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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발하고 그래.
치익, 불꽃이 하늘하늘 춤을 췄다.
처음은 센 불.
끓기 시작하면 중불에서 고기가 익을 때까지 천천히 졸여주면 된다.
요리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불을 본 강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꽤 오래 걸리겠네.’
버너에 비해서 냄비가 너무 컸다. 고기가 익으려면 한참이 걸릴 거다.
‘다음에는 버너를 사야 하나?’
곧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이래서 캠핑이 무서운 거다. 다른 취미도 마찬가지겠지만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하나둘 모으다 보면 끝도 없었다.
결국, 강현은 불에서 시선을 뗐다.
계속 보고 있는다고 불씨가 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옆에 보니 설기가 멀뚱멀뚱 불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완성되기 기다리는 것이었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듯이 흔들리는 꼬리.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오래 걸리니 놀고 와.”
“끼잉?”
강현의 말에 설기의 고개가 돌아갔다. 하지만 선뜻 발이 안 떨어지는지 냄비와 강현을 돌아보았다.
강현은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아까 도와주느라 못 놀았잖아. 괜찮으니 다녀와.”
이 속도라면 적어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릴 거다.
강현의 손짓에 설기가 엉덩이를 뗐다.
숲을 향해 몸을 던지는 설기. 강현이 놀아주긴 하지만, 강현의 체력으로는 설기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다.
그렇게 설기가 떠나가고 강현은 홀로 남아 불을 바라보았다.
밤이었다면 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겠지만, 아직은 낮이었다.
“나도 할 일을 해야지.”
혹시 모르니 알림을 맞춰 놓은 뒤, 일어나서 타프와 텐트를 설치했다.
익숙한 움직임.
처음 캠핑을 시작했을 때는 텐트 설치만 삼십 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타프까지 설치하는데,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안에 매트와 침낭까지 설치한 후에 돌아오니 냄비 안이 끓고 있었다.
톡, 톡, 톡.
노크하듯이 냄비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야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줄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현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바람 소리와 냄비의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냄비 뚜껑 틈새로 김치와 익기 시작한 삼겹살의 냄새가 조금씩 올라왔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삐비비비빅.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끈 강현이 뚜껑을 열자 뿌연 김과 함께 삼겹살과 김치의 향이 퍼져나갔다.
빨간 김치 위에 잘 익은 삼겹살이 보였다.
삼겹살 김치찜.
냄새만으로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처음 도전치고는 나쁘진 않네.”
박씨 할머니의 말대로 한식 경험은 적은 강현이었다.
강현은 젓가락을 꺼내서 삼겹살을 찔러보았다. 부드럽게 들어가는 젓가락.
안까지 다 익은 것이었다.
“좋아.”
강현은 불을 끄고 잠시 식힌 후 고기를 꺼냈다.
접이식 도마, 그리고 손바닥만 한 길이의 작은 식칼.
매장에서 쓰는 것과 비교하면 부족한 장비들.
그러나.
‘야외에서 이 정도면 훌륭하지.’
부서지지 않게 살살 고기를 썬다.
곧 뽀얀 속살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은 썰어놓은 고기를 팬 위에 옮겨 담고 김치 역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냈다.
김치는 도마에 올릴 수 없기에 가위로 잘랐다.
‘이건 빼야지.’
혹시 모르니 페페론치노와 통후추를 건져냈다.
평소의 설기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입을 넣을 거다.
그렇게 김치까지 담고 있으니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설기인가?’
슬슬 냄새를 맡고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딱 맞춰서 왔···.”
뒤를 돌아본 강현이 입을 다물었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귀는 설기의 것이 아니었다.
금세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으나 강현이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갈색 귀.
늑대라기보다 고양이에 가까웠다.
게다가 수풀 사이로 비친 그림자의 크기를 보면 설기보다 조금 커 보였다.
야생동물.
한순간에 긴장감이 올라왔다.
그렇다. 이곳이 야생이란 걸 잊고 있었다.
김치를 내려놓은 강현이 식칼을 잡았다.
그때, 바람이 불어오면서 수풀이 흔들렸다.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뾰족한 귀와 꼬리. 그와 함께 그림자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어린, 애?”
잔뜩 몸을 낮추고 이쪽을 바라보는 앳된 얼굴.
똘망똘망한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식칼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꼬마 아이였다.
들켰다는 걸 알아챘는지 꼬마는 숨기는 기색도 없이 강현을 향해 슬금슬금 네 발로 걸어왔다.
털이 복슬복슬하게 나 있는 손은 사람과 동물, 그 사이의 형태였다.
강현은 꼬마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고기를 올려놓은 팬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강현이 한눈을 팔자 꼬마가 움직였다.
‘아차.’
강현이 다급히 팬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꼬마가 더 빨랐다.
동물처럼 재빠른 움직임.
강현을 지나쳐 순식간에 팬 앞에 도달했다.
그때.
“컹!”
하얀 털 뭉치가 꼬마를 향해 쏘아졌다.
설기였다.
우당탕. 흙 위를 구르는 설기와 꼬마 아이.
“캬악! 캭!”
“그르르르.”
서로 뒤엉켜서 데구루루 굴렀다. 뒤늦게 강현이 정신을 차렸다.
팬과 냄비에 뚜껑을 덮고는 둘을 말리기 위해 다가갔다.
몸싸움은 설기가 우세했다. 작은 덩치로 꼬마를 제압하고 있었다.
“설기야. 잠깐···.”
설기를 제지하려던 강현은 설기의 발톱이 나와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봐주고 있는 건가?’
강현의 예상대로 싸움은 금세 끝이 났다.
도망치듯 뒤로 물러나는 꼬마. 설기는 그런 꼬마를 쫓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강현 옆으로 와서 자리 잡았다.
꼬마는 털을 세우고 이를 드러낼 뿐, 강현과 설기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설기. 너, 정말 대단하구나.”
“컹!”
당연하다는 듯이 턱을 치켜올리는 설기.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이쪽을 힐끗거리는 꼬마를 살폈다.
‘역시 애가 맞아.’
오밀조밀 귀여운 얼굴.
짧은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사람의 것과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현의 시선이 아이의 귀로 향했다.
“...여기 사람들은 저런 귀를 가진 건가?”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안다. 얼마 전에도 란돌프를 만나지 않았던가.
게다가 란돌프의 손도 멀쩡했다.
‘유난히 크긴 했지만.’
저렇게 동물의 손처럼 생기진 않았었다.
그러던 강현의 머릿속에 란돌프의 말이 떠올랐다.
“...이족, 이었나?”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이민족 같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인간과 다른 종족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존재들.
“다른 세계는 다른 세계나 보네.”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다.
그때, 설기가 강현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헥헥.
길게 나온 혀. 흔들리는 꼬리와 반짝이는 눈동자.
기대감 가득한 눈빛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금방 줄게.”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멈추긴 했지만, 음식은 완성되었다.
이제 담기만 하면 되었다.
강현은 그릇 위에 김치와 삼겹살을 소복하게 올렸다.
그러자 바로 입을 가져가려는 설기.
“잠깐만.”
강현은 설기를 제지하고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얘랑 얘는 같이 먹어야 해. 이렇게.”
삼겹살 위에 김치를 올린 후 설기에게 건넸다. 잠시 머뭇거리던 설기가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가져가는 설기.
텁.
“...!”
곧 설기의 꼬리가 흔들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꼬리를 보며 강현이 미소 지었다.
“맛있지?”
강현이 물었으나 이미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놔두고 자신의 접시에도 담았다.
붉은 김치와 새하얀 고기가 올라왔다.
‘...밥을 가져올 걸 그랬나?’
미각이 둔감해지고 나서 입맛이 줄어든 강현도 혹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없는 걸 찾아도 소용이 없었다.
강현은 대신 아까 붓고 남은 소주를 꺼냈다. 젓가락을 들어 올리는 강현.
그리고.
“...음.”
다시 내려놨다.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아직 안 간 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꼬마.
침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설기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은 그런 꼬마를 보며 접시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그 위에 고기를 덜었다.
‘김치는···.’
김치 자체가 맵기도 하지만 고춧가루와 페페론치노도 들어갔다.
강현은 혹시 모르니 조금만 올렸다.
그렇게 음식을 올린 접시를 꼬마에게 내밀었다.
“먹을래?”
강현의 물음에 꼬마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설기는 힐끗 꼬마를 보다가 다시 제 그릇에 머리를 박았다.
허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제야 꼬마도 조심스레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은 설기가 무서운지 강현이 있는 곳까지 오지 못했다.
강현은 그런 꼬마를 위해 앞쪽에 그릇을 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킁킁.
강현이 떠나가자 다가와서 냄새를 맡는 꼬마.
그리고 삼겹살을 향해 입을 가져갔다.
‘...역시, 손으로는 안 먹는구나.’
오물오물. 작은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곧 꼬마의 귀가 쫑긋 올라갔다. 그리고 꼬리 역시 흔들렸다.
꼬마는 삼겹살을 먹고 용기를 얻었는지 이번에는 김치를 향했다.
그리고.
“읏. 으갹.”
코를 부여잡고 몸부림쳤다.
당황한 강현이 물병을 들고 꼬마에게 다가갔다.
경계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벌컥벌컥 들이켜는 꼬마.
커다란 눈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강현은 태연스럽게 김치를 먹는 설기를 보았다.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고 말하는 듯한 순진한 눈망울.
앞에 있는 꼬마보다 더 사람 같은 설기였다.
그렇게 진정되자 꼬마는 그릇을 노려봤다.
다시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컹!”
“어, 알았어.”
어느새 그릇을 다 비운 설기의 부름에 강현이 몸을 일으켰다.
강현은 빈 그릇에 고기와 김치를 새롭게 담았다.
그 모습에 그릇을 노려보던 꼬마의 시선도 돌아갔다.
“...”
“...”
설기와 꼬마.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설기는 보란 듯이 김치를 삼켰다.
그리고는 위풍당당한 얼굴로 꼬마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강현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꼬마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꼬마의 두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곧 무언가를 결심한 듯 그릇을 향해 얼굴을 가져갔다.
“아니, 그럴 필요는···.”
김치와 삼겹살을 삼킨 꼬마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삼 초가 지나자 눈이 다시 떠졌다.
눈만 떠진 게 아니었다.
눈이 떠짐과 동시에 눈물과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훌쩍, 코를 먹었지만, 도로 다시 나왔다.
시뻘겋게 변한 코.
“으기···.”
꼬마는 울먹이며 설기를 노려보다가 도망치듯 떠나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꼬마.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떠나는 것 역시 갑작스러웠다.
“...왜, 애를 도발하고 그래.”
강현은 질책하듯 설기를 보았다. 그런 강현의 말에 설기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싶은 것이었다.
의젓해 보여도 역시 애는 애였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꼬마가 떠난 자리를 보았다.
‘괜찮으려나?’
강현은 볼을 긁적이고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