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
* * *
하품을 한 번 하곤 링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비행해 바닥에 안착한다.
마력 유동에 주변에서 움직이기까지 했는데 미동도 없이 잠든 모습.
...좀비 아포칼립스가 일어난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이 아이.
어둠에 몸을 숨기고 살았거나, 좀비들을 피할 무언가가 있던 걸지도.
똑똑.
먼저 노크해서 안의 상황을 확인하는 세희.
내가 느릿하게 문을 열자 상기된 얼굴의 미아가 입을 벌려 소리 지르려는 순간이었다.
"읍?! 읍읍!"
"쉿."
"읍?"
내가 손으로 가로막으며 뒤를 가리키자, 거기선 고른 숨소리와 함께 자는 링의 모습이 보인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미아.
그리고 내가 입을 풀어주자, 그녀는 손만 잡고 슬그머니 당기기 시작한다.
"설아!"
"응."
"방송 또 하자!"
"깨고 싶은 거구나."
"응! 어제 힌트도 다 모았자너~ 미류도 도와줄 거양!"
"...그러고 보니 미류한테는 물어봤어."
"응, 잘 모르는 눈치던뎅? 그런 게임 참가한 적 없뎅. 우연인감?"
아마 우연은 아니겠지.
우리 세계의 미류는 나와 적대 관계였으니까.
"...어라."
나와 적대 관계?
생각해보니 지금 미류를 돕게 되면 내가 적으로 나오는 건가?
그럼 미러전?
"재밌겠다."
"그치!? 재밌겠지!? 그니까 같이하자!"
"응."
방송하겠다고 생각했다면, 하는 게 좋겠지.
...솔직히 책도 걸리고, 미경이랑 약속도 있었던 거 같은데.
"...나중에 만나면 되겠지."
지금은... 좀 더 게임을 하고 싶었다.
[마스터.]
"..."
[괜찮겠습니까?]
내 생각을 읽은 렌이 물어온다.
여기서 연을 더 쌓는 게 괜찮은가.
사실 지금 여기서 그 게임을 계속하는 건,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정보를 얻어야 함에도 외면하듯 그걸 이행한다.
기껏해야 실력을 늘릴 수 있다는 명분.
...그걸 '안일하다'라고 말한다면, 정답이지 않을까.
원래의 나와는 다른 판단이다.
[마스터가 쉬고 싶다면, 저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다만, 최소한의 정보는 필요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입니다.]
최소한의 정보를 얻는 건, 하루면 충분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오만한 생각이다.
싸우게 되는 건, 분명 신령에 가까운 존재들.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모아야만 승리 플랜을 짜기 쉬워진다.
다만... 왜일까.
어째선지 이번에 한해선 '긴장감'이 떨어진다.
단순한 직감인 걸까? 아니면...
뭐, 아무래도 좋지만.
"...이건 언제 봐도 신기하네."
"아, 그렇지? 나도 이런 게 돼요? 했었는데 잘 되긴 하더랑."
그렇게 말하면서 게임 속 몸을 평범하게 움직여보는 미아.
오늘은 상혁이와 세희가 일이 있다고 해서 순수하게 둘이서 진행하게 된다.
중간에 인원 이탈해도 괜찮은 건가. 같은 말도 했는데, 그게 안 되면 조별 과제가 되잖아~ 같은 소릴 들었다.
확실히 인원이 다 모여야만 할 수 있는 게임은 힘들지도.
그런 식으로 게임 만들면 안 팔리겠지.
"어제의 연장이지."
"응~ 어제 단서 다 찾고 끝났잖아? 이제 탈출하고 미류 찾아가면 돼!"
"응."
탈출 자체는 어려운 조건이 아니다.
다만 게임 내에서 우리가 한 일은 '기밀을 탈취해서 도주한다.'라는 일.
절대로 그 과정이 쉬울 리가 없었다.
내가 제작사라면 플레이어가 탈출하기 쉽게 만들진 않았을 테니까.
"저기다 잡아!"
"슈팅 스타."
"헤헹, 어림도 없지롱!"
아무래도 능력자들이 아니라 일반 군인에 가까운 건지, 왠 마법공학 총을 잔뜩 들고 있다.
날아드는 탄환을 프로텍션으로 막아내고, 슈팅 스타로 적들의 팔을 봉쇄한다.
...저 정도면, 죽지 않는다.
게임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현실적이면 일반인을 죽이는 건 거부감이 있다.
이제 와선 정말 헛소리 같지만.
"와~! 조준 쩔어!"
"..."
감탄하는 미아를 보며 힐끗 바라보자,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를 컨트롤로 치명상과 중상을 입힐 부위엔 전혀 총탄이 닿지 않는다.
아마 마력이 휘감겨 있으니 그걸로 뭔가 하는 거겠지.
적들이 총탄을 가는 동안, 나는 곧바로 미아의 뒷덜미를 붙잡고 고속 비행한다.
"으아아앙?! 잠깐마아아안!"
"참아."
그대로 수송기가 있던 방향으로 날아간다.
중간중간 만나는 녀석들이 반응도 못 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지나친다.
"우와!"
"무슨 일이야."
"무슨 비행이 이렇게 익숙해~!?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잖아!"
그야 항상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답하고 싶지만, 미아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말을 아낀다.
그러자 음흉한 미소로 후후후~ 하면서 외치는 그녀.
"역시 베타 테스터였어! 크~ 어떻게 당첨된 거냐규~ 스트리머들도 당첨 못 돼서 난리였는데!"
"...글쎄."
이 게임 베타 테스트, 분명 제대로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시스템 테스트만 해도 문제없고, 제대로 구현됐다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만든 거라 문제없었을 테니까.
"앗, 이번엔 뚫어야 할 거 같은데?"
"응."
먼 거리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기척.
포격 계열 마법으로 추측되는 게 발동될 기미가 보인다.
곧바로 눈앞에 마법진을 그려낸다.
아마 이 앞에 있는 적만 뚫으면, 탈출은 가능하겠지.
코너를 도는 순간, 좀 먼 거리에 발동 직전 포격 마법이 눈으로 관측된다.
...기계로 쓰고 있어?
"스타라이트 버스터."
"스타라이트 버스터!"
"..."
콰아아아앙!
별의 마력으로 이뤄진 포격이 맞부딪힌다.
중간 지점에서 일어나는 큰 폭발에 코너로 돌아가 미아를 내려준다.
...잠깐 생각하자.
기계.
내 마법을 사용하는 로봇.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진영에서 한 사람뿐이다.
"루시파레 대원! 르마 대원! 순순히 투항하면 우리는 그대로 너희를 반기겠다! 하지만 그 이상 저항한다면 여기서 처분할 수밖에 없다!"
시네마가 나타난다.
이족 보행형이지만, 다리에 뭔가 달린 건지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차처럼 고속으로 이동하는 기체.
양 손에는 알 수 없는 포가 달려있고, 탑승석 위에는 여러 개의 미사일 발사대가 있다.
그리고 보스의 이름은...
[김 현성 전투용 타이탄 탑승]
"...현성이구나."
"아는 사람?"
"아마."
"아마는 뭐야~ 뭐, 아무튼 그럼 잘 됐네! 성격으로 설득 같은 거 가능해?"
"모르겠어."
솔직히 현성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기계공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고, 나쁜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 세곈지 모르겠다.
다른 세계의 초월자마저 정부군에 소속돼있다면, 사실상 내 진영이었던 사람들 전부 다 있을지도...
"일단 우리 목표는 저걸 잡는 게 아니야. 알지?"
"어떻게든 탈출하는 것."
"그런 셈이지~"
"수송기를 터뜨리려고 하면."
"일단 타면 마법으로 막을 수 있지 않아?"
"..."
일 리가 있는 말이다.
스타라이트 버스터 같은 대형 포격을 수송기를 날리면서까지 쏠 거 같진 않고, 분명 수리 가능한 수준의 공격만 날리겠지.
그렇다면 쉽다.
승리 조건은 '이곳을 탈출한다.'
그럼, 강제로 뚫고 지나가도 상관없겠지.
"다시 비행할 거야."
"응? 아냐, 일단 나 잡지 말고 혼자 집중해."
"뚫을 수단, 있어."
"후후후, 아군 세력 애들 특성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규?"
그렇게 말한 뒤 나보다도 먼저 뛰쳐나가는 미아.
창을 들더니, 발에서 마력이 분사된다.
현성이 그대로 양쪽 포에서 슈팅 스타를 난사한다.
내 마법이라는 걸 알았는지, 힐끗 뒤를 보다가 능숙하게 창으로 전부 흘려내는 모습.
...일반인치곤 굉장히 피지컬이 좋다.
"..."
저렇게까지 선전해주면 안 갈 수 없지.
곧바로 비행해 복도 최대 높이로 날아오른다.
애초부터 로봇이 움직이는 걸 상정하고 만든 건지, 제법 넓은 복도라 로봇보다도 윗 공간으로 도착.
그러자 하늘을 나는 내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 등에 달려 있던 미사일 3발이 그대로 나에게로 발사된다.
"..."
도착까지 1초.
프로텍션으로 막힐 스펙으로 보이진 않는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미사일이다.
막아낼 방법은?
ㅡ굳이 막을 필요가 있나.
미사일이 닿기 전에 바람을 밟는다.
시야가 일변한다.
도착한 곳은 로봇의 뒤편.
순간 어그로가 풀린 것처럼 현성이 멍청하게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미아가 창을 내지르자 뒤늦게 반응한다.
포신 밑에서 튀어나온 2개의 검이 창을 막아낸다.
그 사이, 턱. 하고 로봇에 손을 대는 나.
...현성을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익스플로전."
콰앙!
[크아!? 언제 거기로...!]
녀석이 그로기 상태에 빠진 걸 보자마자 미아의 팔을 붙잡고 날아간다.
그러자 웃으면서 소리치는 그녀.
"재밌다~!"
"혀 깨물어."
"현실 아니라서 안 깨물거든? 아무튼, 빨리 타자!"
현성의 위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캡슐형 수송기에 자연스럽게 탑승하자, 그제야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깐! 멈춰! 너, 별의 마력 사용자잖아...! 스노우가 슬퍼할 거라고!]
"...스노우."
[그래! 너 스노우랑 아는 사이잖아! 루시파레!]
"..."
그의 말에 나는 미묘한 미소를 입가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한테 아는 사이잖아라고 말해도 말야.
아, 그래도 이곳의 '스노우'가 누구인진 알겠다.
적어도 '빙의한 나'는 아닌 모양이다.
"내가 아는 스노우라면 슬퍼하진 않을 거야. 오히려, 분노하겠지."
[뭐? 그게 무슨...]
"모르면 됐어."
그 스노우가 소속된 곳이라면.
적어도 정부군이 괴물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걸 방관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괴물들을 죽이겠다는 입장일 테니까.
그러니까, 여기 있는 건 적어도 정부군의 독단이다.
"당신도 알잖아. 이런 곳, 스노우가 알고 있다면... 부쉈을 거란 것 정도는."
[...]
내 말에 현성이 전의를 잃는다.
포신까지 늘어뜨리고, 아예 공격할 의사를 잃은 모습.
...역시 본인도 잘못됐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단 건가.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송기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사연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걸 전부 듣기도 전에 우리는 탈출하기 시작했다.
[미션 클리어]
[클리어 보상이 들어옵니다.]
미션이 클리어 되자,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다시 시네마가 재생된다.
아마 우리 시점이 아닌지, 어느 집무실로 걸어가는 시점.
문을 똑똑. 하고 두드리자,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와요!"
그리고 문이 열리고 보인 사람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