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7화 (7/227)

────────────────────────────────────

────────────────────────────────────

일을 해야 술도 맛있는 거여

결국, 강현의 손은 허공만 훑고 내려왔다.

“그래, 맘대로 해라.”

저러다가 또 돌아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따라갈 체력도 없었다. 강현은 배낭에 기대어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강현의 예상대로 설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혼자만 돌아온 게 아니었다.

팔딱, 팔딱.

강현의 몸통만 한 한 물고기가 힘차게 뛰고 있었다.

원래 물고기가 땅에서 나는 것이었던가? 아니라면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은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생선을 내려놓은 설기가 몸을 털었다.

“컹!”

차가운 물방울이 튀자 강현의 정신도 돌아왔다.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거야.”

오면서 냇가나 계곡을 보긴 했지만 이만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

강현은 문뜩, 반대편에 있는 강을 떠올렸다.

‘에이, 설마···.’

아무리 설기가 빠르다지만 이 짧은 시간에 그곳까지 갔다 왔을 리가 없었다.

“그보다, 이 큰 걸 어떻게 들고 온 거지?”

어림잡아도 설기의 다섯 배는 되어 보였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땅에 나온 탓인지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생선을 보던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이걸 어떻게 하라고?”

“컹! 컹!”

신이 났는지 흔들리는 꼬리.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집에 있을 때도 사료를 먹지 않았다.

“...나보고 요리해달라고?”

끄덕끄덕.

위아래로 움직이는 작은 머리. 제대로 장비도 갖춰지지 않은 산속.

하물며 처음 보는 식자재.

강현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저거 지느러미야? 날개야?’

지느러미치고는 너무 컸다.

강현이 망설이자 설기가 물고기를 강현 쪽으로 밀었다.

생기를 잃어가던 물고기가 갑작스러운 자극에 다시 펄떡 튀었다.

동시에 젖은 흙들이 강현을 덮쳤다.

“...알겠으니 일단 치워 봐.”

그제야 물고기 꼬리를 물고 강현에게서 떨어트렸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꼬리에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있는 장비를 떠올렸다.

‘...얼추 될 것 같긴 한데.’

민물고기 종류. 생김새를 보면 가물치와 비슷했다.

어차피 너무 커서 통으로 굽는 건 불가능했다.

‘화력도 부족하지.’

장작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거기까지 생각한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준비부터 해야겠네.”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요리도 요리였지만 텐트도 쳐야 했다.

* * *

망설임은 짧았다.

텐트를 친 강현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땅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넓적한 돌멩이. 낑낑거리며 텐트가 있는 곳까지 들고 왔다.

“달이 밝아서 다행이네.”

전등 하나뿐이었다면 찾기 힘들었을 거다.

강현은 돌멩이에 물을 뿌리고 생선을 올렸다.

아직 살아있는지 팔딱팔딱 뛰는 생선. 나이프 손잡이로 기절시킨 후 비늘을 벗겼다.

전문 도구도 아니라 고작 캠핑용 나이프.

그러나 강현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비늘뿐만 아니라 지느러미도 제거한다. 이어서 내장까지 빼낸 후 잔여물들을 미리 파놓은 구멍에다 넣었다.

덩치가 덩치인지라 손질만 했음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스토브에 불을 켜고 팬을 올린다.

금세 달궈진 팬. 그 위에 기름을 떨궜다.

강현은 그 위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은 생선 살을 넣었다.

세 조각만으로 팬이 꽉 찼다.

“컹! 컹!”

생선 살을 남긴 걸 보고 설기가 짖었다.

“...먹고 또 해줄게.”

강현이 산 코펠 세트는 일인용이었다. 당연히 올릴 수 있는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강현의 말에 설기가 얌전해졌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힐끗거리고는 생선에 집중했다. 익어가는 생선 살 위에 후추와 소금을 뿌린다.

곧 겉이 바싹 익으면서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앞뒤로 노릇노릇 익자 강현은 버터를 한 조각 넣었다.

순식간에 버터 향이 산 전체로 퍼져갔다. 동시에 설기의 꼬리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이어서 산에서 가져온 열매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돌을 찾으러 다닐 때 챙긴 것이었다.

레몬이나 라임 향과 비슷한 열매.

생선 특유의 비린 맛을 잡아주기 위해서였다.

‘...괜찮겠지?’

생소한 열매.

일일이 설기에게 먹을 수 있는지 확인받긴 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곧 뚜껑 사이로 흘러나오는 향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이 상상한 것과 비슷한 향.

냄새를 맡은 설기가 인내심에 한계가 왔는지 팬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머리를 박고 낑낑거리기까지 했다.

산을 누비던 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강현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참아.”

요리는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요리사는 절대 조급해해서는 안 되었다.

강현은 불 조절을 하면서 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요리하면서 이렇게 설레는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최근에는 괴롭기만 했지.’

그전에는 일이기에 그저 숙제처럼 처리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팬에서 흘러나오는 향이 바뀌었다.

‘되었나?’

강현은 뚜껑을 열었다. 동시에 안에 갇혀있던 향이 한 번에 쏟아져나왔다.

강현은 눈을 감고 그 향을 느꼈다.

여러 향이 하나의 향으로 변하여가는 과정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결국, 참다못한 설기가 움직였다.

“잠깐, 익었는지 확인을···.”

하지만 이미 가장 큰 살덩어리를 가져간 설기였다.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오는 상태.

“하긴, 상관없나.”

뜨거운 라면까지 먹고도 멀쩡한 설기였다. 일반적인 기준을 생각하면 안 되었다.

팬을 통째로 가져가지 않고 남겨 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었다.

강현은 작은 살덩어리 하나를 냄비에 던 후에 남은 팬을 설기에게 건넸다.

이미 반 이상을 먹어 치웠기 때문이었다.

냄비를 들고 향을 맡았다.

‘조금 향이 진하네.’

다음에는 열매 반만 써도 충분할 거다. 강현은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잘랐다.

바삭한 부분이 갈라지면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렇게 잘라낸 살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바삭한 겉과 달리 속은 부드러웠다.

그리고 맛은···.

“...역시.”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한 맛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굳이 강현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방방 뛰던 설기의 입이 다시 움직였다.

아까부터 멈출 줄 모르는 꼬리.

신이 난 듯 춤을 추는 꼬리가 요리의 맛이 어떤지 알게 해주고 있었다.

스튜나 라면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피식 웃은 강현의 젓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것도 나쁘진 않네.”

맛은 느낄 수 없지만, 참으로 즐거운 식사였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설기가 팬을 강현에게 밀었다. 깨끗하게 비운 팬.

얼마나 깨끗이 먹었는지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반짝이는 두 눈이 강현을 향했다.

굶주린 맹수의 눈빛.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컹! 컹!”

“...”

먹던 걸 내려놓은 강현은 다시 팬을 잡았다.

* * *

다섯 번.

그 뒤로 강현이 생선을 구운 횟수였다. 열매를 가지러 두 번이나 산으로 향했다.

만족스러운 듯 배를 깔고 엎드린 설기를 보며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어떻게 저게 다 들어갔지?’

이 세계보다 더 신비로웠다.

물티슈로 팬을 닦던 강현이 갑작스레 눈살을 찌푸렸다.

찌릿.

손목에 통증이 올라온 것이었다.

‘...무리했나 보네.’

이틀 동안 매장과 할아버지 집을 청소했다.

게다가 작은 나이프 하나로 생선을 손질한 것도 컸다. 팬을 내려놓은 강현이 손목을 돌렸다.

그러자 엎드려있던 설기가 강현에게 다가왔다.

“낑, 끼잉.”

강현을 걱정해주는 듯 몸을 비볐다.

“괜찮아.”

강현은 웃으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설기가 강현의 손목을 핥았다. 통증이 있던 부위.

“정말로 괜찮다니깐···. 어?”

설기를 말리려던 강현의 눈이 커졌다.

손목에 시원한 느낌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청량감.

강현은 놀란 눈으로 설기를 내려다보았다.

“대체.”

통증이 가라앉았다.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대단한 일이었다.

설기가 일반 늑대가 아니란 건 알았지만···.

“컹! 컹!”

설기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마치 나 잘했지? 하고 뽐내는 듯했다.

피식, 웃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기분 좋게 우는 설기를 보며 강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근데, 양치는 좀 해야겠네.”

팔목의 냄새를 맡은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강현을 본 설기의 움직임이 멈췄다.

“농담이야. 농담. 아얏.”

결국, 설기의 앞발에 맞은 강현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 * *

텐트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상쾌한 기분으로 텐트를 나온 강현은 제 눈을 의심했다.

“컹! 컹!”

언제 일어났는지 텐트 앞에서 강현을 맞이하는 설기.

그러나 그 옆에는···.

꿈틀, 꿈틀.

거대한 뱀이 한 마리가 있었다.

뱀이 입을 벌리지 못하게 앞발로 누르고 있었다. 아니,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설기의 꼬리가 흔들릴 때마다 뱀의 몸도 꿈틀거렸다.

“컹!”

강현이 움직이지 않자 다시 짖는 설기. 그제야 강현의 정신도 돌아왔다.

“...그건 못해.”

설기가 고개를 갸웃한다. 어째서 못하냐는 물음.

그러나 당연했다.

뱀이라니. 요리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

강현의 단호한 눈빛에 설기의 귀가 쳐졌다.

“컹···.”

아까보다 작아진 소리. 이거 맛있는데 하고 항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가서 풀어줘.”

결국, 흔들리던 꼬리도 멈췄다.

시무룩해진 설기가 앞발을 내려놓자 뱀이 재빨리 움직였다.

깜짝 놀란 강현이 뒷걸음쳤지만, 그보다 빠르게 도망치는 뱀이었다.

강현은 산속으로 사라진 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생의 숲.

어쩌면 이 안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설기가 아닐까.

강현의 시선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순식간에 주말이 찾아왔다.

이장은 우직해 보이는 청년 하나를 데리고 왔다.

나이는 삼십 대 초반 정도.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단단한 몸의 청년이었다.

“요 앞의 밭에서 농사짓는 정가네 아들내미. 나이가 비슷할 터니 친하게 지내.”

“...정민호입니다.”

이장의 소개에 청년이 무뚝뚝하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숫기가 없는데 사람은 진국이여. 요즘 저런 청년 찾기가 힘들어.”

“예. 이강현입니다.”

인사를 나눈 이장은 매장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음, 안 건드렸네. 잘했구먼.”

이장이 매장을 둘러보는 사이, 민호는 밖에 세워둔 트럭에서 페인트와 장비를 가져왔다.

강현이 뒤따라가서 짐을 받았다.

“그놈은 없나 보네?”

“아, 방해될까 봐 집에 놔두고 왔습니다.”

집이라고 해도 바로 위층이었다. 집 상태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려?”

이장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민호를 돌아보았다.

“후딱 처리하고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이장의 말을 신호로 강현과 민호가 움직였다.

* * *

이장이 호언장담한 것처럼 민호는 일을 잘했다.

묵묵히 페인트칠하는 민호.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외벽 작업까지 끝나가고 있었다.

잘 모르는 강현이 봤을 때도 자신이 칠한 것과는 달랐다.

“아이쿠, 오랜만에 일하려니 삭신이 쑤시는구먼.”

“얼마 안 남았으니 어르신은 쉬고 계세요.”

“아녀. 일을 해야 술도 맛있는 거여.”

이장은 고개를 젓고는 롤러를 굴렸다. 그때, 강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술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일부러 어제 읍내까지 나가서 장을 봐왔다. 그런 강현의 말에 이장이 반색했다.

“그려? 예의가 있는 총각이구먼. 그럼 술만 가져와. 안주로 먹을 고기는 있으니.”

그런 이장을 보며 강현은 처음부터 얻어먹을 생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마무리는 우리가 할 테니 그 짝이 술상을 준비혀.”

강현이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의 말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둘이 그렇게 나오자 강현도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