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DDay까지 1일
* * *
그건 이상한데.
별의 마력을 가진 사람 중에 남자인 경우가 훨씬 많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남자가 별의 마력 사용자는 더 많았어."
"그건 애초부터 '영웅'의 업을 달성한 사람들이 계속 환생해서 그런 거야."
"영웅의 업."
"인간으로서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낸 사람들. 별의 선택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야."
"..."
한계를 넘어 업적을 이룬다라...
"그건 나랑 관계없어 보여."
"그래서 신기해. 보통 업적이 없으면, 별의 선택을 받지 못할뿐더러 받아도 영혼체의 용량이 작거든. 네 영혼은 신령으로서도 본 적이 없고."
"..."
짚이는 점이 있다면, 내가 정상급 프로게이머였다는 정도.
마지막에 스트리머가 돼버리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의감을 느껴서였을 뿐이다.
분명 더 나아갔다면, 한동안 계속 정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겠지.
...이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그냥 신기했던 거 뿐이야. 영웅의 육체와 혼은 별개거든. 우연이겠지."
"...응."
"아, 이상한 이야기 했네. 내일 일찍 움직여야 하지? 잘 자."
세희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방금 한 말은 소설로 치면 떡밥 같은 게 아닐까.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걸로 대놓고 떡밥을 설치하는 작가가 어딨습니까?]
"...있을 수도 있지."
[관찰자가 아닌 이상 그럴 거 같진 않습니다만...]
렌의 말에 입술을 삐죽하고 내밀고는 잠시 기지개를 켠 뒤 방으로 들어간다.
...세희의 말대로 내일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좀 더 노력해보자.
다음 날 아침.
"결국 책은 못 읽었어."
[방송에 참가했기 때문이겠죠?]
"..."
렌의 팩트 폭력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한다.
사실 방송 참여만 안 했어도 많은 게 달라졌을 거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이라도 읽을까..."
[관찰자가 강조했으니, 언제 읽기는 해야 할 겁니다.]
"그럼 오늘 하루..."
[자체적으로 게임에 대해 알고 있는 미경 씨한테 물어보는 걸 추천합니다만.]
"...그건 아닌 거 같아."
슬슬 미경이가 말하려고 할 때마다 비정상적으로 방해가 들어오고 있단 사실은 눈치채고 있다.
모 시리즈의 억지력 같은 건지, 아니면 퀘스트를 만드는 시스템이 조작 중인 건지.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려고 할 때마다 계속 방해가 들어온다.
아마 미경이한테 정보를 듣지 못한다는 이벤트는 확정인 거겠지.
굳이 다시 한 번 시도했다가 시간을 날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하루가 지나가죠. 정보를 얻는 페널티일까요?]
"시간 계열이 아닌 이상, 책을 읽는다고 하루가 지나가는 일은 없을 거야. 외출하지 말라는 의미 아닐까."
[무시하고 외출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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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데."
[...쓸데없는 걸 만들어놨군요.]
진짜루.
아무튼, 책을 읽으냐, 아니면 밖에 나가서 정보를 추가로 얻느냐인데...
"책."
[의외입니다만.]
"관찰자들의 이야기는 믿을만하다고 생각해."
[음... 실제로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죠.]
"응."
그러니까 오늘 선택은 책.
책을 펼치려고 하자, [오늘 하루는 집에서만 보내셔야 합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라는 메세지가 나타난다.
무시하고 펼치자 마치 결계가 펼쳐지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마력 파동.
...단순한 책을 읽는데 너무 과한 감각이 스쳐 지나간다.
"뭐야?!"
놀라서 뛰쳐 들어오는 세희에게 책을 보여주자,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붉은 눈동자로 책을 바라본다.
잠시 후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했다.
"갑작스럽게 그런 게 퍼지면 마력 읽을 수 있는 애들 전부 다 반응하잖아... 보자, 공간계에 결계... 조건 특정 대상의 봉인. 00:00까지... 뭐가 이렇게 구체적이야."
"...?"
눈동자를 거두더니 어쩐지 흐릿한 사신의 낫을 꺼내 한 번 휘두르는 세희.
동시에 마력이 아닌 무언가가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자연스럽게 펼쳐졌던 결계 자체가 무너져내린다.
[...제가 지금 뭘 본 거죠?]
"결계 파쇄."
[그건 압니다만, 시스템의 결계를 파괴할 수준이면...]
"시스템? 아, 주신급 데이터베이스 이야기야? 아무리 한 세계의 주신급이여도 결국 사신이 회수했다가 교육하고 보낸 거니까."
"..."
[...]
모예요, 무서우니까 그런 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 마세요.
눈앞에 있는 소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인지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시스템 에러 발생, 결계 파쇄.]
[재봉인 요청.]
[상위 권한자 'Runiasernen'으로 인한 시스템 해제입니다.]
[재봉인 요청 불허.]
[과할 정도의 관여로 확인됨.]
[불가, 현재 상위권한자 'Runiasernen'은 인간체를 유지중. 인간체로서의 집이 봉인 당하는 걸 막았을 뿐임.]
[유저 'Snow'의 시스템 제약이 불가해짐.]
[유저 'Snow', 밖으로 나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밖으로 나갈 경우, 생존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흐응, 보자... 여기 관리자 씨 그 사람이지?"
[모르는 일임.]
왠지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시스템 창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느낌이 든다.
"뭐라 하는 건 아니고, 내가 조금 방해한 거 같아서 미안하니까... 스노우는 내가 집에서 못 나가게 할게. 그럼 됐지?"
[확인함. 관련 권한 시스템에 전달.]
[...승인, 상위 권한자의 약속으로 승인하겠음.]
그 메세지를 끝으로 마치 도망가듯 푸른 창이 사라져버린다.
...어지간히 무서웠던 걸까.
어떤 상황이든 소환하면 해결하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됐으니까, 설이 오늘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응."
"그래, 착하다."
어쩐지 세연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가 묘하게 신경 쓰이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행동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슬슬 동생 보는 눈빛이 된 건 확실해 보인다.
[어찌 보면 좋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
강한 협력자가 생긴 상황에 가까우니까, 그 말은 틀리지 않을지도.
"근데 결국 그 책은 뭐야? 딱히 마도서로 보이진 않는데."
"거울 세계 관련 책."
"흐응..."
"관찰자가 읽어보랬어."
"그래? 그럼 읽어보는 게 좋긴 하겠네."
관찰자라는 말에 세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하긴 세희도 관찰자와 연관된 사람이니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하겠지.
"여러 권 읽는 건 가능해?"
"...모르겠어."
원래 1권에 하루라고 되어있긴 했는데, 방금 세희가 시스템째로 찢어버려서 그 제약도 사라진 느낌이다.
...어라? 여러 권 읽으면 꿀인데?
세희가 있을 때 읽으려고 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 곧 아침 준비 끝나니까 나올 준비는 하고 있어야 돼?"
"응."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밥 먹... 응? 다 읽었어?"
"응."
"밥 다 됐어. 같이 먹자."
"응..."
30분 만에 첫 권을 다 읽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의사를 표하곤 천천히 거실로 향한다.
대충 내용을 요약하면 루퍼의 이야기는 이랬다.
[첫 번째 로프 : B에게 구해짐. 후에 B랑 함께 다니다가, A의 공격에 사망.]
[두 번째 루프 : 상황 파악 실패. A에게 공격받아 사망.]
[세 번째 루프 : 두 번째 루프에서 세 줄 요약으로 정보를 보냄. A를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거울 세계에서 B에게 사망.]
[네 번째 루프 : 세 번째 루프를 기반으로 B에게서 떨어짐. 그 결과 C와 합류하게 되고 같이 활동하다가, B와 A, 그리고 Unknown에게 공격당해 사망함.]
"..."
여기서 공통점은 루퍼가 기억을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전 루프에서 얻은 '힌트'를 받을 뿐이라는 점.
...그 시점이 루프를 엄청 오래하게 하는 원인이겠지.
소설로서는 최악이긴 하지만, 어떠려나.
루프마다 매번 다른 정보를 얻어서 스타트 지점으로 오는 건 흥미로운데, 대체 이 소설이 몇 루프나 있는 건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때 대충만 생각해도 10권쯤 되는 거 같았는데...
"설아?"
"...응."
"밥 먹을 땐 밥 먹는데 집중하는 게 좋아, 봐봐, 밥풀 묻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더니, 뺨에 있는 밥풀을 떼주는 상혁이.
...누가 미연시 주인공 아니랄까 봐, 이런 부분 캐치는 빠르다.
"세연이는 아직 안 왔어."
"응, 그래도 자주 놀던 친구라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구나."
"아, 이것도 먹어봐."
그렇게 평화롭게 식사할 때였다.
띵동.
"응?"
"누구세요?"
세희가 의아하게 현관을 바라보자, 가장 가까이 있던 상혁이가 일어나 밖을 본다.
검은 웨이브 머리칼의 소녀가 상혁이와 눈동자를 마주한다.
"수진 선배?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아니, 그보다 저희 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는 게 좋을 터."
"아, 넵. 세희야, 수진 선배..."
"응, 들어와."
세희가 의아한 듯 눈을 깜박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답하자, 수진은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그러자 상혁이 냉장고에 있던 주스를 꺼내 컵에 따르더니, 그녀의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엄청 이른 시간인데."
"무얼, 이르다고 할 것도 없겠지. 너희로선 밥 먹을 시간대니."
"...아니아니, 그래도 이른 시간인 건 변함 없는데요."
"상혁이 너한테 볼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도록."
뭐지, 내가 콩트라도 보고 있는 건가.
이상한 궤변을 말하고 있는 수진이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끙끙대는 상혁이가 썩 재밌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야."
"음..."
딱 봐도 나한테 용건이 있어 보이는 그녀에게 묻자, 망설이면서 상혁이를 힐끗 바라본다.
일반인이 있는 곳에선 말하기 힘든 이야기... 거울 세계 쪽 이야기려나.
"밥 먹고 있으니까 기다려."
"그 정도는 기다리마."
"어라? 무슨 이야기야?"
"..."
"그냥 상혁이 너도 밥 먹으라는 이야기. 빨리 와서 밥이나 마저 먹어."
"어... 알겠어."
상황을 잘 모르겠다는 것처럼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인 상혁이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한다.
잠시 후 식사를 가장 먼저 마친 내가 젓가락을 놓고, 수진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와선 말했다.
"무슨 일이야."
"거울 세계 이야기다."
"응."
"그...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만."
"...응."
"아무래도 네 영혼이랑 비슷한 영혼이 거울 세계에 있다고 하더군."
"...다시."
"네 영혼의 복사체에 가까운 녀석이 거울 세계에 있다."
[...그건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
어쩌면 보스보다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