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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물이 날 정도로
“...저, 그만두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강현은 책상 위에 봉투를 올렸다. 사직서.
그를 본 대표의 얼굴이 구겨졌다.
한남동에서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오너. 그는 강현의 사직서를 치웠다.
“이번에 종석이가 한 인터뷰 때문에 그래? 네가 종석이를 따르던 건 알겠는데 이 바닥이 원래 그렇잖아. 시끄러운 것도 한 때야.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강현은 오랜 지인이었던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종석.
믿고 따랐던 형이었으나 얼마 전, 강현을 저격하는 기사를 냈다.
[이강현, 미디어가 만들어낸 거짓 스타 쉐프]
그때의 배신감은 차마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표의 말대로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정말 신물이 날 정도로.’
인간관계뿐만이 아니었다. 동료 요리사와 평론가, 심지어 블로거들까지. 언제나 날 선 비판 속에서 살아야 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강현은 경우에는 다른 이들보다 그 잣대가 엄격했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라도 왔어? 얼마나 준다는데?”
강현이 입을 다물자 대표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맞지? 그럴 줄 알았어. 너 젊은 나이에 스타 쉐프가 되니까 보이는 게 없어? 그럼 안 돼. 너 이제부터 시작이야. 근데 벌써 그러면 어떻게?”
세계 3대 요리 학교 중 하나인 CIA를 졸업한 강현은 젊은 나이에 파리 국제 요리 대회에서 우승했다.
젊은 나이에 외모도 준수하다 보니 화제성이 충분했다.
이후로 방송에서도 몇 번이나 나올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실력과 노력도 있었지만, 운도 있었다.
강현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손목에 문제가 생겼어요. 의사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대표가 입을 다물었다. 손목이 요리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곧 결심한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럼 반년 휴가를 줄 테니 쉬고 돌아와. 반년 동안 월급은 30% 지급해줄게.”
무려 유급 휴가였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시골에 내려갈 생각입니다. 대표님 말씀대로 이 바닥이 제겐 어울리지 않아요. 한적한 곳에서 작은 가게나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서로 웃고 있지만 뒤만 돌면 칼을 꺼낸다.
다른 이를 밟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 강현은 이 자리에 오르면 바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위로 오를수록, 성공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욕망은 더 커졌다.
젊은 나이에 유명해진 만큼 강현을 시기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제 그 속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강현은 진짜 이유를 속으로 삼켰다.
입을 열려던 대표는 강현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시골 어디로 갈 건데?”
한풀 꺾인 목소리. 말릴 수 없다는 걸 안 것이다.
“평창입니다.”
결정타였다. 대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대구나 여수, 아니면 제주도라도.
그런 쪽이라면 강현의 진의를 의심했을 거다.
그러나 평창이라니.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알려줘. 다른 곳에서 일하는 건 배신이야. 알지?”
“예.”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 *
덜컹, 덜컹.
돌부리를 밟은 차가 흔들렸다. 검은색 스타렉스.
운전대를 잡은 이가 입을 열었다.
“잘도 허락했네. 그 욕심 많은 양반이.”
“손목에 대해서 말했어.”
서른 초반의 사내. 사내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그것도?”
“아니. 거기까진.”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강현을 본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겠어? 그쪽 바닥도 소문이 빠르잖아.”
강현의 인지도라면 취직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연봉이 깎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이제 상관없는 일이야.”
그리고 소문은 진작에 퍼진 상태였다.
강현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마음이 닫힌 걸 알기 때문이었다.
곧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종석, 그도 인간.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방송도 네가 꽂아준 거나 마찬가지잖아? 유명해지자마자 동생을 저격하고.”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지.”
“네가 무슨 잘못을 했어! 그 인간이 이상한 거지.”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사내를 보며 강현이 차갑게 대꾸했다.
“형, 운전 조심해. 일을 그만뒀지, 인생을 그만둘 생각은 없으니.”
강현의 말에 사내의 손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래도 성격은 안 죽었네.”
“그보다 이거 회사 차 아니야? 회사 차를 멋대로 끌고 와도 돼?”
강현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어차피 애들도 휴식기라 쓸 일이 없어. 걸리면 아빠한테 한 소리 듣고 말면 되지.”
사내, 윤섭의 직업은 연예인 매니저였다.
그리고 윤섭의 아버지는 윤섭이 일하는 기획사의 사장.
흔히 말하는 낙하산이었다.
아니, 사원부터 시작했으니 낙하산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직원들한테 욕먹지 않게 잘해.”
“얌마, 내가 선배들 앞에서는 얼마나 깍듯한지 알아? 오히려 후배 녀석들이 기어올라서 문제야.”
강현은 관심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그런 강현을 보며 윤섭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네가 가는데 배웅은 해줘야지. 너 이제 친구도 없잖아.”
“...”
“아, 마지막 말은 실수. 잊어줘.”
강현은 그런 윤섭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저런 사람인 걸 알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무슨 상황이 되든 한결같이 대해줬다.
강현은 원래부터 사교성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강현이 일을 그만두자 연락해오던 이들도, 소문을 듣자 금세 조용해졌다.
이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 이제 거의 다 왔네.”
내비게이션을 확인한 윤섭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곧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눈을 깜빡였다.
“...내비가 잘 못 된 거 같은데?”
“여기 맞아.”
앞을 보아도 산, 뒤를 보아도 산. 옆도 다르지 않았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다고?’
그러나 굽이진 산길을 따라서 가보니 집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한적한 시골.
“진짜로 여기서 레스토랑을 열 거야? 편의점 하나 안 보이는데? 손님이 있겠어?”
“이 정도면 여기서 번화가야.”
윤섭의 물음에 강현은 대꾸했다.
윤섭은 믿을 수가 없었지만, 강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근방에서 농사짓는 이들은 이곳까지 와서 물건을 산다.
게다가 옆 마을의 초등학교와도 가까웠다.
마을 중간에 있는 정자에서 쉬고 있던 노인들이 윤섭의 차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둘을 태운 차가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이 층 건물.
일 층에는 우리다방이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
건물을 확인한 윤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확실히 다른 건물보다는 깨끗하네. 이십 년밖에 안 지났겠어.”
낡은 건물, 그러나 다른 건물들은 모두 단층이었다. 이층으로 된 건물은 하나뿐이었다.
이십 년 정도면 이 동네에서 아주 신축일 거다.
윤섭은 그리 확신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안타까움도 떠올랐다.
‘어쩌다···.’
그때, 강현이 윤섭을 돌아보았다.
“뭐해? 짐 안 옮겨?”
퉁명스러운 목소리. 강현의 두 손은 이미 상자를 들고 있었다.
“...아주 이 형을 부려 먹네.”
“그래서 이사센터 부르겠다는 걸 형이 반대했잖아.”
그 때문에 강현의 할 일도 늘었다. 짐이 얼마 없으니 돈 아깝다며 고집을 부린 것이었다.
“예, 예. 다 내 잘못이죠.”
입을 삐죽 내민 윤섭이 트렁크를 열었다. 독립한 성인의 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빈약했다.
게다가 저 중 반은 조리도구일 거다.
가지고 있는 옷도 대부분 조리복. 개인의 삶이 없었다.
그야말로 인생을 요리에 쏟아부었다.
* * *
이층으로 짐을 옮긴다. 짐이 얼마 없어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짐을 옮기는 걸 끝낸 윤섭이 집안을 둘러봤다.
“안은 그래도 괜찮네? 가구들은 언제 온 데?”
“모레 도착할 거야.”
강현은 상자를 뜯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윤섭도 돌아와서 상자를 정리하는 걸 도왔다.
“근데 왜 평창이야?”
시골이라면 다른 곳도 많았다.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야.”
“그것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무 곳이나 상관없었다. 그런 강현을 보며 윤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곧 윤섭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뜯다 만 상자.
“너, 이거 뭐야?”
“보면 몰라? 텐트잖아.”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니라···.”
멈칫하던 윤섭이 상자의 텐트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텐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장난 아니네. 언제 이런 걸 모았어?”
“어쩌다 보니.”
강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차도 없는 애가 어떻게···. 이걸 들고 다니는 거야? 요리 말고는 관심이 없던 거 아니었어? 대체 언제부터?”
“올해 초.”
윤섭은 강현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올해 초면 그때인가?’
병원에서 결과가 나왔을 때다.
손목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손목은 그 전부터 안 좋았다.
윤섭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강현이 화제를 바꿨다.
“정리 끝났으니 밥 먹으러 가자. 그래도 밥은 먹고 올라가야지.”
강현의 말에 윤섭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소리야. 나 자고 갈 건데.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가라고?”
“...”
자고 간다고? 듣지 못했다. 강현이 눈살을 찌푸리자 윤섭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네가 웬일이야. 나가서 먹자니? 맨날 만들어 먹자던 놈이.”
“...주방이 어수선하잖아.”
윤섭의 물음에 강현이 잠깐 멈칫했으나 곧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덕분에 윤섭도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 하긴 오늘 같은 날까지 일하면 안 되지.”
윤섭이 웃으며 신발을 신었다.
“근처에 식당이 없어 보이니 택시 타고 나가자. 오늘 같은 날은 한잔해야지.”
강현은 윤섭을 뒤따랐다.
* * *
가벼운 술자리. 그리고 윤섭은 새벽이 되자마자 마을을 떠났다.
“가게 열면 또 올게! 연락해! 그럼 잘 지내!”
마지막까지 밝은 윤섭이었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강현은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언제나 편하게 느껴지던 주방이었지만 오늘따라 낯설 게 느껴졌다.
아니, 오늘이 아니라 최근에는 늘 이랬다.
심호흡으로 각오를 다진 강현은 도마와 칼을 꺼냈다.
장을 봐오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가져온 재료들이 남아있었다.
면수를 끓이면서 필요한 재료를 조리대 위에 올렸다.
소금 한 줌과 오일 조금. 면수가 끓자 파스타 면을 넣었다.
그렇게 면이 익는 동안 팬에 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넣는다.
곧 마늘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향이 올라왔다.
알리오 올리오.
기본적인 요리지만 그만큼 요리사의 실력이 드러나는 요리였다.
순식간에 파스타 하나를 만들어 낸 강현은 면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천천히 맛을 느껴본다.
“...역시.”
강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대략적인 간만 느껴질 뿐, 그 안에 들어있는 식자재의 맛을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조차도 전보다 심해졌다.
미각상실.
요리사에게 있어서 손목보다 치명적이었다. 강현이 일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동안은 기술과 기억에 의존하여 요리했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했었다.
당연히 치료 방법 역시 심리적인 안정밖에 없었다.
움직이던 포크가 멈췄다.
입맛이 떨어진 강현은 남은 파스타를 싱크대에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