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DDay까지 6일
* * *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떼지 않는 세연이를 보며, 나는 손가락을 떼게 만든다.
사투리 쓰는 세연이라니,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본다 싶긴 한데... 이건 이거대로 좀...
"감도 좋데이."
"네가 '저쪽'의 세연이구나."
"저쪽? 아, 이쪽의 세연이도 아는 모양이구마?"
그렇게 말하며 능숙하게 빨대를 흔드는 모습.
...우리보다 먼저 와있었던 모양이네.
"우리 세연이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
"세희, 개그 캐릭터가 됐어."
"그런 캐릭터 없거든!?"
"일단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시선 집중이구마."
"응."
세연이의 말투를 들으면서 멘탈에 조금 금이 가버린 세희였다.
자리로 가자 보이는 건, 한 남자의 모습.
...잘 생겼다고 하면 미묘하고, 못 생겼다고 하기엔 나쁘지 않은 얼굴을 한 남자가 자리에 있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이 저 정도로 평범하게 생기면, 오히려 그건 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평균치인 모습이었다.
"..."
어라? 실제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인가?
그렇게 합리적인 의심을 할 때, 그가 말했다.
"그... 음... 헬로우?"
"..."
그가 내 얼굴을 보고 당황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하자, 세연이는 이상한 걸 보는 눈으로 바라본다.
눈을 잠깐 깜빡이다가, 내 모습을 기억해내곤 입을 열었다.
"...한국어로 괜찮아. 문자도 한국어로 했었어."
"아!? 그렇...네?"
"무슨 헛짓거릴 하나 했데이."
"그래, 역시 내가 생각하던 주인공 씨가 맞네."
"넌..."
아무래도 세희에 대해서도 기억이 있는 건지, 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어디서 만났던 걸까, 두 사람은.
조금 관심가는 일이지만,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자.
"그, 조력자 씨?"
"설."
"?"
"설이로 괜찮아."
"아, 응... 설이 네가 조력자라고 한 거야? 옆에 있는 애가 아니라?"
"응."
"루프 여러번 때렸는데 조력자 같은 건, 한 번도 없었데이. 뭐하는 년이고?"
"세연이 너, 말투가...!"
"닌 눈데 자꾸 친한 척이고. 내는 너 같은 거 모른데이."
"혼날래, 말 잘 들을래?"
"세희."
"알고 있어."
웃으면서 기운을 풍기기 시작하는 세희를 보며 내가 말하자, 그녀는 웃고 있는 상태 그대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무서우니까 기운만 풀어줬으면 좋겠다.
세연이한테만 집중되고 있는 건 맞지만, 바로 옆에서 기운을 민감하게 느끼는 입장이니까.
"그, 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 거 같나? 내는 여러 번 죽어본기라."
"흐응."
세희가 그 말에 귀여운 걸 보는 눈으로 바라본다.
온 몸을 덜덜 떨면서 말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자, 무슨 상황인진 모르겠는데 너무 괴롭히지 마."
"이야기 진행이 안 돼."
나와 남자의 말의 그제야 기운 뿜는 걸 멈추고 한숨을 내쉬는 세희.
내가 잠깐 그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 시우야."
"응? 아, 내가 소개도 안했구나? 맞아. 음... 솔직히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루퍼라고도 하더라."
"루퍼..."
그 정도면 확실한 정보다.
일단 이 사람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인 건 확정적.
게다가 본인이 루퍼라는 걸 모르는 걸로 봐선, 예상대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모양이다.
"저쪽 세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하이고~ 조력자라고 했으면서 그것도 모르면 어카노? 그래도 능력는 돼보이니까 특별히 설명해주는 거데이."
"응."
방금까지 떨고 있었던 주제에 우쭐한 표정을 지은 세연이가 말했다.
"현재 저쪽 세계 상황을 설명하자면..."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였다.
도시 하나가 3분할 되어있다.
한 쪽은 휘말린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지키고 있는 수호대.
한 쪽은 능력자들이 괴물을 퇴치해주니, 민간인들이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에스퍼.
마지막 한 쪽은 목적을 알 수 없는 조직, 언노운.
1/2를 먹고 있는 게 에스퍼고, 수호대와 언노운이 각각 나머지 지역을 반반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주의해야할 건 언노운이데이."
"왜?"
"이때까지 오빠야가 뒤진 거 전부 셰배 아니면 언노운이다."
"...응? 셰배는 또 뭔데?"
"아... 그냥 일정 시간 지나면 전부 전멸시키는 배드 엔딩 같은 놈이데이. 그거 잡아야 모두 끝난다."
셰배라는 게 내가 잡아야하는 보스 몬스터인 모양이다.
뭐하는 괴물인지 정보가 있으려나.
"어떤 괴물인데."
"절단상까지도 얼추 3초면 회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데이. 그리고 먹어치운 능력자의 능력을 사용하는 능력도 있었다. 그걸 어케 잡을지 막막하다이가..."
"음..."
확실히 생각보단 까다로운 녀석이다.
다만 여기서 '능력'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감이 안 잡히는데...
"능력이 정확히 뭐야."
"뭐고, 능력 가지고 있는 거 아이가? 능력 발동은 되던데."
"능력..."
마법 소녀 변신이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서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사람이 가진 초능력이데이. 어디서 온 건진 내도 잘 모른다."
"조건만 충족하면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하던데? 근데 내가 각성하는 조건은 모른데."
"오빠야는 내가 볼 때마다 각성 상태데이? 내가 어케 아노."
"흐음..."
한 번이라도 능력 사용하는 걸 보면 알 거 같은데.
마법적인 거라면, 능력이라는 걸 전부 복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너는 능력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당연한 소릴 하노."
내 말에 자연스럽게 답하더니, 허공에 화염을 만들어낸다.
...마법이 아니네?
마법이라고 하기엔 마력 유동이 전혀 없이 '그 장소에서 만들어진다'라는 창조적인 무언가다.
"영력...? 재밌네."
"영력."
"말 그대로 영혼이 가진 힘을 이끌어내는 거야. 그런데... 너도 본인 영력이 아닌 거 같네. 어떻게 된 걸까?"
"내 능력은 '20초 동안 닿아있던 사람의 능력을 복사하는 능력'이데이. 괴물이랑은 다르다이가."
"...궁금해."
"몬 소리고?"
그런 능력이라면, 재밌을 지도.
[...어떤 능력을 가져갈 지 모르는데, 너무 섣부른 판단이 아닐지.]
"괜찮아. 내 능력, 복사해볼래."
"진짜로!? 허미슈벌, 능력 말해줬는데 하게 해주는 사람 오랜만이데이."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뻗은 손을 잡는 세연이.
잠시 그러고 있는 동안 세희가 말했다.
"흐음... 하나만 약속하면, 내 능력도 쓸 수 있게 해줄게. 사신의 계약이니까,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신의 계약은 또 뭐고?"
"계약을 어기면, 평생 영력은 쓸 수 없을 거야. 무능력자가 된단 이야기지."
"...그런 힘이 있어? 그런 능력이면 능력자 상대론 사기..."
"아쉽지만 말 그대로 계약이라 상호동의가 필요해. 여기서 하기도 곤란하고."
"근데 결국 조력자는 무슨 소리였던 거야?"
"나도 그쪽 세계로 가야하는 이유가 있어서. 너희가 말하던 셰배라는 녀석을 잡아야하는 모양이야."
허공에 떠오른 푸른 창을 보며, 내가 그렇게 답한다.
거울 세계의 파괴자를 쓰러뜨려라.
그런 퀘스트가 눈앞에 적혀 있었다.
"갈 수 있는 건 맞고? 세연이 말대로면 갔던 사람만 가게 되는 거 아냐?"
"나는 너희 루프동안 없던 사람이거든.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은 잘 몰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잘은 모르겠지만서도, 들어가는 건 문제없데이. 능력자는 어차피 강제로 끌려가는 거레이."
"난 안 끌려가던데?"
"...뭐하는 사람이고? 혹시 인간 아닌 거 아이가?"
앗, 정확하다.
저 말대로면 능력자인 '인간'을 데려가는 모양이다.
그럼 딱히 주인공을 찾지 않았어도 세계에 진입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겠네.
"흐응,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납득하면 무섭데이?!"
"걱정 마, 나는 사신이니까."
"그 말 어느 부분에서 안도할 부분이 있는 거야?"
세희의 말에 시우가 어이없다는 것처럼 답한다.
...솔직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 능력, 복사 끝났지."
"어? 어, 으, 응, 끝났데이...?"
"여기서 쓸 수 있어?"
"사람이 너무 많다안카나."
하긴 아까 불도 라이터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이었지.
그럼 장소 이동하는 게 좋으려나...
"그럼 사람 없는데서 해보자."
"어디?"
"음..."
그렇게 물어보면 나는 할 말이 없는데.
내가 도와달란 눈빛으로 세희를 바라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래... 그럼 학교로 가자."
"학교?"
"학교..."
방학이라 사람이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운동장을 쓰는 사람은 있을 텐데.
"보면 알아."
그렇게 말하곤 커피를 조금씩 마시다가 원샷해버리는 세희.
...카페인 중독 걸리지 않을까.
세희의 말대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학생회실.
마치 교장실처럼 간결하게 꾸며진 사무실에 세희가 먼저 들어서자, 다른 두 사람은 당황한 얼굴로 그걸 따라 들어간다.
나 역시 따라 들어가자 보이는 건, 수진이.
...샤브린이 학생회장이라고 했던가?
"음? 귀찮은 걸 데려왔군."
"잠깐 실례할게."
"사람 있는데 괜찮은 거 맞아? 아니, 그보다 학생회였어!?"
"부 학생회장인데."
"음, 유능한 인재지. 그래서? 방학에 출근하라고 말한 기억은 없는데."
일단 학생회실에 '출근'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닐까.
그런 말을 하기엔 샤... 수진이 앞에 쌓인 종이뭉치가 생각보다 많다.
일해라, 학교 임원진들.
"능력 좀 테스트 해보려고."
"...여기서?"
"응, 여기서."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세희의 손가락이 튕겨진다.
그와 함께 타오르듯 물드는 머리칼과 눈동자.
어느새 검은 원피스를 입은 세희를 보며, 시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뭐, 뭐..."
"미쳤노, 이거 다 공간 능력 아이가? 진짜 사신이가?"
"그럼 가짜 사신이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거대한 대낫을 만들어내는 세희.
그 모습에 세연이가 침을 꿀꺽 삼키고, 시우의 몸이 살짝 떨려온다.
"자, 여기서 쓰면 복구도 가능하니까."
"...그러면 공터 같은데서 하는게 낫지 않았어?"
"가끔 일반인인데 이능력 자각 못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서."
시우의 말에 세희가 별 감흥없다는 얼굴로 답한다.
'능력자'라면 들어올 수 있는 결계인 모양이다.
"그럼 쓴데이? 나도 뭔지 모르니까..."
"응."
내가 양껏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껄끄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하늘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동시에 분홍빛으로 손 끝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그녀의 몸.
...어라?
[수호자네요?]
모예요, 왜 수호자예요?
별의 마력을 사방에서 끌어당기기 시작하는 세연이를 보며, 나는 눈을 깜박인다.
세희도 이건 몰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
'마법'이 없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나에게 가져간 능력을 쓰려고 하니 그녀의 마력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선택받은 수호자.
'주인공'인 시우가 아니라 저쪽 세계의 세연이가 저쪽 세계의 수호자인 모양이다.
...아, 생각해보면 시우는 이쪽 세계 사람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게... 뭐꼬..."
변신 마력이 전부 흩어지자 보이는 건, 마법 소녀 복을 입은 세연이의 모습.
마치 섹시한 여성 산타복과 같은 옷에 배꼽 부분에 분홍빛 마름모 보석, 그리고 검은 허리띠를 감고 있다.
산타의 붉은색이 아니라 검은색에 털같은 부분은 흰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
즉, 어깨 부분이 전부 보이고, 치마도 굉장히 짧은 옷이다.
...가슴이 그리 크진 않은데, 용케 흘러내리지 않는 건 마법적인 부분인 거겠지.
손에 잡힌 건, 분홍색 하트 프리즘에 날개가 달린 전형적인 아동용 마법소녀 지팡이였다.
"이게 뭐꼬!?"
다시 한 번 소리치지만, 시우는 시선을 피하고 세희는 미묘한 눈동자로 세연이와 나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본다.
뭐, 왜.
"마법 소녀 명은 뭐야."
"그걸 내가 어찌... 뭐? 밤하늘의 마법 소녀라꼬? 그건 또 뭔..."
아무래도 마법 소녀 명이 정해진 모양.
부끄럽다는 것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가슴 쪽을 가리고, 치마를 조금 더 내리려는 모습이 야해보인다.
"치녀네."
"그거 네가 할 소리 아니거든?"
"그래서 이건 뭔데!? 뭔 능력이 마법 소녀고? 마법 소녀...?"
"응."
"마법 소녀라고...?"
시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자, 나는 자연스럽게 마법 소녀 폼으로 변한다.
세연이가 가져간 게 마법 소녀 변신이라면, 오히려 좋다.
어떤 마법을 쓸 지는 모르겠지만, 능력과 마법 소녀의 마법까지 배운다면... 전력은 상당히 증가할 테니까.
속성은 성(?) 속성.
그럼 내 마법도 익힐 수 있겠지.
"그럼, 속성으로 학습하자."
"그건 또 뭔 소리..."
"첫 번째는 슈팅 스타야."
그렇게 말하면서 하늘에 별 무리를 불러냈다.
세희까지 포함해 모두가 창백해진 얼굴로 하늘을 바라볼 때 즈음.
가만히 지켜보던 수진이가 눈에 이채를 띄웠다.
"호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