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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33화 (133/149)

〈 133화 〉 D­Day까지 5일

* * *

세희가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내가 눈을 깜박이며 그녀를 바라보자, 설명이 부족했단 사실을 깨달은 소녀가 말했다.

"미안,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말했네..."

"아냐. 이유가 뭔데."

일단 이유나 들어보자는 것처럼 말하자, 세희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얼굴을 붉힌다.

...무슨 이유길래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게 말이지..."

"응."

"네가 있으면 편할 거 같아서..."

"어떤 점이."

"히로인 후보도 되고, 이런저런 사건 때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다른 애들도 가능한 이윤데?

샤브린도 가능한 일이고, 유린이만 해도 가능한 일이다.

굳이 나까지 남아서 도와줄 만한 일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뭐야."

"아하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이유였는지, 세희는 시선을 슬쩍 피한다.

...최소한 사람한테 부탁할 땐,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네가 오고 나서 상혁이한테 향하던 시선이 좀 흩어졌거든."

"시선."

"응, 상혁이가 라노벨 주인공스럽고, 주변에도 그런 개변이 좀 깔리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받아들여지는 건 이상하잖아?"

"...아."

그런 거군.

게임에서나 통할 설정이 현실에 오면서 질투나 시기 같은 게 제법 많은 모양이다.

...어제 유린이와 했던 대화를 생각해보면, 세연이한테는 큰 피해 없었던 게?

"세연이는 멀쩡했어."

"응? 응, 그렇지. 세연인 괜찮아. 실제로도 세연인 귀엽잖아?"

"..."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그럼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느 쪽일까.

"상혁이한테 히로인이 너무 몰려있구나."

"...상혁이가 잘생긴 편이긴 하지만, 근처에 미소녀들이 너무 많이 뭉쳐있어. 그러면서 성적도, 운동도 우수한 편이고. 소위 말하는 엄친아에 가까운데..."

"..."

"상혁이는 배경이 없어."

담담하게 내 남친 대단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세희를 보며, 미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결국 남친을 위해서라는 의미에 가까워 보인다.

"남편 내조 잘하네."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안 돼. 내가 가지 않으면..."

"아니아니, 사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돼."

"무슨 말이야."

"나는 공간의 사신이야. 네가 '해야 할 일'을 다 끝내면, 와도 돼."

"...그래도 안 돼. 이 몸은 주인에게 돌려줄 생각이니까."

"돌려줘? 몸을?"

세희가 이상한 걸 들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뭔가 이치에 안 맞는 걸 들었다는 눈빛이다.

"으음... 하긴, 본인 의사로 몸에 넣은 거 같으니까... 불가능하진 않으려나? 사신의 영역인데... 마법의 영역으로 그게 가능...한가?"

어쩐지 고민하면서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

...마법으로 시간도 되돌리는데, 불가능할 리가.

"마법으로 어지간한 거 다할 수 있어."

"그래, 시간도 공간도 재능이 있다면 가능하긴 하지... 영혼 다루는 일도 가능할지도."

"...영혼 다루는 계열은 본 적 없어?"

"영혼 다루는 계열은 보통 본인이 영혼을 빼고 넣고 하는 게 아니라 영혼에게서 힘을 빌리는 쪽이니까. 물론 어느 세계에는 그런 능력이 있겠지만, 마법 소녀가 있는 세계에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네..."

"...우리 세계 아포칼립스인 걸. 충분히 가능해."

"하아, 그것도 그래."

내 말에 수긍하듯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내가 그럴 생각이 없다는 사실 하나는 알아준 모양...

"그거랑 별개로도 넘어올 생각은?"

"...왜."

"아예 육체까지 넘겨주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거지? 네가 이뤄낸 거 아무것도 회수 못 하고."

"그건..."

굳이 회수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아포칼립스든 여기든 나는 이방인.

그저 게임을 즐기다가 떠난 것뿐인 그런 존재다.

클리어하면 업적이나 지인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건 아쉽지만, 남고 싶게 된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을 뿐.

굳이 이쪽 세계로 넘어올 이유는 없...

"여기 세계관 자체가 미소녀가 많은 세계관이야? 정말로 흥미 없어?"

"...전부 주인공 히로인이잖아."

"...하렘 루트로 보이는 건 맞긴 한데, 상혁이도 갈등하고 있거든. 게다가 말 그대로 '히로인'인데 다른 연인이 생기길 원하진... 않을 거야. 아마도."

거기서 아마도라는 단어가 나오면 안 되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짚이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당장 본인이 하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너, 기분 나쁘게 생각도 읽을 수 있네."

[스스로 흔들려서 정신 방벽을 풀면, 자연스럽게 읽히기 마련이지요. 방심한 쪽이 나쁜 겁니다.]

"그래, 내가 악마한테 뭘 바라겠어."

"그보다 스스로 하렘을 원한다는 건..."

"하아아..."

들키기 싫은 부분을 들켰다는 것처럼,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는 건지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 모습.

잠시 그렇게 있던 소녀는 생각이 끝난 건지 눈을 뜨곤 입을 열었다.

"일단 나는 그걸 바래. 모든 애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으니까."

"..."

"그거 알아? 미아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야. 좋아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친구를 믿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렸어. 비록 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를 얻었지만, 결국 이뤄낸 아이지."

"그렇구나."

"유린이는 다른 세계로 끌려간 상황에서 친구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어떻게든 힘내서 돌아온 아이야. 그 정도면 어리광부릴 법도 한데, 평소처럼 우리를 대했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했어."

"..."

"수진이는 전생 때부터 루시에르를 마음 깊이 담아두고 있던 아이야. 그대로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홀로 생존해 살아가고 있다가, 이쪽으로 넘어와서는 그가 더 이상 싸우지 않도록... 휘말리지 않도록 대신해서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아이지."

히로인들의 이야기인가.

어째서인지 주인공보다도 다른 히로인들을 잘 알고 있는 듯한, 세희의 말이었다.

"미경이는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어. 다른 아이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의외의 부분에서 기가 센 경향이 있지."

"미류는 누구보다 자신의 주인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주인공을 사랑하게 돼서 망설이고 있는 아이야. 자신의 운명에 슬퍼하면서도 어떻게든 둘 다 살려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어."

"응."

"나는... 그 아이들 사이에서 상혁이에게 선택하라고 말할 수 없어. 상혁이도 모든 아이들에게 조금씩 끌림이 있는 모양이고. 그래서... 하렘 엔딩이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어째서 그걸 루아, 당신이 이뤄내려 하는 겁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들은 렌이 나보다 먼저 그렇게 묻는다.

그래, 방금 그 내용은 결국 주인공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그걸 '조력자' 포지션에 있는 세희가 하나하나 해줄 필요는 없었다.

조력자의 역할은 그저 도와주는 것 뿐.

뭐, 사실 정답은 당연한 이야기다.

"남편 내조 열심히 하네."

"아니, 정말 아니니까..."

세희도 상혁이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만큼 친구들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어떠려나.

...어찌됐건 이 아이들의 연애 사업 같은 건 그다지 관심 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정도의 감각이다.

"결국 정말로 끌어들이고 싶은 이유는 뭐야."

"...차선이야."

"차선."

"혹시나 상혁이가 누군가 한 사람만 골랐을 때, 다른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게 나라는 건가.

영문을 모르겠다.

"수호자는 주인공의 운명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아. 너도 '주인공'에 속하는 사람이고. 만약 네가 업적을 이루고 그대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어."

"..."

"주인공이라면 상혁이를 대신할 수 있어. 추억은 쌓으면..."

"그런 표정으로 말하면, 누가 봐도 거짓말 같은걸."

"...응? 무슨 말이야?"

본인 표정을 자각하지 못한 듯 세희가 얼굴을 만진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에게 다가가는 나.

이내 뺨을 꾹. 하고 꼬집자, 그녀가 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야."

"네 표정, '그런 게 가능할 리는 없겠지만'같은 생각이 다 읽혔어."

"얼굴만 보고 생각이 읽히는 건, 상혁이 정도야."

"...네 말에 맹점이 하나 있어."

"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점. 결국, 모든 아이들은 상혁이가 '주인공'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너도 주인공이니까, 실연당한 애들을 위로해주는 건... 할 수 있을 거 아냐."

"그것도 내가 할 일은 아니야."

굳이 할 이유도 없고, 내가 그렇게까지 예쁜 애들한테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건, 그저 '게임'일 뿐.

그나마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친구 쪽이 될 테지만, '연애' 쪽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애초에 예쁜 애들을 보면 '예쁘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끝이니까.

"이쪽 세계의 일은 이쪽 세계에서 끝내야 해."

"...그래, 네 말이 맞네. 미안."

억지라는 걸 깨달은 건지, 세희는 쓰게 웃으면서 풀썩. 하고 침대에 앉는다.

그리곤 하아... 하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

잠시 후, 내가 아닌 다른 걸 바라보는 눈동자로 그녀가 말했다.

"그냥, 좀 안타까웠을 뿐이니까. 내가 억지 부린 거 맞아. 어제도 말했지만, 난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거든."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응, 영웅들의 최후는 결국 비극일 때가 많으니까... 실제로도 그럴 거 같고."

내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녀는 내 머리를 붙잡고 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누구 멋대로 동정하는 걸까, 이 사신.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하는 거야."

"알아, 그러니까 네가 수호자인 거겠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결과적으론 남에게 이로운 일이 되니까."

"..."

이 꼬맹이 말이 안 통하네.

어떻게 말해도 좋게 해석하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내 마지막은 비극이 아니야. 모두를 구하고, 인연을 쌓고, 모든 걸 마무리해서... 오랫동안 고통받은 설이를 해방해줄 뿐이야."

"그게 비극이잖아."

"나는 평범한 프로게이머니까, 그쪽으로 먹고사는 것뿐이야. 나한테 비극은 결국 설이를 구하지 못하는 쪽이겠지."

"...확실히 평범한 사람이랑 생각이 다르네. 누가 영웅 아니랄까 봐."

그렇게 말하더니 세희가 자기 머리카락을 뚝. 하고 뜯어낸다.

그리곤 뭔가 허공에 중얼거리자, 노란 종이 한 장이 떨어지는 모습.

뭔가 싶어 그걸 바라볼 때, 그녀는 자기 머리카락 한 올을 노란 종이에 꾸욱 하고 비빈다.

그러자 마법처럼 노란 보석으로 변하는 모습.

...이게 모예요? 어케 했어요? 마법도 아닌데?

"음... 여기로 할까."

그런 생각을 할 때,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마에 보석을 톡. 하고 누른다.

분명 가벼운 움직임이었는데, 슥하고 몸속으로 스며드는 보석.

...제법 놀랐는데, 통증은 없다.

살기나 공격하려는 의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해로운 건 아니겠지.

"너... 몸이 좀 이상하긴 하네."

"마법 소녀 특성이야."

"응, 처음 보는 거긴 한데... 아무튼, 네 능력대로면...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 진짜 죽는 게 아니라 죽은 척할 수 있어. 그렇게 딱 한 번, 살아날 수 있을 거야."

"..."

"솔직히 관여하고 싶진 않은데, 네가 생각하는 거 보니까 불안해서..."

"...고마워."

좋은 선물이다.

마지막 보스가 어떤 식으로 나오는 건지 모르는 환경에서 1회용 부활권이라는 건,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다.

"그래도 언제나 생각이 바뀌면 내 이름... 그러니까, '루니아 세르넨'을 입에 담아. 그럼 내가 도와줄게."

"도와줄 수 있어."

"이건 계약이야. 네가 나를 부르면, 너는 이쪽 세계에서 살아야 해. 대신, 네가 처한 상황은 확실하게 해결해줄게."

"..."

그건 좀 그런데?

그래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생각해보자.

아예 해결 못 해서 배드 엔딩보단 나을 테니까.

[...놀랐습니다, 이런 식의 즉석 계약은 저도 불가능합니다만.]

"무슨 말이야."

[방금 말 뿐인 계약, 말 그대로 '용언'에 가깝습니다. 이름을 걸지도 않았음에도 그 계약을 강제하는 건, 아무리 높은 신령이라도 힘든 일입니다.]

"생각보다 아는 게 많네, 어디의 마왕 씨려나. 명부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화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네, 너도 계약에 묶여 있으니까, 내 쪽에서 양보할게."

"...계약이 있던가."

나랑 마법 소녀 계약한 것도 계약이니까... 근데 그거라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한데.

"계약했으니까 너랑 같이 있겠지?"

"응."

"내가 사람 너무 오래 붙잡았네. 가능하면, 끝나고 이쪽으로 오길 바랄게."

그렇게 말한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철퍽! 하고 강하게 얼굴을 바닥에 박는다.

같이 일어나다가 당황하면서 그걸 바라본 내가 말했다.

"...괜찮아."

"...내 주머니에서 초코바 좀 꺼내줘."

"응."

뭐지?

[아무래도 인간인 상태로는 영력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른 에너지원을 소모하는 모양입니다. 아마... '칼로리'나 '스테미나'일까요.]

"우와."

마력도 아니고 그런 건 좀 까다로운 조건 같은데.

내가 초코바를 까서 입에 물려주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걸 씹어먹곤 곧바로 마력을 사용해 소화한다.

그리곤 후. 하면서 다시 몸을 일으키는 모습.

"..."

"인간인 상태로 계약 처음 써봐서 얼마나 소모되는질 몰랐네. 놀라게 해서 미안."

창피할 법한데도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며, 세희가 방을 나선다.

나 역시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원래 목적대로 방을 나가고, 거실에 가니 세연이가 있었다.

"앗, 설이 언냐! 노라조!"

"..."

아, 이거 오늘 조사는 글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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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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