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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 참 잘생겼네
강현은 새끼 늑대를 구멍 너머로 보내려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돌려보내도 금방 다시 나왔다.
‘고집불통이야.’
누굴 닮은 건가.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할아버지 댁에 놔둘 수도 없었다. 결국, 강현은 새끼 늑대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싱크대에 가득 쌓여있는 그릇들이 무겁게 다가왔다.
‘좋아.’
새끼 늑대를 내려놓은 강현은 그릇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새끼 늑대는 낯선 광경이 신기한지 방과 거실을 분주하게 오갔다.
그렇게 음식물 통을 비우고 다시 가득 찰 때쯤.
주방이 깨끗해졌다.
꼬르륵.
그때, 강현의 배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제 스튜도 얼마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냉장고를 열어본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텅텅 빈 냉장고.
혼자였다면 대충 때워도 상관없었지만···.
강현의 시선이 이불을 물어뜯는 새끼 늑대에게 향했다.
저 녀석도 챙겨야 했다.
“...읍내로 나가봐야겠네.”
식자재뿐만 아니었다.
매장에 페인트칠도 새로 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새끼 늑대였다. 할아버지 댁에서 올 때는 택시 기사가 마지못해서 허락해줬지만 읍내는 달랐다.
“...밥 사 올 테니 얌전히 있어야 한다?”
“컹!”
힘차게 대답한 새끼 늑대는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불 솜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
불안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 * *
강현은 사료 하나와 간단히 먹을 것만 챙겨서 마을로 돌아왔다.
나머지는 양이 많아서 따로 배달을 부탁했다.
“컹! 컹! 컹!”
강현이 방으로 들어오자 새끼 늑대가 반겼다.
‘진짜, 개 같네.’
비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늑대가 아니라 개 같았다.
늑대가 낯선 사람을 이리도 따랐던 걸까, 그러나 강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컹!”
강현에게 반가움을 표한 것은 잠깐이었다. 그 뒤로 새끼 늑대의 관심은 강현이 들고 있는 봉지로 향했다.
“너도 배가 고팠구나.”
강현은 피식, 웃으며 봉지 안에서 사료를 꺼냈다.
그리고 접시에 부어서 새끼 늑대에게 건넸다.
하지만 새끼 늑대의 반응은 강현의 예상과는 달랐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맛도 보지 않고 그릇을 강현 쪽으로 밀었다.
“...”
강현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설마 개 사료를 먹지 않는 건가?
같이 가져온 간식을 뜯어줬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냄새조차 맡지 않았다. 흔들리던 꼬리는 이미 멈췄다.
시무룩해진 새끼 늑대를 보며 강현은 당혹해했다.
‘...설마, 개 사료를 안 먹나?’
문뜩, 장바구니에 가득 실어놨던 개 사료를 떠올렸다.
지금이라도 환불해야 하는 걸까? 혹시 몰라서 챙긴 고양이 사료가 있었지만 큰 기대는 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조차도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다.
강현이 당혹스러워하자 새끼 늑대가 일어나서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컹!”
강현은 눈을 깜빡였다.
“...해달라고?”
설마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컹!”
다시 살랑거리면서 움직이는 꼬리. 강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라면밖에 없는데.”
사료를 챙기느라 강현이 먹을 건 라면밖에 넣지 못했다.
강현의 말에 새끼 늑대가 턱짓했다.
그거라도 달라는 뜻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은 라면 봉지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얌전히 앉아서 강현을 지켜보는 새끼 늑대.
‘...얘. 진짜, 늑대가 아닌 거 아니야?’
전생에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이럴 수가 없었다.
라면 봉지를 뜯는 강현. 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강현이었지만 라면처럼 매운 걸 먹이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프를 빼야 하나?’
고민하던 강현은 냄비 두 개를 꺼냈다.
자신의 것과 새끼 늑대의 것.
한쪽은 수프를 넣고 다른 한쪽은 야채 후레이크만 넣었다.
‘얼마 만에 끓이는 라면이지?’
최근 몇 년간은 먹은 기억이 없었다. 인스턴트 식품을 싫어하는 강현이었지만, 지금은 요리할 기분이 아니었다.
라면이라면 부담감이 적었다.
금세 면이 익었고, 강현은 그릇 두 군데에다 라면을 담았다.
“됐지?”
하얀 라면을 식힌 후 새끼 늑대 앞에 놓고 빨간 건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러나 새끼 늑대는 자기 앞에 있는 라면을 먹지 않고 식탁 위에 있는 라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안 돼. 너무 매···.”
탁!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은 털 뭉치가 눈앞에 떠올랐다.
옆에 있던 의자를 밟고 뛰어오른 것이었다.
야생 동물다운 재빠른 몸놀림.
그리고 순식간에 라면 그릇에 머리를 박았다.
“잠깐!”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뜨거운 라면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고 있었다.
“야, 너 안 뜨거워? 아니, 안 매워?”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라면 한 그릇을 비운 새끼 늑대는 턱을 치켰다.
“컹.”
살짝 부족했는지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제자리를 도는 새끼 늑대.
“컹컹!”
강현에게는 새끼 늑대가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에 강현은 웃음을 흘렸다.
주방을 벗어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새끼 늑대.
그걸 보던 강현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라면으로 향했다.
수프를 넣지 않은 하얀 라면.
심지어 식히기까지 했다.
‘...그럼, 저건 내 밥인가.’
미각이 둔감해지긴 했으나 아무 맛도 못 느끼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걸 버리고 새로 하기도 귀찮았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그릇을 식탁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다가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야, 너 얼굴은 닦아야지!”
그러나 이미 새끼 늑대는 이불을 물고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강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아서 해라.”
이미 이불은 여기저기가 찢어져서 누더기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 라면 국물 조금 묻었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을 거다.
* * *
아침을 눈을 뜬 강현은 이불 밑을 확인했다.
엉망이 된 이불을 새끼 늑대에게 주고 새로운 이불을 꺼냈으나, 어느새 강현의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자는 새끼 늑대였다.
강현은 조심스럽게 이불에서 나왔다.
‘...두 번째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푹 잘 수 있었다.
한 번은 우연이라지만 두 번은 아니었다.
‘정말, 뭔가가 있는 건가?’
불면증이 이리도 쉽게 고쳐질 것 같았으면 그동안 고생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때, 새끼 늑대가 꼼지락거리면서 눈을 뜨는 게 보였다.
두리번거리던 새끼 늑대는 강현을 발견하고 다시 몸을 누웠다.
강현의 눈꼬리도 부드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아직이었네.”
이틀을 같이 보냈으니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강현은 방에 서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설기.
누워있는 모습이 백설기 모양을 닮아서 그리 지었다.
‘이름 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고작 생각한 게 백설기라니.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설기가 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이불을 가지고 장난치는 설기를 보던 강현은 장비를 챙겼다.
캠핑 장비가 아니었다.
전날 사 온 페인트였다.
강현이 페인트를 들고 일어나가 설기도 이불을 내려놓고 쫄랑쫄랑 따라왔다.
놀러 간다고 생각한 걸까.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일해야 해.”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밑으로 내려가니 공사가 끝나 있었다. 주방만 한 것이기에 오래 걸리는 공사가 아니었다.
강현은 어지러워진 바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강현의 옆으로 설기가 다가왔다.
“컹!”
몸을 비비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해야지.”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빗자루를 들었다.
공사의 잔재를 한쪽으로 쓸어낸다.
그런 강현을 바라보던 설기가 작은 앞발로 잔재를 밀었다.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설기가 기특해진 강현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지만, 덕분에 힘이 났다.
그렇게 둘이서 움직이다 보니 금세 정리가 되었다.
뻐근해진 허리를 펴면서 매장을 둘러보았다.
원래부터 큰 매장은 아니었지만, 주방이 늘어나면서 더 작아졌다.
‘테이블 다섯 개 정도인가?’
전에 일하던 곳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수준. 그러나 강현은 만족스러웠다.
“지금 나에게 딱 적당하네.”
“컹!”
맞장구치듯 짖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을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조차도 채우기 힘들 거다.
강현의 시선이 매장 구석으로 향했다. 전에 썼던 물건들이 구석에 쌓여있었다.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들.
‘나쁘지 않아.’
오히려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굳이 새로 살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비닐을 깔고 페인트칠할 준비를 했다.
물론, 그전에 설기에게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위험하니깐 만지면 안 돼. 알겠지?”
“컹! 컹!”
대답과 함께 땅바닥에 앉는 설기.
보통의 개나 고양이라면 저런 말을 한다고 지킬 리가 없었지만, 설기는 보통의 개나 고양이와 달랐다.
얌전하게 있는 설기를 본 강현이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페인트 역시 전체를 다 칠할 생각은 없었다.
기존에 있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지저분한 부분만 칠했다.
그렇게 실내 페인트칠이 끝나자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끝냈네.”
하지만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실내와 다르게 실외는 전체를 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난 거야?’
시계를 확인하니 작업에 들어가고 세 시간이 흘렀다.
기지개를 켜던 강현은 아차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작업에 집중하느라 설기를 신경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앉은 자리 그대로 잠이 든 설기.
그 모습에 강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설기가 깨지 않게 필요한 장비만 챙겨서 매장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점심때가 훌쩍 지나있었다.
“...빨리 끝내야겠네.”
자신은 상관이 없었지만 설기가 문제였다.
강현은 짧게 심호흡하며 각오를 다진 후, 벽에 페인트를 칠했다.
안과 달리 낡고 더러워진 벽면.
나무의 느낌이 나게 갈색과 녹색으로 칠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페인트를 벽면에 칠한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과 달리 색이 제대로 안 나오기 때문이었다.
‘...잘못 사 왔나?’
페인트 통을 확인했다. 그러나 안에 칠하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강현은 다시 한번 페인트를 듬뿍 묻히고 벽에 칠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불량품?”
“불량품은 무슨, 그 짝이 잘못 사 왔지.”
“...!”
텅.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란 강현이 뒷걸음치다 페인트를 쏟을뻔했다.
흔들리는 페인트를 붙잡은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녹색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노인.
“누, 누구시죠?”
“이 마을 이장.”
노인은 그리 말하고는 페인트칠해진 벽을 살폈다.
“밖에다 안에 쓰는 걸 바르니 쓰나.”
“예?”
“페인트말이여. 페인트. 그 짝이 사 온 건 실내용. 이런 데 칠하려면 수성이 아니라 유성을 샀어야지.”
이장의 말에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페인트에도 종류가 있는 것인가? 색만 맞춰서 고른 강현이었다.
그런 강현을 본 이장이 에잉하고 혀를 찼다.
“그것도 모르고 무슨 페인트칠을 하겠다고.”
그때, 잠에서 깬 설기가 몸으로 문을 밀고 나왔다. 길게 하품하더니 앞발로 눈을 비볐다. 그런 설기를 본 이장의 눈이 커졌다.
“고놈 참 잘생겼네. 시베안하스키인가 뭔가 하는 애인가?”
“...예.”
시베리안허스키를 말하는 것이었다. 강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 늑대라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길게 하품한 설기가 강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매장 안을 보던 이장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