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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32화 (132/149)

〈 132화 〉 D­Day까지 5일

* * *

"..."

"저, 그... 어라?"

[평온한 정신, 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게.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곤란하다는 것처럼 바둥거리는 소녀.

갈색 단발에 헐렁한 푸른 점퍼.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

누가 생각해도, 이 아이는...

"미경이."

"네? 넷!? 제 이름 아세요!?"

내 말에 깜짝 놀란 듯 미경이가 눈을 크게 뜬다.

미경이를 보자마자 생각을 읽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려서 '평온한 정신'이 발동했다.

실제로 생각을 읽은 듯 패시브는 지속해서 발동.

반대로 미경이는 내 생각이 읽히지 않고 있단 걸 눈치챈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 어라...?"

"생각 읽는 건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아, 아으... 그, 그게..."

그렇게 말하던 미경이가 갑자기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춘다.

그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자, 슥. 하고 고개를 들어 정확하게 눈동자를 맞추는 모습.

...뭔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참, 매번 긴급 탈출 버튼처럼 사용하긴. 그래서... 뭐야? 너도 이쪽이 아닌 거 같은데."

"이쪽이 무슨 말이야."

"내가 아는 '이 세계'에는 너 같은 사람 없어. 너도 뭐 빙의자나 전생자야? 능력 가진 거 보니 맞는 거 같은데."

[...기척이 바뀐 '다른 사람'이 맞습니다. 이중인격...이 아니라 영혼이 2개...에 가깝네요.]

렌의 말에 흐음. 하면서 눈을 깜박인다.

원래 세계의 미경이에겐 그런 게 없었는데, 뭔가 속성 같은 걸까.

말하는 걸 보니 빙의라도 한 모양.

...빙의했는데 두 영혼이 같이 있는 괴현상은 처음 본다.

"...난 '유 설'이야."

"방금 나간 건 세연이고... 사투리 쓰는 거 보니까 세연이랑 유린이 루트는 안 탄 거 같은데... 다른 루트 분기에 이런 애가 있었나...?"

"무슨 소리야."

마치 게임 공략을 말하듯 중얼거리는 미경이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빙의자는 보통 이 세계에 대해서 알고 움직이는 게 국룰이긴 한데...

npc 취급은 좀 기분 나쁘다.

"네가 하던 게임에 난 없었을 거야."

"게임인 걸 알아? 그럼 전생자가 맞나 보네? 지금 상혁이가 무슨 루트 탔는진 알고 있어? 일단 미경이 루트는 내가 틀어막았거든."

그게 모예요. 너만 아는 거 말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생각대로 게임을 통해 이곳에 대해 알고 온 모양이다.

루트...라고 말하고 히로인 이야기를 하는 거면... 전투 관련 겜은 아니니까...

"미연시."

"응? 뭐, 라노주가 다른 겜으로도 나왔었나?"

"아니, 아무것도."

"그보다 그 캐릭터는 뭐야? 새 캐릭터가 나올 예정이었던 건가?"

"그냥 환생한 거야."

게임을 알고 있는 동지라고 생각한 건지,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하는 모습에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어쩌면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다.

"유린이 루트 안 타면, 유린이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알아."

"응? 아, 너 올 클리어 유저는 아니구만? 거울 세계였나? 거기로 떨어지잖아. 그거 관련 겜도 있는데 안 해봤어?"

"응."

미경이 얼굴로 싱글벙글하며 말하는 누군가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원래 세계에서 거울 세계에 대해서도 알아낸 쪽인 모양인데...

정보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겜이 기억 잃을 채로 루프하는 루퍼에 대한 게임인데, 사실 플레이어는 기억이 그대로 있잖아?"

"응."

"그래서 매번 루퍼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전투하고, 능력도 다르게 배우는 RPG게임이야."

"RPG구나."

"어어, 환생이지. 그 뭐지? 엔딩 보기 전까지는 유린이 못 구하게 장소 막혀 있고, 1회차 엔딩 보면 그다음부터 트루 엔딩 갈 수 있거든? 그 조건이..."

"앗! 미경이다! 찾았다규!"

"?!"

즐겁다는 것처럼 열심히 떠들던 미경이가 말을 멈춘다.

소리가 들린 곳을 보니, 미아라고 소개했던 활기찬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오늘 할 일 있어!? 앗, 설이도 안녕!"

"응."

"그, 무, 무슨, 일이야?"

원래의 미경이를 연기하는 건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조심스럽게 미아를 바라보는 그녀.

내가 뭔가 말을 꺼내기 전에 미아는 응? 하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세희네 집에 같이 가기로 했었잖아~ 기억 안 나?"

"아..."

그 말에 그제야 생각난 건지 눈을 깜박이다가, 슬쩍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모습.

...와, 연기 짱 잘하네.

처음 봤던 미경이의 모습과 거의 일치하는 행동에 속으로 감탄하고 만다.

"어라? 그러고 보니까 설이랑 알아?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던 거지?"

"오늘 처음 봤어."

"...처, 처음 알았어!"

내 말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라 답한다.

그러자 그래? 하면서 웃는 미아.

...중요한 타이밍에 끼어든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뻐 보이는 모습이다.

"이 언니는 기쁘단다... 우리 미경이가 드디어 친구를 사귀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구나...!"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훗훗훗, 그렇게 뺄 필요 없다규~ 아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 봤다규! 뭐지? 게임 이야기였낭?"

섬뜩.

미아의 말에 나는 무표정을 가장하다가, 애초에 내 표정이 변하지 않았단 사실을 깨닫는다.

미경이는 미경이대로 얼굴을 숙여서 표정을 숨기고 있다.

"암튼 빨리 가장! 설이도 갈래?"

"...아니, 난 좀 더 돌아다닐래."

"그랭? 그럼 나중에 봐!"

그렇게 말하면서 미경이를 데리고 떠나는 미아.

...나중에 만나서 정보를 더 물어보기로 하자.

­­­­

마법 소녀 폼으로 변해 은폐 마법을 사용해 날아오른다.

목적지 없이 그저 도시의 생김새를 외우기 위한 행동.

'거울 세계'는 이 도시가 좀 더 커진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마법 소녀인 나로서는 순식간에 이곳저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단 의미다.

[그냥 시작하자마자 언노운인가 뭔가 쾅! 하면 이기는 거 아니냐?]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다만, 이쪽 세계 평균을 봤을 땐 마스터에겐 쉬운 미션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휴가야."

괴물이 가진 건 초재생과 각종 흡수 능력들.

시간 관련 능력은 나도 가지고 있어서 파훼 가능.

공간 관련은 좀 귀찮긴 하겠지만, 그래도 흐름만 읽으면 피해낼 수 있다.

원소 관련은 솔직히 맞아도 데미지 없을 거 같고...

"괴물은 쉽게 잡을 수 있어. 층마다 난이도가 높아지는 구조는 아닌 모양이야."

[그래 보입니다.]

"...사실 운이 좋은 것도 맞아. 세희라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세희 덕분에 정보 수집이 편해졌다.

세희 자체로도 상당한 정보를 가진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유린이가 가지고 있던 이 책.

며칠 동안 책을 읽다 보면, 어지간한 변수는 다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개체 '스노우'가 책을 읽을 경우, 하루의 시간이 소모됩니다.]

[이 수치는 고정이므로 신중하게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책 읽기는 아침 시간에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나, 책 읽는데 제약 있어. 하루가 날아간데."

[시간 소모 제약은 마스터에게 통하지 않을 겁니다. 상위 신령의 '권능'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

정말 '혹시 모르는 상황'이라면, 괜히 하루를 날리는 셈이다.

어차피 책을 읽지 않아도 미경이만 다시 찾으면 이것저것 정보를 뺏기는 수월할 터.

책 읽는 건 가능한 한 미루도록 하자.

"응, 도시 구조는 알았어."

제법 신기한 구조로 된 도시다.

내 원래 세계에도 이런 구조를 가진 장소가 있을지는 의문이네.

도시가 정확하게 4등분 되어있다.

심지어 마트나 서점, 편의점 등등 여러 건물이 전부 다 같은 갯수로 4분할 되어 있다.

누군가 철저히 설계해서 만들어낸 세계.

"..."

아까 미경이가 말했던 '게임'이라는 게 와 닿는 도시다.

"미연시에 배경 설정 세세하게 짰네."

[미연시...가 정확하게 어떤 류입니까?]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여자아이를 꼬시는 게임이야."

[연애하는 거구만?]

"응, 그래서 여자애들이 많은 걸 테고... 러브 코미디라는 장르에도 잘 맞는 세계관이야. 결국 하렘 세계관이 되겠지만."

현실이 됐으니, 한 명하고만 사귄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보통 이런 류 게임은 특정 애들 루트로 가면 일어나는 사건이 전부 따로 있...

"이 세계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거야."

[방금 생각에 문제가 있습니까.]

[엉? 뭔 생각했는데?]

"보통 히로인마다 메인이 되는 사건이 있어. 그건 대부분 히로인에게 해로운 일이 일어날 테고."

내가 본 여자애만... 10명 가까이 되는 거 같은데.

그 모든 애들 사건을 처리하지 못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

아마 세연이와 유린이가 거울 세계로 끌려가는 게 그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

[거기까지 생각하시길. 이쪽 세계에 대한 건, 이쪽 세계의 주인공에게 맡기는 게 옳습니다.]

"그 주인공이 히로인 몇한테 일어나는 사건을 못 막고 있잖아."

[사람이 한 명이니까요. 아무리 루시에르라고 해도, 전부 막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응."

렌의 말에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이쪽 세계에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세계는 거울 세계 쪽.

적어도 그쪽을 해결하면 유린이와 세연이는 구해낼 수 있겠지.

그걸로... 만족하는 게 맞다.

"후우..."

[마스터다운 고민이었습니다.]

[결국 그거냐? 남주가 못 구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는 거?]

[그렇습니다.]

[이방인은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주인, 이방인은 할 일만 하고 나가주는 게, 이 세계에 가장 큰 도움이라는 걸 명심하라고.]

내가 불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자, 그런 답변이 날아온다.

...정론이라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오늘은 이런저런 정보를 얻었으니까... 슬슬 돌아갈까.

"...벌써 해도 지고 있네."

[제법 오래 돌아다녔으니까요.]

"응."

그렇게 말하며 세희네 집으로 이동한다.

정문 앞으로 가볍게 착지한 뒤, 변신과 은폐 마법을 해제.

세희가 사준 옷을 잠깐 멀뚱거리면서 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곤 집으로 들어갔다.

­­­­

아무래도 미아랑 미경이는 돌아간 모양.

설거지를 하고 있던 세희가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오래 돌아다녔네. 밥은?"

"...마법 소녀는 밥 안 먹어도 멀쩡해."

"그래도 여기 왔으면 먹어야지. 금방 차려줄 테니까, 씻고 나와."

"응."

굳이 안 먹을 이유도 딱히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옷장에서 세희가 사준 파자마를 꺼낸다.

나한테 동물 파자마를 주다니, 취향이 특이한 건지 귀여운 걸 좋아하는 건지...

[귀여운 걸 좋아하는 거겠죠.]

"남자인 거 알면서 말야."

[마스터도 그렇게 싫어하진 않잖아요?]

"별 상관없으니까."

렌과 그렇게 대화를 나눌 때였다.

"아, 맞다. 지금 방에 설이 있을 테니까, 나중에..."

"어? 뭐라..."

문이 열리며 시선이 마주친 건, 상혁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내가 눈동자를 깜박이자, 그의 얼굴이 활화산처럼 붉어지기 시작한다.

"미, 미안!?"

그리고 쾅!하고 문을 닫고 방을 나가는 모습.

밖에서 희미하게 그럴 줄 알았어...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참, 러브 코미디 단골 이벤트네.

"여기가 원래 상혁이 방이었나 보네."

[실제로 그랬겠죠. 매번 루시에르가 거실에서 잤으니까요.]

심플한 방이라서 눈치채지 못했다.

전형적인 학생 방이라서 그냥 누가 지냈겠거니~ 짐작했을 뿐.

...그나저나 내 몸 보고 부끄러워할 수가 있구나.

[그... 아닙니다...]

"여기저기 다 빈약하니까."

[진짜 스노우가 들으면 기절할 소리군요.]

여성스러운 부분은 얼굴 뿐.

전체적으로 아직 발육이 덜된 느낌이니까.

실제로도 아직 성장 도중일 거고.

"...아닌가."

몇개월동안 움직이면서 조금도 커진적이 없는 느낌이...

[그건 마법 소녀니까요.]

"무슨 말이야."

[마법 소녀는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합니다.]

"응."

[지금 스노우의 몸이 '최상의 상태'라는 거죠.]

"아."

성장 여지가 없다는 소리다.

어디서 빈유도 스테이터스야! 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스노우 육체 자체는 굉장히 움직이기 편한 상태다.

가슴이 좀 크다든가, 허벅지가 크다든가, 뭔가 큰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반사신경이 빠르진 않았겠지.

완벽한 육체라면 완벽한 육체다.

"...마법 소녀들 대체로 빈유긴 하네."

[...그거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시길.]

"응, 그 정도는 알아."

나는 내 몸을 객관적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다.

"아무튼, 빨리 씻자."

[네, 세희 님이 말한 것도 있으니, 오늘도 양껏 드시길.]

"...응."

오늘 저녁은 뭘까.

­­­­

다음 날 아침.

오늘도 뭐하지... 하면서 고민할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긴다.

"설아, 일어났어?"

"응. 들어와."

내 대답에 세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으음... 하고 고민하는 모습.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시간 밖에 둘이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서 말인데..."

"응."

"혹시 이 세계에 계속 있을 생각 있어?"

[정말 뜬금없는 소리군요.]

세희의 말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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