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0화 (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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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인가?

무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이세계.

여전히 푸르고 아름다웠다. 강현의 집도 시골이라 공기가 맑긴 하지만 이곳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졌다.

설기도 이리저리 바닥을 구르고 냄새를 맡으며 고향을 만끽하고 있었다.

강현은 뛰노는 설기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강아지 같았다.

다시 달리려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해.”

장비가 많았다. 멈칫한 설기가 강현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컹! 컹!”

그리고는 다시 숲을 누비기 시작한 설기.

강현은 천천히 설기의 뒤를 따랐다.

* * *

설기가 향한 곳은 첫날 봤던 강가.

어김없이 늑대 무리가 모여있는 게 보였다. 늑대들을 본 강현이 숨을 삼켰다. 그러나 설기는 그런 늑대 무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눈에 봐도 강현보다 거대한 녀석들.

“야, 잠깐만···.”

강현이 붙잡으려고 했으나 이미 설기는 떠난 뒤였다.

곧 늑대 무리에게 도착한 설기가 짖었다.

“컹! 컹컹!”

“그르릉.”

우두머리로 보이는 늑대가 낮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늑대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현에게 향했다가 떨어졌다.

강현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자 설기가 강현에게 되돌아왔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하얀 꼬리.

그렇게 강현에게 도착한 설기가 강현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기분 좋은 울음을 터트렸다.

오랜 시간 함께한 덕분에 의미가 짐작되었다.

“...이제 괜찮을 거라고?”

끄덕끄덕.

강현의 시선이 늑대 무리에게 향했다. 커다란 녀석들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물가에서 놀던 새끼 늑대들만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던질 뿐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그런 늑대들에게서 설기로 옮겨갔다.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대체 뭐가 뭔지···.”

설기의 존재 자체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덕분에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으니 괜찮은 건가?”

강현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강가의 바로 앞. 햇살에 비친 강물이 눈부셨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

강현은 배낭을 풀고 텐트를 꺼냈다. 그렇게 텐트를 설치하던 강현이 고개를 들었다.

설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곧 새끼 늑대 무리에 뒤섞여서 물놀이하는 설기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 좋은 광경.

그러나 새끼들 주변에 있는 늑대들을 보면 웃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강현의 마음은 평온했다.

‘설기 덕분이겠지.’

치익.

텐트 설치를 끝낸 강현은 맥주캔을 열었다.

* * *

설기가 돌아온 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잘 놀았어?”

“컹!”

고개를 끄덕인 설기가 강현 앞에서 몸을 털었다.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강현에게 다가와서 몸을 비볐다.

“잠깐, 다 젖잖아···.”

강현은 그런 설기를 들어 올려서 여분의 티로 물기를 닦아줬다.

꼼지락거리긴 했지만, 강현의 손길을 피하지 않는 설기.

설기는 물기가 사라지자 기대하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컹! 컹!”

설기의 눈빛을 읽은 강현은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놀았으니 이제 배가 고픈 것이었다.

배낭에서 장비를 꺼냈다.

언제나 들고 다니는 코펠 세트와 가스스토브.

그걸 본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도 바꿔야겠네.’

가스스토브 위에 올라간 팬을 보며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혼자였다면 상관없지만 설기와 함께하기에는 너무나 작았다.

설기 혼자 성인 2, 3인분을 먹는다.

적어도 4인용 코펠은 필요했다. 당연히 이소 가스만으로는 부족했다.

“오늘은 상관없겠지.”

그리 말한 강현은 디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래핑 된 소고기.

미리 소금과 후추로 시즈닝 해놓은 것이었다. 달궈진 팬에 오일을 두르고 고기를 올린다.

치이익.

연기와 함께 고기의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어느새 강현의 옆으로 온 설기가 팬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기가 점점 갈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이야르 반응.

환원당과 아미노기를 가지는 화합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었다.

고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음식에 쓰이는 반응이었다.

강현은 불을 줄이고 팬에 버터와 마늘, 허브를 넣었다.

그리고 녹은 버터를 고기 위에 끼얹기 시작했다.

치익, 치익, 치이익.

버터가 끼얹어질 때마다 고기에서 먹음직스러운 향이 올라왔다.

버터와 고기의 향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오븐이 없으니 불 조절만으로 고기를 익혀야 했다.

온도계가 없으니 내부의 온도를 감으로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건 강현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강현에겐 타고난 감각과 경험으로 쌓아 올린 기술이 있었다.

미각이 아니라 오로지 감각과 기술로만 할 수 있는 요리.

어쩌면 지금 강현에게 있어서 가장 자신이 있는 분야였다.

스토브 밸브와 팬의 높이만으로 불을 조절하던 강현의 눈빛이 변했다.

“...됐어.”

“컹!”

바닥에 설기가 흘린 침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강현이 스테이크를 잘랐다. 흘러나오는 육즙에 미소 지은 강현과 달리 설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기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소고기는 이장이 왔을 때 먹어봤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덜 익은 것처럼 보였다.

늑대 주제에 날 것을 싫어한다.

“그거랑 다른 거야.”

미디엄. 강현이 좋아하는 굽기였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스테이크는 완벽했다.

그런 강현의 말에도 의심의 눈길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피식 웃은 강현이 자신이 먹을 양을 덜고 남은 스테이크를 그릇에 옮겨줬다.

“먹어보면 알아.”

고개를 갸웃하던 설기가 스테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다.

“...!”

귀가 쫑긋, 하늘로 솟았다. 그와 함께 꼬리가 미친 듯이 움직였다. 방방 뛰는 설기.

지금까지 중 제일 격한 반응이었다.

그 모습에 강현도 미소 지었다.

허겁지겁 스테이크를 삼킨 설기가 다시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눈 녹듯 사라졌다.

“어때? 괜찮지?”

“컹! 컹!”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웃었다.

그리고는 팬 위에 새로운 고기를 한 덩어리 더 올렸다. 설기가 익어가는 고기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강현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설기와 함께 물놀이했던 새끼 늑대들이었다.

새끼 늑대들의 시선을 읽은 강현은 자신의 접시에 남은 고기를 새끼 늑대들에게 건넸다.

힐끗, 설기가 새끼 늑대들을 바라봤으나 곧 익어가는 고기로 시선을 돌렸다.

새끼 늑대들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조심스럽게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아직 뜨거운지 다시 뱉어냈다.

‘...그래,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그래도 맛은 있었는지 서로 조금씩 뜯어먹었다.

금세 사라지는 고기.

새끼 늑대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다시 강현에게 향했다. 설기에게서 자주 보던 눈빛.

뜨거운 시선들에 강현이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그렇게 많이는 없는데.’

이 녀석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강현을 구원해주는 이가 있었다.

“아우우우!”

우두머리 늑대의 울음소리. 화들짝 놀란 새끼들이 재빨리 무리로 돌아갔다.

우두머리 늑대는 새끼들이 도착하자마자 무리 일부를 남기고 떠나갔다.

떠나는 이들 중에는 새끼 늑대들도 섞여 있었다.

“...사냥 가는 건가?”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늑대들의 활동 시간이었다.

“컹!”

강현이 한눈을 팔고 있자 팬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설기 덕분에 정신을 차린 강현이 재빨리 손을 놀렸다.

* * *

가스의 불이 꺼졌다.

배가 부른 설기가 땅바닥에 배를 대고 누웠다. 강현 역시 오랜만에 마신 맥주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민호 부부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때, 설기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몸을 일으키는 설기.

강현도 자연스레 설기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달그락, 달그락.

쇳소리. 그와 함께 수풀 사이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타난 그림자를 본 강현은 숨을 삼켰다.

야생동물 따위가 아니었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갑옷.

그리고 강현이 놀란 만큼 갑옷의 주인도 당혹스러워했다.

“...사람?”

갈색 머리와 짙은 눈썹. 눈동자 색까지는 어두워서 구분이 힘들었지만, 동양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중년의 기사.

곧 기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군. 아랫마을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기사의 눈이 빠르게 강현을 훑었다. 늑대만큼이나 사나운 눈빛이었다.

강현을 보던 시선이 비어버린 냄비와 텐트로 향했다.

그러나 강현이 보기에는 사내의 복장이 더 특이했다.

‘갑옷이라니.’

밤이라 선선했지만, 갑옷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덥지도 않나?

“여행자인가?”

“예. 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은 기사의 말이 한국어처럼 들려온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이런 변방에?”

기사의 대꾸에 강현은 입을 닫았다. 자신이 봐도 수상해 보였다.

대답을 고민하고 있을 때.

“컹!”

기사를 향해 짖은 설기가 뒷발로 목을 긁적였다.

그러자 기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음.”

설기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기사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했군. 난 아래 영지의 기사인 란돌프라고 하네. 연기가 올라와서 확인차 왔을 뿐이야.”

기사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기사의 시선에 강현도 입을 열었다.

“강현입니다.”

담담한 강현의 말에 기사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통역 마법인가? 마법사는 아닌 듯하니 아티펙트겠군.”

기사는 혼잣말하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방해꾼은 이만 물러나지. 잘 알겠지만, 이 숲의 마수들은 위험해.”

거기까지 말한 기사의 시선이 강현 옆에 있는 설기를 향했다.

이미 기사에게서 흥미를 잃고 털을 고르는 설기.

“...하긴, 쓸데없는 걱정인가.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하지. 여행자.”

중년의 기사는 그리 말하고 떠나갔다.

그렇게 기사가 떠나가자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대체 뭐야···.”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잠깐만. 허리에 찬 거, 검이었나?’

갑옷을 입었으니 검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뒤늦게 그러한 사실을 떠올린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낯선 공간에서 무장한 이를 만났는데 놀란 게 전부였다.

“얘 때문인가?”

강현의 시선에 옆에 있는 설기에게 향했다.

졸린 지 길게 하품하는 설기. 놀랄 일이 하도 많아서 이제는 담담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여기 사람도 살고 있구나.”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이 좋은지 고양이처럼 갸르릉 우는 설기.

“...근데 너 야행성 아니야?”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럴 때만 말을 못 알아듣는 척을 한다. 강현은 피식 웃은 후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제 자자.”

* * *

마을로 돌아가던 란돌프는 뒤를 돌아보았다.

‘특이한 녀석이었어.’

통역 마법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불빛도 아티펙트처럼 보였다.

아니, 뒤에 있던 천막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편하고 가벼운 천막.

기사인 란돌프가 그 가치를 못 알아봤을 리가 없었다. 일반 여행자가 지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옷차림도 그렇고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얼굴도 곱게 자란 티가 났다.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지.’

필시, 귀족이나 상인 출신이 분명했다.

설령 귀족이라고 해도 숲에서 기사를 만나면 긴장할 거다.

그러나 사내에게 그러한 기색은 없었다.

‘게다가 그 늑대···.’

사내에게 적의를 보이자마자 앞으로 나섰다. 감각이 예민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로 늑대들이 다가왔다. 그를 모를 란돌프가 아니었다.

만일 검을 뽑았다면 일제히 달려들었겠지.

긴 털 회색 늑대.

이 일대를 지배하는 개체들이었다.

사납고 흉포하다.

녀석들이 나섰다는 건 사내 일행을 무리로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강현이란 사내 때문이 아니었다.

“...하얀 늑대. 정말로 존재했군.”

란돌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리 나쁜 녀석 같진 않으니.”

그렇게 마을로 걸음을 옮기던 란돌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흘러나왔다.

란돌프는 무심코 자신의 배를 쓸었다.

“...아까 냄새 때문인가.”

강가 주변에 남아있는 냄새. 그런 냄새는 처음 겪어봤다.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팠다.

‘대체 뭘 먹은 거지?’

한숨을 내쉰 란돌프는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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