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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47화 (147/149)

〈 147화 〉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

* * *

"안녕."

"안녕...이 아니라! 보자고 하지 않았어!?"

내 인사에 별생각 없이 마주 인사하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친다.

...음, 확실히 오늘 만나기로 했던가.

내가 잘못한 게 맞네.

"미안."

"하아... 약속 시간 안 정한 내 잘못이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찾아왔다 이 말씀."

"응."

"...너 그거 컨셉이 아니라 진짜 성격이야?"

거의 모든 말에 짧게 대답하자, 미경이가 미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진짜 컨셉이냐고 물어도 뭘 묻는 건지 모르겠다.

"어떤 게 컨셉이야."

"무표정에 대답 간결하게 하는 거?"

"원래 그랬어."

"와우, 너 현실에서 친구 없었지."

"..."

내가 침묵하자 장난스럽게 웃은 미경이가 말했다.

"농담이야. 아무튼, 결국 너 거울 세계 쪽으로 가야 하는 거지?"

"응."

"유린이 좋아했나 보네? 굳이 루트 분기로 사라지는 애 찾는 거 보니까."

"..."

"사실 거울 세계 자체가 유린이가 사망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긴 해. 난 어차피 가도 아무것도 못해서 안 가지만."

아무것도 못한다... 인가.

하긴 생각해보면 생각 읽는 능력 하나로 능력자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뭘 할 수 있겠어.

실제로 우리 세계의 미경이도 사무직을 하고 있을 뿐, 직접 전장에 나서거나 하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서 도움되고 있지만.

"살리는 조건이 뭐야."

"아... 그게 좀 애매하거든? 원래 2회차부터 살릴 수 있게 돼 있어서. 가능한지 잘 모르겠네?"

"말해줘."

"알았어알았어~ 어디 보자... 내 기억 상으론 일단 처음에 서쪽 놀이터 쪽으로 가면 되는 걸로 알거든? 주인공은 중앙에 떨어져서 바로 갈 수 있는데, 넌 어떨지 모르겠다?"

"이 마을 끝과 끝 정도라면 5분이면 돼."

"시간 언급은 안 하는데 3분 안에 끝날걸?"

"..."

그건 좀 곤란한데?

만약 미경이가 있을만한 장소와 멀리 떨어진다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이라면, 미경이를 구해낼 수가 없다.

"세연이는."

"세연이? 아, 그렇지 세연이도 같이 가지? 음... 그 꼬맹이가 같이 가는 건 좀 그런데..."

"...응."

"근데 뭐, 걔는 신경 안 써도 될걸? 다른 세계 세연이가 원래 세계 세연이인 거 알면서도 지켜줄 거니까. 위치 자체는 북쪽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히 어디로 갔다고 언급 안 돼서 모르겠는데?"

"충분해."

북쪽에 있다는 사실만 알면 공중에서 마력 스캔으로 찾아낼 수 있다.

현재 다른 세계의 세연이는 나와 같은 별의 마력을 지니게 됐으니까.

"그 세계 클리어 조건은 뭐야."

"클리어 조건? 돌아오는 조건 말하는 거면 가짜 보스랑 진 보스 둘 다 잡아야 됨."

"가짜 보스랑 진 보스."

"이것까지 말하면 스포일러라 재미없을 거 같긴 한데... 뭐, 지금은 현실 같은 곳이니까? 가짜 보스랑 진 보스가 뭐냐면..."

미경이가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야호~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해~ 나랑도 놀아달라규!"

"..."

"에, 그, 그... 별거... 아니었어요..."

"미경이가 둘이서 이야기하자 하는 거 자체가 드무니까 별거 같잖앙~ 아, 스노우 볼살 700!"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달려들더니, 영문 모를 소리와 함께 뺨을 비비는 미아.

그 뒤로 세희가 쿠키랑 주스를 쟁반 위에 잔뜩 담고 들어오고 있었다.

"설이 귀찮아하잖아."

"에엥~ 우리 설이 미아 귀차나영?'

"...귀찮진 않아."

자주 들러붙는 건 좀 그렇지만, 나쁜 아이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지금처럼 중요한 정보를 들으려고 할 때마다 방해하는 거 빼고는 딱히 악감정이 없다.

[저희는 그런 걸 보고 악감정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시끄러.

"악감정?"

"응? 모강~?"

"...아냐, 아무것도."

렌의 말을 들은 세희가 의아한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지만, 미아가 부비적거리는 걸 멈추고 묻자 고개를 젓는다.

나중에 물어볼 생각 만만인 얼굴이다.

"그러고 보니 상혁이는?"

"화장실."

"아아~"

"...그러고 보니 너 요즘 계속 돌아다니면서 놀기만 하는 거 같은데 방학 숙제는 하고 있어? 이번 숙제 생각보다 양 많아서 하루 안에 못 끝낼걸?"

"어~ 음~ 엄~ 뭐라고~?"

세희가 테이블에 음료와 쿠키를 놓고 자연스럽게 앉은 채 말하자, 미아가 기계처럼 딱딱한 움직임으로 시선을 피한다.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의 반응이다.

"이번 방학 숙제... 혼자 안 하면... 못하는 거예요."

"에엥?! 이번엔 세희에몽이나 상혁에몽 못 써?!"

"넌 스스로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세희가 어이없음 반, 진심 반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자, 미아가 팩폭 반대~! 하면서 침대 뒤로 넘어간다.

그러곤 침대가 폭신해서 좋은지 누운 상태 그대로 천장을 멍하니 보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방학 숙제가 어떤 건데?"

"일단 일기는 혼자서 할 수밖에 없겠지?"

"겍. 아니이~ 무슨 고등학교에서 일기 숙제 같은 거 내줘! 말이 돼!?"

"뭐, 말이 되니까 나온 거 아니겠어. 어쩌겠냐."

"우왕, 상혁이가 정론을 던지면서 나타났다! 가라, 설! 눈싸라기!"

"..."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술명을 외치며 손가락으로 상혁이를 가리키지만, 나는 미아의 배를 한 번 손바닥으로 가볍게 칠 뿐이었다.

...남자애가 왔는데 배가 살짝 노출되고 있었단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꺅~ 설이 변태~ 상혁이도 변태~"

"아니, 왜 그렇게 되는데?!"

별 생각없이 테이블 옆에 앉아 쿠키를 집고 있던 상혁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미아를 바라본다.

그러자 깔깔 웃으면서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가 앉더니 쿠키를 하나 집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설이는 어쩌다가 여기서 사는 거야? 여행이라도 왔낭?"

"응."

"오호? 여행 왔는데 일반 가정집에서 민박하고 있다니, 능력자자너~"

"그러게... 어쩌다가 데려온 건지..."

상혁이가 뺨을 긁적이면서 말하자, 세희가 입을 열었다.

"말했지만 어쩌다 보니 데려온 거야."

"제일 중요한 부분을 안 말했잖아?"

"...어쩌다보니 알게 된 사이야."

"하루 만에 배회하고 있던 사람을 알게 되는 그 기막힌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을래?"

세희가 곤란한 기색을 보이지만, 상혁이는 이번에야말로 알아야겠다는 것처럼 물고 늘어진다.

저 녀석은 민간인이니까, 마법 소녀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넷 친구야."

"넷 친구?"

내 말에 세희를 포함해서 전부 놀란 표정을 짓다가, 금방 납득하는 얼굴로 변한다.

...어라? 그래도 의심하는 사람 좀 있을 줄 알았는데.

"하긴 세희가 모바일 게임 많이 하긴 하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넷 친구를 현실에서 만나진 않거든."

"지금 만났잖아."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는데..."

내가 만들어낸 핑계가 영 불만인지 찌릿하고 노려보지만, 가볍게 받아넘긴다.

애초에 핑계를 생각하지 못한 세희가 나쁘다.

[...보통 집주인이 이유를 생각하진 않는다고 봅니다만.]

킹치만 오라고 한 건 세희인 걸?

[그건 그렇습니다.]

"뭐 그거면 됐징~ 언제 돌아가는데?"

"아마 이틀 후에."

"에엥, 좀 더 있지 않고."

"비행기 시간."

"아..."

미아가 내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설정을 지어내긴 했지만, 거짓말하는 건 역시 심장에 나쁘네.

"그래서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엉?"

"그, 그게..."

"두 사람만 있게 해 달랬던 거 이야기하려고 한 거 아냥?"

"응."

"무슨 이야기 한 거야?"

"...게임 이야기."

"게임?"

"응."

거짓말은 안 했다.

이번에는 미경이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이번엔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상혁이가 말했다.

"미경이도 게임 해?"

"으, 으응... 하긴... 해."

"오, 어떤 건데?"

"모야모야~ 나도 할래 알려줘!"

"..."

아무래도 평소에 게임을 잘 하지 않던 애라서 흥미로운 모양인지, 미아와 상혁이가 동시에 눈을 반짝인다.

그제야 나를 힐끗 보면서 난감해하는 미경이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

"그?"

"프린세스 페이트라고..."

"아, 세희가 주로 하던 거네."

"...미경이 네가 그런 게임을 했었어?"

"...응."

세희도 몰랐던 사실인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미경이가 킨 화면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뭐야, 뉴비도 아니네? 3등 클랜...?"

"으, 응..."

"나중에 레이드 같이 돌자."

...왠지 게임으로 대동단결하고 있는 파티였다.

­­­­

"잘 놀았엉~ 또 봐!"

"응, 내일 봐."

"내, 내일 또 봐!"

"응."

그렇게 말한 미경이와 미아가 돌아가고, 남은 건 우리 세 사람.

세연이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해서 집에 없다.

"먼저 씻을게?"

"응, 난 처리할 게 남았으니까 먼저 씻어."

"오케이~"

상혁이가 웃으면서 욕실로 들어가자, 세희는 작업하던 테이블에서 일어나 내 옆에 앉는다.

고개를 돌리자, 세희가 말했다.

"설아."

"응."

"내일모레지?"

"...응."

"내일은 제대로 정보를 얻어야 해. 다른 거 할 여유는 없을 거야."

"응."

"그래, 힘내고... 내 제안은 꼭 생각해줘."

세희가 피로한 눈으로 웃으면서 말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가만히 그 쓰다듬을 받고 있던 내가 말했다.

"여자애가 여자애를 쓰다듬으면, 세이프일까."

"그건 또 무슨 엉뚱한 소리야...?"

"아무것도."

[...최근 쓰다듬는 거에 이것저것 생각이 많으시군요.]

"기분 탓이야."

"아, 쓰다듬는 거... 미안, 상혁이랑 있다 보니 옮아서..."

"미안해할 필요 없어."

솔직하게 쓰다듬는 거 자체가 기분이 이상할 뿐, 딱히 불쾌한 감정이 드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고민되는 점은...

"남자로 돌아갔을 때가 고민이야."

"...아직도 그 생각하고 있구나."

"응."

설이는 많은 걸 희생한 아이니까, 내가 가진 선택지에 몸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세희의 제안은 적어도 남자로 돌아가고 나서의 이야기.

절대로 스노우의 몸으로 만나러 오게 되는 일은 없겠지.

"남자가 돼서 와도 돼."

"응, 알아."

"...중요하게 여기진 않네. 원래 세계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어?"

"ㅡ."

원래 세계를 고집하는 이유인가.

그녀의 질문에 나는 바로 답하지 않고 고민한다.

ㅡ솔직하게 돌아가도, 남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프로게이머로서 최고봉이 됐지만, 나는 혼자였다.

동료도 잃었고, 남은 거라곤 파트너 스트리머라는 한 가지뿐.

...무수한 팬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그뿐이었다.

그렇기에 더 고민되는 이야기였다.

이쪽 세계 사람들은 상냥하다.

누가 만들어낸 세계든, 무언가로 구성된 세계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세계는 현실이 됐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실제였으니까.

"...돌아갈 이유는 없겠네."

"그럼...!"

"하지만, 정말로 내가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원래 몸으로 돌아갔을 때 세희가 준 무언가가 내 손에 있을 거라고도 장담할 수 없다.

"불확실한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아."

"이쪽으로 올 수 있어."

"어떻게 확신하고 있어."

"그야, 너한테 준 건... 영혼에 심은 거니까?"

뭐야 그건, 무서운데요.

영혼 자체가 사신에게 알려졌다니, 섬뜩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방금 이상한 생각하지 않았어."

[마스터, 상대는 독심술사입니다.]

"..."

얘들이 둘이서 뭐라 하는 거야?

진지한 분위기를 확 깨버리는 두 사람의 반응에 나는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무거운 이야기 하기 싫어."

"알았어. 음... 그럼 계약 내용 조금 수정할까."

"수정."

"응, 너한테 걸린 계약... 그러네, 좀 걱정되니까 다 끝나면 무조건 불러줘. 가고 싶든 가기 싫든, 네 영혼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줄게."

"...알겠어."

"응, 계약 갱신 완료."

내 대답에 푸른 빛이 퍼지며 무언가 바뀐 것을 느낀다.

...정말로 영혼을 건드리고 있는 느낌이다.

"와, 근데 진짜 너 대단하다."

"뭐가."

"별의 마력, 남자인 영혼에는 잘 안 맞는 성질인데... 그렇게 많이 담고 있으면서 어떻게 멀쩡한 거야?"

난생 처음 듣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모예요? 그런 소리 처음 듣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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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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