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6화 (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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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엉망인가?

“아이구. 다 울었네. 저걸 어째.”

안타까운 목소리.

고개를 갸웃한 강현이 이장의 시선을 따라 매장을 봤다.

나왔을 때와 같은 모습.

“...누가, 울었나요?”

뭔가 있는 건가?

강현의 물음에 이장이 혀를 찼다.

“페인트말이여. 눈물 자국 안 보여?”

이장의 말에 강현이 눈에 힘을 줬다. 그리고 이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

많이 바른 탓에 페인트가 방울져서 내려오고 있었다.

“사포도 없을 거 아녀?”

“예.”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자 이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거 그대로 놔둬. 이번 주말에 사람 불러서 할 테니.”

“아뇨. 괜찮습니다.”

“아니긴, 밖에서 사람 데려오면 출장비가 더 나가! 어려운 일도 아니니 괜히 돈 쓰고 그러지 마.”

강현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이장이 그런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정 뭐하면 끝나고 술이나 한잔 사주면 좋아할 거여. 이웃 좋다는 게 뭔가,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그리 말한 이장은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돌아봤다.

“더 손대지 말고 얌전히 놔둬. 알겠지?!”

그렇게 경고까지 하고 떠나가는 이장.

그런 이장의 모습을 보던 강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사람 부를 생각은 없는데···.”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매장으로 돌아온 강현은 자신이 페인트칠한 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엉망인가?”

모르겠다. 설기를 돌아보니 꼬리를 흔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천진난만한 설기의 모습을 보며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컹!”

저렇게 신신당부까지 했으니 더 작업하기도 힘들었다.

강현은 설기와 함께 이 층으로 올라갔다.

* * *

[푸하하. 역시 시골이라 인심이 좋네.]

다음 날 아침. 강현의 이야기를 들은 윤섭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게 인심이 좋은 건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런 강현의 반응에 윤섭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너, 찾아가서 거절하려는 거 아니지?]

“...”

[에휴. 네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호의까지 거부할 필요는 없어. 정 부담스러우면 그 이장이란 분 말대로 술을 사주거나 다른 걸로 보답하면 돼. 그러면서 관계가 쌓이는 거지. 거기서도 혼자 지낼 건 아니잖아?]

강현은 가만히 윤섭의 말을 들었다.

[들어보니 좋은 동네 같네. 요즘 시골도 옛날 같지 않아서 텃세가 심해. 이럴 때 안면을 익히는 것도 좋은 기회야. 고객도 확보하고.]

그리 말하고 웃음을 흘리는 윤섭이었다.

[그나저나 의외네. 예전의 너 같았다면 바로 발끈했을 텐데. 좀 여유가 생겼나 봐?]

윤섭의 말에 강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윤섭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예전의 강현이었다면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을 거다.

‘...여유가 생긴 건가?’

강현의 시선이 털을 고르고 있는 설기에게 향했다가 떨어졌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때, 핸드폰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아, 애들 끝났나 보다.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강현은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윤섭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애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애들이란 말을 했던 것 같았다.

강현이 알기로 윤섭이 담당하는 이는 한 명뿐이었다. 강현도 몇 번인가 만났었다.

“바뀌었나?”

그러나 강현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강현이 이장의 일로 고민하자 다가온 설기가 강현의 손등을 핥았다.

그래, 언제까지 피할 순 없었다.

매장을 열면 전과 달리 손님과 직접 대화를 나눠야 했다.

주방에만 있을 순 없었다.

“...어차피 급한 게 아니니.”

오픈이 일, 이 주정도 늦어져도 상관없었다.

그때, 침대에 있던 설기가 거실로 뛰어내렸다.

배라도 고픈 걸까?

아니었다. 밥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곧 설기가 무언가를 물고 왔다.

설기의 몸통보다 커다란 물체.

바로 강현의 배낭이었다. 그를 보며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고 싶은 거구나.’

하긴, 드넓은 야생에서 살아가던 설기였다. 강현의 집은 너무나도 좁게 느껴질 거다.

“좋아. 대신 가기 전에 청소 좀 하자.”

매장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댁.

아직도 먼지가 그대로였다. 어제 설기가 구르고 난 자국을 떠올렸다. 애당초 할아버지 댁에 간 이유도 청소를 위해서였다.

‘주말까진 시간이 남았으니.’

진작에 해야 할 일이었다.

강현의 말에 설기는 힘차게 짖었다.

“컹!”

강현은 피식 웃고는 배낭의 짐을 챙겼다.

* * *

콜록, 콜록.

기침하자 뿌연 먼지가 흩날렸다.

일 년 만에 쌓인 먼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 마스크를 썼음에도 먼지가 비집고 들어올 정도였다.

방 청소를 마치고 나온 강현은 복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발자국과 함께 몸을 구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눈밭에라도 온 듯이 신나게 구른 것이었다.

설기의 모습이 어떻게 됐을지는 눈에 선했다. 강현은 한숨과 함께 복도를 쓸어내렸다.

이제 남은 건 복도와 창고뿐이었다.

‘...시간이 빨리 가네.’

아침 일찍 온 것 같은데, 벌써 해가 머리 위까지 와 있었다.

하늘을 보던 강현이 다시 고개를 내렸다.

한가하게 하늘이나 바라볼 시간은 없었다.

“어서 정리하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빗자루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복도 청소가 끝난 무렵.

“카약! 캭!”

괴성이 들려왔다. 짐승의 울음소리. 강현은 빗자루를 내려놨다.

‘설기!’

설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창고였다. 강현은 서둘러 창고로 달려갔다.

그러나 창고 안에서 본 광경은 강현의 예상과는 달랐다.

‘살쾡이? 삵?’

강현으로서는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고양이가 아니란 건 확실했다.

고양이과의 맹수. 표범과 같은 줄무늬에 거대한 덩치.

사나워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벽에 바짝 붙어있었다.

마치 도망치고 싶다는 듯이 구멍이 있는 자리를 긁어내는 살쾡이.

발톱이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곧 벽으로는 도망갈 수 없다는 걸 알자 털을 세우고 위협했다.

“캭! 캬악!”

그 위협의 대상은 설기였다. 창고 앞에 선, 설기가 태연스럽게 뒷발로 목을 긁고 있었다.

먼지가 묻은 탓에 회색빛으로 변한 설기.

살쾡이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설기가 움직일 때마다 살쾡이가 움찔, 움찔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 강현은 먼지가 잔뜩 묻은 설기를 들어 올렸다.

“...너, 진짜 늑대구나.”

제 몸의 두 배는 넘어 보이는데.

설기는 왜 방해하냐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설기를 든 강현이 옆으로 피하자 살쾡이는 재빨리 문으로 도망쳤다.

순식간에 멀어진 살쾡이.

그 모습에 강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설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설기는 도도한 걸음으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빼꼼. 구멍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 가냐고 묻는 듯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청소 안 끝났어.”

배낭도 아직 방에 있었다.

그러자 다시 구멍 밖으로 나와서 자리에 앉는 설기.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사람처럼 말귀를 알아들었다.

하지만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녀석에겐 구멍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

살쾡이. 마치 구멍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게다가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럼 설기는 도대체 어떻게 온 걸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천진난만한 모습. 살쾡이를 위협한 존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를 본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자신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골치 아프게 생각해봤자 답도 나오지 않을 거다.

강현은 설기를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청소할게.”

“컹!”

설기의 외침을 들은 강현은 창고를 나와 복도로 향했다.

* * *

청소가 끝나자마자 설기와 함께 이세계로 넘어왔다.

청소하면서 쌓였던 먼지가 씻겨나가는 느낌.

설기 역시 기분이 좋은지 숲을 뛰어다녔다. 순식간에 멀어졌다가 나타나길 반복.

야생 동물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와 달리 강현은 관광이라도 온 듯 천천히 걸으면서 숲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걷고 있자니 어느새 설기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우우우우!”

하늘을 보며 하울링을 했다.

‘이런 모습은 정말 늑대답네.’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설기에게 화답하듯 멀리서 하울링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어딘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아우! 아우우우!”

마치 대화하듯 주고받는 하울링. 부모랑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가?

‘역시 무리가 있었어.’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톨이가 아니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한 게 아니었다. 강현이 안도하고 있자 이야기가 끝났는지 강현을 쳐다봤다.

흔들리는 꼬리. 초롱초롱한 눈빛은 빨리 가자고 닦달하는 것만 같았다.

“알겠어.”

강현의 말이 끝나자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앞장서서 걸어갔다.

강현은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설기가 가는 방향은 그 전과는 달랐다.

강의 반대쪽.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험난한 산길이 강현을 맞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가빠왔다.

결국, 중간중간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먼저 가던 설기가 멈춰 서서 강현을 돌아보았다.

“끼잉. 낑.”

못 따라오는 강현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안 되는데. 더 가야 하는데.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게 아니었다.

“...나름 체력에는 자신 있었는데.”

야생동물과 비교할 건 아니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경사는 또 왜 이리 높은지. 하물며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있지 않은가.

행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벌써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강현이 힘들어한다는 걸 깨닫자 설기의 행동이 분주해졌다.

산 위를 올려다보더니 갑작스레 방향을 틀었다.

“컹!”

어느새 작아진 털 뭉치를 보며 강현도 힘을 냈다.

“...그래, 가자.”

강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나무들이 사라졌다.

절벽 위, 트인 공간.

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강현은 숨을 삼켰다.

설기는 그 끝에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왜 이리 늦었냐고 타박하는 듯했다. 강현은 배낭을 내려놓고 설기의 옆에 앉았다.

굽이진 산맥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중심에는 태양이 걸쳐 있었다.

하늘과 녹색의 산맥이 점점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위를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무심코 뒤를 돌았던 강현은 숨을 삼켰다. 아직도 위가 보이지 않았다.

강현이 앉은 곳은 산의 중턱이었다.

“...설마 꼭대기에 오르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

끄덕끄덕.

설기의 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했으면 내일이 돼서야 도착했을 거다.

‘아니, 그 전에 쓰러졌겠지.’

피식 웃은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멋지네.”

설기가 조급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이 광경은 보지 못했겠지.

강현의 손길에 갸르릉, 하고 고양이처럼 우는 설기.

그도 잠시, 석양을 보던 설기가 벌떡 일어나더니 산속으로 뛰어들었다.

“야, 어디를···.”

설기를 불러세우려고 했으나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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