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2화 (1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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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걸음

웃음을 흘린 강현이 입을 열었다.

“다음 주, 편하실 때 말씀해주세요.”

원래 다음 주 오픈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일주일 정도 늦어져도 상관없었다.

강현의 말에 이장의 눈이 커졌다.

“다음 주 말이지? 알았어. 내 바로 날을 잡아볼 테니!”

“그런데 전 무슨 준비를···. 가셨네.”

순식간에 사라진 이장을 보며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진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무슨 날짜요?”

“아, 잔치를 여신다고···.”

차마 제 입으로 환영회란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수진과 민호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죄송해요, 저도 잊고 있었어요.”

수진의 말에 오히려 강현이 머쓱해졌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오면 잔치를 하나요?”

강현의 물음에 수진과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마을이니깐요. 적은 사람들끼리라도 뭉쳐야죠. 준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을에서 알아서 준비할 거예요. 저도 모처럼이니 솜씨를 발휘해야겠네요.”

수진이 제 팔을 들어 올렸다. 강현은 임산부인 수진이 나서는 게 걱정되었으나 옆에 민호가 잠자코 있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수진을 보았다.

그렇게 일정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은 남았다.

“그럼 수진씨, 점례 할머님께 말씀 전해주세요. 요번 주말에 데려오라고.”

잔치를 하기 전.

상후의 기분을 풀어줘야 했다. 마을의 유일한 아이. 그래야 어른들도 편히 즐길 수 있을 거다.

강현의 말에 수진과 민호가 미소 지었다.

그렇게 둘이 떠난 뒤, 강현은 생각에 잠겼다.

이장이 아무 요리나 괜찮다고 했고 둘 역시 이장의 생각에 공감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건 해봐야지.”

이곳에 없다면 다른 곳에서 구하면 되었다. 롯데월드로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

롯데월드 안에 있는 매장 대부분은 서울에도 있을 거다.

차가 없는 강현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차가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지.’

핸드폰을 들어 올린 강현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눈과 마주쳤다.

꼬리를 흔드는 설기.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피식 웃은 강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에도 잘 부탁해. 파트너.”

“컹컹!”

설기가 늠름하게 짖었다.

* * *

“시간이야 있지. 네가 부탁이라니 별일이네. 뭔데? 뭐? 롯데월드 안에 있는 수제 햄버거? 알 것 같기도 한데. 지금 당장?”

전화를 받은 윤섭은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상대는 제 할 말만 끝내버리고 전화를 끊은 뒤였다.

그러나.

“...얘는 대체 그곳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얼마 전에 통화하니 돈가스를 만들고 있지 않나.

이번에는 햄버거였다.

미각이 돌아왔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그건 아니란다.

‘햄버거 회사에서 의뢰라도 들어왔나?’

신제품 제작. 지금은 조용해졌지만, 예전 강현의 명성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했기도 하고.’

지금은 줄었지만, 과거에는 로열티로 쏠쏠하게 벌었다.

“평창에 있던 친구분 맞죠?”

그때 뒤에서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귀여운 인상의 소녀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에 윤섭이 맡게 된 유니즈라는 걸그룹이었다.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

“그 요리하신다는 분?”

“맞아, 맞아.”

방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윤섭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들은 윤섭의 친구가 강현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알았다면 더 소란스러워졌겠지.

그렇기에 윤섭도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현을 생각하면 말할 상황도 아니었다.

“너희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돼? 곧 리허설 아니야?”

윤섭의 말에 화들짝 놀란 아이들이 몸을 푸는 척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곧 다른 화제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들을 본 윤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이 좋았지.’

개성이 강한 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녀들.

기가 빨린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 * *

읍내로 나간 강현은 서울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 강현의 곁에는 민호와 설기가 서 있었다.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일이 끝나서 시간이 있습니다.”

민호가 담담하게 내뱉었다. 택시를 부르려는 강현을 발견한 민호가 강현과 설기를 태워서 온 것이었다.

그때, 설기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꼬리를 흔들었다.

“컹! 컹!”

멀리서 들어오는 버스. 서울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를 본 민호의 눈이 커졌다.

“설기가 영리하네요.”

“...예.”

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똑똑해서 문제였다.

그러나 민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단순히 차가 오니깐 짖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읍내라지만 버스처럼 큰 차는 드물었다.

버스가 멈추자마자 설기가 먼저 달려갔다. 그리고 강현과 민호 역시 설기를 뒤따랐다.

“혹시 서울에서 짐이 오지 않았습니까?”

“아, 잠시만요.”

강현의 말에 기사 아저씨가 옆문을 열었다. 안에 들어있는 아이스박스 하나.

아이스박스를 확인한 설기가 눈을 빛냈다.

본능적으로 제 것이란 걸 알아챈 것이었다.

“이강현, 맞죠?”

“예.”

“물건은 여기서 가지고 가시고. 저쪽, 사무실에서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기사 아저씨의 말에 민호가 아이스박스를 들었다.

“차에 실어놓을 테니 다녀오십시오.”

강현은 민호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물건을 받았다는 서명하고 민호의 트럭에 올랐다.

민호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강현에게 물었다.

“아까 읍내에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왕 왔으니 볼일도 보고 가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것만 해도 충분해요.”

뒤에는 빵과 고기를 비롯하여 식자재들이 실려 있었다. 버스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장을 본 것이었다.

남은 건 장비를 사는 일이었다. 대충 보고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런 강현의 말에 민호도 더 권유하지 않고 트럭을 출발했다.

흙이 잔뜩 묻은 낡은 트럭이 마을을 향해 떠나갔다.

* * *

다음 날, 강현은 아침 일찍부터 주방으로 내려왔다.

재료를 꺼내놓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수제 햄버거.

쇠고기와 돼지고기 다진 걸 담고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넣고 섞어줬다.

익숙한 손놀림.

‘오랜만이네.’

미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식.

당연히 강현 역시 미국에서 유학할 때 자주 먹었었다.

자신 있던 음식 중 하나.

어찌 보면 추억의 음식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요리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미국까지 넘어갔었다.

‘...미련했었지.’

하지만 그때만큼 열정적이었을 때도 없었다.

어렸던 만큼 호기로웠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때의 강현이 지금의 강현을 보며 어찌 생각할까?

피식, 웃은 강현은 팬을 잡았다.

“...그래, 언제까지 제자리걸음을 해서는 안 돼. 그렇지?”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힘차게 대답했다.

달궈진 팬 위에 기름이 떨어졌다.

* * *

그날 주말, 점례 할머니와 상후가 찾아왔다.

뒤에는 민호와 수진 부부도 함께였는데, 점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온 상후는 아직 기분이 풀어지지 않았는지 뚱한 표정이었다.

입을 삐쭉 내민 상후.

할머니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그래도 손만은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매장 구석에 앉아있는 설기를 발견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토라졌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점례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할머니! 멍멍이야!”

“그러네. 잘생겼구먼.”

설기는 둘을 힐끗거리더니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수진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혼자 오시기 적적하시다고 해서 같이 왔는데 괜찮을까요?”

“예, 괜찮아요.”

적적하다고 돌려 말했지만 낯선 매장에 혼자 오시기 불편한 것이었다.

강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오히려 좋았다.

내심 너무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나 걱정이 되던 찰나였다.

점례 할머니는 불안한 눈빛으로 매장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그, 참말로 함버그가 있는 건가?”

수진을 향해 물었지만, 강현이 나섰다.

“예, 있어요. 준비해드릴게요.”

강현은 차분하게 점례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민호와 수진은 점례 할머니와 상후를 이끌고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상후가 신기한지 매장을 살피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강현은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치익.

빵을 오븐에 넣고 초벌을 해놨던 패티를 팬 위에 올린다.

곧 기름 소리와 함께 패티의 향이 매장 안으로 퍼져갔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 위에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 그릴에 구운 양파를 올리고 소스를 뿌린다.

소스는 마요네즈, 케첩, 머스타드 소스를 적당한 비율로 섞은 후 피클을 다져서 넣은 것이었다.

피클의 새콤함이 패티의 느끼한 맛을 잡아줄 거다.

그리고는 팬 위에 놓인 패티 위에 치즈를 깔고 불을 끈 후에 뚜껑을 덮어준다.

그사이에 튀겨놓은 감자를 건져서 소금에 간을 한 후, 각자의 접시에 플레이팅 해준다.

감자를 찍어 먹을 수 있는 케첩은 미리 접시에 놓여 있었다.

플레이팅을 끝내고 팬 뚜껑을 열자 치즈가 패티 위에 녹은 게 보였다.

이 모든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패티를 올리고 빵을 올린 후 데리야키 소스를 뿌린 뒤, 살짝 눌러준다.

그리고 모양이 무너지지 않게 이쑤시개로 고정하면 끝.

이쑤시개에는 멋들어진 깃발이 달려 있었다.

강현은 접시를 들고 홀로 나갔다.

“주문하신 햄버거 나왔습니다.”

민호와 수진의 눈이 커졌다. 강현이 가지고 온 접시가 네 개였기 때문이었다.

“저희 것까지···.”

“미리 준비해놓은 게 있어서요.”

강현과 설기가 먹을 몫이었다. 하지만 자신들 건 새로 만들면 되었다.

접시를 본 상후의 눈이 커졌다.

“우와.”

“...이게, 함버그 맞니?”

점례 할머니의 물음에 상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제야 점례 할머니의 입가에도 주름이 생겼다.

“어서 먹어봐.”

상후가 두 손으로 햄버거를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강현은 아차 싶어서 재빨리 주방으로 돌아왔다.

‘중요한 걸 잊었어.’

냉장고를 열자 미리 준비해둔 콜라가 있었다.

햄버거에는 이게 없어서는 안 되었다.

콜라를 가져다 준 후 돌아가는 강현을 민호와 수진이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음식이 나왔는데도 분주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무언가 튀기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곧 둘의 관심은 상후에게로 향했다.

“어때?”

수진의 물음. 점례 할머니도 먹지 못하고 상후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 있는 걸 삼킨 상후가 겨우 입을 열었다.

“맛있어! 고마워, 할머니!”

“아이쿠, 그려···.”

환하게 웃는 상후를 본 점례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민호와 수진도 미소 지었다.

뒤늦게 햄버거를 입으로 가져가는 둘.

곧 둘의 눈이 커졌다.

“맛있어요!”

“음!”

수진의 감탄사에 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수제 햄버거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강현이 만든 것은 달랐다.

좀 더 맛이 선명하고···.

‘따뜻해.’

다시 한 입 베어 무는 둘. 그러나 둘과 달리 점례 할머니는 낯선 음식에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점례 할머니를 본 상후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도 먹어봐!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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