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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뭐 하는 거냐
부르르. 부르르.
귀에서 들려오는 진동에 눈이 떠졌다.
침대 위를 손으로 더듬는다. 그리고 곧 진동의 발생원을 찾을 수 있었다.
“...어, 왜?”
“몇 신데 아직도 자?”
익숙한 목소리에 강현은 핸드폰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11시. 언제 이런 시간이 되었지?
창문 너머로 비추는 햇살이 눈 부셨다.
“...어제 바빴어.”
최근 일 년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제도 해가 뜬 이후에나 겨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제까지 정말로 바빴으니.
강현이 이사 오고 벌써 사흘이 지났다.
다른 곳은 스스로 한다고 해도 주방만큼은 사람을 불러야 했다. 이곳까지 올 업체를 찾아서 미팅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할아버지 댁은 가봤어?”
“아직. 그보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이사 잘했나 전화한 거지.”
“잘했어.”
무뚝뚝한 대꾸에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너 정말 괜찮겠어?”
“어, 괜찮다니깐.”
“그래. 네 일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힘들면 전화하고.”
“알겠어.”
그렇게 전화가 끊어졌다. 덕분에 잠에서 깬 강현은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어제 무리하긴 했나 보네.’
손목이 아파졌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주자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통화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할아버지 댁.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강현의 부모님께서 관리하셨다. 관리라고 해도 일 년에 한두 번씩 들려서 청소하는 게 전부였다.
집 뒷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도 있어서 팔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놔둘 순 없었다.
이번에 강현이 평창으로 내려갔으니 집 정리를 부탁한 것이었다.
쓸만한 건 가져다 쓰라고 했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다.
“...굳이 뒤로 미룰 필요는 없지.”
강현은 겉옷을 걸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 * *
택시가 울퉁불퉁한 길을 달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문 밖의 풍경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기억이 뭉게뭉게 떠오른 것이었다.
‘...얼마 만이지?’
직업 특성상 명절이라고 해서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운이 좋아야 이틀 정도, 보통은 당일 하루 정도였다.
당연히 산소에 가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강현은 턱을 괴고 창문에 기대었다.
곧 용평마을이란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갈까요?”
“아뇨. 여기서 세워주세요.”
강현은 결제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때, 택시의 창문이 열렸다.
“학생, 이거 가져가요.”
학생. 강현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택시 회사의 이름이 적힌 명함 한 장. 명함을 받아든 강현이 의아해하자 택시 기사가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택시가 안 지나가요. 버스도 잘 안 다니고.”
“아, 감사합니다.”
강현이 인사를 하자 택시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떠나갔다. 택시 기사가 아니었다면 곤란할 뻔했다.
부모님하고 올 때는 늘 부모님 차를 타고 왔으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 마을로 향했다.
용평마을은 작은 언덕에 열 개 남짓의 집 정도가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어릴 적에는 좀 더 있었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많았다.
옛날 기와집들.
‘이것 때문에 가기 싫어했지.’
어린 강현에게는 무섭게 느껴졌다. 밤에는 화장실까지 가기 무서워서 문만 빼꼼 열고 밖에다 쌌다. 그러나 지금 보니 느낌이 달랐다.
강현의 할아버지 댁은 언덕 가장 위에 있는 집이었다.
낡은 기와집. 그 뒤로 보이는 작은 산이 전부 할아버지의 땅이었다.
할아버지의 산소도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이 집과 함께 강현의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강현은 기침했다.
“...먼지가.”
정리가 아니라 청소부터 해야 했다. 강현은 창문과 문을 전부 열었다.
그때.
쿵!
“야옹.”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새끼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시하기에는 울음소리가 너무 컸다. 게다가 울음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강현은 정리하던 걸 멈추고 일어났다.
“...뭐야.”
소리가 나는 곳은 집 뒤에 있는 창고. 강현은 곧 바닥에 떨어져서 울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딸칵. 노란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천장 위에는 어미 고양이로 보이는 녀석의 머리가 보였다.
‘이동하다가 떨어진 건가?’
아마 천장에서 살다가 강현이 나타나서 급히 새끼들을 옮기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새끼 하나가 구멍에 빠졌는데 구멍이 좁아서 내려오지는 못하고 저렇게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강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새끼고양이를 잡았다.
아등바등하며 강현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새끼고양이.
“얌전히 있어. 잡아먹을 거 아니니깐.”
강현은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천장에 닿지 않았다.
“밟을 만한 게 필요한데.”
그런 강현의 눈에 낡은 나무상자가 들어왔다. 군데군데 부서진 나무상자.
튼튼할 것 같진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강현은 나무상자를 받치고 다시 손을 뻗었다.
“닿았다!”
새끼고양이가 구멍 위로 올라가자 어미 고양이가 재빨리 새끼고양이를 낚아챘다.
후다닥.
천장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미의 뒤를 따르는 새끼고양이들.
고맙단 인사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매정하네.”
피식 웃은 강현은 고양이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때.
콰직.
나무상자에 발이 빠지면서 강현의 몸이 급속도로 기울었다.
“잠···.”
벽을 향해 쓰러지는 강현. 본능적으로 손을 뻗다가 아차 싶어서 거둬들였다.
손목에 부담을 줄 순 없었다.
그러던 강현의 눈이 커졌다.
‘벽이 원래 저랬나?’
창고의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게다가 구멍이라면 벽 너머가 보여야 했다.
하지만 구멍 안쪽은 어둠만이 있었다.
이상을 깨달았을 때, 강현의 몸은 이미 구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 * *
쿵, 데구루루.
“큭.”
강현의 몸이 땅바닥을 굴렀다. 그렇게 몇 바퀴를 구른 뒤에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자마자 강현의 몸이 굳었다.
무릎까지 올라온 풀들이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다.
코를 찌르는 풀 내음. 그와 함께 나무와 꽃의 향기도 같이 올라왔다.
그와 함께 열매들도 보였는데 강현이 알던 열매들과는 모양이 달랐다.
‘뭐야, 대체 여기는···.’
강현을 뒤를 돌아보았다.
풀에 가려져 있지만 틈으로 검은 구멍이 보였다. 지나가면서 봤다면 동굴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동굴이 아니란 걸 강현은 잘 알고 있었다.
창고에서 봤던 것과 같은 구멍.
구멍을 바라보던 강현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와.”
강현이 탄성을 뱉었다.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아직 낮임에도 수많은 별이 보였다. 마치 강이 흐르는 것처럼.
기분 좋은 바람이 강현의 뺨을 쓸고 내려갔다. 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떨어지는 나뭇잎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강현의 손을 피하는 나뭇잎.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강현의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러나 곧 새의 지저귐을 듣고는 정신을 차렸다.
발걸음이 멈췄다.
강현은 힐끗, 구멍이 있는 곳을 확인했다. 당장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
고민은 짧았다.
강현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러면서 나무나 풀에 강현만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을 남겼다.
산행은 이미 익숙했다. 이곳은 산이 아니라 숲이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산이나 숲을 다닐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길을 잃는 것이었다.
태양의 위치가 바뀌어서 빛이 변하는 것만으로도, 전과 다른 장소처럼 보인다.
낯선 장소. 어떤 위험이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장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강현은 앞으로 걸어갔다.
모험심이나 호기심이 아니었다.
해방감.
이제야 숨통이 트인 것만 같았다.
‘...그래, 조금은 괜찮겠지.’
아주 조금. 이 정도의 일탈은 괜찮을 거다.
강현은 스스로 다독였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나무 위를 달려가는 동물이 보였다.
‘다람쥐?’
비슷하지만 조금 생김새가 달랐다. 강현이 알던 다람쥐보다는 귀가 컸다.
나무 위를 거닐던 다람쥐가 강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다시 제 갈 길을 떠났다.
떠나는 다람쥐를 보던 강현의 눈이 커졌다.
다람쥐의 뒤로 작은 그림자들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새끼 다람쥐들.
녀석들은 강현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짧은 다리로 제 어미의 뒤를 열심히 쫓았다.
다람쥐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토끼로 보이는 동물도 있었다.
‘...토끼치고는 근육이 많네.’
다리의 근육은 갈색 털로도 가릴 수 없었다. 녀석도 강현이 다가가자 껑충, 껑충 도망쳤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와 새의 지저귐도 강현을 뒤따랐다.
평화로운 광경. 강현의 입꼬리가 부드러워졌다.
그와 함께 강현의 발걸음도 점점 과감해졌다.
그런 강현의 귓가에 낯선 소리가 잡혔다.
“...물소리.”
근처에 강이나 냇가가 있는 건가? 하지만 강현의 발걸음은 더 나아가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핸드폰을 열자 권외로 표시되긴 했으나 시간은 계속 가고 있었다. 벌써 세 시간이 흘렀다.
‘아쉽지만 여기까지야.’
이 이상은 위험했다. 밤이 되기 전에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세 시간 가까이 긴장한 상태로 움직였기에 배도 고팠다.
강현은 천천히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러던 도중 나무 열매 하나가 강현의 눈에 들어왔다.
떼서 향을 맡아보자 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옆의 나무에서 아까 보았던 다람쥐 가족들이 열매를 먹는 게 보였다.
강현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
아무래도 그들의 목적지도 이곳인 것 같았다.
강현은 열매가 달려 있던 가지의 나뭇잎도 하나 뗐다. 그리고 열매와 함께 주머니에 넣었다.
일종의 기념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열매를 먹는 다람쥐 가족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 * *
구멍 너머의 세상에 다녀오고 며칠이 지났다.
그때의 짧은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 말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거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야.’
책상 위에 놓인 열매와 잎이 현실임을 알게 해주었다. 돌아오기 전에 들고나온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열매는 가져왔을 때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일 다른 열매였다면 벌써 말랐을 거다.
강현은 열매에서 시선을 뗐다.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빼앗기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밑에서는 주방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용했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공사가 시작되자 마을 사람들이 한 번씩 기웃거렸다.
이 근방에서 가장 번화가라고는 해도 고작 열 가구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조금 떨어진 집들까지 합해야 스무 가구가 조금 넘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현의 신경은 그들에게 가 있지 않았다.
‘...메뉴를 정해야 해.’
서울에서 쓰던 메뉴는 쓸 수 없었다. 재료도 구하기 힘들뿐더러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태리식을 접해보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생소하게 느껴질 맛.
이곳과 어울리는 메뉴를 생각해야만 했다.
앞치마를 두른 강현은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리대 위에 파스타 그릇이 늘어졌다.
파스타와 리조또.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두 입 먹은 파스타와 리조또를 싱크대 위에 흘려보냈다.
어느새 싱크대에 가득 쌓인 팬을 닦아내고, 다시 불을 켠다.
같은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결국,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나 강현의 손이 멈췄다.
음식물 통은 이미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보며 강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심지어 그중 절반 이상은 맛조차 보지 않았다.
“...진짜, 너 뭐 하는 거냐, 이강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자각했다. 메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잘못된 건 자신이었다.
강현은,
자신은 이제 다른 이에게 요리를 내는 게 두려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