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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늘어놓은 그릇들을 정리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만들었는지.
정신을 차리니 배낭에 장비를 넣고 있었다.
당장 떠나지 않으면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지금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렇게 택시에 오른 강현은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어휴. 가방이 뭐 그리 크나?”
“...캠핑용이에요.”
“캠핑? 젊은 양반이 대단하네. 지금 공사하는 집 총각이지?”
“...예.”
강현이 짧게 대답하자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강현을 힐끗거리더니 차를 출발했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한 강현은 바로 창고로 향했다.
“...역시, 있어.”
구멍. 강현은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곧 상쾌한 공기가 강현을 맞이했다.
주변을 가득 메운 녹음.
그 싱그러움에 복잡한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강현도 도망치는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집에 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다.
게다가.
‘...이번만이 아니니깐.’
캠핑을 시작한 계기가 그 때문이었다.
산속에 혼자 있으면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골치 아픈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취미라고 말하지만 결국, 피난처였다.
그리고 여긴 단절 정도가 아니라 다른 세상이었다.
강현은 무작정 발길을 옮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강 소리가 가까워져 있었다.
뒤늦게 주변을 살핀 강현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높게 솟은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을 때, 강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
강이 흐르고 있었다. 굽이진 강 너머에는 숲과 절벽이 보였고 그 끝에는 폭포가 있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폭포에서부터 흘러온 강물은 너무 투명해서 안의 물고기들이 전부 보일 정도였다.
졸졸졸.
흐르는 물을 따라서 수면 위에 비친 별들이 부서졌다.
이 모든 광경이 하나의 그림처럼 눈에 담겼다.
하지만 강현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강 근처에 모여있는 무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늑대?’
비슷했다. 전체적으로 회색 털을 지녔지만,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색만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언뜻 보면 하이에나와도 비슷했다.
강에서 물놀이하는 새끼들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들뿐만이 아니었다. 강을 중심으로 다른 동물 무리도 보였다.
강현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래, 좋은 자리일수록 경쟁이 심하지.”
서울도 야생도 같았다.
야생의 동물들에게 강은 생명줄일 거다. 그들도 물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식수를 챙겨온 강현은 굳이 그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강에 가까워지니 작은 동물들이 보이지 않았지.’
몇 번이나 마주쳤던 녀석들.
다람쥐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강 주변에는 없었다.
그렇게 강에서 멀리 떨어진 후에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을 보고 도망치는 동물들을 봤기 때문이었다.
“슬슬 쉴 곳을 찾아야겠어.”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가기는 너무 늦었다.
그리고 애당초 그럴 목적으로 텐트를 들고나온 것이었다.
곧 적당한 장소에 텐트를 쳤다.
자립식 텐트.
강현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자리에 앉아있을 때도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의 크기.
배낭에서 장비를 꺼내던 강현은 곧 실소를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챙길 건 챙겼네.”
가방 안에 음식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말린 육포와 말린 버섯, 그리고 생수.
‘아니, 미리 넣어놓은 건가.’
옆에 후추와 소금도 있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장비를 챙기다 같이 딸려온 것이었다.
지금 무언가를 해 먹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몸까지 괜찮은 건 아니었다.
조금씩 맛을 본 것을 제외하면 오늘 제대로 먹은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몇 시간이나 걸었다.
배가 고픈 게 당연했다.
육포를 만져보니 딱딱하게 굳어서 먹기 힘들어 보였다.
‘...얼마나 있던 거지?’
상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결국, 강현은 가스스토브에 불을 붙이고는 있는 재료를 다 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끓어오르기 시작한 냄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불이 흔들릴 때마다 작은 거품들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 주변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강현은 물이 반쯤 졸여진 후에나 숟가락을 들었다.
이미 불어서 말랑말랑해진 육포.
당연히 맛있을 리가 없었다. 둔감해진 강현의 미각으로도 알 수 있었다.
몇 숟가락 떠먹지도 못하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진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깜깜해진 시야가 자신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요리사가 요리를 내는 걸 두려워하다니.
정말로 끝이었다.
부스럭.
“...!”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강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가스가 떨어져서 불이 꺼진 상태.
어둠 탓에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착각? 아니야.’
그럼 벌레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벌레 소리가 그렇게 클 리가 없었다.
강현은 서둘러서 전등을 꺼냈다. 전등을 찾아서 불을 켤 때까지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머릿속에는 낮에 봤던 늑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때.
부스럭, 부스럭.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앞에 있어.’
마른침을 삼키는 정현. 그리고 수풀 속에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으나 나타난 존재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둠 속에서도 보일 정도로 새하얀 털 뭉텅이.
새끼강아지가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놀랐잖아.”
강현은 자신에게 다가온 새끼강아지를 쓰다듬었다. 야생 동물답지 않게 사람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비벼왔다.
갸르릉.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하는 새끼강아지.
그 모습에 강현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잠깐만, 개가 아니잖아.’
강현은 전등을 새끼강아지에게 비췄다. 순백의 털에 푸른 눈동자.
자세히 보니 늑대와 닮았다. 낮에 봤던 이들과는 다른 생김새. 오히려 이쪽이 강현이 알던 늑대와 닮았다.
강현의 손이 멈추자 새끼 늑대는 머리를 가져다 뎄다.
그리고는 무언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강현을 쳐다봤다.
계속 쓰다듬으란 뜻이었다. 강현의 손이 다시 움직이자 만족스럽게 웃었다.
“엄마는 어디 가고 혼자지?”
혹시 주변에 있는 건가? 풀렸던 긴장감이 다시 올라왔다.
그런 강현과 다르게 새끼 늑대는 강현의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태평하게 하품까지 했다.
그렇게 강현의 손길을 즐기던 새끼 늑대가 벌떡 일어났다.
강현은 새끼 늑대의 시선을 따라가고는 탄성을 뱉었다.
가스스토브 위에 올려진 냄비.
“먹고 싶어?”
“컹!”
마치 언어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까까지 얌전하던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늑대도 꼬리를 흔들던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냄비를 만져보았다.
가스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는지 냄비가 식어있었다. 강현은 안에 손을 넣어보았다.
안의 물은 미지근했다.
그걸 확인한 강현은 냄비를 꺼내서 새끼 늑대 앞에 놓았다.
머리를 박고 먹기 시작한 새끼 늑대.
그 모습을 본 강현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스튜라고 할 수도 없는 잡탕.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강현의 혼잣말에 열심히 먹던 새끼 늑대가 고개를 들었다.
갸웃하며 고개를 흔드는 꼴이 제대로 못 들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많이 먹어.”
다시 먹기 시작한 새끼 늑대. 정말로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새끼 늑대의 등을 쓰다듬었다.
곧 냄비를 싹싹 비운 새끼 늑대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축축하게 젖은 입. 그러나 눈빛만은 전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새끼 늑대의 눈빛을 읽은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 없어.”
“컹!”
“진짜야.”
“컹! 컹!”
그렇게 몇 번이나 짖은 후에나 음식이 없다는 걸 알아챘는지 귀가 축 처졌다.
꼬리 역시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에 올 땐 많이 가져올게.”
또 만날 수 있을 진 모르지만. 강현은 물티슈를 꺼내서 새끼 늑대의 입을 닦아주었다.
얌전히 상현의 손길을 받는 새끼 늑대.
금세 입 주변이 다시 깨끗해졌다.
“이제, 그만 엄마한테 가.”
그러나 새끼 늑대는 강현의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결국, 강현은 새끼 늑대를 놔두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러면 알아서 떠나겠지.’
늑대는 야행성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새끼 늑대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낑, 끼잉.”
새끼 늑대는 떠나지 않고 텐트 앞에서 애처롭게 울었다.
결국, 강현은 텐트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후다닥 들어와서 강현의 옆에 자리 잡는 새끼 늑대.
강현은 새끼 늑대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새끼 늑대가 나갈 수 있게 작은 틈만 남겨놓고 텐트를 닫았다.
어미가 근처에 오면 알아서 나가겠지.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누군가와 함께 자는 게 얼마 만이던가. 얼마 전에 윤섭이 왔다 갔지만 방은 따로따로였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잠을 못 자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불편할 거란 강현의 예상과 달리, 강현의 호흡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르게 변했다.
그렇게 강현이 잠이 들자 옆에 있던 새끼 늑대가 고개를 들었다.
텐트 너머.
어둠 속에서 불빛이 나타났다.
맹수의 눈동자. 하나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 수많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러나 나타난 맹수들은 새끼 늑대의 푸른 눈과 마주치자 조용히 뒷걸음쳤다.
새끼 늑대는 그림자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다시 강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 * *
꼬물꼬물.
눈을 뜬 강현은 옆에 누워있는 하얀 털 뭉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낮에 보니 하얀 털이 더 잘 보였다.
마치 눈처럼 깨끗한 털.
‘대체 얼마나 잔 거지?’
평소보다 몸이 가볍고 머리도 맑았다. 강현에는 낯선 감각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10시였다.
10시간을 넘게 잔 것이었다.
최근 이렇게 푹 잔 적이 언제였던가.
너무나 오래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침낭과 매트가 있다지만, 야외에서 잠은 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덕분인가?’
몸을 말아 누운 새끼 늑대를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강현은 새끼 늑대가 깨지 않게 텐트 밖으로 나왔다.
기지개를 켜자 상쾌한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푸르른 하늘.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텐트에서 털 뭉치 하나가 꼬물꼬물 기어나았다.
길게 하품하더니 마치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강현에게 몸을 비볐다.
그리고는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수풀로 향했다.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제멋대로 떠나는 새끼 늑대였다.
‘아직 새끼인 것 같은데, 혼자서 괜찮을까?’
강현은 새끼 늑대가 걱정스러웠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야생에서 온 만큼 강현보다 야생에 익숙할 거다. 강현이 걱정해줄 입장은 아니었다.
“나도 돌아가야지.”
덕분에 현실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텐트를 정리한 강현은 구멍을 통해서 현실로 넘어왔다.
그리고 집에 가려던 찰나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동물의 발걸음 소리.
또 고양이인가 싶어서 돌아본 강현의 눈이 커졌다.
“...너, 어떻게.”
새하얀 털 뭉치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떠났다고 생각한 새끼 늑대가 먼지 위를 구르고 있던 것이었다.
강현과 눈이 마주친 새끼 늑대가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