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2F 스노우 프롤로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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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여기가 어딘지 파악해보는 것.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린데, 배경은 한국이다.
다른 나라였으면 큰일날 뻔했네.
"여기 부산인 거 같아."
[부산... 입니까?]
"응, 유린이랑 상혁이, 수진이가 왔던 곳."
[그렇군요.]
그럼 어딘가에 세 사람이 있을 텐데... 묘하게 평화로운 게 마음에 걸린다.
아포칼립스가 일어나기 전일까?
"잠깐만."
그렇게 생각할 때, 어떤 소녀가 내 앞에 등장하곤 한숨을 내쉰다.
귀찮은 걸 봐버렸다는 표정.
어울리는 사람이 드물다는 트윈테일 머리칼을 한 소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렌이 요정 형태로 나와 소리친다.
"마스터는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신령. 굳이 싸울 생각은 하지 마시길."
"신령."
"그래그래, 신령인걸 아는 진마계 녀석도 있고... 근데 어쩌지? 나 오히려 그 애보다 너랑 적대 관계인데."
"당신은 지금 수육하고 있지 않습니까. 싸우면 필연적으로 큰 상처를 입을 테죠."
"...그건 그래. 하지만, 불안 요소는 배제하고 싶은데."
"정말 가능하시겠습니까?"
렌이 살기를 뿌리기 시작하자, 소녀는 한숨만 푸욱 내쉰다.
정말로 귀찮다라는 느낌.
소녀가 앞으로 손을 뻗자, 내 감각에 결계가 잡힌다.
언제 시전한 건지도 못 본 탓에 마법 확인도 실패.
...아니, 애초에 마법은 맞나?
"권능 계열입니다. 공간의 권능을 가진 사신... 설마하지만..."
소녀의 머리칼이 붉은 빛으로 물든다.
복장이 검은 원피스로 바뀌고, 끈이 목에 교차해서 걸린다.
눈동자라 타오르는 붉은 빛으로 편하고, 손에는 거대한 대낫이 잡힌다.
존재감이 일순간 크게 상승했다.
순환시로 확인하자, 모든 공간이 마력으로 가득찬 게 눈에 띈다.
"나는 신령회수사신 부대의 장을 맡고 있는 사신장, 루니아세르넨. 정체를 밝혀, 침략자. 어떻게 공간을 뚫고 왔는진 모르겠지만... 내 임무에 방해된다면 배제할 거야."
"...별 무리의 마법 소녀, 스노우야. 임무가 뭔진 모르겠지만... 딱히 적대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렌이 말이 험했어. 미안."
"마스터, 저는..."
"렌은 내 마도구, 마법 소녀의 지팡이야. 네가 알고 있는 진마계라는 곳에서 온 건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나쁜 짓은 안 했어."
"그걸 증명할 수 있어?"
타오르는 눈동자를 마주한다.
증명할 수 있냐고 물어도... 방금 막 이 세계로 와서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마스터, 마스터의 마력, 사신에게 제대로 보여주시길."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솔직히 마스터라고 불리는 아이는 경계하고 있지 않아. 내가 경계하는 건, 렌이라고 불리는 너 뿐이니까."
렌을 경계하고 있다.
이런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간만에 예측을 벗어나는 일에 팔짱을 끼곤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납득할 수 있을까.
"렌."
"네, 말씀하시길."
"이번 세계에선 내가 죽을 위기가 아니면, 실체화하지 말아줘. 이건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내 말에 어쩌지 시무룩해진 얼굴로 지팡이로 변하는 렌을 보며, 루니아는 낫을 어깨에 걸면서 바라본다.
눈동자가 마주치자, 미묘한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모습.
이내 뭐, 됐겠지. 라고 중얼거린 소녀가 원래의 검은 머리칼로 돌아오며, 동시에 결계가 해제되는 걸 느낀다.
"그래서... 정말로 궁금한 건 공간을 어떻게 깨고 온 거야? 내 기억상으론 차원의 틈 전부 막았던 거 같은데..."
"갑자기 이동된 거라 잘 모르겠어."
"관리 차원 트러블이라도 생긴 건가? 거기서도 여기 관여하긴 힘들 텐데..."
내 말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는 소녀에게 말했다.
"이쪽 세계에 생길만한 일이 있어."
"...글쎄? 미래 일은 알 수 없으니까."
"그래."
대체 이번 층은 미션이 뭐지?
바로 메세지가 나온 것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미션을 깨야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텐데...
"...근데 진짜 마법 소녀야?"
"응."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법 소녀 폼으로 변신한다.
그러자 헛웃음을 흘리는 루니아.
잠깐 고민의 기색을 보이는가 싶더니, 내 손을 잡고는 말했다.
"남자 영혼인데 마법 소녀로 사는 것도 힘들겠네. 어쩌다가 빙의된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갈 곳은 있고?"
"...없어."
방금 왔는데 있을 리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연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멸망 시나리오가 결정된 세계로 진입하십시오.]
[6일 후에 이 세계의 '주인공' 근처에 있으면 자동으로 진입됩니다.]
"..."
이건 또 무슨 헛소리예요.
"그럼 우리 집으로 올래? 세연이가 좋아할 거 같은데..."
"...세연이."
그녀의 말에 누군가가 떠오른다.
미국에서 홀로 떠돌고 있던 소녀의 모습.
설마 그 애인 걸까.
"오늘 날짜, 언제야?"
"응? 1월 13일인가...?"
"...렌."
[아포칼립스가 일어나지 않은 세계군요. 루니아라는 사람은 저희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 아마 저 소녀의 영향으로 아포칼립스가 일어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법 재밌는 상황이잖냐~ 신령회수사신이라~ 오랜만에 듣는데.]
"거기 두 영혼, 나도 다들리니까 조용히 해."
[진짜로!?]
[...대단하군요.]
두 사람의 말에 루니아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것처럼 말했다.
"아, 됐으니까... 아, 그리고 세연이랑 애들 앞에선 '세희'라고 불러."
"지금 이름이 세희인 거야."
"하아... 응, 뭐, 그래."
그렇게 말한 뒤,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는 세희의 모습.
나 역시 마법 소녀 폼을 해제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