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DDay까지 5일
* * *
그래, 일단 오늘도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머리카락을 닦으려 하자, 자연스럽게 여분이 물의 마나로 변해 허공에 돌아다닌다.
...마치 요정이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밖에 나갔다가 올게."
말릴 필요 없이 최상의 상태로 변한 걸 보며 말하자, 세희는 내 쪽을 슥 하고 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 하고 있는 걸 보니, 바쁜 모양이다.
...매일 뭘 그렇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나가자.
[그래서 어디로 가실 생각인가요?]
"그러게."
여기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세희네 가족들, 수진이, 유린이 정도에 어제 사귄 두 사람.
다만 세연이를 지금 만나는 건 애매하다.
어제 얻을만한 정보는 얼추 다 얻었으니까.
"..."
생각해보니까 죽는 사유나 그런 것도 들었어야 했는데.
찾아갈까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시간은 많으니까.
"유린이한테 가자."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연스럽게 날아다니려다가, 근처에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다시 바닥에 발을 붙인다.
...걸어다니기 귀찮아.
사람이 지나간 뒤 다시 슬쩍 비행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거 들었냐?"
"뭐?"
"여기 은발 가진 애 있다던데?"
"염색이겠지, 은발은 무슨."
"아니, 눈도 분홍빛이래!"
"그런 사람이 어딨냐? 네 컴퓨터 안에?"
"아니, 나도 들은 이야기라니까? 봐봐, 저기 쟤처럼..."
"..."
"홀리?"
떠오르던 뒷꿈치를 슬며시 다시 바닥에 대곤 남자애 둘을 지나친다.
...벌써 내 모습이 소문으로 퍼지고 있네?
[이상한 일이군요.]
"응."
내가 이틀 정도 돌아다녔다곤 하지만, 소문이 퍼질 정도는 아니다.
퍼졌다고 하더라도 내 눈앞에서 떠들 정도로 퍼진 건 이상한 상황이고.
...일단, 서점 쪽으로 가자.
뭔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응, 이 마을, 특이점 있으면 하루 안에 퍼지니까."
"...어째서."
"모르겠어. 주인공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유린이에게 물은 결과 들은 대답이었다.
뭔가 특이점이 생기면 마을 전체로 소문이 퍼져 나간다라...
"게임으로 치면 유명도 같은 거. 나도 잘 모르겠어."
"유명도..."
"응, 그래서 이 마을에선 세희, 세연이 자매가 유명하잖아."
"유명한 거구나."
그건 또 금시초문인데요.
두 사람이 유명하다는 걸 내가 모르고 있단 사실을 깨달은 유린이가 말했다.
"이 마을 사람이라서 어디선가 들었다 라는 느낌도 받지 않는 걸지도. 한 명은 철인 부학생회장, 한 명은 중학교의 꼬마 아이돌 느낌이야."
"꼬마 아이돌..."
"이상할 정도로 귀염받고 있어. 인지하고 있는 건, 몇 명이나 될까."
"실제로 귀여워."
"응, 그건 맞는데... 원래 모든 사람한테 인정이나 사랑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
한 마디로 그녀가 말하는 건,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있다는 점이겠지.
모두에게 귀염받는 분위기.
그 사람이 싫든 좋든 모두에게 귀여움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럼 세희는."
"세희는... 보면 바로 알았겠지만, 수면 시간 대비 효율적으로 움직여."
"너무 안 자긴 해."
"대신에 못 하는 것도 없어."
"못하는 게 없다는 건..."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어디서 공책 하나를 꺼내 든다.
...동네 사건/사고라고 적힌 공책이다.
그걸 왜 가지고 있는 거야...?
"학생회 일이 너무 밀려서 임원까지 임시로 더 뽑을 때였는데, 그때 세희가 '이틀 안에 끝나니까 괜찮아.'라고 말했었어. 그리고 그건 실제로 이뤄졌지."
"일이 그렇게 많았어."
"일반적인 서류 처리 속도라면 일주일은 걸릴 양. 그냥 안 보고 도장을 찍는다는 전제하에?"
"..."
"그걸 이틀 만에 끝내고, 오류 없이 끝내 버리니까 신문부가 궁금해했었지. 어떻게 처리했냐고."
"응."
"그리고 그걸 눈앞에서 실제로 보여준 거야. 양손과 눈으로는 서류를 보고, 서류 처리 자체는 발로 끝냈어. 문제는 그걸 그 자리에 앉아서 하루 17시간씩 한 거."
"..."
"심지어 씻고 밥 먹고까지 하루 1시간 안에 끝냈어. 그러고도 딱히 피곤한 기색 없이 다음 할 일을 하러 갔었다고 해."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대단한 일이긴 한데... 궁금증이 생긴다.
"그 사건 때 세희는 수업을 듣지 않은 거네."
"응, 그런데도 세희는 전교 1위야."
"..."
뭐야, 그거. 무서워.
학생회 일을 하면서 집에서는 가사까지 챙기고, 그렇다고 학업에 소홀하지도 않다.
...누구한테 말하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겠지.
"게다가 운동 신경도 좋지. 그건... 아마 다른 이유겠지만."
"사신이라서."
"...놀랐어, 알고 있구나."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유린이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마법 소녀라는 것도 말했는데, 모를 리가.
애초에 이쪽 세계로 넘어와서 가장 처음 목격한 게 사신인 세희다.
"그러고 보니, 너무 이야기만 했구나. 무슨 일로 왔어?"
"혹시 저쪽 세계나 '루퍼'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하고."
유린이의 말에 그제야 내 본 목적을 깨닫고 묻는다.
내 물음에 으음... 하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무표정하게 옆에 쌓아둔 책을 들어 올리는 유린이.
"이런 거밖에 모르겠는데..."
그녀가 들어 올린 책은 [기억을 잃은 채로 되돌아왔다.] 라는 소설.
...대놓고 인터넷 소설향이 풀풀 풍기는 제목에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나오는 히로인이 나랑 능력이 같아."
"능력이 비슷하다."
"음... 조금 다른가? 똑같을 때도 있으니까."
"..."
이게 뭔 말이야?
그녀의 말에 내가 멀뚱멀뚱 바라보자, 유린이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 능력은 '제조법을 아는 걸 만들어내는 능력'이니까. 여기 메인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와 능력이 같거든. 가끔 저런 거 제조법은 어떻게 아는 거야? 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
"옛날 해적선에 쓸법한 대포나 현대에나 있을 법한 중기관총 같은 것도 나오거든. 난 그런 거 만들 줄 몰라."
"제조법만 알면 된다면, 책만으로도 알 수 있는 거 아냐."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대부분 '실제로 만들어 본' 물건이니까."
"...그 방패랑 활도 만들어 본 거야."
"...활은 용사의 무구. 방패는 내가 만들었던 명작 중 하나야."
"대단하네."
무려 샤브린의 카오스 마이트를 막아냈던 방패들은 유린이가 실제로 만들어본 적 있는 무구였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게, 유린이가 제대로 싸우기 시작했을 땐 왠 마도서를 잔뜩 허공에 던졌었지.
그게 제조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있는 거라면, 한 번 만들었던 건 절대 까먹지 않겠지.
"인벤토리에 얼마나 많은 제조서가 있는 거야."
"...? 그쪽의 나는 그런 것도 말한 거야? 음... 100개는 일단 넘었는데..."
"..."
대체 다른 세계에서 몇 년이나 살다 온 걸까, 이 사람.
유린이의 능력은 기억해두자.
"아무튼, 이 소설에도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채 루프해. 받는 건, 약간의 힌트와 꿈에서 본 것뿐."
"...그렇구나."
"능력은 정지랑 기억 없이 루프하는 정도...?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죽기도 하고, 다르게 죽기도 해. 루프 횟수는 이미 10번 넘었어. 한 번은 모든 히로인을 죽이고 움직인 적도 있고."
"웹소설 전개로는 최악이네."
"다 죽이고, 최종 보스전에서 또다시 실패. 애초에 다 죽인 이유가 괴물이 뺏을 능력이 없게 하려는 속셈이었지만... 문제는 주인공 화력이 너무 나약하단 점이야. 시간 정지하고, 권총으로 쏴서 죽인다. 그거뿐이거든."
"재생 능력만 있어도 못 이겨."
"실제로 보스는 재생 능력이 있었어."
저런.
그래서 모두 죽이는 루트는 실패한 모양이다.
"다음 루프 때는 '모든 사람을 아군으로 만들어라'라고 힌트를 줬지. 실제로 그렇게 했지만..."
"했지만."
"전 회차를 기억하게 된 사람이 존재했고, 그 히로인이 적대했어."
"..."
회차를 기억하는 사람.
루프할 때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루퍼.
유린이와 능력이 같은 히로인.
...이 정도로 겹치면,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 히로인의 쌍둥이 동생을 죽이고, 슬퍼하던 그 아이까지 죽였거든. 주인공도 최대한 감정을 죽이면서 움직였지만, 자책한 부분이었어."
"...쌍둥이 동생."
이건... 겹치는 게 없다.
이쯤되면 궁금해지는데...
"그 히로인 능력이 뭔데."
"20초 동안 닿은 사람의 능력을 복사하는 능력이야."
"그 책 전부 빌려줘."
거기까지 겹치면 안 되지.
"그래서 날 찾아왔다꼬?"
"응."
"내가 여깄는 건 어케 알았노?"
"시우가 알려주던데."
그렇게 말하면서 휴대폰을 흔들자, 세연이가 얼굴에 한 번 마른 세수를 하곤 말했다.
"돌아가면 두고 보제이..."
"그러니까, 읽어봐. 네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 맞는지."
이 내용이 실제라면.
이쪽의 세연이도 그 사건에 휘말린다는 의미다.
만약 그렇다면 언니인 세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어라, 그거 말하면 세희가 그냥 틈 닫아버리는 거 아닌가?
"..."
고민할 때였다.
"뭐고? 좀 상세하구마."
대수롭지 않게 책을 읽기 시작하던 세연이의 눈이 커진다.
자기가 아는 정보도 있는지, 이것저것 고심하는 모습.
잠시 후.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어나가던 그녀가 말했다.
"이거 작가 어딨는지 아나? 이 새끼 관음하고 있었구만."
"...단어 선정이 좀."
"니도 쓸데없는 거 신경쓰노."
"작가는 모르겠어."
작가명은 '혜미'라는 다소 여성틱한 이름.
러브 코미디 세계관이니까, 실제로도 여자겠지.
"그럼 찾아내면 정보 왕창 얻을 수 있는 거 아이가?! 빨리 찾아보레이!"
"너는."
"출판사라도 찾아갈 거데이."
"출판사..."
나쁘지 않다.
출판사가 5시간 넘는 거리에 있다는 것만 빼면.
"...돈은 있어."
"내가 그지로 보이나?"
"응."
"...그렇게 당연한 듯이 말하면 불편하구마."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꺼내든 건, 신용 카드.
...어떻게 구한 걸까, 저거.
"'저쪽'의 신용카든데, 여기서도 사용된데이."
"그거 세연이 이름이지."
"? 내가 세연이니까 당연한 거 아이가."
"세희한테 혼나, 너."
"그 전에 들어가면 그만이데이."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긴 하지.
세연이 이름으로 신용 카드가 발급돼있다는 건 알려놔야겠다.
"니는 어칼꺼고?"
"난... 그렇네, 아는 사람 있는지 찾아볼게."
"그러제이. 그럼!"
그렇게 말하면서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하는 세연이.
자기 옷 안에 슬며시 마법 소녀복을 만들기 시작하는 걸 보며, 나는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치녀로 소문나겠네요.]
"...아니길 빌어."
"뭐... 뭐... 어떻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쉼터에서 나가는 순간, 한 소녀가 눈을 크게 뜬 채로 세연이가 나간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혹시 변신 장면 들켰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