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
* * *
역시 루루쯤 되면 바로 눈치채는구나.
사실 루루가 등장한 시점에서 게임 오버라고 예상하긴 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미 스노우 왕국이 세워졌을 때 들어왔을거고, 마력 감지 자체는 나 못지 않은 실력이니까.
"그래서 루시파레 대원, 무슨 일이에요? 탈주했단 소린 듣긴 했는데."
"...탈주한 걸 알고도 별로 놀라는 기색은 없네."
"그야 그렇죠? 별의 마력을 가진 사람이 탈주했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구나."
확실히 신뢰받고 있단 소리였다.
...게임이니까, 별의 마력으로 난동 부리는 사람도 제법 많을 텐데.
이런 신뢰를 넣어둬도 괜찮은 걸까?
"..."
"여기서 묵언하시면 아무리 저라도 스노우한테 신호 보낼 수밖에 없는데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당장 넘길 생각은 없지만, 대답에 따라선 넘기겠단 소리다.
"지금은 말하면 안 돼."
"어째서요?"
"스노우가 망가뜨릴 테니까."
"...어라?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
내 말에 루루가 당황하면서도 음... 하고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다.
왜 탈주했는 지는 모르지만, 원래의 신뢰도가 있어서 고민하는 기색인가.
나쁜 상황은 아니다.
"궁금하다면, 정부 뒤를 파."
"네? 정부에서 뭔가 저지르고 있으면 스노우가 모를 리가 없는데요?"
"모를 거야. 스노우가 알았다면, 부쉈을만한 만행이 일어나고 있거든."
우리가 찾아낸 자료에 있던 정보.
그건 몬스터를 전략병기로 사용하려고 세뇌하던 일이었다.
물론 세뇌 도중 뭔가 사건이 터져도 단단히 터진 건지 전멸당했지만.
...과정에서 사형수로 인한 인체 실험도 있었으니, 스노우가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흐으음... 그렇단 이야기는 반란군 측이 좀 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거죠?"
"응."
"그런가~ 그런 건가~ 그건 귀찮게 됐네요."
곰곰이 생각하듯 팔짱을 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루루.
내가 가만히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자, 그녀는 한숨만 푹 내쉬곤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착한 제가 넘어가야죠 뭐!"
"고마워."
"아하하, 고마울 거 까지야. 여기 온 건 보호막 생성기 잠깐 풀어달란 거죠?"
"응."
"음, 그거 풀면 스노우한테 걸리는데... 그냥 나가도 스노우한테 걸릴 거 같기도 하고..."
"나갈 때 잠깐만 풀어주면 돼."
"아, 그럼 약속, 꼭 지속적으로 연락하세요? 아무래도 걱정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루루를 보며, 손가락을 건다.
그러자 빛의 마력이 활성화되면서 생겨나는 노란 띠.
새끼 손가락에 걸린 반지 형태의 무언가에 그녀를 바라보자,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로 통신할 수 있어요!"
"그렇구나."
"네, 그러니까... 뭔진 몰라도 제대로 해내야 돼요?"
"응."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 별의 마력이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기 시작한다.
루루도 느낀 건지 당황하는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고, 나는 순간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이내 커튼으로 들어가 낮게 비행하는 것에 성공.
반대편 창문이 활짝 열리더니, 곧바로 스노우가 그 자리에 안착한다.
"루루!"
"아! 스노우! 무슨 일이예요?"
아무런 내색도 없이 평소과 같은 반응으로 루루가 스노우를 부르자 그녀가 말했다.
"방금 마력 쓰지 않았어? 무슨 일이야?"
"네? 아, 잠깐 이게 되나?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건데?"
자연스러운 대답에 그녀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긴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몇몇 물품들이 그대로 투명하게 변하는 모습.
그렇다고 사라진 건 아닌 게, 물병 안에 있던 물이 형상을 유지한 채로 그대로 있는 게 눈에 띈다.
"흐므흐므... 은폐 마법 변형이네!"
"네, 광학 미채라고 하는 거죠? 일단 전 빛의 마법 소녀니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구나... 난 또 침입자라도 있는 줄 알았어!"
"아하하, 여기 경비 뚫고 오는 침입자라니, 제법 무서울 거 같은데요."
"그러게, 아무튼 보호막 생성기는 잘 유지해줘야 돼? 풀리면 분명 주변 몬스터들 전체가 쳐들어 올 거야."
"그런 경우엔 스노우가 해결해 줄 거죠?"
"...당연하긴 한데 그런 상황 없는게 낫지?"
루루의 말에 스노우가 의아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잠시 후.
"...어라? 루루 혹시 커튼 뒤에 뭔가 놔뒀어?"
"네? 커, 커튼 뒤요?"
잘 연기하던 루루가 결국 당황하고 만다.
커튼 뒤에는 내가 있고, 여는 순간 자신이 거짓말 했단 사실도 들키게 되니까.
...일단, 생각나는 방법 자체는 하나 있는데.
스노우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루루가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뭘 연기하는지, 눈치채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커튼이 활짝 열렸다.
"..."
"..."
눈을 감은 상태로 몸의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마치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물건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연기하는 건, 만들어진 인형.
실제 사람처럼 만들어진 모형에 가까운 물건이다.
"저, 그, 그러니까요..."
누군가가 뺨을 만지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 다음은 머리카락.
다음엔 배...?
"어, 어, 어... 어디까지 구현한 거야...?"
"네? 그, 그러니까요..."
"루, 루루가 이런 취향인지 몰랐는데..."
"아뇨아뇨아뇨! 제가 그런 취향인 게 아니라고요?!"
"그럼 왜 인형을 만든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배에 있던 손이 가슴까지 올라오다가, 움찔 하면서 손을 뗀다.
그 후 이어지는 대화 소리.
"서, 설마 정말로 '전부' 구현 한 거야...?"
"아니, 그러니까 제가 만든 게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이게 뭔데...?"
"그, 그러니까 말이죠?"
"응, 말해 봐."
"..."
"...루루?"
"그, 어, 언니 거에요!"
"루리에?"
"네!"
"루리에가 나랑 똑 닮은 단백질 인형을 만들었다고...?"
"네,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었..."
"근데 왜 그게 여기 있어...?"
"..."
스노우의 2차 공세에 루루가 순간 침묵한다.
확실히 그런 내용이라면 루루가 있는 장소에 있을 이유도 없다.
게다가 이곳은 응접실.
손님한테 보여줄 게 아니고서야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물건이니까.
...연기하고 있는 본인이 물건이라고 말하는 건 어떤가 싶지만.
"아아, 아무튼 루리에 언니한테 보낼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보내도 신경 쓰이는데!? 어디 쓰려고 저런 걸 만드는데!?"
"저도 몰라요!"
"핑계가 빈약해?!"
그러고 보면 이거 게임이었지?
생각보다 리얼한 반응에 슬쩍 눈꺼풀만 들어 상황을 확인하자, 등을 돌린 스노우가 눈에 띈다.
엄청 흥분하기라도 한 건지, 바동거리는 게 눈에 띈다.
...스노우가 원래 저런 타입이었구나.
생각 이상으로 활발한 아이다.
"..."
그러면 이제 어쩐다.
인형인 척이 성공하긴 해서 둘이서 투닥이는게 눈에 띈다.
하지만 이대로는 여기서 빠져 나가기가 요원하다.
우리가 맡은 임무 기간을 생각해보면, 오늘 안에는 나가야 기간을 맞출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질질 끌렸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콰앙!
그런 생각을 할 때 먼 거리에서 폭음이 들려온다.
...어라? 미아가 폭발 일으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던가?
당연히 스노우도 들은 듯 두 사람이 잠잠해지고 스노우과 루루가 동시에 창문으로 휙! 하고 저택을 나선다.
아무래도 상정 외 상황이 벌어진 모양인데...
우리로선 좋은 타이밍이다.
"그럼..."
지하로 이동해 보호막 생성기의 마력을 찾아다닌다.
해제해야 하는 건, 총 3개.
첫 해제부터 스노우가 눈치챌 테니까, 빠르게 처리하고 도망까지 가야한다.
첫 번째 기계를 확인한다.
마력시만으로도 원리는 알만하다.
이건... 굉장히 효율 좋아보이네.
현실에서도 제법 사용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이걸... 이렇게 건드리면..."
마력의 움직임을 조작한다.
만들어내는 건 일시적으로 끊기는 마력의 선.
말 그대로 선 하나만 끊어놓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이으면 쉽게 수복할 수 있는 정도의 손상을 만들어낸다.
[스노우가 눈치챘습니다!]
손상을 일으키자마자 눈 앞에 나타나는 메세지.
그와 함께 시네마 틱으로 스노우가 조금 먼 거리에서 저택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고, 그대로 다시 시야가 돌아온다.
바람의 마력을 피어 올린다.
지금부터는 속전속결.
무조건 오늘 안에 끝내야한다.
공간을 접어 모든 보호막 생성기를 없애자, 시네마틱이 다시 나타난다.
사라지는 보호막과 그걸 바라보는 루루와 스노우.
보호막이 사라지기 무섭게 먼 거리에서 준동하는 몬스터 무리.
그리고...
"보호막, 사라졌다. 지금이 기회다. 모두 진격하라."
헤리어스의 모습이 보이면서 제법 많은 숫자의 레지스탕스들이 돌격해오기 시작한다.
...저 녀석들은 어느 틈에 여길 도착한 거지?
눈을 가늘게 뜨며 주시하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기도 하고.
"루시파레!"
"..."
스노우의 모습을 한 채로 스노우와 마주하지만, 그녀는 나를 루시파레라고 부른다.
...그렇겠지, 이 세계의 '시스템' 상으로 나는 루시파레일 테니까.
"스노우."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너라면 금방 수복할 수 있어. 나만 내버려둬."
"에?"
그녀가 내 말을 듣고 당황할 때, 바람의 마력을 피어올려 도주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갈팡질팡하다가도 보호막 생성기를 수리하기 시작하는 스노우.
...스노우 실력이라면, 30초 안엔 수리하겠지.
"파레!"
"르마."
"믿고 있었다규!"
검댕이를 잔뜩 뒤집어쓴 미아의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하기 시작한다.
도시 끝자락에 닿자 서서히 보호막 생성기가 회복되는 모습.
조그마한 틈으로 우리가 결계를 지나치자마자, 시네마틱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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