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방송분기
* * *
격투가.
격투술은 확실하게 아는 게 없지만, 경우의 수를 계산해보자.
0.5초 후 격돌.
거리를 벌린다.
바람의 마력을 불러온다.
"어스퀘이크!"
"음..."
내 마력을 느낀 적이 땅을 부수고 뒤흔든다.
동시에 용케도 균형을 잃지 않고 달려오지만, 이미 위치에서 벗어난다.
아무래도 마법을 캔슬하려 했나 보네.
"슈팅 스타."
안타깝게도 내가 비행 중이라 소용없었지만.
그래도 마법사와 싸우는 방식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칫, 이건 또 뭐야?"
날아드는 별 무리를 능숙하게 쳐낸다.
통로라서 비행해도 무조건 닿는다.
지금 써야 할 마법은...
"스타라이트 버스터."
오버 히트 버스터에 별 속성을 담아 쏘아낸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마력이 담긴 건지, 스타라이트 브레이커의 아류판처럼 쏘아진다.
잠깐의 시간.
그는 0.2초 정도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행동에 나선다.
"반사회전참!"
"..."
마치 검술을 쓰는 것처럼 손날로 반달을 그려내는 적.
기술명에 대놓고 반사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는 건, 카운터 형 기술.
곧바로 방어 마법을 준비한다.
설마 아류판 SLB를 반사할 수 있을 줄이야...!
콰아아앙!
"끄아아아?!"
"..."
어라?
방어 마법을 시전하던 걸 멈추고, 순간 눈을 깜박인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를 바라보자 기절한 김 진태가 보인다.
뭔가 화려하게 등장한 것치곤, 맥빠지는 탈락.
...아니, 아니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스토리로 치면, 초반부일 테니까.
방금 쓴 마법은 중형 몬스터를 처리할 정도의 위력이기도 하고.
"그럼, 이제 어쩌지."
다른 사람들과는 떨어진 상황이다.
메세지는 가지 않는다.
그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상하지만."
방금까지 싸움이 났었는데, 위가 조용한 것도 이상한 상황이다.
물론 이 남자가 처리할 거라고 확신하고 안 오는 걸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는 게 당연한데...
여기저기 부서진 것들을 가볍게 박살 내고, 계단을 올라간다.
...어떻게 설계했길래 무너지지도 않고 벽만 좀 부숴진 건지.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렇게 1층으로 나오자 보인 건, 군인들의 시체투성이인 복도.
호러 게임에나 나올 법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린다.
또 다른 괴물이라도 있던 걸까?
아니면...
아! 연결됐다! 살아있어~?
"...응."
멀쩡해서 다행이네! 지금 어디야?
"아마... 지하 쉘터."
에엥? 거긴 또 어디래... 우리 자료는 다 찾아냈거든? 빠져나올 수 있으면 나오면 돼!
"드레이크는"
훗훗훗! 우리 고인물 3인방에게 드레이크 잡기 미션을 묻는가! 당연히 잡았지~ 거긴 어때?
"왠 남자가 덤벼서 처리하고 나오니까, 시체가 엄청 많아."
넹...?
내 말에 미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시체가 많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텐데...
시체 남겨놨다는 건, 거기서 얻을 게 있단 소리거든? 카드키나 열쇠 같은 것들 찾아볼래?
호, 혹시 세세하게 다 묘사된 시체 아니지?
"장기나 팔이 날아간 걸 말하는 거라면... 응, 먹힌 흔적이랑 베인 흔적... 아마 손톱일까."
아하하하, 그런 데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니겠지!?
"평범하게 해야 할 일이야."
르마, 네가 쫄아있으면 어떡해.
그, 그치만~ 이 갬 호러 겜 아니잖아! 성인겜도 아니잖아!
"..."
그건 그렇네.
게임 플레이해보고 맞는 등급을 매기는 곳, 분명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이 이 게임을 15세나 12세로 매겼으니, 이런 사실적인 흔적이 있는 건 이상한 일...
"다른 루트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된 게 없나 봐."
응? 응, 그렇지. 묘사돼도 장기까지 나오고 피투성이인 방 같은 건 안 나와. 시체는 제법 나오는 편이긴 한데...
"...숨겨진 루트는 몰랐구나."
그렇다는 건, 이곳이 이례적이라는 소리다.
슬쩍 군인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연구원 복장 시체를 뒤적인다.
아무래도 죽은 지 오래된 건 아닌지, 아직 피가 뜨겁다.
"..."
게임이라는 건 알지만, 기분 나쁜데.
어떻게 촉감까지 구현한 건지 모르겠다.
"있네."
있어?
"응."
시체에서 꺼낸 건, 3급 보안구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적힌 카드.
피가 묻어 살짝 털어내자, 핏물이 튀었다가 그대로 정화된다.
아마 그걸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있을 거야. 거기로 가야 돼.
일단 우리도 합류할게. 그쪽 통로에 가는 길목 있는 거지?
"응."
오케이, 그럼 거기까지 하고 방종하면 되겠다.
합류할 때까지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있고, 아니면 거기서 기다려.
조심해~! 처음 하는데 죽으면 기분 엄청 나쁘다규!
"알겠어."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내가 수긍하자, 메세지가 종료된다.
어디에 써야할까 생각하면서 주변을 보자 발견한 건, 핏물의 패턴.
제작자가 길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놓은 걸까.
아니면...
"괴물이 저쪽으로 갔단 거네."
또다른 괴물을 암시하는 걸로 보인다.
천장이 높은 공간만 있다면, 그래도 상대할 수 있을지도.
여기서 선택해야 할 건, 두 가지.
반대로 가서 카드키로 자료나 정보를 찾아낸다.
그대로 괴물을 상대하고 간다.
...어렵지 않은 선택지다.
핏물을 따라 걸어간다.
이 장소의 괴물이 뭔진 모르겠지만, 드래곤이 아닌 이상 평범하게 상대할 수 있다.
근접전이 된다면 과연, 그건 좀 빡세긴 하겠지만 집중하면 클리어할 수 있다.
"재밌겠다."
간만에 느끼게 된 두근거림에 가슴에 손을 댄다.
심박동이 평소보다 빠르다.
그러고 보면, 아포칼립스에서는 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게임을 하게 된 최초의 계기가 떠오른다.
뭘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나에게 경쟁심과 흥분을 심어줬던 게임.
프로게이머로서 정점에 올랐을 땐 확실히 흥미를 잃었었지만...
"...해볼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리스트를 머릿속에 정리한다.
시전해보려고 했을 때, 시전이 가능한 것들과 불가능한 것들을 나눈다.
그 중 좁은 곳에서 사용해도 문제없는 마법들을 연산한다.
응, 준비됐다.
통로를 따라가자 점점 시체가 많아지고, 피냄새도 진해지기 시작한다.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시체가 식지 않았으니까, 녀석도 아직 근처에 있겠지.
크르르르...
괴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으르렁거리는 게, 늑대형 몬스터인가.
긴장하며 앞을 바라본다.
거대한 덩치의 그림자가 보인다.
얼추 3m인가.
어두운 곳에서 나오자 보이는 새하얀 털과 붉게 물든 입가.
피가 묻은 곳 외에는 순백에 가까운 털빛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시네마로 녀석이 걸어나오는 연출이 나타난다.
[펜릴]이라고 이름이 드러난다.
"...이상하다, 펜릴이 언제부터 하얀 늑대..."
크왕!
시네마가 끝나자마자 내 코앞으로 달려드는 늑대.
아무래도 사망하라고 만든 이벤트 같은데...
"프로텍션."
3중으로 실드를 펼치고, 윈드 스텝으로 거리를 벌린다.
물어뜯기 한방에 전부 박살난 실드를 보며, 곧바로 마법을 장전.
스피드 스타와 슈팅 스타를 동시에 펼치자, 온 사방이 별 탄막으로 가득 찬다.
"..."
콰드득.
내 별무리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펜리르.
발톱과 이빨에 부딪히자, 귀찮다는 것처럼 고개를 젓는다.
...역시 슈팅 스타는 약하네.
위력 업을 연구해보기로 하자.
0.3초 후에 도착.
피할 방법이야 있겠지만, 현실이 아니니까... 통증은 없겠지.
"..."
손에 마력을 모으고 뻗는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펜리르가 입을 벌리다가, 흠칫한다.
동물로서의 본능일까.
내 손에서 버스터가 나가려는 순간, 벽을 치며 순간적으로 허공으로 회피한다.
"대단하네."
동시에 360도를 회전하면서 뒤에서 물어뜯으려는 녀석.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담으며, 내가 말했다.
"미러 이미지."
파아앙!
내가 있던 자리에 바람 분신이 생기며 펜릴을 밀어낸다.
녀석의 눈이 나와 마주한다.
"윈드 커터."
바람을 먹어치우려는 모습에 마법을 변형시킨다.
바람 칼날이 덮쳐오자, 생채기와 함께 피해낸다.
"볼케이노."
피해낸 자리에 화염 폭발을 일으키자, 녀석이 허공을 밟더니 방향을 튼다.
...허공답보 같은 것도 가능하네.
"익스플로전."
하지만 피해낼 수 없다.
손을 뻗고 쥐자, 그대로 폭발.
녀석이 허공에서 폭발하는 걸 보며, 다음 마법을 준비할 때였다.
"아쿠아 실드."
콰드득!
느껴진 기척에 방어 마법을 펼치자 보이는 또다른 늑대.
[펜리르 분신]이라고 적힌 적을 보며, 공간을 밟는다.
[마법이 캔슬되었습니다!]
"..."
순간 바닥을 물어뜯자, 내 마법이 캔슬되는 모습.
분신이 그러는 동안, 펜리르의 아가리가 나에게 쩍 벌어지는 걸 알아챈다.
"플레어 캐논."
그 입에 화염포를 쏴 폭발시키고, 동시에 분신의 발톱을 피해낸다.
얼굴 근처를 스치는 칼바람에 살갗이 긁힌다.
"아쿠아 웨이브."
파도를 일으켜 밀어내려 하지만, 덩치가 있단 건지 그 자리를 버티는 모습.
그대로 썬더 웨이브로 연계하려 하자, 피어오르는 전격을 녀석이 다시 물어뜯는다.
이대로는 이길 방법이 적다.
새삼 렌과 세르칸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지만... 지금은 없으니까.
연산한다.
상대는 마법을 캔슬하는 입과 발톱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지?
0.2초 후에 이곳저곳을 물어뜯긴다.
알아내야 한다.
저 녀석은 뭐로 무효화시키는 거지?
눈이 필요하다.
최소한 마력시.
순환시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반복된 행동으로 특성 '마력시'를 얻었습니다.]
[Error]
[마력시는 반복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특성이 아닙니다.]
[핵 체크 중...]
[사용자가 인공 마력 시스템을 매우 뛰어나게 활용한 것으로 확인.]
[특성 '마력시'를 획득합니다.]
"알았다."
마력시가 활성화되자마자, 눈을 가라앉힌다.
안티 매직 쉘과 비슷한 방법이지만, 다르다.
마력을 이용한 브레이크.
안티 매직 쉘이라기 보단, 내가 사용하는 마법 베기에 가까운 행동이다.
바람의 마력과 화염의 마력을 동시에 일으킨다.
파이렌과 유레하의 연계 마법을 발동시키자, 공격하던 것도 멈추고 회피하는 모습.
내부부터 터뜨리는 것엔 실패한다.
"그럼 2라운드."
눈을 얻었다.
녀석들에게 느껴지는 바람 마력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간단한 일이다.
"전부 베어볼게."
스태프에 마력을 담아 검으로 빗어내며, 녀석들에게 담담하게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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