다 심한 상황을 예상했었다.
‘그래, 이거면 나쁘지 않지.’
이제부터 차차 늘려가면 되었다. 강현의 시선이 홀 구석으로 향했다.
낡은 텔레비전 앞에 서 있는 설기.
온 손님 중 하나가 허전하다면서 주고 간 것이었다.
화면에는 괴수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그르르르.”
털을 세우고 경계하는 설기.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사자나 호랑이가 나오는 다큐멘터리가 나올 때도 심드렁하던 설기였으나 괴수에는 반응하고 있었다.
‘꼬마한테도 그랬지.’
꼬마나 맹수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건가?
강현이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자 털이 점점 가라앉았다.
화면에서 시선을 뗀 설기가 강현을 손을 핥았다.
그렇게 강현이 설기와 놀아주고 있자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매장은 어때? 손님 좀 있어?]
인사도 없이 본론부터 튀어나왔다. 윤섭이었다. 강현은 익숙한 듯이 받아넘겼다.
“없어.”
[그래? 그런 것치고는 목소리가 밝네?]
“어두울 이유도 없지. 아, 지난번에 버거는 고마웠어.”
강현의 대꾸에 핸드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뒤늦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너 진짜 변했네. 내가 알던 강현은 이렇게 긍정적인 아이가 아닌데. 솔직히 말해봐. 너 강현 아니지?]
“헛소리 그만하고. 무슨 일이야?”
강현의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그러자.
[그래, 역시 이게 이강현이지.]
핸드폰 너머에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의 눈썹이 올라가자 윤섭이 말을 이었다.
[얼마 뒤에 그 근처로 스케줄이 잡혔거든. 방해가 아니면 얼굴이나 보자고.]
“스케줄?”
당연히 윤섭이 아니라 윤섭이 담당하고 있는 연예인일 거다.
이런 시골에 무슨 스케줄이 있다는 말인가.
[시골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예능인데. 이번에 우리 애들이 게스트로 나가기로 했어.]
“...”
강현에게서 말이 없었다. 강현이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걸 알아챈 윤섭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네 성격을 내가 모르냐? 나 혼자만 갈 거야. 이번에 로드도 하나 더 붙었어. 내려가는 것만 같이 내려가고 올라올 때는 따로 올 거야.]
윤섭의 말에 강현의 미간에 생겼던 주름이 펴졌다.
* * *
[...그럼 상관없어.]
뒤늦게 들려온 강현의 대답에 윤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성격이 좀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예민한 건 똑같네.’
그러나 이해는 되었다.
강현으로서는 연예계를 좋게 볼 수 없을 거다. 정확히는 매스컴, 그 자체를 말이다.
“...그나마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게 다행인가.”
“뭐가 바꿔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윤섭이 화들짝 놀랐다. 옆을 돌아보자 귀엽게 생긴 소녀가 윤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니즈의 멤버 중 하나인 소현이었다.
윤섭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휴.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녀라.”
“죄송해요. 그보다 뭐가 바뀐다는 거예요.”
“친구. 너희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야.”
그리 말한 윤섭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런 윤섭을 본 소현이 입술을 오므렸다.
“...수상하단 말이야.”
항상 자신들을 잘 챙겨주는 윤섭이었지만, 한 가지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있었다.
바로 평창에 있다고 한 친구.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수상하게 보였다.
“흐응, 신경 쓰이네.”
숨길수록 알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었다.
곧 무언가를 떠올린 소현이 고양이처럼 웃었다.
* * *
아침에 마을로 넘어가서 장을 봐온다.
점심이 지나고 마을 순찰 중인 이장과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매장을 정리한다.
손님은 하루에 한두 테이블 정도? 심지어 그조차도 없는 날도 있었다.
이삼일에 한 번씩 배가 불러서 움직이기 힘든 수진을 위해 음식을 포장해가는 민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갔다.
매장 불을 끈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평소보다 문 닫는 시간보다 일렀다.
“이거면 오픈 전이랑 다를 게 없네. 그렇지?”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아직 첫 주야. 조급해하지 말자.”
내일은 월요일.
매장이 쉬는 날이었다.
솔직히 다른 날도 문만 안 닫았지, 쉬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휴무를 없앨 생각은 없었다.
일요일은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문을 닫고 이세계로 향한다.
매장을 열기 전부터 정해놓은 규칙이었다.
설기를 위한 것도 있지만 강현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매장을 닫은 강현은 미리 싸놓은 배낭을 짊어졌다.
“자, 그럼 갈까?”
강현의 물음에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따로 장 볼 필요는 없었다. 매장에서 남은 재고를 가져가면 되었다.
그렇게 강현은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 * *
할아버지 댁에서 장비를 챙겨서 이세계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던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겠네.’
이렇게 짐이 늘어나면 이동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설기가 강현에게 다가와서 짐을 들고 있는 손을 핥았다.
“응? 네가 들겠다고?”
“컹!”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그리고는 빼앗듯 낚아챘다.
가뿐하게 걸음을 옮기는 설기를 본 강현의 눈이 커졌다.
‘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설기의 힘이 강현보다 강했다. 그러나 곧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그 큰 사냥감도 끌고 오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있었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가방.
나무뿌리와 돌부리에 부딪히고 있었다. 가방을 들고 가기에는 몸집이 너무나 작았다.
저러다간 안에 있는 장비와 식자재가 전부 상할 거다.
“설기야. 내가 들게.”
앞서 걷고 있던 설기의 걸음이 멈췄다.
“끼잉.”
설기의 귀와 꼬리가 축 처졌다. 강현은 그 모습에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마음만 받을게.”
그리고는 가방을 들어 올렸다.
“오늘도 전에 갔던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괜찮아?”
“컹! 컹!”
설기가 씩씩하게 짖었다.
강현의 머릿속에 전에 만났던 꼬마가 떠올랐다.
‘설마, 또 오진 않겠지?’
강현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