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2F 프롤로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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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길 밖에 없던 건가."
은인이자, 사랑하던 소녀를 구해내지 못했다.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무한히 재생하고, 동시에 무한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괴물.
불사신에 가까운 저 괴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빌어먹을 셰배. 이렇게 통수칠 거면... 친해지지 말지 그랬어."
역시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애시당초 너에게 도움을 줄 뿐, 친구가 된 적은 없는데?
"그런 점도 마음에 안 든다고, 개자식아!"
시간을 멈춘다.
쏘아내는 건, 흡수된 채로 몸과 머리만 내밀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
...저 아이가 죽으면, 적어도 무기를 만드는 능력은 사라진다.
그렇게 된다면.
그렇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터.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떨린다.
내가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을까.
내가 저 아이를 쏠 수 있을까.
"이 오빠야는 항상 귀찮데이. 얼른 쏴야 내가 뭘 할 거 아이가."
한쪽 팔을 늘어뜨리고, 왼쪽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소녀가 말한다.
제법 심각한 부상인지 잡힌 팔은 이미 붉은색으로 색칠한 것마냥 붉게 변해있었다.
"미안, 내가 결단을 빨리 내렸다면..."
"알고 있으면 빨리 하라카이, 더 늦으면 나도 전투 상태로 못 들어간데이? 시간 정지 딜레이도 얼마 안 남은기라."
그렇게 말한 검은 머리칼의 소녀가 쓰게 미소 짓는다.
평소에 하던 붉은 리본은 어디로 간 건지, 이미 사라져 그녀의 머리칼을 휘날리게 만든다.
"세연아."
"에휴, 상혁 오빠야였으면 주저도 안 했을 텐데, 간댕이가 그리 쪼끄매서 어따 쓰겠노. 줘바라."
그렇게 말하면서 세연이가 한 손으로 내 총을 가져간다.
자연스럽게 한손 사격 자세를 잡는 세연이의 모습에 내가 그녀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탕. 하고 총구에서 총알이 튀어나오고 그대로 멈춘다.
"화학 폭발, 급가속, 정조준. 정지 해제."
동시에 3개의 능력을 발동하고, 시간 정지를 풀어버린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유린이의 형상.
내가 뭐라 소리치기 직전.
어느새 내 몸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어라?
왜?
시선을 돌리자, 나와 함께 허공을 날고 있는 세연이의 모습.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끝으로, 내 정신은 그대로 나락으로 꽂혀버렸다.
"헉?!"
눈을 뜨자,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방금... 꿈이었나?
뭔가... 뭔가 어떤 애랑 같이 싸웠던 거 같은...
"...머리 아픈데."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내가 본 적 없는 아이라는 걸까.
뭔가에 맞아서 하늘을 나는 꿈이라니, 무슨 개꿈이야.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동일한 인물이 각 2명씩 있다는 걸 명심해.]
[7일 후에 세계가 개변돼. 능력은 '시간 조작'. 시간 정지나 루프 정도. 루프는 돌아가면 기억이 그 시점으로 맞춰지니까, 잘 생각하고 써.]
[당연히 내가 안 믿었으니까, 못 믿을 거다. 3일 후에 유진이한테서 연락 올 텐데, 그 내용이 쇼핑몰 같이 가자는 내용이면, 이 톡을 믿어줘.]
[...우리는 유린이를 구하기 위해서 루프하고 있어. 잊지 마.]
"...이건 또 뭔."
내 이름으로 된 코톡 메세지가 나한테 와있다.
무슨 중2병같은 스토리라도 짰던가 싶지만, 쓴 기억이 없다.
게다가 날짜가... 2주일 후의 날짜로 되어있다.
"버그 걸렸나?"
그렇다고 하기엔 마음에 걸린다.
꿈에서 본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을 멈추고, 총을 쏘지 못해 망설일 때, 누군가가 총을 쏘고... 그대로 괴물에게 맞아 날았던가.
괴물 생김새도 잘 기억 안 나네.
"쓰읍..."
뭐, 어차피 방학이라 밑져야 본전이다.
게다가 유린이는 실제로 내 친구 이름이니까... 좀 불안하기도 하고.
"일단 유린이한테 가볼까..."
그렇게 나는 방을 나섰다.
* * *