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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28화 (128/149)

〈 128화 〉 D­Day까지 6일

* * *

선택한 건, 역시 오후에 만나는 일이었다.

세희 말대로 언젠가는 가야 한다면, 빨리 끝내놓는 게 좋으니까.

루퍼의 상태가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저쪽 세계의 세연이를 동료로 삼았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믿는다.

"그래? 그럼 준비하자."

"...여기 일주일만 있을 텐데."

"그럼 다른 세계 가선 또 제대로 된 옷 안 입게?"

"..."

아니, 마력으로 만드는 걸로 됐잖아...

귀찮은 것도 있지만, 마력으로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여긴 마법 완전 무효화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마법 무효화 가능한 사람이 없으면, 내 옷이 풀릴 일도 없어."

"자신만만하네."

"당연한 거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

고집도 세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착한 곳은 백화점.

원래 세계에서도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사입는 정도였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자자, 포기해."

"...하아."

옷 전문 백화점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붙어있는 걸 보며,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

"이건 어때."

"..."

"이것도 괜찮겠다."

"저기."

"이것도 입어볼래?"

"그러니까..."

좀 쉬면 안 될까.

이런저런 매장을 돌면서 마네킹에 붙어있던 옷을 하나씩 건네온다.

...옷을 이것저것 추천해주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울리는 옷도 제법 많았으니까.

문제는 말이지.

"3시간 동안 옷만 찾아다닐 거라곤 생각 못 했어."

"배고파?"

"...그건 아닌데."

애초에 마법 소녀는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존재다.

그냥 심적으로 제법 지친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애초에 입는 옷도 여성복에 너무 많은 옷을 입히는 것도 곤란하다.

게다가 여자애가 속옷 여러 개를 골라서 옆에서 입혀주는 것도... 좀 많이 느낌이 이상하다.

"그럼 더 할 수 있잖아."

"..."

[그... 아시겠지만, 마스터의 영혼은 일단 남자 영혼입니다. 심적으로 불편하지 않을지요.]

"그런 것치곤 잘 입던데."

안 입을 때마다 노려본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

"뭐, 그래도 건질 건 건졌으니까..."

"..."

내가 입은 옷 세트만 30벌이 넘는 거 같은데, 정작 산 건 속옷 세트 2개와 상의 하의 세트로 2벌뿐.

이거 맞아?

3시간 동안 이러는 거 맞아?

백화점 공포증이 생길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1시간 정도만..."

"싫어."

"칫."

"..."

거기서 혀 차시면 곤란한데요.

아무튼, 포기한 건지 지하 1층을 누르는 모습.

...기억이 맞다면, 식품 코너였지.

겸사겸사 식사할 수 있는 곳도 많던 걸로 기억하니까, 밥을 먹기 위해 내려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인... 이 아니라 옷걸이가 좋아서 어울리는 게 많았어."

"돈은..."

"필요 없어, 어차피 이것저것 살 돈은 충분히 있고."

"괜찮아."

세희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막으면서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낸다.

가진 건 없지만, 인벤토리에 쌓인 돈은 잔뜩이니까.

"...아니아니, 이 정도는 필요 없으니까."

내가 수표를 탁. 하고 건네자, 세희는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거부한다.

...오늘 산 돈보다 조금 더 준 거뿐인데?

[조금이 아닌 거 같습니다만...]

"...요즘 2배 주는 걸 조금이라고 해?"

이상하다, 100만원 정도 꺼낸 건데.

원래 세계에서 포인트와 같이 쌓여있던 돈은 거의 억대.

...사실 잠깐 쉴 때 루루가 말해줘서 알았던 기억이 있다.

내 돈이 아니게 되긴 하겠지만, 이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나도 돈이 없는 건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내가 있는 세계는 멸망해서 아예 필요 없어."

"..."

내 말에 할 말을 잃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곤 수표를 받는다.

그러자 화르륵. 하고 불타면서 1만원짜리 한 묶음이 돼버리는 수표.

...어라?

"...깜짝이야. 마법적인 걸 이런데서 쓰면..."

"몰랐어."

"그렇겠지. 아마 이쪽 세상에 네 계좌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아..."

일 리가 있는 말이다.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애초에 수표를 인벤토리에서 꺼낸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이쪽 세상의 화폐로 바뀌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럼 이걸로 밥 먹으면 되겠네."

"응."

...이쪽 세계에 와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느낌이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고.

매 끼니마다 제대로 조리된 식사를 하고, 친구와 쇼핑하고.

"..."

얼마만의 평온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설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아니, 이쪽 세계의 설이는 평범한 여고생으로 지내고 있겠지.

굳이 생각하지 말자.

"..."

"뭐 먹을래? 저번에 보니까 많이 먹진 않던데..."

"응."

"흐음~"

내가 음식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자, 세희는 미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될 텐데, 남을 챙기는 타입인 걸까.

잠시 주변을 살펴보다가, 적당한 덮밥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응? 덮밥...? 의외의 픽이긴 하네. 그래, 먹자."

내가 일식 덮밥집을 가리키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웃으며 끄덕인다.

덮밥을 고른 건, 문득 프로게이머 시절에 먹었던 가츠동이 생각나서일 뿐.

...육체가 변했는데, 잘 먹을 수 있을까?

스노우 육신 자체가 음식이 마력으로 전환되는 타입이라, 얼마나 먹을 수 있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다.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는 먹어보면 알겠지.

­­­­

"...그, 더 먹게?"

"맛있어."

"아니, 맛있는 건 맞는데..."

이미 식사를 마치고 나를 바라보는 세희의 말에 나는 무표정하게 밥을 씹어 넘긴다.

...생각보다 잘 들어가네.

오랜만에 먹은 가게 음식이라 그런지, 계속 먹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배는 괜찮아...? 벌써 4그릇 짼 데...?"

"응."

아무렇지도 않다.

마력통도 무한이고, 마력 흡수도 무한인 느낌에 가깝다.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끝도 없이 먹을 수 있는 수준?

...간식 같은 걸 먹는 느낌에 가깝다.

"더 먹을 거야?"

"으응, 여기까지만."

맛있긴 하지만, 4그릇이나 먹으니까 좀 질린다.

다른 종류를 먹을까 싶기도 한데, 이미 세희도 다 먹었으니까.

"이러면 내 음식 맛이 저 정도가 아니었단 소리네. 좀 더 맛있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세희 게 더 맛있어."

"그랬으면 지금처럼 많이 먹었을 거 아냐...?"

아니, 정말로 세희가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

그때 더 먹지 않은 건, 내 용량을 모르기도 하고 굳이 밥을 축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먹어도 그저 마력으로 환원될 뿐인데, 그 마력량도 무한에 가깝다.

그저 '인간'으로서 보이기 위해 먹었을 뿐.

"..."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무슨.

나는 인간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가계에 영향 주니까."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그럼 온르 장보고 나갈 땐 재료 많이 사야 하려나?"

"괜찮아."

나를 배려해 많이 만들려는 모습에 고개를 젓는다.

맛있는 건 맞지만, 괜히 정성을 쏟게 하고 싶진 않다.

"난 일주일만 있다가 사라질 테니까, 날 위해 뭔가 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부담되는 일은 아니니까. 그냥 만들 때 좀 더 만들 뿐인 거니까."

"그래도..."

내가 말을 잇기 전에 그녀가 내 양어깨에 손을 얹고 눈동자를 마주한다.

진지한 눈동자.

뭔가 각오하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눈동자에 내가 눈을 깜박일 때, 그녀가 말했다.

"설아."

"응."

"나는 사신이라서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어. 그래서 네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어."

"..."

"대부분 영웅이 그렇지만, 너무 자신을 깎으려고 하지 마."

"그런 적은..."

"나는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해야 할 일만 할 뿐이다."

"..."

"내가 아니면,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해내야만 한다. 그건 모든 영웅이 가진 강박 관념이고, 그 길에서 조금 벗어나려고 하면, 불안해지게 되는 경우가 많지."

그거랑은 조금 다른데.

그저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표하는 게 부담될 뿐이다.

"네가 그냥 지나가는 차원의 방랑자라도, 나는 너를 손님으로 받아들였어. 어차피 일주일이지만, 잠시 짐은 내려놓자. 어차피 네가 필요로 하던 '주인공'은 찾아냈잖아. 그럼 굳이 남은 시간 동안 뭔가 더 해내려고 할 필요까진 없어. 네가 해야 할 일은 시작되고 나서 해도 되는 거야."

"..."

"세계를 구하려고 돌아다니는 너는 대우받을 자격이 있어. 알겠지?"

"그건..."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세희.

그리곤 작게 미소 지은 소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1시간 정도 남았는데, 노래방이라도 갈래?"

"응."

단번에 분위기가 변한 세희를 보며 미묘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재밌었다! 오랜만에 쉬는 거 같네~"

"잘 부르네."

"너도 잘 불렀잖아?"

세희의 노래는 수준급이었다.

내가 살던 원래 세계에선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노래투성이였지만, 듣기만 해도 아, 이 사람 노래 잘 부르네? 라고 생각하게 하는 수준.

...왜 가수 안 하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을 수준이다.

나는... 솔직히 아는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락 발라드 위주라 설의 목소리엔 맞지 않았지.

세희가 고른 노래 중에 아는 애니메이션 노래가 있단 걸 깨닫고 애니메이션 쪽을 찾아보니, 그럭저럭 목소리는 맞는 노래가 많았따.

"마지막에 부른 아이돌 노래, 원래 세계에도 있었나 봐? 깔끔하게 부르던데."

"응."

이쪽에도 같은 아이돌 그룹이 있었단 사실 자체가 좀 신기했지만, 정확하다.

그 노래는 TV에서 제법 자주 나오던 노래였으니까.

"애니메이션 노래, 많이 알던데."

"아아, RMA라고 버튜버가 부른 노래 듣다 보니까."

"버튜버도 있구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같은 생각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겠지."

맞는 말이었다.

아무튼, 백화점 1층에 내려와 약속했던 카페로 향한다.

시간을 보니 20분 정도 남았을까.

낮 시간인데 드물게 한가한 카페 내부를 보며, 세희와 카운터로 간다.

"뭐 먹을래?"

"...커피는 별로."

"그래? 그럼 스무디나 쉐이크가 낫겠네."

"응. 그중에 아무거나."

"그럼... 카페 라테 핫으로 주시고요, 초코 쉐이크도 하나 주세요."

그렇게 주문할 때,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다.

정확히는 누군가 나에게 '능력'을 사용한 기척을 느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

뒤를 보자 보이는 건, 내 옷깃을 미약하게 잡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단발의 소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세연이."

"에고, 눈치채버렸구마? 뭐고, 어떻게 알았노?"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며, 나는 순간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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