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DDay까지 6일
* * *
[탐색 1일차]
다음 날.
세희의 제안에 따라 밖으로 나온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서쪽에 있는 서점이었다.
"중고 서적이나 고서, 학습지나 교과서 같은 걸 판다고 했는데..."
...전혀 매치 안 되는 종류였지만, 중고 책방이라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다행히 내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여기서 멀쩡하게 굴러간다는 정도.
"이 근처..."
GPS를 확인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그것도 굉장히 익숙한 얼굴로.
"...인간의 마력량이 아니네요?"
"미류."
창월의 서의 시스템, 하 미류.
여전한 푸른 머리칼을 흩날리고 있는 소녀를 보며, 잠깐 눈을 깜박인다.
미류까지 있고, 샤브린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배틀물 요소도 포함된 걸까.
모르겠네.
"당신 정도라면, 좋은 재료가 될 텐데..."
"응, 그건 사양해둘게."
아직 미연이를 치료할 방안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희생할 생각은 없으니까, 넘기도록 하자.
"...제 사정을 꿰고 계신 모양이네요?"
"일단은."
"그럼 조금만..."
"다른 사람의 코어를 써먹으면, 창월의 서가 오작동할 거야. 다른 방법을 찾도록 해."
"...인간의 코어라면, 괜찮습니다."
"아냐, 차라리 그냥 마력 보급을 계속하는 편이 나을 거야."
"마석이 그리 남아도는 게..."
"마석은 남아돌지 않지만, 마력은 남아돌아."
마력을 가진 인물도 많고, 자연 마력도 굉장히 높은 마을이다.
아마 이런 마을이라면 미류의 마스터도 주기적으로 일어날 정도로 마력량을 유지하고 있겠지.
남을 희생시킬 것도 없이, 그 마력으로 제대로 된 코어를 만들어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당신은 누구죠?"
"나는 별 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야. 정 스스로 다룰 수 없다면, 샤브린이나 세희한테 부탁해도 좋잖아."
"...! 적, 이었습니까...?"
"아니. 나는 일주일 정도 후에 여기 없을 거야. 지나가는 길이었으니까. 그냥 안타까워서 하는 조언이야."
원래 세계의 미류도 이상한 꼬임에 넘어가서 빌런 연합이라는 곳에 소속된 적이 있다.
이쪽 세계는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을 위해서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샤브린이랑 부딪치고 있을지도.
"...고려해볼게요."
"응, 그럼..."
그렇게 말하며 서점으로 걸어가자, 미류도 쭈뼛대면서 따라 들어온다.
...아무래도 목적지가 같았던 모양이다.
"어서 와, 미류... 랑 어서 오세요, 손님."
책을 보고 있던 소녀, 유린이가 우리를 반긴다.
가볍게 인사만 한 뒤 다시 보고 있던 책을 보기 시작하는 걸 보며, 나는 잠깐 내부를 두리번거린다.
...오래된 책 냄새가 제법 풍기는 서점이다.
한쪽 면은 중고 책들이 가득하고, 한쪽 면은 고서들,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건, 당연히 교과서와 학습지들이다.
"유린, 오컬트 관련 고서 들어온 거 있나요?"
"...그거 진짜 일어났던 일이야. 그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실제로 장소를 조사해보면 마력이..."
"알았어요, 그래서... 있어요?"
"아쉽게도 아직."
"오면 문자로 보내주세요."
"응."
"그럼 전, 이만..."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인사하곤 서점을 나서는 모습.
그 모습이 신기했던 건지, 유린이가 잠깐 나를 바라보지만, 이내 관심을 끊는 모습이 보인다.
...일단, 말 걸어보자.
"저기."
"...?"
내 부름에 유린이가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슬쩍 손을 보는 게, 계산이 필요한 건가 확인하는 것도 눈에 띈다.
"네, 손님. 무슨 일이신가요."
"..."
유린이가 존댓말 하는 거 왜 이렇게 어색하지.
나름대로 서비스 직종이라 존댓말을 하는 모양이지만, 항상 반말하던 유린이를 본 내 입장에선 제법 낯선 모습이다.
...응? 근데 이거 뭐라고 질문하지?
주인공이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는 건 이상하다.
그렇다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사람을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
상혁이 외에 친한 남자애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다.
애초에 처음 보는 사이라 할 수 있는 질문도 한정된 느낌인데...
물어볼 키워드도 부족하고, 일단...
[친해지는 게 좋겠군요.]
[오우... 그거 주인한텐 어려운 과제일 거 같은데.]
그게 일주일 전에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매일 서점에 오다 보면 한 번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
"세희나 상혁이, 아는 사이..."
"...?? 네, 두 사람이랑 친구 사이입니다만."
"세희 집에 살고 있어. 세희가 한번 찾아가보면 좋을 거라고..."
"...세희 집에?"
뭔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유린이.
아무래도 내가 세희 집에 살고 있단 사실을 믿지 못하는 쪽인 모양이다.
"세연이랑 놀아주는 건 힘들었어."
"...응, 그건 확실하네."
[어이, 렌. 이게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접점도 좋아하는 점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친해지는 건 힘들겠죠. 도와드릴까요, 마스터?]
"..."
안쓰럽게 보는 두 디바이스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쉰다.
도서관 소녀한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으니까.
여기서는 렌의 지혜를 빌리...
[요정화해도 됩니까?]
"..."
[요정화해도 되겠죠?]
"그걸로 해결 가능하다면."
"?"
내 말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유린이.
잠시 후 내 허락에 요정 모습으로 어깨에 렌이 나타나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뜬다.
"다른 세계 주민... 역시 외국인이 아니라 그쪽..."
"안녕하십니까, 어느 세계의 용사님. 저는 마스터 '스노우'의 디바이스 렌이라고 합니다."
"디바이스...? SF쪽?"
"난 별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야."
"...제정신이야?"
내 말에 이상한 걸 보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유린이.
...평화로운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반응은 조금 상처다.
"실제로 마스터는 마법 소녀입니다."
"마법 소녀는 그거지. 마법(물리) 사용자면서 괴수랑 싸우는...?"
"...그건 너무 왜곡됐어."
이쪽 세계의 마법 소녀는 어떻게 되먹은 인식인 걸까.
"물리 마법을 못 쓰진 않지만, 주력은 슈팅 마법이나 포격 마법이야."
"아, 시공 관리국 있고 이곳저곳 관리하는 쪽."
"..."
"이쪽 세계 마법 소녀들은 그렇습니까...?"
내가 아는 마법 소녀는 정말로 사랑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쪽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도 그런 것만 나왔을 텐데... 이쪽 세계 마법 소녀는 대체?
"데스 매치하는 쪽이나 마수랑 싸우는 쪽은 아니라 다행."
"마수랑은 싸우는데... 데스 매치 같은 건 할 리가 없잖아."
"생각 이상으로 그쪽 지식이 부족해. 그러고도 마법 소녀야?"
이거 내가 이상한 거야?
"평범하게 세계를 지키는 쪽이야. 세계가 멸망해서 그 원인을 막아내기 위해..."
"아포칼립스 쪽? 그건 귀해."
묘하게 유린이의 말이 많아진 느낌이 든다.
...유린이가 말하는 건 애니메이션 이야기일까? 아니면 서적 쪽?
어느 쪽이든 관련 오타쿠인 게 분명했다.
"내가 있던 세계엔 너도 있었어."
"패러렐 월드 이론까지 채용하는 세계관. 그건 실제로 있는 세계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실제로 이곳에 있는 사신의 힘이 아니었다면, 같은 상황이 벌어졌겠죠."
"...세희가 없는 세계에서 온 거구나. 이해했어. 그래서 무슨 일이야."
유린이의 말에 내가 말했다.
"상혁이 외에 친해진 남자애가 있어."
"무슨 질문인지 모르겠어."
"마스터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세계가 목적지죠."
"...세희가 주인공 씨라고 부르던 사람."
렌의 말에 그제야 이해한 듯 유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아무래도 짐작 가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네가 찾는 건 시우라는 아이. 오늘은 안 왔어."
"혹시 가능하다면 이 번호로 연락 좀 해달라고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째서?"
"그가 들어갈 세계로 저희 마스터가 들어가야 해서..."
"그렇구나."
"유린이 너도... 휘말리지 않을까."
"?"
그녀가 내 말에 멀뚱멀뚱 쳐다본다.
음... 그러니까, 관찰자가 말했다고 말하라고 했지?
"관찰자가 '시간이 끌리면 죽으니까, 합류에 전념해'라고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관찰자? 이 세계의 관찰자를 만났구나."
"응."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관찰자의 말이라면, 휘말리는 건 이미 확정된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거겠지.
잠시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던 유린이가 입에 미미한 미소를 담으면서 말했다.
"알려주기 위해 왔구나."
"응."
"고마워. 휘말렸을 때 또 보면, 꼭 도와줄게."
"마스터는 용사님보다 강하시니, 자신의 몸 걱정만 하시길."
"마법사가 나를 이기긴 힘들 텐데..."
아마 자신의 활을 떠올린 건지, 유린이가 그렇게 말한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유린이의 자신감은 조금 깨는 게 좋을지도.
"안티 매직 필드에서도 마법은 편하게 쓸 수 있어."
"...응?"
"활의 능력을 맹신하지 마."
"내 활에 대해 알고 있구나."
추궁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유린이의 시선에 말을 이었다.
"세희가 없는 이쪽 세계에서 왔으니까."
"...그렇구나.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왔어."
"응."
"그쪽의 나는 어쩌고 있어."
"그쪽의 유린이는..."
그렇게 잡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돼서 세희네 집으로 돌아오자, 그곳에는 샤브린이 있었다.
"...호오."
나를 보자마자 눈을 빛내는 그녀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지만 애써 외면.
...상혁이의 인맥에 당연히 샤브린이 있겠지.
"재밌겠군. 마도사인가? 언제 한 번..."
"결계는 안 써줄 거니까. 개인적인 일로 싸울 생각하지 마."
오늘은 뭔가 공부하고 있는 건지, 샤프로 탁자를 톡톡 치던 세희가 말한다.
세연이도 방에서 공부 중인 모양인데... 샤브린은 왜 여깄는 걸까.
"그 문제, 잘못 출제됐군. 정답이 없다. 아마 잘못된 시험지를 그대로 복사한 모양이다."
"아, 역시 그러네. 정답이 없어 보였어."
"..."
슬쩍 세희가 풀던 문제를 본 샤브린이 말하자, 그녀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전투광인 샤브린이 공부를 잘한다고?
제법 낯선 환경이다.
"샤브린은 공부 잘하는구나."
"음... 나를 샤브린으로 소개했나?"
"아니, 쟤도 다른 세계 사람이라서. 널 본 적이 있는 모양."
"그렇군. 여기선 수진이라고 부르면 된다. 공부라... 이미 아는 걸 이쪽 언어로 적는데 공부는 필요 없지."
"..."
어라? 샤브린은 혹시 천재...?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내가 눈을 깜박이자, 세희는 시선조차 내게 옮기지 않고 말했다.
"수진이는 학생회장이니까."
"..."
그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만다.
두려워져요.
그 날 밤.
모르는 번호로 문자 메세지 하나가 도착했다.
[나한테 연락해달라고 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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