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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34화 (134/149)

〈 134화 〉 D­Day까지 4일

* * *

다음 날.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오자, 부스스했던 머리카락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깔끔해진다.

...그러고 보니 일어났을 때 바로 되지 않는 건, 왜 그런 걸까.

[인지의 문제겠죠.]

"아, 렌... 좋은 아침."

[네, 좋은 아침입니다.]

"인지하지 않으면, 회복도 안 되는 거야."

[결국 최상을 유지하는 건, 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라는 걸 인지하고 최상으로 되돌리는 거니까요.]

"그럼 내가 인지하지 못하면, 회복하지 못하는 거야. 그럼 죽을 수도 있는 거고."

[그건 아닙니다.]

내 말에 렌이 어쩐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암살을 당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죠. 목이 떨어진다. 심장이 꿰뚫린다. 머리가 꿰뚫린다... 전부 인지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상입니다.]

"...예시까지 들 필요는 없지만."

[네, 하지만 결국 그런 치명상에 당하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걸 인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게 되죠. 그 시점에서 복구되는 겁니다.]

"통증 없이 죽었다면."

[그래도 보이겠죠.]

"그렇구나."

[애초에 마법 소녀는 어딘가 결손이 일어나도 그대로 날아가다가 돌아옵니다. 따지자면... '시간 되돌리기'에 가깝겠네요.]

그거 역시 인간이 아닌 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만, 고개를 젓는다.

난 인간이야.

설이도 인간이고.

그저 능력을 가지게 된 것뿐이야.

"아침부터 뭐 하고 있어?"

"아냐."

내가 방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자, 방금 씻고 나온 건지 긴 머리칼을 말리던 세희가 말한다.

...이상하게 보였으려나.

고개를 저으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자 나를 빤히 보던 그녀가 말했다.

"흐응, 신기하네."

"어떤 게."

"첫날이랑 모습이 똑같은 거? 사실 너한텐 씻는 것도 의미 없어 보이네."

"기분 문제야."

"아, 그건 알 거 같아. 나도 사실 그냥 깨끗하게 하는 마법 쓰면 해결이긴 하거든."

그 긴 머리를 그새 다 말린 건지, 웃으면서 말하곤 예의 트윈 테일로 머리칼을 묶는다.

세희는 머리칼을 묶는 거랑 풀어놓은 거랑 분위기가 다르네.

방금까진 그저 흥미로운 걸 본 아가씨의 분위기였는데, 머리를 묶고 나니 차분한 모범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 거야."

"평소에도 큰일은 없었어. 가끔 미류랑 수진이가 부딪히는 건, 예정 범위 내고."

"그럼 평소보단 빨리 잤겠네."

"..."

"거기서 시선을 피하지 마..."

진짜로 얘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 아닐까.

"그..."

"그."

"라노벨이 재밌어서..."

"..."

생각지도 못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 내가 상혁이를 라노벨 주인공처럼 만들어야 해서! 참고 자료! 참고 자료니까...!"

"방금 재밌다고 했잖아."

"재밌는 건 재밌는 거고!"

아, 이거 글러 먹었어.

내가 그녀의 말에 무표정하게 바라보자, 세희는 한숨을 내쉬곤 에잇.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간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시간은 5시 반.

...생각 이상으로 이른 시간이다.

"오늘 혹시 나갈 거야?"

"...고민중이야."

"오늘 미아랑 미경이 온다는데, 집에 있을래?"

"미아랑 미경이..."

미아는 진 빠질 것 같지만, 미경이한테는 볼 일이 있다.

...이것저것 많이 아는 것 같고, 친해지는 게 좋겠지.

"응."

"미아가 저번에 같이 못 놀아서 아쉽다고 하더라."

"미아랑 미경이 친한가 보네."

"응? 두 사람이... 그...런가? 미아가 일방적인 것 같기도 하고."

"..."

그런 애매한 친구 관계 괜찮은 건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미경이가 워낙 소심하니까..."

"응, 그래서 다른 애가 대신 움직이잖아."

"어라...? 어떻게 알고 있어? 맞긴 한데."

"남자 인격인 애가 이것저것 말해줬으니까."

내 말에 세희는 턱에 손가락을 댄 채 고민하다가 말했다.

"확실히 네가 필요한 정보, 대체로 알고 있을지도."

"응, 그래서 이야기 중이었는데, 그제도 미아가 와서..."

"아아, 다들 놀러 왔었지. 그렇구나, 이미 만난 건가..."

"히로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부 만났어."

"그래? 그건 그거대로 대단하네... 미류도?"

"응."

"흐응, 생각보다 친화력이 좋은 편?"

"아니라고 생각해."

전부 상대 측에서 다가온 거지, 내가 직접 다가간 건 유린이 뿐이다.

실제로 유린이한테 먼저 다가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친해지고 나선 평범하게 대화가 되니까... 어떻게든 친해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접점이 없으면 친해질 수 없는걸."

"그럼 너는 접점이 많은 사람인 거네."

"..."

어라? 그게 그렇게?

내가 침묵하자, 그녀는 쓰게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흠칫하면서 손을 뗀다.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아하하... 하면서 어색한 미소를 흘리는 모습.

아무래도 세연이처럼 대한 모양이다.

"미안, 조금... 버릇이라."

"남자가 여자한테 쓰다듬는 건 착각이지만, 여자끼리 쓰다듬는 건 그냥 가벼운 스킨쉽이니까."

"?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세희를 보며,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담기다가, 사라진다.

...이 분위기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건 위험하네요.]

"응."

"뭐가 위험하단 건지... 아무튼, 아침 먹을 거지?"

"응, 많이."

"그래그래, 엄청 많이 해줄게."

그건 기대되는 말이다.

­­­­

"어제부터 생각했지만, 어디로 그렇게 다 들어가는 거야...?"

"언니 쨩 마니 머거!"

"...맛있으니까."

"보통 사람은 맛있다고 들어가지 않아..."

내 말에 상혁이가 조금 질린 표정으로 그렇게 답한다.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

시간을 보니 6시 반.

...이 사람들 왜 6시 기상이 기본인 거야? 방학이라며.

"다들 일찍 일어났네."

"응? 평소에 이 시간에 일어나니까."

"세희 언냐가 그래써! 방학이라고 생활 패턴 무너지면 안 댄데!"

"..."

프로게이머로서 밤샘이 익숙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아니, 애초에 얘네 이렇게 규칙적으로 자는데 성적이 좋다고?

...세희는 수면 시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혁이는 대체 어떻게?

"평균 수면 시간 6시간은 짧은데..."

"사람은 하루 5시간만 자도 안 죽는데...?"

어쩐지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다.

밤샘 게임하고 8시간 자는 거 기본...은 아니겠지. 응.

내가 상식이 부족한 걸로.

"미아랑 미경인 몇 시에 온데?"

"점심때 온다던데?"

"정확한 시간 없이?"

"미아 방송 중이라서."

"아아..."

"방송이구나. 어떤 방송이야."

"그게..."

내 말에 상혁이가 이걸 말해도 되나? 같은 표정으로 세희를 바라보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아한테 들어. 우리도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된 거지, 알려주려고 알려준 게 아니거든."

"..."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휴대폰을 만지는 세희.

...어딜 들어가나 했더니, 미튜브를 켜고 있다.

따돌리는 느낌이다.

"미아라면 오늘만 친해져도 알려주지 않을까? 어차피 공공연한 비밀인 거고."

"공공연한...?"

"우리만 해도 미아 방송 자주 보거든."

"흐응."

뭔진 모르겠지만, 제법 재밌는 모양이다.

언제 시간 나면 보기로 할까.

식사한 후 전부 한가한 타이밍.

세연이는 좀 있다가 미아와 미경이가 오기로 해선지, 얌전히 TV를 보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응? 뭔데?"

"세연이도 능력이 있는 거지."

"능력?"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상혁이를 보며, 나는 눈을 깜박인다.

...능력이라는 게 뭔지, 아예 모르는 느낌인데?

[지금 상혁이가 가진 능력, 봉인 상태인 것과 연관 있지 않겠습니까?]

일 리가 있어.

아무래도 능력자들이 싸우는 세계관에서 상혁이와 세연이는 벗어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일반인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러브 코미디를 찍고 있는 거겠지.

...이딴 게 주인공?

[히로인에게서 모든 걸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훌륭한 주인공이 아닐지.]

"그것도 그러네."

"...?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아냐, 상혁이랑 세희, 둘다 성적 좋다고 들어서. 세연이도 그런가 하고."

"언냐 나빠써, 세연이도 공부 열시미 하거든!?"

"응, 그렇구나."

투정부리듯 내 무릎 위에서 바둥거리다가, 해맑은 미소를 짓는 모습.

...이 꼬맹이를 누가 중학생으로 볼까.

"나, 나름 20위양!"

"그렇구나."

실제로 20위는 높은 순위다.

...누가 세희 동생 아니랄까 봐, 여기저기 놀아달라고 하면서도 공부는 제대로 한 모양이네.

내 성적과 비교하면 상당히 혜자다.

"언냐는? 언냐 성적은 어땠는데?!"

"...잘 모르겠는데."

설이 얼굴로 내 성적을 말할 수는 없고, 나는 설이 성적을 잘 모르니까.

자기는 알려줬는데 내가 알려주지 않자, 뺨을 부풀리는 세연이.

...확실히 귀여운 아이다. 원래 세계로 찍어서 보내주고 싶을 정도로.

[아마 봤을 거로 예상됩니다만.]

뭘 어떻게 봐, 이걸.

렌의 발언에 내가 의아한 얼굴을 하지만, 이내 세연이가 내 배를 약하게 토닥이는 걸 느끼곤 배를 간지럽힌다.

그러자 간지러! 하면서 빠르게 빠져나가는 소녀.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

"내가 왔노라! 모두 받들어라!"

"받드러라!"

"꺄~! 우리 세연이 잘 있었어~!"

"우리 미아 언냐 또 와써!"

"아, 안녕하세요..."

"미경 언냐! 안뇽!"

"으, 응..."

"왔어?"

시끌시끌한 파티다.

상혁이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말하는 미아와 그걸 반기는 세연이.

소심하게 답해도 하이 텐션으로 인사하는 모습까지.

...너무 인싸스러운 행동들이라 미경이가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안녕."

"앗, 설이도 안뇽안뇽~"

"응."

"에이, 항상 그 텐션이야~? 아무튼, 오늘이야말로 그거 하자 그거!"

"그거가 뭔데."

"인원이 6명! 3대3 게임을 하기 걸맞기 그지없도다!"

"..."

어째선지 게임하는 멤버에 내가 들어가 있다.

"우리 집에 장비 그렇게 많이 없거든? 포기해."

"에~ 보드 게임에도 없어...?"

"우리 집이 보겜방이냐."

상혁이의 말에 쳇. 하면서 툴툴거리더니, 세연이를 안아 든 상태로 그대로 소파로 다이브하는 모습.

그 행동에 나는 슬쩍 왼쪽으로 물러나고, 내 옆에 누운 그녀가 말했다.

"설이도 할 거지?"

"...방금 없다고 했잖아."

"있으면 할 거지?"

"하아..."

미아의 말에 어째선지 미경이가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상혁이도 짚이는 부분이 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폰을 들어 올리는 모습.

그 때 세희가 방에서 나온다.

"또 무슨 이벤트를 멋대로 준비한 걸까, 이 바보 미튜버 씨."

"에, 에헷★"

"귀여운 척해도 소용없어."

"꺄항!"

"꺄~ 언냐가 공격해온당!"

혓바닥을 내밀고 머리를 치는 전형적인 모습에 세희가 곧바로 미아의 뺨을 당긴다.

그러자 아프다는 것처럼 탁탁탁 하고 세희의 팔을 치는 모습.

...가볍게 잡은 거라 아프진 않은 모양이다.

"설이는 손님이야 손님. 멋대로 그런 약속 잡으면 어떡해."

"...그, 그치만 이 얼굴을 봐! 그냥 겜에 인식만 시켜도 그냥 버튜버잖아! 머리칼도 그렇고! 눈동자도 그렇고!"

"그건 부정할 수 없지만, 허가는 받아야지!"

이해는 하지만 그건 부정해줬으면 좋겠다.

"응~ 설이야~ 할 거지이~?"

"...약속이 뭔데."

"내 방송에 버튜버로 출현해주세욧! 사랑해욧!"

"싫어."

"단칼?!"

아니 애초에 난 버튜버가 아니고,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없는 몸이다.

계속 추억을 쌓았다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

"응? 한 번만 하자! 한 번 이상 출현 안 해도 되니까!"

...어떻게 할까.

­­­­

1. 방송에 참가한다.

2. 다른 걸 찾아보자.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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