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관찰자와의 만남
* * *
"일단 굳이 말하자면~ 너희 세계는 아니야~ 다행히도~"
"다른 세계선인 거네."
"그렇네~ 네가 아닌 '스노우'의 세계선인 거지~ 그래서~ 그 게임에 너도 있어~"
그 게임에 스노우도 있다.
그렇다는 건 여기도 '설이'의 흔적이 있단 거네.
"..."
너무 많은 곳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것정도 밖에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머리카락을 한 올 뽑는다.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달의 마력으로 만들어내는 건, 달 모양 보석.
그걸 잡고 손을 뻗더니 내 가슴 중앙으로 꾹. 하고 누르자, 내 분홍빛 보석이 나타나 그걸 흡수하고 사라진다.
"...이게 뭔데."
"응~ 별거 아냐~ 십자가의 축복을 강화시켰어~"
"축복."
"페이가 준 축복~ 기적이라곤 했는데~ 어떤 상황에 쓰든~ HP는 100% 충전시키게 했어~ 필요할 거야~"
"...응."
잘은 모르겠지만, 미래를 볼 수 있는 관찰자의 말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자 그제야 눈이 진지해지는 소녀.
...그러고 보니, 이름을 듣지 못했다.
"이름이 뭐야."
"지금부터는 본... 아, 이름? 말 안 했던가? 김지영이야. 잘 부탁해."
"...분위기가 변했네."
"방금까지는 일이 아니라 평범하게 대화한 거니까."
기세가 생겨났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날카로운 분위기와 진지한 표정.
늘어지던 말투도 딱딱하게 변하고, 마치 비지니스 관계를 대하는 것처럼 친밀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투를 느낀다.
방금까지 있던 호감이 0이 된 거 같은 기이한 느낌.
아무래도 나한테 부탁할 게 있는 모양이다.
"설아."
"응."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저렇게 정색까지 하고...
"너희 세계 이야기로 게임이나 소설 계속 써도 되지!?"
"..."
그녀의 말에 드물게 당황해 케이크를 떨어뜨릴 뻔하다가 간신히 입에 넣는다.
...뭐라는 거야 이 녀석.
"네가 우리 세계 이야기를 쓰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치만 그 세계 주인공은 너희거든?! 일단 스노우 위주로 돌아가는 세계니까!"
"그건 신님한테 물어봐."
"아니, 나도 아직 살아있는 인간이니까? 현천계를 올라가야 이야기하지!"
"...그러고 보니, 그놈의 현천계랑 현 마계는 뭐하는 곳이야."
내가 조금 뚱해진 얼굴로 말하자, 어쩐지 지영이가 눈을 반짝거린다.
...조금 눈이 무섭다.
"흠흠~ 거기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하자면."
"다 알잖아? 현천계는 신령들이 가는 곳, 현마계는 신령급 악령들이 가는 곳."
"...그럼 렌은."
[마스터?]
"아...? 그, 음, 그러네, 아마 검열될걸?"
"검열..."
렌의 정체가 뭐길래 검열까지 되는 거야.
내가 미묘한 시선으로 목걸이 상태인 렌을 보지만,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않는다.
...뭐, 좋아. 꼭 알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언젠간 말해줄 수 있어, 렌."
[언젠가는 알게 되시겠죠.]
언젠가는 알게 된다라.
...적어도 탑을 다 오르기 전에 알게 될 거란 이야기다.
"응, 그럼 기다릴게."
[네, 마스터.]
렌은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직후 최초로 만났고,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준 존재다.
원 목적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떨어져서는 안 되는 존재니까.
믿는다.
언젠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거라고.
[굳이 따지자면 사람은 아니겠지만요.]
"응, 마왕."
[...역시 그때 그 사람들은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사이 좋네. 어차피 ○○○ ○ 운명인데."
"...검열 됐어."
"그렇겠지~"
깔끔하게 검열될만한 말을 했다고 선언하는 모습.
...아무래도 나와 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는 모양이네.
그래도 끝까지 믿을 거지만.
"잘해 봐. 아, 그리고 내가 만든 게임, 하고 싶으면 계속해도 좋아. 솔로 전투 익히는 거, 생각보다 숙련도 차이 있거든."
"숙련도 차이..."
"응, 아, 여차하면 거기서 훈련할 수 있게 시스템 따로 만들어줄까? 그런 미니 시스템 정도는 너희 넘어가기 전에 완성할 수 있을 듯?"
"...응."
그건 좋은 제안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넘긴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걸 넘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법 숙련도를 높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니까.
"좋아좋아, 아, 마지막으로..."
"응."
"설이한테 들었겠지만, '결계'는 무조건 완성해야 해. 그리고 '언어는 관련 없어'."
"언어는 관련 없다..."
"너와 설이가 동시에 알고 있는 언어면 충분해. 네가 첫 줄로 발동했던 건, '설이'와 '너'의 심상이 일치하는 영창을 했기 때문이니까."
"...응."
귀중한 조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독일어 같은 건 잘 모르니까... 저번에 했던 것도 샤브린한테 배운 언어로 말했던 것뿐.
그럼 한국어로 영창을 만들어도 괜찮다는 소리다.
"그러엄~ 여기서 끝~ 관찰자로서~ 너무 관여했어~"
"그러겡! 왜 이리 많이 반응했냐구~ 그렇게 많이 관여하면 곤란한데!"
"...미래."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카페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검은 생머리의 아가씨.
예의 쿠앤크 색 드레스가 아닌 평범한 회색 학교 교복을 입은 동양풍 아가씨가 걸어 들어온다.
표정에는 미아와 비슷한 장난스럽고 활발한 미소가 걸려 있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물씬 풍기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겍...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관찰자..."
"모냐구~ 남의 집이라니 실례야~ 게다가 게스트도 모셔왔는걸?"
"...오오, 나의 친우여. 여기에 있었더냐."
"링."
심상 세계에서 봤던 교복을 입은 링.
좀 어색한지 자꾸 옷깃을 매만지던 그녀가 고고한 미소를 보이면서 미래의 뒤에서 나타난다.
"그대는..."
"링 씨 링 씨~"
"...무슨 일이더냐? 친우와 대화하려는 중요한 순간에."
"지금은 평범하게 말해야 한다구?"
"음? 그건 왜..."
"잘 생각해 봐, 링 씨?"
"음."
검지를 들어 올린 미래가 말했다.
"링 씨는 암흑 여제잖아?"
"그렇지."
"음지의 지배자지?"
"그렇네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적어도 음지는 아닌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그럼 우리는 정체를 숨겨야겠지?"
"흥, 나는 암흑 여제. 양지의 인간들이 뭐라고 하던, 내가 알 바는 아니..."
"하지만 링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곤란해지잖아."
"으... 음?"
"지금 링 씨는 혼자 대화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같이 대화하고 있는 거잖아?"
"그, 그렇네만..."
"대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고위층의 할 일이 아닐까? 대화하는 사람도 그게 좀 더 자연스러울 거고."
"...어..."
"안 그래도 시선 끌리는 조합이잖아? 은발 소녀랑 미소녀 셋이 모이는걸!"
"저는~ 미소녀가~"
"셧 업."
"네, 넵!"
미래의 말에 비지니스 모드가 어중간하게 들어가는 지영이였다.
이미 링은 미래의 말에 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고 있고, 나는 빨대로 주스를 홀짝이면서 두 사람을 바라본다.
...진성 중2병을 설득하고 있는 진귀한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
"보, 본인이 미소녀라고 말하는 건 처음 보는 구나. 마치 헤르메스의 속삭임..."
"또또."
"헤, 헤르메스가 문제더냐? 그럼 발키..."
"그게 아니잖아?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부끄러워지잖아!"
"여, 여의 말투는 부끄럽지 않으니라!"
"정말? 이미 얼굴 붉어졌는데?"
"ㅡ."
순간 발끈해 소리치다가 미래의 반응에 링은 시선을 회피하더니 슬며시 자리에 앉는다.
오, 말하지 않겠단 소리네.
어떤 의미에선 현명한 방법이다.
"이번엔 링만 떨어진 거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다른 미션 하고 있으니까~!"
"이쪽 세계가 유난히 시간 걸리는 세계야. 원래 제법 해결하기 쉬운 미션으로 받거든."
"...쉬운 미션이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1층에서 받은 것도 사실 내가 상성이 좋았을 뿐, 다른 마법 소녀가 떨어졌다면 힘든 싸움이 되었을 거로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2층도 어떤 미션인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귀찮은 녀석이랑 싸울 거 같은데... 시간 마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만.
"음~ 뭐, 재밌네. 생각하는 건 뭔지 알겠는데... 아마 생각하는 대로일 거야? 층마다 뭔가 힘이 개입하고 있긴 하거든?"
"힘이 개입..."
"응, 아마 스노우 너를 최대한 늦게 도착시키려는 수작이겠지?"
"..."
아마 그걸 방해하고 있는 건, 파괴자.
관리자라고 불리는 녀석이겠지.
하긴 탑이라는 것도 우리 세계에 만들어진 거니까, 관리하고 있는 관리자가 조정할 거로 예상하는 건 쉬웠다.
...그런 것치곤 나한테 상성 나쁜 곳으로 보내진 않지만.
"상성 나쁜 녀석이라고 해봐야 검 쓰는 애일 텐데... 사실 마법 소녀처럼 날아다니는 검사는 잘 없어. SF 세계관 정돈데 거기 애들은 마법에 생각보다 약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노라."
"생각이랑~ 대화하는~ 이상한 사람이야~"
뚱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링.
지영이가 쓰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지만, 미래는 무시하면서 추가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위험한 애가 없는 건 아니니까, 조심해~"
"...응."
"좋아, 난 이만 갈게! 링이랑 재밌게 놀아!"
그렇게 말하더니 케이크 하나를 입에 넣은 미래가 다시 카페 밖으로 나선다.
...아니, 그, 왔으면 보통 대화라도 더하고 가지 않아?
"...혼란스러운 자로고, 관찰자라는 족속들은 다 저런게냐?"
"그럴 리가~ 관찰자 중에서도 특이한 사람이야~"
"흐음..."
"근데 어쩔 거야, 설아?"
"뭐가."
"링도 지금 거처 없을걸?"
"...아."
"흥, 여는 언제나 여의 성을 소환할 수 있지. 거주지는 문제없다."
"성을 어디에 소환하게?"
"어디 숲 같은 데 소환하면 되지 않겠더냐?"
"...비행하고 오면서 숲 없는 건 못 봤니?"
지영이의 말에 잠시 눈을 깜박이는 링.
잠시 고민하듯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던 그녀가 아! 하고 소리치며 말했다.
"산 정상은 어떻느냐!"
"빨리 세희한테 물어봐, 설아."
"...응."
그렇게 세희네 집에 얹혀사는 식구가 늘어났다.
어찌저찌 링을 들이고 다음 날.
눈을 비비면서 침대에서 일어나자, 링이 옆에서 고요한 숨소리를 흘리면서 잠들어 있는 게 눈에 띈다.
...예쁘네.
가만히 있으면 미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부스스했던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조금 위험할지도."
[일어나셨습니까, 마스터.]
"응."
여자애를 침대에서... 그것도 눈앞에서 봤는데, 예쁘네로 감상이 끝인 것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고개를 저으며 멍한 정신을 되돌릴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은... 어쩌지.
지영이 말대로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거고, 미경이한테 직접 찾아가는 것도 괜찮...
"잠깐만, 설이 아직 잔다니까?"
"앗! 그래? 으으으... 설이가 있어야 다음 내용 진행하는데!"
"..."
아무래도 어제의 계속을 잇고 싶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슬쩍 휴대폰을 열어 미튜브를 확인하자, 조회 수가 상당히 높은 미아의 영상을 발견한다.
내가 싸우는 부분뿐만 아니라 탐험하는 부분도 들어가 있는 모양.
이거 괜찮은 건가...?
미아 방송에서 내가 활약하는 모습은 좀 그렇지 않나?
아무튼, 방송 쪽도 염두에 두자.
어떤 걸 할까?
1. 책을 읽는다.
2. 미경이를 찾아간다.
3. 방송에 마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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